‘한판 붙은’ 검찰-공정위 파워게임 내막

  • 김세훈 기자 space0122@naver.com
  • 등록 2018.07.02 10:58:49
  • 호수 11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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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일-김상조 밀리면 집으로

[일요시사 취재 1팀] 김세훈 기자 = 검찰이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김상조)를 압수수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검찰과 공정위가 ‘전속고발권’을 두고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권력을 가진 기관들이 밥그릇 싸움을 할 때 상대방의 비리를 이용해 선수를 치는 방법은 흔한 레퍼토리다.
 

대한민국서 검찰은 기소권을 독점한 기관이다. 공정위 역시 재계서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 ‘재계 검찰’이라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어떤 곳일까? 공정위는 불공정거래행위를 규제해 기업들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기관이다. 특정 기업의 불공정행위가 있으면 적발해 소비자를 보호한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기업에 독자적으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기 때문에 준 사법기관으로 분류된다.

불공정위원회?
달라진 공정위

이런 권한을 가진 기관임에도 지난 정권까지 공정위는 이렇다할 존재감을 나타내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공정위의 위상은 다르다.

시작부터 '을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한 ‘갑질 근절'이란 강렬한 취임사로 화제를 모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재벌기업에 과도하게 몰려 있는 시장구조를 바꾸고 몇몇 기업의 편법적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주요 의제로 정해 활동했다. 

김 위원장이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한 후 공정위의 존재감은 이전과 확연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두 기관이 최근 불편한 관계로 만났다. 지난달 20일, 검찰은 공정위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이번 압수수색의 명분은 두 가지다. 먼저 공정위가 기업 비리 혐의를 알고도 눈감아 줬다는 것. 둘째 기업이 공정위 고위 간부들에게 취업을 알선하는 방식으로 보은을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의 배임과 횡령 혐의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서 부영그룹이 분양가를 부풀려 1조원대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포착했다. 검찰은 공정위가 부영그룹의 혐의를 미리 알았지만 검찰에 고발하지 않고 사건을 덮었다고 보고 있다.

공정위가 기업비리를 알고도 검찰에 고소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된다. ‘전속고발권제도’라는 것 때문이다. 공정거래법과 관련한 사건에 대해선 검찰이 독자적으로 기소할 수 없다. 

공정위가 먼저 검찰에 고발 조치해야 검찰은 해당사건에 대한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 공정거래법 위반 사항에 관련한 사건은 이렇게 수사하도록 제도화돼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은 공정거래법 위반에 관하여 공정위의 입단속만 잘하면 불법으로 기업을 운영해도 괜찮은 상황이다.

“전면 폐지” vs “단계적 과정 필요”
논란 많은 전속고발권 두고 신경전

어째서 이런 권한이 공정위에게 있는 걸까?

공정위는 경제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집단이 기업 고발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 형사고발제도처럼 경제관련 전문지식이 없는 집단이 기업 고발권을 가지면 고발권 남용으로 기업 경영활동이 위축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공정위의 주장이 시대착오적 이라는 논란이 거세지자 정부는 2014년부터 감사원, 중소기업청, 조달청에도 고발 요청권을 부여했다. 이들 기관장이 고발을 요청하면 공정위는 의무적으로 고발해야 한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제도를 폐지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두 수장 회동
엇갈린 주장

5월13일 서초동 대검 청사서 김 위원장과 문무일 검찰총장이 만났다. 그 자리서 양측 수장은 전속고발권 폐지에 대한 설전을 벌였다. 

5월29일 대검 관계자는 “김상조 위원장이 대검을 찾은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전속고발권의 전면 폐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양측은 공정위가 독점적으로 행사한 전속고발권의 범위를 축소하는 대신, 현행 공정거래법 가운데 형법 적용범위를 대폭 줄이는 방향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공정위는 전속고발권 전면 폐지는 어렵다는 뜻을 내비쳤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전속고발권 폐지에는 동의하지만 단계적 절차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공정위는 담합 행위 가운데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 제도)를 공정위에 그대로 남겨둬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정위 관계자는 “은밀하게 진행되는 담합 사건의 경우 가담자의 형사 처벌을 감면해주는 자진신고 제도를 폐지하면 단속 효율성이 떨어지는 데다, 이 제도는 행정 처분의 성격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압수수색한 두 번째 명분은 부정 취업 청탁이다. 공정위 고위 간부들이 재취업하는 과정서 공정위의 비호를 받은 기업이 그 대가로 한국공정경쟁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같은 곳에 취업 알선을 해줬다는 것이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4급 이상의 공무원은 퇴직 전 5년, 퇴직 후 3년간 소속했던 부서 또는 기관의 업무와 관련성이 있는 곳에 취업할 수 없다. 그럼에도 공정위가 이 같은 특혜를 관행처럼 여겨 취업한 사실을 묵인해 온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이번 수사가 공정위 흠집내기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검찰이 취업 특혜를 받았다고 지목한 지철호 공정위 부위원장은 중기중앙회 상임감사서 공정위로 오면서 청와대 인사검증을 거쳤고 김 위원장을 도와 재벌개혁 실무를 총괄하는 인물이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공정위는 중기중앙회가 공직자윤리법서 정한 취업제한기관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실제 지난해와 올해 퇴직공직자 취업제한 고시 명단에 중기중앙회는 포함돼있지 않았다. 기획재정부와 중소기업청 출신의 전현직 중기중앙회 간부 2명도 재취업 과정에서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경쟁연합회도 취업제한 규정이나 심사 과정서 문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검찰이 전현직 공정위 간부의 과거 재취업을 형사상 문제가 있는 것처럼 무리하게 엮고 있다”고 반발했다. 
 

법조계의 한 인사도 “검찰이 전속고발권 폐지를 두고 공정위와 협상하는 도중 압수수색한 배경에 의심이 간다”고 말했다. 검찰은 오래 전부터 내사했고 공정위를 예우했으며 전속고발권과 수사와는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턱밑으로 향한 칼날
다음달 최종안 발표

일각에서는 검찰이 김 위원장에게 직접 칼날을 들이민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의 취임 후 직접 구성한 기업집단국을 검찰이 압수수색 했기 때문이다. 

기업집단국은 4대 재벌을 집중적으로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김 위원장의 정책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서다. 다만 기업집단국이 만들어진 시기가 1년도 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2013년부터 2015년까지 혐의가 있는 부영그룹 비리와 직접적으로 연관 짓기는 어렵다. 


검찰이 김 위원장을 타깃으로 압수수색을 진행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얼마 전 이뤄진 검·경 수사권 조정과 연관이 있는지도 세간의 관심사다. 

지난달 20일 정부서울청사서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과 박상기 법무부장관은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에 서명했다. 합의안에 따르면 경찰이 수사하는 사건에 대해 검사의 수사지휘권한을 폐지하고, 경찰에 1차적 수사권과 종결권을 부여했다. 검사의 1차적 직접 수사는 특별히 필요한 분야로 한정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검찰과 경찰의 관계를 기존의 수직적 관계서 협력하는 수평적 관계로 설정했다는 평가다. 상대적으로 입지가 좁아진 검찰이 공정위의 압수수색을 통해 검찰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수단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재로선 무리가 있다.

전속고발권을 놓고 양측이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이는 까닭은 공정거래법 위반에 관한 사건들이 대부분 굵직한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반에 대한 범죄는 주로 기업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사건의 규모가 크다. 법률을 적용하고 해석하는 기관 입장서 전속고발권은 매우 매력적인 권한임이 틀림없다.

현재 검찰과 공정위는 협상 끝에 전속고발권을 선별 폐지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전속고발권 폐지를 두고 양측 간 이견이 많이 좁혀져 마지막 절차만 남았다”며 “다음 달 초 최종 결론이 날 것”이라고 밝혔다.

압수수색 배경에 힘겨루기?
 자칫 밥그릇 싸움으로 비칠라

현재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관련 법률은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 등 모두 6개다. 이 가운데 가맹법과 유통업법, 대리점법 같은 유통 관련 법안의 전속고발권은 선별적으로 폐지된다. 하도급법은 기술탈취 부문에 한해 폐지 방향으로 잠정 결론났다. 표시광고법은 폐지에 앞서 형벌조항 정비가 필요해 논의가 더 이뤄질 전망이다.
 

최대 쟁점인 공정거래법은 담합 조항 일부를 폐지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다만 공정위와 검찰은 공정거래법 위반에 관해 자진신고 시 처벌을 감면해주는 리니언시제에 대해선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사정기관 특권의식
“당장 그만둬야”

전문가들은 이 사안이 한국경제에 큰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만큼 검찰과 공정위의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 세부적인 조정이 많이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검찰과 공정위가 서로 협력하는 자세로 현명히 해결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공정위는 전속고발권 폐지 범위에 관해 토론회를 열고 다음달 최종안을 확정 발표할 예정이다.

지금에야 공정위가 재벌개혁의 분위기를 맞아 여론의 지지를 받지만 이전까지 공정위는 존재감 없는 기관이었다.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면 고발권 남용으로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공정위의 주장은 친기업성향의 정권서나 받아들여질 이야기다. 기업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공정한 거래를 하면 해결될 일이다. 

현재 여론은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다만 이것이 검찰의 권한을 더 강화해야한다는 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속한 조직서만 법률을 적용하고 해석해야 한다는 특권의식으로 수사기관들은 몇 십년 째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그들은 공직자들이다. 범죄를 저지른 기업을 잡아내는 일이 각 조직의 파워를 과시하는 게임으로 변질되는 것을 방치해선 안 된다. 공직자는 파벌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를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나.


<kimsehun@ilyosisa.co.kr>


<기사속 기사> '김상조 포비아' 재계 초비상

“하반기 최대 경영불안요소는 공정거래위원회다”라는 말이 기업 간에 나돌 정도로 공정위의 칼끝이 매섭다. 재계에선 ‘김상조 포비아’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지난달 25일 공정위는 기업 사익편취 금지제도를 도입했다. 대기업 내부 거래 비중 증가에 관한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과 SK하이닉스는 경쟁사 직원들과 이메일, 메시지 교환을 금지하는 내용의 사내교육을 진행했다. 공정위로부터 반도체 가격을 담합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수 차례 받은 탓이다.

현대차도 공정위 관련 이슈가 보도될 때마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한다. 

LG그룹의 사내 설문에는 '정도경영' 항목이 들어갔다. LG그룹 경영진들이 얼마나 공정한 경영을 하고 있는지 자체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다. 

동국제강 등 철강업체들도 업계 특성상 협력업체와 접촉이 잦은 만큼 업무처리 방식과 금품수수방지에 관한 교육을 하고 있다.

올해 공정위가 기업에 부과한 과징금과 과태료는 6월까지 1258억2334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5%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공정위 처분에 소송을 제기하거나 반발하는 사례도 늘었다. 삼성SDS 소액주주들은 지난달 18일 김 위원장이 대기업 SI 계열사 지분 매각을 지시한 이후 주가가 급락했다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항의하기도 했다. 이후 김 위원장은 "삼성SDS를 두고 한 발언이 아니었다"며 "비상장 계열사를 의미한 것"이라 해명했다.

내부거래 비중이 높아 공정위에 적발된 LS그룹은 공정위의 계열사 부당 지원 심사에 반발하며 소송에 나설 의사를 밝혔다.

몇 군데 기업을 제외한 재계의 반응은 '일단 공정위의 눈치를 보자'는 분위기다. 공정위가 ‘바이러스 99% 제거’라는 제품 홍보 문구를 사용한 삼성전자, 코웨이 등 7개 공기청정기 제조사에 15억6300만원 규모의 과징금, 경고 처분을 내린 것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 기준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지만 이의를 제기하진 않을 예정”이라며 “괜히 나섰다가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키지 않겠냐는 것이 경영진 판단”이라고 전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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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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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