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개’ SM그룹 좀비기업 대해부

‘M&A 큰손’ 덩치만 크지 속은…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기업의 간판을 달고 있으나 사실상 수입이 없거나 재무구조가 엉망인 회사들이 있다. 이른바 좀비회사. 그룹 계열사에 이 같은 기업이 많다면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몰릴 가능성도 높아진다. 재계에선 이런 점 때문에 좀비기업의 퇴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M&A로 덩치를 키운 SM에도 이 같은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그룹에 숨어있는 ‘좀비기업’ 17곳을 확인했다.
 

SM그룹은 기업인수합병(M&A)을 통해 빠르게 덩치를 키웠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SM은 지난 5월말 기준 65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자산 기준 8조6160억원 수준으로 어엿한 대규모기업집단에 포함됐다.

경영난 계열
20개에 육박

1988년 광주서 우오현 회장이 삼라건설을 창업하면서 SM그룹의 모체가 탄생했다. 당시 우 회장 나이 36세 불과했다. 삼라건설이라는 사명은 삼라만상서 가져온 것으로 우 회장이 불교 집안에서 자란 영향이라고 전해진다. 

법인 설립을 마칠 무렵 광주서도 아파트 붐이 크게 일었고 이에 따라 삼라건설도 승승장구했다. 1997년 외환 위기가 닥치며 극심한 불황이 찾아왔지만 보수적인 경영을 해왔던 SM그룹은 오히려 기회로 삼았다. 

헐값에 나온 수도권 택지를 집중적으로 인수해 사업을 확장했다.


외환위기는 M&A 기회를 줬다. 외환위기가 어느 정도 수습된 이후 이전에 잘 나가던 많은 기업들이 매물로 많이 나왔다. 이런 매물 가운데 우량 기업을 골라내서 그룹을 키우면 좋겠다고 생각한 우 회장은 기업 사냥에 나섰다. 

첫 M&A는 진덕산업(현 우방산업)이었다. 기존의 삼라건설이 아파트 분양의 강자였다면 진덕산업은 강남성모병원, 여의도성모병원, 자유의다리-판문점 간 도로공사 등 기반시설과 대형 건축물을 주로 다뤄온 만큼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의 진출을 기대할 수 있었다.

이후 3년간은 제조업에 집중했다. 건전지 브랜드 벡셀, 화학 회사 조양, 유리·건설자재 회사인 경남모직, 알루미늄 전문업체 남선알미늄, 스판덱스·화학섬유업체 티케이케미칼 등을 이 시기에 인수했다. 

활발한 인수합병에 힘입어 2008년 그룹 매출 1조원을 돌파한다. 티케이케미칼 인수가 특히 결정적이었는데 6000억대 수준이었던 SM그룹은 매출 8000억의 티케이케미칼을 인수하며 단숨에 1조원을 돌파할 수 있었다.

돈 못 버는 계열사
방치되는 친족기업

2008년 이후에도 꾸준히 인수합병을 계속해 부실기업 전문회생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15년 6월 말에는 자산총액이 4조원에 달해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집단 지정 요건인 5조원에 육박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SM그룹의 폭풍성장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복잡하게 얽힌 지배구조 상 계열사의 위기가 그룹 전체로 번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SM그룹에는 그룹의 경쟁력을 낮추는 이른바 ‘좀비기업’이 얼마나 될까. 공정위 대규모기업집단 정보포털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SM그룹 계열사 가운데 자본잠식 상황에 놓여있거나 매출액이 없는 곳은 17곳으로 조사됐다.
 

완전자본잠식에 놓인 곳은 11곳으로 재무구조가 부실한 계열사가 많다는 점도 리스크다. 

2009년 설립된 경남티앤디는 매출액이 전무한 데다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놓였다. 섬유제품 제조업을 주요 사업목적으로 두고 있다. 자본총액은 ?19억3100만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81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우 회장은 이곳 지분 46.29%을 가지고 있다(지난해 9월 기준). 이 외에 임원이 38% 지분을 가지고 있어 총 동일인과 관계있는 지분은 84.29%에 달했다.

자본잠식 허덕
전무한 매출

그루인터내셔널 역시 자본총액 -4500만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황에 놓여있다. 자산총액은 2억9900만원 수준. 이 회사는 2013년 6월14일 도매 및 상품중개업을 주 사업목적으로 설립됐으며 종업원수는 4명이다. 

지난해 매출액 13억4100만원, 당기순이익 6200만원을 각각 시현했다. 이곳은 오너 일가의 친족이 14%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델라노체도 사실상 기업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 델라노체는 도매 및 상품중개업을 영위업종으로 2014년 12월8일 설립됐다. 그러나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전무했다. 기업규모를 살펴보면 자산총액, 자본총액, 자본금이 각각 2000만원씩이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 곳은 우 회장의 친족이 100% 지분을 가지고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제품 제조업이 주사업 목적인 메디원 역시 경영 사정이 좋지 않다. 2011년 10월14일 설립돼 2014년 7월10일 계열사에 편입된 메디원은 지난해 자본총액이 -3억9400만원을 기록하며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놓였다. 

매출액도 전무했다. 2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경영난을 나타내고 있다. 종업원은 단 1명이다. 10억원의 자본금이 투입됐지만 현재까지는 그룹 내에서 손해만 끼치고 있는 상황. 메디원의 주식은 에스엠생명과학이 70%의 지분율을 가지고 SM그룹에 편입됐다.

바로코사도 완전자본잠식에 놓인 기업 가운데 하나다. 2000년 설립된 바로코사는 2016년 11월1일 SM그룹에 편입됐다. 종업원은 10명 규모다. 지난해 기준 부채총액 111억9400만원, 자산총액 86억2200만원으로 자본총액은 -25억7200만원이다. 매출은 75억6200만원을 올렸으나 3억94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삼라농원 역시 자본잠식 상태다. 2013년도에 설립된 삼라농원은 농업을 사업목적으로 영위하고 있다. 자산총액 65억6400만원, 부채총액 70억4400만원으로 각각 집계됐다. 자본총액은 -4억8000만원이다. 매출액은 1억6100만원을 기록했지만 1억93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직원은 단 1명이다. 

삼라농원은 우 회장의 딸 우연아씨가 대표로 있다. 이 곳 지분은 우 회장의 친족이 19%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에스씨파워텍은 매출액이 ‘0’인 것으로 나타났다. 당기순이익은 -115억원 수준. 재무상태도 긍정적이지 않다. 10억원의 자본금이 들어갔지만 현재 자본총액은 2억5500만원 수준으로 자본잠식 상태. 

에스씨파워텍은 전문직별 공사업을 주사업 목적으로 2007년1월3일 설립됐다. 우방건설산업이 에스씨파워텍 지분 100%를 소유하면서 SM그룹에 편입됐다. 종업원은 3명 규모로 크지 않다.
 

온양관광호텔도 자본이 바닥을 드러냈다. 지난해말 기준 자산총액 459억3900만원, 부채총액 514억2700만원을 각각 기록했다. 자본총액은 -57억8800만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매출액은 60억3100만원을 기록했지만 270억96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숙박업을 영위하는 온양관광호텔은 종업원 64명 수준이다. 2003년 7월29일 설립된 온양관광호텔은 지난해 10월30일 SM 계열사에 편입됐다. 온양관광호텔은 현재 법정관리에 돌입했다. SM그룹은 온양관광호텔 매각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만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울코퍼레이션 역시 완전자본잠식 상황. 지난해 기준 자산총액 1억800만원, 부채총액 1억4300만원을 기록했다. 자본총액은 3500만원으로 자본이 바닥을 드러낸 셈. 지난해 3억8500만원의 매출액을 시현했지만 11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한울코퍼레이션의 종업원은 한 명도 없다. 친족이 지분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지난해 9월 기준 우 회장의 친족이 한울코퍼레이션의 지분 50%를 쥐고 있다. 30%는 임원이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통엔지니어링은 지난해 매출액이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 사실상 경영에 대한 성과가 전무한 것. 1억32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상황으로 경영 사정이 긍정적이지 않다. 자산총액 50억6200만원, 부채총액 27억8300만원을 각각 기록했으며 종업원은 없다. 

1981년 설립된 한통엔지니어링은 2007년6월18일 SM그룹에 편입됐다. 2010년에 매각을 추진한 바 있으나 매각이 무산된 뒤 현재까지 SM그룹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지분 구조는 우 회장이 19.96%를 가지고 있고, 삼라 39.93%, 동아건설산업 39.93%를 각각 기록했다.

기원토건도 매출이 전혀 없었다. 당기순이익도 7000만원 적자. 재무구조는 비교적 안정적이다. 자산총액 7억900만원, 부채총액 500만원으로 부채가 거의 없는 상황. 전문직별 공사업을 하는 기원토건의 종업원은 0명으로 사실상 사업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쉽지 않은 매각
더 어려운 회생

삼라산업개발은 자본 사정이 좋지 않다. 지난해 기준 자산총액 9억9800만원, 부채총액 28억9700만원을 기록했다. 자본총액 -18억9900만원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삼라산업개발은 임대업(부동산 제외)을 사업목적으로 1997년 설립돼 SM그룹과 함께 했다. 

우 회장이 지분 47%를 가지고 있으며, 임원 등이 41.33%의 지분을 들고 있다. 회사 관계자의 지분만 88.33%를 기록할 만큼 지분율이 높다.

우방토건도 완전자본잠식 상황에 처해있다. 자산총액은 300만원에 불과하다. 부채총액은 1억2200만원이다. 자본총액 -1억1900만원으로 자본이 바닥을 드러냈다. 2004년 12월1일 설립된 우방토건 역시 2013년 5월29일 M&A를 통해 계열사로 편입됐다. 경영 상황도 우호적이지 않다. 매출액은 전무하며, 1억2300만원 당기순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이코사주류도 자본 상황이 좋지 않다. 자산총액 18억3000만원, 부채총액 202억7500만원으로 자산보다 부채가 월등히 많은 상황이다. 자본총액 -201억1200만원 완전 자본잠식 상황을 맞은 것. 

이코사주류 역시 2016년 12월8일 M&A를 통해 계열사로 편입됐으나 재무구조가 탄탄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나마 매출액이 위안이다. 매출액 170억5600만원, 당기순이익 8000만으로 플러스 성장을 보이고 있는 것. 이코사주류는 바로코사가 지분 100%로 자회사로 두고 있다.

물고 물리는 계열사
커져가는 리스크

부동산업체 일산프로젝트 역시 재무구조가 부실하다. 2008년7월 설립돼 2016년 11월29일 SM그룹 계열에 편입됐다. 자산은 1억6300만원인데 반해 부채가 202억7500만원에 달한다. 자본총액은 -201억1200만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로 매출액은 전무하다. 7억9200만원의 당기순손실로 실적 역시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인프라개발도 회사에 돈이 없다. 지난해 말 기준 자산총액 1000만원, 부채총액 5억3500만원으로 부채가 자산을 웃돌았다. 자산총액은 -5억2500만원으로 완전자본잠식. 2016년 계열사에 편입됐지만 지난해 매출액은 없었다. 당기순이익은 -4200만원으로 적자. 한국인프라개발은 SM계열사 동아건설산업이 지분 50%를 가지고 있다.

한류우드개발에이엠 역시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다. 자산총액 6700만원, 부채총액 2억4900만원으로 부채 규모가 자산총액보다 크다. 자본총액은 -1억8200만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황이다. 

수익성도 높지 않다. 지난해 매출이 발생하지 않았으며, 473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봤다. 현재 동아건설산업이 87.20%로 대주주에 이름을 올렸다. 2008년 설립된 한국인프라개발은 2016년 M&A를 통해 SM그룹에 편입됐다. 직원은 4명이다.

궤도권 순항
연쇄 경영난

재계의 한 관계자는 “SM그룹은 미래를 보고 인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지만 그 성과가 궤도에 오른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라며 “부채 비율이 전체적으로 높은 많큼 유동성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연쇄적으로 경영난을 겪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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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