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지방선거> ‘역대급 무관심’ 여야 손익계산서

‘흥행 빨간불’ 어느 쪽이 유리할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15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분위기는 썰렁하다. 선거 때마다 불었던 바람도 이번에는 자취를 감췄다. 이번 선거는 4000명이 넘는 주민대표를 선출하는 사상 최대 규모로 치러진다. 그러나 지방선거를 대하는 국민들의 태도는 무관심에 가깝다. 각 당의 대표 선수들은 현 상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대학생 A(25)씨는 이번 지방선거 날짜도 모르고 있었다. 그만큼 선거에 대한 관심이 없는 상태. A씨는 “우리 지역에 누가 나오는지 이름도 얼굴도 몰라요”라며 “몇 명 뽑는 거예요?”고 반문했다.

#2. 인천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회사원 B(36)씨는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후보들의 명함 한 장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지하철 출구서 시민들에게 인사를 하며 명함을 나눠주는 후보들을 많이 봤는데 최근에는 거의 없다는 것. B씨는 “선거철만 되면 지하철 휴지통이 버려진 명함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좀 이상하네요”라고 언급했다.

4016명 뽑는데
후보 누군지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이하 6·13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에서는 시·도지사 17명을 포함 총 4016명의 주민대표를 선출한다. 서울 노원구병, 송파구을 등 12개 선거구서 재보궐 선거도 열린다. 숫자로 따지면 총 4028명을 뽑는 셈. 각 지역마다 복수의 후보자로 따져도 1만명이 넘는 인원이 선거를 위해 뛰고 있지만 선거 분위기는 좀처럼 뜨지 않고 있다.

공천 과정을 거쳐 각 당의 대표선수로 확정된 후보들은 지난 24∼25일 후보자 등록을 마쳤다. 이들은 오는 31일부터 선거 전날인 다음달 12일까지 선거 운동에 나선다. 선거운동 기간이 되면 거리는 유세 소리로 가득차고, 언론은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격전지를 조명한다. 


후보에 대한 의혹이 가장 많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도 이때다. 공천 과정서 군불을 때며 달궈놓은 열기가 선거운동 기간에 폭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6·13 지방선거는 군불조차 잘 붙지 않고 있다. 일반적으로 선거 때마다 불었던 바람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지방선거는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와 함께 중요한 선거로 분류되지만 무게감은 다른 두 선거에 비해 떨어진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년에 한 번 지방선거 때마다 대형 이슈가 선거판을 이끌었다. 북풍, 안전 이슈 등 지방선거를 뒤흔든 변수가 반드시 존재했다는 뜻이다.
 

바로 직전인 6회 지방선거(이하 6·4지방선거) 때는 세월호 참사가, 5회 지방선거(이하 6·2지방선거) 당시에는 천안함 사건이 선거판을 관통한 화두였다. 2014년 4월16일 단원고 2학년 학생과 일반인 등 승객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서 침몰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전 국민은 국가적 비극을 보며 집단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세월호 참사는 6·4지방선거를 안전이라는 블랙홀에 빠뜨렸다.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 후보들은 ‘안전’을 최우선 의제로 내걸었다. 각 정당 역시 선거를 앞두고 발표한 공약집에 안전 관련 공약을 첫 머리에 실었다. 

여당이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국민안전 최우선’,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이 ‘안전한 대한민국 만들기’, 통합진보당이 ‘안전한 대한민국, 안전한 마을 만들기’, 정의당이 ‘위험사회에서 생명사회’를 내세운 식이다.


천안함·세월호
선거 흔든 이슈

6·2지방선거 때는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하면서 모든 이슈를 잠식했다. 2010년 3월26일 일어난 천안함 사건으로 장병 44명이 수장됐다. 지방선거를 두 달 앞두고 일어난 사건은 판세를 좌우하는 변수로 떠올랐다. 특히 천안함 침몰 원인을 두고 국가 안보 문제가 불거지면서 ‘북풍’ 논란도 제기됐다.
 

북풍은 선거가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한 선거판 ‘스테디셀러’다. 국가 안보를 최대 의제로 잡는 보수정당서 선거 때마다 제기하는 이슈다. 최근에는 북풍 이슈의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많이 미미해졌지만 6·2지방선거 때만해도 언론은 북한 관련 뉴스를 끊임없이 생산해내곤 했다.

2주 남았는데 선거 분위기 ‘글쎄’
비핵화·드루킹에 국민 관심 쏠려

하지만 6·13지방선거는 선거판을 뒤흔드는 변수를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중앙 정부발 대형 이슈가 있긴 하지만 주민대표를 뽑는 지방선거의 특성상 지역 민심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은 아닌 상황이다. 

국민들의 관심이 정부의 움직임에 쏠려 있으니 지역 후보들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먼저 정상회담 이슈가 선거 기간 내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27일 남북정상회담을 시작으로 22일(현지시각) 한미정상회담이 열렸고, 북미정상회담 이슈도 있다. 문재인정부 출범부터 이어진 북핵 문제가 글로벌 협상 테이블에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지역 이슈는 묻히는 모양새다.

여기에 남북 고위급회담이 지난 16일로 예정됐다가 북한이 무기한 연기를 선언하면서 회담 재개 시기 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과 미국의 밀고 당기기로 인한 북미정상회담 재개 여부, 시기 등도 초미의 관심사다. 

우리나라 국민은 물론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이슈인 만큼 지방선거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여러 정상회담의 성공 여부가 지방선거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지방선거는 국회의원 선거와 달리 지역 경제, 민생 등 주민들의 표심이 당락을 좌우하기 때문에 중앙 이슈의 영향력이 크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당사서 열린 중앙선대위·시도당위원장 연석회의서 “남북문제는 추상적이고 손에 잡히지 않아 선거에 결정적 변수는 되지 않을 것”이라며 “선거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민생”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를 비롯한 정치 관련 인사들도 “한반도 비핵화 이슈가 지방선거를 잠식하고 있다”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중앙 정부만
지방 실종돼

지방선거의 변수로 작용하리라 예상됐던 더불어민주당원 댓글 조작사건, 이른바 드루킹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서 지방선거보다 더 큰 이슈로 변했다. 드루킹 사건은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대표인 김동원씨(필명 드루킹) 등 경공모 회원들이 인터넷서 여론조작을 했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불거졌다. 

사건 초반에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경수 경남지사 후보가 연루돼있다는 의혹이 함께 제기되면서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치리라는 분석이 우세했다.

그러나 드루킹이 구속되고 김 후보의 보좌관, 송인배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 등이 금전적으로 연루된 정황이 드러나면서 관심이 커졌다. 또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며 단식을 하는 등 정치적 쟁점으로 급부상했다.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드루킹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사건은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민주당의 지지율 고공행진과 야당의 부진도 지방선거의 흥행을 방해하는 요소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의 주간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은 1월1주차부터 40%를 넘나드는 지지율을 기록 중이다. 


4월2주차부터는 50%를 돌파, 5월1주차에는 55%까지 치솟았다. 한국당은 10% 초반을 오가고,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은 10%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독주나 다름없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정당지지율은 각 당 후보들의 지지율로 이어졌다. 여론조사를 통한 시·도지사 가상대결 결과를 보면 민주당은 한국당의 텃밭인 대구·경북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상대 후보를 큰 격차로 앞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지율 높은 민주당 ‘이대로∼’
한국당·바미당 ‘뭐라도 해야∼’

조원씨앤아이가 <쿠키뉴스>의 의뢰로 지난 16일부터 17일까지 조사해 지난 18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장 후보 지지율은 민주당 박원순 49%, 바미당 안철수 17.3%, 한국당 김문수 9.9%로 나타났다. 안 후보와 김 후보의 지지율을 합쳐도 박 후보의 반토막 수준이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인천은 한국당 후보로 현직 시장이 나섰지만 민주당 후보에 더블스코어로 뒤지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인천일보> 의뢰에 따라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박남춘 후보는 54.3%, 한국당 유정복 후보는 20.7%를 기록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그나마 제주서 민주당 문대림 후보와 무소속 원희룡 후보가 근소한 차이 내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을 두고 일각에선 “이미 게임은 끝났다”는 성급한 말까지 나온다. 민주당 쪽으로 크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흔들고 싶어도 야당서 좀처럼 돌파구를 모색하지 못한다는 분석이다.
 

지방선거에 대한 국민들의 ‘역대급’ 무관심은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각 당은 현재 상황을 민감하게 지켜보는 중이다. 민주당은 말 그대로 ‘현상유지’를 원하고 있다. 지방선거에 대한 주목도가 낮아지면서 투표의 기준이 인물보다는 정당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지방선거 흥행이 부진하더라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지난 대선을 거친 20∼40대 청장년층이 노년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표에 대한 관심이 높아 결국 민주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투표율이 낮으면 보수정당에 유리하다는 공식은 탄핵과 대선을 거치면서 논파됐다는 지적이다.

여 유리하지만
야 “아직 몰라”

반면 한국당과 바미당 등 야당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실정이다. 일자리, 취업률, 최저임금 등 민생 경제와 관련한 사안이 산적해 있지만 선거판을 흔들 정도의 바람은 만들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투표장을 찾았던 노년층의 투표 열기도 청장년층에 밀리는 모양새다. 그래도 일부 전문가들은 ‘샤이 보수(여론조사에는 잡히지 않는 보수 성향 지지층)’ 표가 있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 너무 일방향인 선거 구도가 보수층 결집을 부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지방선거 마지막 변수 ‘야권 단일화’로 돌파구?

6·13지방선거의 마지막 변수는 ‘야권 단일화’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야당은 ‘백약이 무효’라는 말이 나올 만큼 현재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크게 밀리고 있다.

이런 상황서 야권이 모색할 수는 후보 단일화라는 분석이다. 역대 선거에서 후보 단일화는 진보 진영의 전유물이었다. 단일화 성사 여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야권 일각에선 서울시장 후보인 한국당 김문수 후보와 바미당 안철수 후보간 물밑 논의가 진행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민주당 박원순 후보의 지지율이 김·안 두 후보의 지지율을 합친 것보다 1.5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지지율이 너무 낮아 ‘울며 겨자먹기’ 식 단일화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선거법상 후보들은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비용을 전액 보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당선 가능성이 낮은 후보들이 자진 사퇴를 하면서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방식의 단일화가 이뤄질 수도 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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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