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권력재편 시나리오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6.11 11:04:45
  • 호수 11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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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내리고 수석 내리꽂나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청와대·정부부처 간 파워게임서 청와대가 확실한 우위를 보이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6·13지방선거 이후 부분 개각을 예고한 가운데 관가에선 그 빈자리를 청와대 참모들이 차지할 것이라는 예상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하마평까지 나도는 상황. <일요시사>는 문재인정부 국정 운영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청와대 참모들을 추적했다.
 

“부분 개각과 관련해 청와대와 이미 기초 협의를 했다.” 

유럽 순방 중이던 이 총리는 지난달 27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서 기자들과 오찬 간담회 중 부분 개각이 목전에 왔음을 알렸다. 그간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처의 장들을 교체하려는 목적으로 해석된다.

지방선거 후
개각 예고

관가와 정가 안팎서 교체 대상으로 거론되는 장관들의 면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로 한차례 이상 문재인정부의 핵심 정책과 혼선을 빗은 경험이 있는 장관들이 0순위로 거론된다.

이번 개각을 통해 최소 2곳서 최대 5곳의 장관이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 장관이 공석인 농림축산식품부는 개각이 확실시 된다. 그 외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장관, 강경화 외교부장관, 박상기 법무부장관, 조명균 통일부장관,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등이 교체 대상으로 떠올랐다.


이번 개각은 새로운 정책동력을 찾는 ‘2기 내각’의 성격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지방선거 이후에 개각을 하려는 것일까. 이 총리는 유럽순방 중 부분 개각의 범위에 대해 “일 중심으로, 문제를 대처하고 관리하는 데 다른 방식이 필요하겠다는 경우에 제한적으로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결국 부처 업무추진 과정서 청와대와 불협화음을 냈거나 정책 혼선·대응 미흡 등으로 구설수에 오른 장관이 대상이 될 것이라는 해석이다. 사실상 책임을 물어 경질하는 모양새다. 위에 거론된 교체 대상 장관들도 모두 청와대와 한 차례 이상 갈등을 벌였던 인사들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장관은 최근 최저임금과 관련해 청와대와 갈등이 있었다. 김 부총리는 정부 내 유일한 ‘최저임금 속도 조절론자’다. 그는 2개월 전부터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고용에 부작용을 줄 수도 있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은 소득주도성장을 강조해왔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의 부작용은 추정일 뿐이며 오히려 그간 최저임금을 인상했을 때 나타난 실제효과를 보면 긍정적인 경우가 훨씬 많다는 입장이다.

김동연 패싱론
힘잃은 부총리

지난달 29일 청와대서 열린 가계소득동향 점검회의를 계기로 ‘김동연 패싱론’이 급속히 확산됐다. 회의 후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앞으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주도해 관련 부처 장관들과 함께 경제 전반에 걸쳐 회의를 계속 개최해 나가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청와대가 경제사령탑인 김 부총리가 아닌 장 실장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목희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달 30일 기자간담회서 “최저임금은 실증과 분석을 더 해봐야하기 때문에 김 부총리의 속도조절론 발언은 적절치 않다”며 “좀 더 객관적인 지표와 동향분석이 나오고 말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31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서 문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의 긍정적인 부분을 자신 있게 설명해야 한다”며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말해 홍 수석과 장 실장 등 청와대 참모들에게 확실히 힘을 실어줬다.
 

김동연 패싱론이 확산되자 청와대는 사후 약방문 격의 진화에 나섰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가 경제 전반에 걸친 권한을 기재부장관에게 줬기 때문에 경제부총리를 앉힌 것으로 그런 의미서 김 부총리가 컨트롤타워”라고 했다. 그러나 이 총리가 지방선거 이후 개각을 예고하면서 김동연 패싱론은 김동연 경질설로 확산됐다.

관가와 정가 안팎에서는 김 부총리의 뒤를 이어 장 실장이 경제사령탑을 맡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김동연 패싱론이 제기됐던 일련의 사태를 통해 장 실장의 소득주도성장론을 경제 정책 방향으로 설정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최근 김 부총리는 소득 양극화 해소를 위한 회의를 열었는데 장 실장이 참석하지 않아 두 사람 간 갈등설까지 불거졌다.

이낙연 “부분 개각, 청와대와 협의”
2∼5곳 교체 전망, 나가는 장관 누구?

강경화 외교부장관 교체가 거론되고 있다. 북미정상회담이 그 분기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반도 비핵화가 최대 이슈로 떠오른 상황서 현재의 평화무드를 만든 1등 공신을 외교부 수장으로 앉혀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를 이끌어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외교부 장관을 맡는 시나리오다.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국면서 강 장관의 존재감과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도 교체 가능성을 높이는 근거다. 강 장관은 취임 당시만 해도 유능한 외교전문가로서 주목받았지만, 1년 사이에 존재감이 약한 장관으로 전락했다. 

뿐만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서 주무 부처인 외교부는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청와대가 주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각에선 외교부 패싱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지난 4월 남북정상회담서 북미정상회담으로 넘어가는 과정서 이러한 패싱은 더욱 두드러졌다. 정 실장은 지난 3월 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단으로 평양을 방문한 데 이어, 미국·중국·러시아 등을 돌며 북미정상회담의 발판을 만들었다. 


반면 강 장관은 정 실장에 비해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지 못했다. 오히려 한때 북미정상회담이 돌연 취소됐던 상황서 외교 당국이 미리 사태를 예견하지 못했다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게다가 최근 외교부는 강 장관이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는 싱가포르에 갈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강경화 대신
정의용 앉히나

박상기 법무부장관 교체도 가능성이 높다. 박 장관은 올해 1월 기자간담회서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를 목표로 강력한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가 청와대가 진화에 나서면서 구설수에 올랐다. 

당시 청와대는 “정부 차원서 조율된 방침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혼선이 발생한 것이다. 그 결과 여론은 더욱 악화되고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 당시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에 반대한다는 국민청원이 쇄도했다.

여당서도 박 장관의 대응에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된 바 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무부의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언급에 대해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며 “이것만이 답일까, 아닐 듯하다”고 말했다.

서지현 검사 성추행 폭로 파문 때도 박 장관은 구설에 올랐다. 서 검사가 언론에 공개하기 앞서 박 장관에게 이메일을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박 장관은 제대로 된 후속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법무부는 박 장관이 서 검사로부터 관련 이메일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가 입장을 바꿔 논란이 됐다. 박 장관은 당시 “서 검사에 대한 비난이나 공격, 폄하 등은 있을 수 없으며 그와 관련된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게 적극 대처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논란은 불거진 후였다.
 

‘강원랜드 수사 외압의혹’으로 검찰 내부에 진실공방이 벌어졌을 당시에도 박 장관은 사안을 방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박 장관은 의혹과 관련해 “불필요한 논쟁이 빨리 정리되도록 하라”고 지시했지만 그가 수사 외압을 주장한 안미현 검사를 좌천시켰다는 의혹이 불거져 논란이 됐다.

김동연→장하성 ‘문’과 철학 일치
강경화→정의용 비핵화 논공행상

박 장관이 교체된다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그 뒤를 이을 것이란 예상이 정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조 수석이 문재인정부 핵심 공약 중 하나인 검경 수사권 조정을 처음부터 진두지휘해왔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이달 중 결정할 예정이라 밝혔다. 검찰과 경찰이 지난달 31일 각각 수사권 조정과 관련한 내부 의견을 청와대에 제출했고 이를 토대로 청와대가 이달 중 최종 정부안을 발표한다는 것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최종 정부안이 발표되면 다음 수순은 정부안을 강력히 추진할 리더십을 세우는 작업이 필요하다. 조 수석은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을 뿐 아니라 의지도 강해 강력한 차기 법무부장관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조 수석은 임명 당시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와 관련해 “수사권 조정 문제는 문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라며 “그것(검경 수사권 조정)은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조명균 통일부장관의 뒤를 이어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임명될 수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임 실장이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의 사례처럼 통일부장관을 거쳐 대권에 도전하는 수순을 밟을 것이란 시나리오다. 

그러나 통일부장관 교체는 가능성이 낮다는 게 중론이다. 이미 성사된 북측과의 고위급회담 등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위해 남측 대표로 나선 조 장관 교체가 부담스럽다는 이유에서다.

박상기 대신
조국 대두

그 외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의 교체가 거론된다. 대입정책의 혼선을 불러왔다는 이유에서다. 김 부총리는 지난해 8월 2021학년도 수능 개편 시안을 1년 유예했으며, 지난 4월에는 대입제도 개편안에 대한 결정을 국가교육회의로 떠넘기는 듯 한 모습을 보였다. 

또 영어수업 금지 방침과 학생부종합전형을 통한 수시선발 방침을 뒤집는 등 혼선을 초래했다. 만약 이러한 혼선으로 인해 불거진 부정적 여론이 지방선거 표심으로 나타날 경우 김 부총리는 개각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청와대 참모 겨냥한 야당, 왜?

청와대 참모 교체를 요구하는 야당의 공세가 거세다. 자유한국당은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 바른미래당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민주평화당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향해 날을 세웠다.

자유한국당 정진석 경제파탄대책위원장은 지난 4일, 서민경제 2배 만들기 대책회의서 홍 수석을 겨냥해 “현실을 왜곡해 국민에게 설명하는 홍 수석은 대체 어느 별 사람인가”라고 비난했다. 같은 당 김종석 중앙선거대책위원장은 “얄팍한 말장난으로 정책의 성공을 주장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라며 “잘못된 정책과 왜곡된 통계로 국민과 대통령을 오도한 경제수석은 책임지고 사퇴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바른미래당은 장 실장이 포스코 회장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했다. 

김철근 대변인은 지난 4일 “인천 한 호텔서 포스코 전 회장들이 모인 가운데 장 실장의 뜻이라며 특정 인사를 포스코 회장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전임 회장들의 협조를 요청했다는 제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평화당은 조 수석을 겨냥해 “부실검증으로 문재인정부 인사는 만사가 됐고 개헌안 발의 특강으로 개헌을 꼬이게 만든 장본인”이라며 “조 수석이 강단으로 돌아가는 것이 조국을 위한 길”이라고 밝혔다.

야당의 이러한 공세는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문재인정부의 실정을 부각시키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지방선거 이후 개각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도 개편할지 주목된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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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