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거래’ 수사 관전포인트

사상 초유의 사법부 vs 검찰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대법원의 재판 거래와 법원행정처의 법관 사찰 등 사법 농단 의혹에 대해 검찰이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처음으로 검찰이 사법부를 상대로 하는 수사인 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검찰은 국정 농단 수사를 맡았던 특수부에 배당하며 강도 높은 수사를 예고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의혹 당사자들에 대한 직접 수사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린다. 
 

검찰이 법원행정처에 관련자들의 PC 하드디스크 실물을 통째로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 요청 자료에는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의 하드디스크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자용)는 관계자는 지난 19일 기자들과 만나 “관련자들이 사용한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포함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직접 관련된 자료들 중 수사에 꼭 필요한 자료들을 한정해 제출해줄 것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드디스크 요청

검찰은 당초 대법원 자체조사를 맡았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대법관)’이 조사를 실시했을 때 발견된 문건들 뿐 아니라 의혹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조사단은 법원행정처 컴퓨터서 몇 개의 키워드를 검색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는 진실 규명 작업”이라며 “한정해서는 진실을 규명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하드디스크 자체로 봐야 한다. 관련자들 참관 하에 필요한 자료를 추출하고 불필요한 자료나 개인정보 이런 부분이 누설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들이 있다”며 “추출한 자료만 주게 되면 그 자료들이 언제 생성됐는지, 변동됐는지 하는 부분을 포렌식으로 다 확인해야 하니 (하드디스크)실물에 대한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압수수색이 아닌 임의제출 형태로 관련 자료를 확보하는 절차를 밟는 것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수사 방식의 선택은 사건에 따라 적합한 최적의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사전에 수사 방식을 한정한다든가 배제한다든가 하지는 않는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비쳤다. 

이어 “수사 방식의 선택 문제는 목표를 향해 가는 길일 뿐”이라며 “수사기관의 판단에 맡겨진 문제”라고 덧붙였다. 
 

검찰은 관련 자료를 모두 확보해 검토한 뒤 고발인 조사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피고발인들에 대한 조사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 계획을 갖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긴 하지만 범죄 혐의에 대한 통상적인 수사다. 일반 국민에 대한 수사 방식과 절차에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판사 개인의 비리가 아닌 전직 대법원장까지 연루된 사법부의 조직적 범죄 의혹을 수사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 의혹을 조사한 조사단은 지난달 25일 조사보고서를 발표하고 양승태 전 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일부 재판들을 청와대와 거래하려는 문건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다만 관련 문건들이 실제로 실행되지 않아 형사처벌을 할 사안은 아니라고 결론내렸다. 

그러나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후 형사조치도 고려하겠다고 해 혼선이 빚어졌다. 김 대법원장은 법관들의 의견을 수렴해 지난 15일 “이미 이뤄진 고발에 따라 수사가 진행될 경우 사법행정의 영역에서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검찰은 본격 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시민단체 등이 사법농단 의혹에 대해 고발한 20건의 사건을 공공형사수사부(부장검사 김성훈)에 배당했다가 지난 18일 특수1부에 재배당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국정 농단 사건 같은 권력형 비리 수사를 주로 맡아온 곳인데, 검찰의 최정예 부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검찰 역시 사안의 중요성 등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설명하며 강도 높은 수사를 예고했다.

‘최정예’ 특수부 배당
강도 높은 수사 예고

이런 가운데 법원 밖에선 여전히 ‘재판 거래’ 의혹을 규탄하는 집회가 계속됐다. 

한 법학과 교수는 “그 판결이 단지 대법원에 의해 선고됐다는 이유로 정당하다고 누가 이야기할 수 있겠냐”고 토로했다. 이들은 대법원의 공식 사과와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한편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대법원이 갑자기 해명자료를 내놨다. 앞으로 재판에 넘겨질 가능성이 큰 사건을 두고, 최종심 법원이 마치 당사자인 양 수사 초기부터 변호에 나선 모양새다. 

대법원은 지난 20일 ‘케이티엑스(KTX) 여승무원 사건 관련 정리’라는 제목의 ‘참고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대법원은 참고자료를 통해 ‘같은 내용의 소송 두 건에 대한 원심(2심)의 판결이 엇갈려 이를 통일해 정리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또 같은 날 선고된 현대자동차 사건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법리를 적용한 것으로 ‘재판연구관실의 집단지성’과 ‘소부 대법관 전원의 의견이 일치’해 선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의 이날 참고자료 배포는 KTX 여승무원 사건 판결을 둘러싼 ‘재판 거래’ 의혹의 검찰 수사에 대비해 미리 방어 논리를 내놓은 것으로, 헌법기관이 취할 행동은 아니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한편, KTX 해고 승무원 쪽인 ‘KTX 열차승무지부’와 ‘KTX 해고 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는 21일 오전 대법원 정문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사법 농단 수사의 변호사를 자처하고 나선 대법원을 규탄할 예정이라고 이날 밝혔다.

KTX 해고 승무원들은 “대법원은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고 법원행정처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통째로 달라고 요청한 다음날 곧바로 재판거래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는 해명자료를 배포했다. 대법원은 수사에 협조하기는커녕 오히려 사법 농단 의혹을 은폐하고 범죄 혐의자들을 비호하는 ‘변호사’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고 비판했다. 


변호사 역할?

이들은 “이런 상황서 검찰의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검찰의 수사가 철저하게 이뤄졌다 하더라도 범죄 혐의자들이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는 현재의 법원서 제대로 된 재판이 가능할지 심각한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KTX 해고 승무원들과 대책위는 기자회견서 재판 거래 의혹과 관련된 대법관 및 법원인사들의 즉각 퇴진을 요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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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채 상병 특검법)이 야당 주도로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7월19일 사건 발생 10여개월 만이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반발하며 퇴장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서 ‘이태원참사특별법’을 합의 처리된 뒤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제출하며 채 상병 특검법 상정을 요구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한 사건을 초동 조사하고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서 대통령실·국방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특검이 수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경찰 이첩 개입 의혹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를 수용해 의사일정 변경동의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졌고, 재석 168명 전원 찬성표로 가결됐다. 표결에는 야당만 참여했고, 국민의힘은 반발해 사실상 표결에 불참했다. 민주당은 원래 본회의 안건에 없었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기 위해 의사일정 변경을 우선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은 이번 본회의에 합의되지 않은 법안이 올라가는 것 자체를 반대해 왔다. 당초 김진표 의장도 여야가 합의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양당 원내대표를 의장석으로 불러서 마지막으로 중재를 시도했지만 5분 뒤 김 의장은 여러 가지로 고려한 끝에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양당의 마지막 협상도 결렬됐고, 국민의힘에서는 유일하게 자리에 남았던 김웅 의원만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방청 중이었던 해병대 예비역연대 법률 자문, 김규현 변호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년의 해병대 예비역들도 연신 눈물을 흘렸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야당이 강행 처리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로텐더홀서 규탄대회를 열고 “그간 우리 당은 이태원참사특별법에 합의 처리하는 조건으로 의사일정에 동의했다. (민주당과 김 의장이)채 상병 특검법을 애초에 처리하겠다고 했으면 저희는 오늘 본회의 의사일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모처럼 이태원법 합의 처리를 통해 협치 분위기가 조성되고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있는데 오늘 의사일정 변경까지 해서 채상병법을 처리하겠다는 것은 정치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채 상병 특검법 표결 시 본회의장을 퇴장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채 상병이 의사일정으로 상정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규탄대회 뒤 거부권 행사 건의와 관련한 질문에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국힘 퇴장 속 야당 전원 찬성 조각난 협치···대통령 또 거부?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 의사일정 변경안을 제출한 상태다. 이날 본회의는 이태원특별법 처리를 위해 여야 합의로 잡은 일정인 반면, 여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상황서 입법을 강행하기 위해 의사일정을 변경해 본회의 부의를 시도하겠다는 의도였다. 대통령실은 이날 야당의 강행 처리 예고를 예의주시하면서도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서 “민주당이 오늘 국회 본회의서 채 상병 특검법을 의사일정까지 바꿔가면서 일방 강행 처리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 표명은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실장은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며 “공수처와 경찰이 이미 본격 수사 중인 사건인데도 야당 측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특검을 강행하려고 하는 것은 진상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여권에선 채 상병 특검법 자체의 법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이미 수사 중인 사안에 특검을 도입하는 배경에 정쟁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바라봤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서 진행 중인 수사가 끝난 다음, 그 과정이나 결과를 토대로 특검 도입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야당이 특검을 당장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대통령실은 무엇보다 2021년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해병대수사단에 수사권이 없어졌기 때문에 야권이 주장하는 ‘수사외압’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해병대수사단이 기초 조사는 할 수 있겠지만, 관계자 수십명을 소환하고 연루자가 몇 명이고 하는 것은 법에 규정된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당시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의 ‘월권’ 가능성을 지적한 셈이다. “정치적 의도” 대통령실 발끈 또 과거 공수처 설치와 군사법원법 개정을 주도했던 민주당이 특검을 추진하는 모순을 거론하며, ‘참사의 정쟁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분위기다. 이날 정 실장은 “현재 공수처와 경찰서 철저한 수사를 진행 중이므로 수사 당국의 결과를 지켜보고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공수처와 경찰이 우선 수사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특검 도입 등의 절차가 논의되고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공수처는 민주당이 패스트트랙까지 동원해 설치한 기구다. 당연히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는 것이 상식이고 정도”라며 “지금까지 13차례 특검이 도입됐지만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진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야당이 단독으로 주도한 이유도 있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과정서 윤 대통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수사를 왜곡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관련 정황은 이미 상당 부분 나왔다. 국방부는 사단장 등 고위 지휘관들의 혐의를 축소하려 했고, 경찰에 넘긴 수사기록도 매끄럽지 않은 과정을 통해 회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관계자들이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조율한 흔적도 엿보였다. 국민의힘은 특검법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서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공수처 수사가 1년 가까이 진척을 보이지 않으면서 야권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과거 대통령실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조그마한 사고’라고 언급한 사건도 국민적 분노를 유발했다. 지난 3월22일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 매체와 인터뷰서 ‘조그마한 사고’로 표현하고 “전 지휘관이 법적인 문책을 받는 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실언한 바 있다. 더구나 공수처는 지난해 8월 고발장을 접수한 이후 인력 부족, 수사 의지 등을 핑계로 현재까지 ‘수사 진행 중’이라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해병대를 비롯한 국민 여론도 특검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눈물 흘린 해병들 왜? 해병대예비역연대는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채 상병 특검법 상정과 통과를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 모여 “채 상병 특검법 통과, 박정훈 대령 탄압 중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같은)이런 세력들이 우리나라의 집권여당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장은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이 나라의 안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인가. 국민의힘과 대통령은 민심을 외면하지 말고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하길 바란다”고 외쳤다. 해병대예비역연대에 법률자문을 하고 있는 해병대 출신 김규현 변호사는 “(국민의힘은)처음엔 ‘독소 조항이 있다’고, 지금은 ‘공수처와 경찰이 수사 중이니 그 수사가 끝난 다음에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과거 특검 때에는 (앞서)경찰·검찰이 수사를 안 했는가”라고 되물었다. 사실상 가장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할 방법은 법정 수사 기간을 최대 3개월로 정해놓고 있는 특검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병대 측은 이날 “3개월이 지나면 우리 군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안보에 전념할 수 있고, 정치권도 채 상병 문제를 일단락하고 지금 산적한 안보, 민생 정책을 논의할 수 있게 된다”며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수사를 기다리며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채 상병 문제로 정쟁을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국민의힘은 오후 2시에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전원 참석해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집회를 마친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 45명은 채 상병 특검법의 상정·통과 여부를 보기 위해 곧장 국회 본회의장으로 이동했다. 앞서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민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후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지난달 3일 본회의 자동 부의 요건을 충족했다. 여야는 지난 1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처리에는 합의했지만, 채 상병 특검법과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안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통한 것이다. 1년 가까이 진척 없는 수사 역풍 뻔한데···용산 선택은? 특검법 통과에 대해 대통령실은 야당을 향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수세에 몰린 대통령실이 야당을 지적할수록 부정 여론만 키우는 분위기다. 더구나 대통령실은 스스로가 수사 대상이 되는 사안서 ‘협치’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으나, 이로 인해 역풍을 맞게 되는 형국이다. 당장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용산의 뜻을 따를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어렵사리 여당 의원들을 단속하더라도 다음 달에 시작하는 22대 국회에서는 궁지에 내몰릴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신중한 모습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거부권을 행사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며 “김진표 국회의장은 합의 정신을 존중하는 분”이라고 일축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여야 합의 없이 거대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안들에 대해선 ‘과도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젊은 병사의 죽음’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인 데다 야권과 언론이 국가안보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 등 대통령실 연루 의혹을 잇달아 제기한 상황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당의 총선 참패 한 달여 만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다. 국회 재표결 시 여당 이탈표도 우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 회담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의 적극적인 수용을 요구한 데 대해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것도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공수처는 특검 출범 여부와 별개로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 외압 의혹’과 관련된 핵심 인물들을 불러 조사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방부가 채 상병 사건을 회수하고 재조사하는 과정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대통령실 등 ‘윗선’으로부터 외압이 있었는지 의혹을 풀어줄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환조사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수사는 진행 중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이대환)는 지난 2일 오전 9시25분쯤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날 공수처는 박 전 직무대리를 상대로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재조사한 후 혐의자를 축소해 경찰로 넘기는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 등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