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당선인 오바마 거침없는 행보

바꿔 바꿔 대내·외 정책 싹 바꿔!



내년 1월20일 취임을 앞둔 미 대통령 당선인 오바마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오바마는 대외 정책, 한미 FTA, 대북 정책 등 각종 현안과 관련해 선거를 전후해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밝혔다. 각종 정책과 관련 보수적이면서도 상당히 진보적인 면도 보이고 있어 보수 일변도인 우리 정부의 정책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신선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번 대선과정에서 오바마 진영의 외교안보공약을 총괄 지휘한 수전 라이스 전 국무부 차관보는 향후 미 차기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Before Bush, After Bush(BBAB정책)’로 정의했다. 오바마 차기정부의 대외정책은 부시 이전의 클린턴 행정부의 정책으로 되돌아가고, 부시 이후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정책은 부시 8년간의 정책을 철저히 부정하는 데서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오바마 차기행정부의 대외정책이 나아갈 방향으로 미국 대외정책의 제1목표를 ‘테러와의 전쟁’으로 동일하게 규정했다.

오바마는 지난 7월15일 워싱턴에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라는 연설을 통해 차기 미 행정부의 외교안보정책 방향을 ▲이라크전쟁의 책임있는 종료   ▲알 카에다, 탈레반 전투의 종식 ▲테러집단, 불량국가로부터 핵안전 확보 ▲진정한 에너지안보의 확보 ▲21세기 도전에 맞선 동맹관계의 재구축의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공산주의가 서유럽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았던 마샬플랜과 같이 국제테러망을 분쇄하기 위해 ‘공유된 안보동반자프로그램(SSPP)’을 신설하고 2012년까지 대외원조액을 5백억 달러로 배증하여 실패국가들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오바마 대외정책…우방국과 협력
문제는 미국내 경제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우방국들에게 이 부담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미국 차기행정부의 외교안보정책에서 주목되는 것은 바로 아시아정책이다.

지난 8월7일 발표된 민주당 정강정책은 아시아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한국, 일본, 호주 및 인도와도 협력을 강화하며, 중국에 대한 포용정책을 통해 기후변화와 같은 공동관심사에 협력하고 개방과 시장경제화를 더욱 촉진시킨다는 내용을 담았다. 오바마 당선인은 중국을 활용해 아시아지역의 번영과 협력을 위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미국의 금융위기와 관련해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수출위주의 정책에서 내수도 중시하는 정책을 통해 미국과 아시아 간 공정한 교역을 취하자는 입장이다. 아시아에서 보다 효과적인 지역 틀이 필요하므로 중국과 일본을 동시에 관리한다는 차원에서 새롭고 항구적인 아시아 집단안보체제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오바마 당선인측은 한미관계의 강화가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의 초석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의 한국군 이양, 산재했던 미군기지의 2개 허브기지로의 이전 재배치 등 재조정 협의를 마친 상태이다. 올해 들어 주한미군의 감축 동결(2만5천~2만8천5백명)과 주둔기간의 연장 조치(1년~3년)가 이루어졌다.

오바마 당선인이 이라크 미군을 조기에 철군하면서 아프간전쟁에 몰두하기로 함에 따라 우리 정부에 ‘비전투 지원’을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 오바마 당선인은 국제협조시스템을 존중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파병을 원치 않을 경우 이를 강요하기보다는 테러와의 전쟁에 드는 비용의 분담과 국제테러망의 분쇄를 위한 SSPP 참가, 경제원조의 제공 등 경제적 부담을 요청해 올 가능성이 높다.

우리 정부로서도 공적개발원조(ODA)의 증액을 포함해 ‘기여외교’를 강조해 왔기 때문에 이러한 요구를 거부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명박 정부는 기본적인 외교방향을 한미동맹의 강화 및 한·미·일 안보협력의 복원으로 잡았다. 하지만 한미동맹은 미국산 수입쇠고기 파동을 거치면서 당초 약속했던 ‘21세기 전략동맹 선언’을 차기 행정부로 미룬 상태이다.

또 한미 FTA 문제가 한미간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당선인은 선거기간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자동차 추가협상이 없는 한미 FTA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오바마 당선인은 대통령 후보 당시 여러 차례에 걸쳐 한미 FTA를 결함 있는 협정이라고 개정을 요구해왔다. 대선 당시 토론회를 통해 오바마 당선인은 한국에서 매년 70만대의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하는데 미국은 5천대를 한국에 수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었다. 오바마 당선인의 발언이 대선 후보로서 유권자의 표를 의식한 발언이라 해도 지속적으로 발언해 온 이상 이를 한 번에 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향후 양국간 갈등 요소가 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행정부뿐만 아니라 미 상하 양원 모두 보호무역주의 성향이 있어 한미 정부간 새로운 관계 정립에 있어 이같은 미국측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에 대한 우리측과의 갈등 조정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오바마정부 FTA 문제 최대 걸림돌
이태식 주미대사는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2010년에야 한미 FTA가 본격 논의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국 국회가 설혹 한미 FTA를 먼저 비준하더라도 이 협정에 대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 진영의 부정적인 시각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게 워싱턴 통상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미국의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오바마 당선자 정부가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적으로 내세우는 통상 정책을 취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잭 프리처드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은 지난 10일 워싱턴DC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미 FTA는 차기 미 정부가 시급히 처리해야 할 우선 과제로 설정해 놓고 있지 않다. 차기 미국 정부의 실무자들이 이 협정을 검토한 뒤 한국측에 재협상을 요구할지 여부 등을 결정해 오바마 당선자에게 보고하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프리처드 소장은 “오바마 당선인이 한미간 자동차 교역 불균형 문제 등을 들어 한미 FTA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으나 집권한 뒤에는 이 협정을 경제뿐 아니라 한미 동맹 관계 등 다원적인 시각에서 재검토하게 될 것이다. 경제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상정해놓고 있는 오바마 당선자 정부에서 협정 비준 문제가 조기에 해결될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오바마 당선자 캠프 내 설치된 한반도정책팀에서 활동한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 태평양센터소장도 “오바마 당선자가 한미 FTA 내용을 비판한 것을 단순한 선거 운동의 일환이라고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바마 당선자 진영의 그 어느 누구도 아직 한미 FTA의 재협상 얘기를 꺼낸 사람이 없다. 한미 양국은 이 협정이 한국 국회뿐 아니라 미국 의회에서 비준될 수 있도록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바마 정부가 출범한 이후 단기간 내에 국제 무역 질서 재편 작업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한미 FTA의 비준 전망을 어둡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답보 상태에 빠져 내년 중에 이 협상이 진전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또 오바마 당선자는 후보 시절 토론회 등에서 “한국은 수십만대의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하는 반면 미국이 한국에 파는 자동차는 4천~5천대도 안 된다”면서 한미 FTA가 불공정한 협정이라고 주장해왔다.

오바마 당선자측 관계자들은 이 협정의 어느 부분을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진 않고 있다. 워싱턴의 한 통상 관계자는 “오바마 당선자가 자동차 문제를 제기했으나 미국의 관심은 한국 시장 진출 확대가 아니라 미국 시장 방어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이 미국 자동차 공식 수입업체들이 한국 시장에서 미국차 판매가 저조한 이유를 한미간 불공정 무역 때문이라고 지적한 오바마 당선인의 발언으로 한미간 무역 분쟁의 단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크라이슬러 브랜드의 공식 판매업체인 크라이슬러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11월 11일 “한국 시장에서 미국 브랜드의 판매가 저조한 원인을 양국간 불공정 무역으로 돌리는 발언이 계속될 경우 자칫 소비자들의 감정을 자극해 미국차 판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올해 9월까지 작년에 비해 약 14%의 판매 신장률을 기록했는데 이같은 기조의 발언이 반복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존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강화하고 경쟁력 있는 신차를 통해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할 따름이다. 한미간 정치 및 외교적인 이슈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지만 양국이 원만한 협상을 통해 모두에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결과를 이끌어내기를 바란다”고 주장했다.

GM코리아측도 오바마의 발언에 대해 같은 입장을 표명했다. 수입차 시장 형성 초기인 1994년에 49.2%의 점유율을 기록했던 미국 브랜드 차는 1998년까지 유럽 브랜드와 경합하다가 1999년을 기점으로 유럽 브랜드에 밀리기 시작하면서 점유율이 현저히 축소됐다. 렉서스를 필두로 일본 브랜드가 한국 시장에 잇따라 진출하자 점유율이 줄어들면서 작년에는 11.7%까지 하락했으며 올해 들어서는 10월말 기준으로 11.3%까지 하락했다. 미국 ‘빅3’ 자동차회사인 GM과 포드, 크라이슬러는 현재 경기침체와 고유가로 매출이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손실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바마 당선인의 구상은 연비가 우수한 차세대 자동차 개발에 한국과 일본보다 과감한 투자를 통해 자동차 종주국의 지위를 회복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오바마 차기행정부가 내년 1월 출범할 때 가장 큰 변화가 예상되는 분야는 대북정책이다.

오바마 당선인은 후보시절 여러 차례에 걸쳐 북한 정책과 관련해 조건 없는 대화와 직접 외교를 강조했었다. 양자 및 다자 대화를 통해 북한을 국제무대로 이끄는 동시에 비핵화와 관계정상화, 한반도 냉전체제의 해체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오바마 당선인은 지난 5월 후보 시절 기자간담회를 통해 “우리의 적들과도 강력한 외교를 주도해 나갈 것이다.

지도자들을 만날 것이며 준비는 하되 조건없이 만날 것이다.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명료하게 설명할 것이다. 북한과 대화를 하지 않았던 게 북한의 핵개발로 이어졌기에 대화를 해야만 하겠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6자회담은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진전을 이뤄냈고 북한으로 하여금 (무기를) 내려놓게 했다”고 밝혔다.


“강력한 외교 주도할 것” 대북정책 대변화 예고
자누지 한반도팀장은 10월 2일 한 모임에서 “오바마는 북한과 관계 개선을 위해 고위급 협상을 포함해 모든 외교적 대안을 고려하고 있다. 6자회담의 틀 안에서 적극적인 양자 회담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페리 전 국방장관이나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대북 특사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오바마 차기행정부는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와 관련해 비교적 탄력적인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탈북자문제와 관련해 오바마 당선인은 지난 7월18일 ‘북한자유를 위한 한인교회연합’에 보낸 지지 서한에서 “탈북 난민들의 절망적인 상황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부당한 권리침해다. 그들이 강제송환 돼 처벌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고 그들은 국제법에 따라 난민으로 보호받아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조셉 바이든 부통령 내정자는 북한 인권, 탈북자 문제에 대해 개선책을 구상하고 있음을 밝혔다. 그는 지난 9월24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 가진 인터뷰에서 북한을 점진적으로 인권과 안보, 무역에서 국제 규범을 준수하도록 북돋우는 전략과 조화 속에서 인권과 탈북자정책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오바마 차기행정부는 북핵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도중에는 급격한 인권정책을 취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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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