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회담 이후…두 가지 시나리오

일본이 끼면 복잡해진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오는 12일 ‘세기의 담판’이 시작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날 오전 10시(한국시각)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서 만난다.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을 시작으로 물꼬를 튼 북미정상회담은 우여곡절 끝에 회담 성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핵심 의제는 비핵화다. 두 정상이 비핵화 방식에 따른 접점을 얼마나 찾을 수 있느냐가 이번 회담의 관건이다. 또 북미정상회담은 한반도의 미래와 동북아 정세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만남은 가시적이다.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실무 협의는 마무리됐다. 두 정상이 회담서 다룰 의제 협의는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서 진행됐다. 성 김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을 중심으로 갖춰진 북미 대표단은 지난달 27일을 시작으로 지난 6일까지 총 여섯 차례 만남을 가졌다. 

비핵화-체제보장
실무협상 마무리

핵심 의제는 비핵화와 북한의 체제안정보장 조치 등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표단은 의견 조율을 통해 정상회담 후 발표할 문서의 초안을 다잡은 것으로 점쳐진다. 비핵화 등에 따른 양국 간 의견 차가 꽤 좁혀진 것으로 여겨지는 까닭이다.

북미 간 실무협상은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만남 이후 급물살을 탔다. 김영철 부위원장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각) 미국을 방문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장관과 고위급 회담을 가졌다. 

이후 그는 지난 1일(현지시각) 김 위원장의 친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친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을 갈망하는 김 위원장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친서 전달 직후 북미 대표단은 지난 2∼4일과 지난 5일에 연속적으로 만남을 가졌다.


양국 간 의견 조율은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4일(현지시각) 정례 브리핑을 통해 “미 대표단이 북측 대표단과 외교 협상을 계속하고 있는데 긍정적 논의와 중대한 진전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샌더스 대변인의 발언은 북·미 대표단의 5차 실무협상 뒤에 나온 까닭에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높아졌다.

경호 등과 관련한 의전 협상도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김창선 북한 국무위원회 부장과 조지프 헤이긴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양국 정상의 의전 협의를 위해 싱가포르서 회담을 가졌다.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은 지난 6일, 싱가포르서 출국해 베이징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고, 미 대표단은 그보다 이른 지난 2일 출국했다.

북미정상회담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두 정상이 비핵화에 대한 간극을 얼마나 좁힐 수 있을지 주목된다. 회담의 성사에 이은 성과는 그 차이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의 최대 승부처라 할 수 있다.

북-미 비핵화 방식 간극 좁히나
CVID와 체제보장 ‘빅딜’ 가능성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고수한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최소한의 물리적 시간만을 허용하는 일괄 타결식 해법을 언급하며 강조된 CVID 방식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단계적-동시적 해법을 내세우고 있다. 스스로 신뢰할만한 보상이 나오지 않는다면 핵을 일괄적으로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핵화의 대가가 만족할 정도로 충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폼페이오 장관의 두 차례 방북과 김영철 부위원장의 방미, 그리고 판문각 실무협상 등 끊임없는 물밑접촉이 이어지고 있지만 핵심 의제에 대한 양국 간 격차는 쉽게 줄어들기 어렵다는 해석도 나온다. 회담 전 협상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을 두고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 발언한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지난 1일 백악관서 김영철 부위원장과 회동한 뒤 기자들과 만나 6·12 회담을 두고 “과정을 시작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나는 (회담이)한 번 이라고 말 한 적 없다”며 “한 번에 성사된다고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는 비핵화 의제가 단번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일괄적 CVID를 추구하지만 서두르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북한이 좀 더 전향적인 태도로 나올 수 있는 틈을 제공해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 전달 이후 공식적인 발언을 일절 하지 않았다. 북한 내부적으로도 트럼프의 속도전에 대의적으로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비핵화 간극
회담 성과 관건

두 정상이 단 한 번의 회동으로 완전한 비핵화를 도출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맞물려 있는 만큼 이번 정상회담서 합의될 수 있는 사안은 비핵화의 큰 틀 정도로 좁혀진다. 그에 맞춰 후속조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북한 모두에게 만족할 만한 합의가 나오려면 비핵화 방식은 완전한 핵 폐기로 수렴되는 CVID로, 그에 따른 보상은 북한이 신뢰할만한 체제안정이 나와야 한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핵을 체제 존속의 보루로 보는 공산이 크다. 

반면 미국은 핵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이다. 상반된 두 의견이 접점을 찾으려면 북미 중 누군가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야 하는 형국이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단발성 회담 가능성을 일축하고, 속도전을 언급하면서 팽팽한 양국의 줄다리기서 일련의 틈을 보였다. 그 틈은 북한에 대한 보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동시에 김 위원장의 입장을 확인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보상의 궤도는 CVID를 벗어나지 않는 쪽으로 잡힐 것이란 해석이다.

비록 트럼프 대통령이 과정과 속도전을 언급해 김 위원장이 강조한 단계적-동시적 비핵화 방식에 힘이 실리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존재한다. 그러나 백악관과 미국 국무부는 단계적 비핵화는 과거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 할뿐이라는 입장을 보이며 단호한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체제 안전보장을 통해 북한의 신뢰를 얻으려 할 것이지만 이는 CVID를 향한 디딤돌로 여길 가능성이 높다.

비핵화 보상의 일환으로 언급되는 체제 안전보장 조치로 종전선언이 언급된다. 지난 남북정상회담 당시 진행된 판문점 선언이 종전선언의 도화선이라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판문점 선언을 통해 남북 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추진을 약속했다. 이어 평화협정 체결과 관련해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에 그치지만 평화협정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간 단계이기도 하다.

북한이 바라는 체제 안전보장 조치는 미국과의 종전선언에 있다. 북한은 미국과의 종전선언을 거친 평화협정 체결을 안전보장의 조치로 여길 가능성이 높다. 김 위원장은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외교적 관계를 맺어 정상국가로서의 도약을 바란다는 해석이다. 

다만 북한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대가로 CVID를 밀어붙이고 있는 미국의 입장을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결국 북미정상회담은 전적인 비핵화 합의보다 종전선언과 같은 정치적 선언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대가로 북한의 전향적인 비핵화 방식이 큰 틀에서 합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그동안 양국 접촉이 톱 다운 형식으로 진행된 것으로 비춰봤을 때 예측불허의 두 인물이 회담에 직접 자리하는 만큼 완전한 비핵화와 체제보장 조치를 주고받는 등의 빅딜 가능성 역시 생각해볼 수 있다.

이와 반대로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더라도 두 정상 간 극명한 의견차이로 회담 이후 북핵과 동북아 정세가 다시 난기류로 흘러들 가능성도 제기된다. 애초에 비핵화를 바라보는 양국의 시각차가 현저한 까닭이다.


회담의 성과가 가시적이지 않을 경우 남북미 주도의 비핵화 과정서 밀려난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이 목소리를 높일 공산이 크다. 과거 ‘한·미·일’ 대 ‘북·중·러’의 구도로 회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러-일
개입 본격화?

중국은 대내외적으로 ‘차이나 패싱’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중국은 남북정상회담 이전까지 북핵 등 한반도 문제와 동북아 정세에 있어 굳건한 입지를 자부했다. 그러나 남북미 주도의 비핵화와 종전선언 가능성이 불거지면서 틈을 파고들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미국과의 남중국해 갈등, 트럼프 대통령의 ‘시진핑 배후설’ 언급 등으로 비핵화 의제의 중심서 벗어났다.

다만 중국은 지난 두 차례 북중 정상회담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방중, 경제사절단 교류 등으로 정세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한 포석을 깔아놨다. 또 북한과 우방 국가를 넘어선 혈맹국가인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남북미가 주도하는 비핵화 과정의 분기점이 될 수 있는 북미정상회담이 마땅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중국은 본격적으로 정세에 개입할 확률이 크다.

러시아 역시 북한과의 수교 70주년을 맞아 올해 김 위원장에게 북러정상회담을 제안했고, 김 위원장은 이에 합의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지난달 31일 방북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친서를 김 위원장에게 전달한 바 있다. 
 

북한과의 우방국인 러시아도 북미정상회담 이후 동북아 정세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셈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8∼10일 중국 칭다오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OC) 정상회의에 참석차 중국을 국빈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남북미 주도의 비핵화 정세 가운데 힘을 잃지 않겠다는 러시아와 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회담 이후 중·러·일 개입 가시화
주변국 변수 맞물린다면 시계제로

북미정상회담이 비핵화를 향한 진전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 북·중·러 구도의 삼각펜스가 강화될 조짐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핵의 비핵화 과정서 미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양국은 미국이 나서 북핵 비핵화의 주도권을 잡는 모양새를 두고 동북아 정세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에게 북핵은 동북아 정세가 이전처럼 형성될 수 있는 계기가 될 만한 사안이다.

패싱의 정점을 찍은 일본은 명분만 쥐어진다면 북핵 과정에 개입하고 싶은 의지가 다분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주변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대북 연락책을 구비하지 못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 8∼9일 캐나다서 열리는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 앞서 지난 7일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는 이번 미일정상회담서 미국이 일본인 납치문제를 북미정상회담의 의제로 올려줄 것을 요청했지만 북한은 ‘이미 끝난 문제’라며 못 박고 있어 의제로 설정될 지는 불투명하다. 아베 총리는 “북한과의 대화를 원한다”며 북일대화의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과거 한·미·일 구도의 ‘대북 제재’를 외쳤던 일본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추가 대북제재 무기한 연기 발표와 ‘최대한의 압박’이라는 표현을 거둬들이면서 일본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북미정상회담 이후 비핵화의 큰 밑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면 일본은 적극적으로 개입할 공산이 크다. 패싱의 중심에 선 만큼 입지를 제고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력하다는 이유에서다.

세기의 담판으로 불리는 북미정상회담이 비핵화를 향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관전 포인트는 CVID를 내세우는 미국과 신뢰할 만한 체제 안전보장을 바라는 북한과의 간극이 얼마나 좁아질 수 있을지다. 

큰 얼개 없다면
향후 시계제로

북미가 큰 틀을 마련한다면 다시금 남북미 주도로 후속 조치와 세부 사항을 논의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 과정에 있어서 논의가 진척되지 못하고 공전할 경우 패싱의 그늘에 가려졌던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이 입지를 되찾기 위해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변수가 많아지는 만큼 북핵문제가 난기류에 빠질 공산이 클 것으로 보여진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