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스타 병역특례 ‘빛과 그림자’

군대 안 가려고 태극마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올해는 스포츠팬들에게 최고의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올림픽, 월드컵, 아시안게임이 연이어 열리기 때문이다. 국가대항전은 국내 리그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팬들을 즐겁게 한다. 그만큼 매번 여러 논란도 덩달아 빚어진다. 그중 하나가 ‘병역특례’ 문제다.
 

지난 2월 강원도 평창 일대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4년마다 열리는 전 세계인의 축제서 한국은 금메달 5개, 은메달 8개, 동메달 4개로 종합순위 7위에 올랐다. 지난 14일에는 2018 러시아 월드컵이 개막했다. 우리나라는 18일, 24일, 27일에 스웨덴·멕시코·독일과 조별리그를 치른다.

면제 수단?

8월은 제18회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예정돼있다. 아시아의 맹주인 한국은 여러 종목서 금메달을 노린다. 몇몇 종목은 아시안게임을 대비해 선수 구성에 들어갔다. 최근 선수단 구성 문제를 두고 특정 종목서 논란이 불거졌다. 4년마다 반복되는 일이다.

지난 11일 한국야구위원회(KBO)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는 서울시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 회의실서 국가대표팀 코치진 회의를 열고 이번 아시안게임에 나갈 야구대표팀 최종 엔트리 24명을 확정했다. 눈길을 끈 대목은 오지환(LG·29) 과 박해민(삼성·29)의 발탁 여부였다. 두 선수는 발표 전부터 논란의 중심에 서있었다.

이유는 병역 문제 때문. 두 선수는 올해 29살로, 나이 제한 때문에 상무와 경찰 야구단 지원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들이 군대에 가지 않고 병역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아시안게임 금메달뿐이다. 두 선수는 결과적으로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최종 명단이 발표된 이후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이들 포지션에 거론되는 다른 선수의 성적이 더 낫다는 평이 나왔고, 대표팀에 탈락한 선수들에 대한 안타까운 말이 이어졌다. 

일부 누리꾼은 “두 선수가 병역 혜택을 받기 위해 만 27세인 상무, 경찰야구단의 입대 자격을 놓칠 때까지 버텼다”며 “이들을 위해(?) 야구대표팀이 은메달을 땄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시안게임 선수 구성 잡음
실력보다 미필자부터 뽑아?

우리나라는 체육요원 병역특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체육 분야의 특기를 가진 사람에게 현역 군 복무 대신 공익근무요원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다. 병역특례 대상자는 군대에 가는 대신 4주간 기초 군사훈련을 받고 해당 분야서 2년10개월의 의무종사 기간만 채우면 된다. 
 

시간이 곧 돈이고 젊음이 곧 자산인 스포츠 선수들에게 이보다 더한 ‘당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행 병역법서 규정한 체육 분야 병역특례 대상자는 ▲올림픽서 3위 이상 ▲아시아경기대회서 1위로 입상한 사람이다. 단, 단체종목선수는 한 경기라도 출전해 메달 획득에 기여해야 자격을 얻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올림픽서 동메달 이상,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야만 병역특례 자격을 받을 수 있다.


당초 체육 분야 병역특례는 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유니버시아드대회, 아시아청소년대회, 아시아선수권대회를 대상으로 했다. 그러다 1990년부터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으로 축소됐다. 야구는 올림픽보다 아시안게임서 메달 획득 가능성이 높아 선수 구성 때마다 잡음이 나온다.

아시안게임서 야구는 일본과 대만만 넘으면 우승이 가능한 수준이다. 그나마 일본도 아마추어 선발팀을 내보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대만만 잡으면 우승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 때문인지 언제부턴가 아시안게임이 병역특례의 수단으로 비쳐지기 시작했다.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서 활약 중인 추신수 선수는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내면서 군대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그 이후 추신수가 국가대표로 경기에 나서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그는 여러 차례 국가대표 기피 논란이 휩싸였다.

축구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3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특정 축구선수의 병역 문제에 대한 청원글이 다수 올라왔다. “내가 대신 군대에 가겠다”는 의견부터 “해외서 국위선양을 하고 있으니 병역을 면제해 달라”는 말이 나왔다.

해당 선수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서 활약 중인 손흥민. 손흥민은 그 어떤 선수보다 병역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소속팀서 골을 자주 넣는 등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병역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저평가 받고 있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해외서도 그의 몸값에 대해 ‘군대 리스크’가 적용됐다는 분석이다. 병역 문제가 해결된다면 몸값은 천정부지로 뛸 가능성이 높다.
 

손흥민도 이번 아시안게임이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 1992년 7월에 태어난 손흥민은 병역법상으로 내년 7월 이후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2014년 아시안게임은 소속팀의 차출 거부로 출전하지 못했고, 2016년 올림픽에서는 8강 탈락하면서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올림픽·아시안게임만 특례 자격
병역 기피…국가대표 기피 논란

손흥민의 병역특례를 두고 국위선양과 형평성 논란이 맞부딪친다. 해외서 크게 활약하고 있는 만큼 병역 면제는 아니더라도 병역 연기 등의 방식으로 편의를 봐줘야 한다는 입장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손흥민만 특혜를 받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입장으로 갈린다. 축구서 이 같은 논란은 손흥민이 처음은 아니다.

FC서울 소속 박주영은 2012년 런던올림픽서 홍명보 감독의 부름에 받아 와일드카드로 출전했다. 앞서 그는 모나코서 장기체류증을 받아 병역 기피 의혹을 받고 있었다.

2008년 모나코서 10년 이상 장기체류자격을 얻은 박주영은 10년간 군 입대 연기를 허가받았다. 35세 이전에 귀국하면 현역 입대, 36∼37세 사이는 공익근무요원, 38세 이상이면 병역 면제가 가능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박주영의 병역 논란에 불이 붙었다. 박주영은 기자회견을 통해 반드시 현역으로 입대하겠다는 뜻을 전했지만 ‘꼼수’ 논란 등 축구팬들은 물론 대중 사이서도 비난이 빗발쳤다. 


2012년 런던올림픽서 동메달을 따내면서 논란은 가라앉았지만 병역 문제가 선수와 국민에게 얼마나 민감한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번 동계올림픽만 해도 남자 쇼트트랙 계주서 한국이 4위로 메달 획득에 실패하자 선수들 군대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특히 선수 가운데 김도겸 선수가 병역 특혜 자격을 충족시키기 못한 사실이 드러나자 안타까움을 표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단체 종목은 한 경기라도 뛰어야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이전 경기서 뛰지 않은 선수를 종료 4분을 남기고 투입한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동메달이 거의 확정되자 온 국민이 해당 선수의 출전을 기다리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만큼 남자 선수들의 군 입대 문제는 민감하다.

폐지? 다양화?

병역 특례 문제는 스포츠계서 자주 등장하는 해묵은 논란이다. 일각에선 병역 특례 자체를 없애자는 목소리도 들린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외 다른 국제대회의 국가대표 차출을 꺼리는 선수들이 보이면 그런 목소리는 더욱 커진다.


한편에서는 병역 특례 방법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처럼 징병제를 택하고 있는 터키는 운동선수의 경우 38세까지 군 입대를 연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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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