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명운 쥔 과거사위 막전막후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5.09 12:37:34
  • 호수 11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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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님 잡을 저승사자 뜬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검찰 특수부가 지고 과거사위원회(이하 과거사위)가 뜰 전망이다. 과거사위는 검찰의 과거 인권침해나 검찰권 남용 등을 반성하기 위해 지난해 발족됐다. 하지만 과거사위가 재조사 권고한 사건들은 하나같이 반성 차원이 아니다. 향후 전현직 검사들에게 불똥이 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장자연 리스트’ 사건을 비롯해 수사 과정서 의혹과 논란을 남긴 이른바 과거사 사건에 대해 검찰 진상조사단이 옛 수사에 문제점이 있었는지 밝히기 위해 성역 없는 조사를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장자연 사건 등 
11건 규명 착수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 위원인 이용구 법무실장은 지난 3일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과거 검찰권 행사에서 부적절했던 점들을 밝히고 이를 토대로 앞으로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개선을 하는 데 초점을 둘 것”이라고 활동 방향을 설명했다. 

이 실장은 “위원회는 조사방향에 대해 권고할 뿐이고 구체적인 방식은 대검찰청 소속 진상조사단이 자율적으로 맡아 결정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조사단은 의혹 연루 정황이 드러난다면 당시 검찰총장은 물론 법무부장관까지 대상으로 삼아 성역 없이 조사할 계획을 가진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앞서 과거사위는 지난달 6일 과거 인권침해 및 검찰권 남용 의혹이 있는 12건의 사건을 1차 사전조사 대상 사건으로 선정했다. 

조사단 42명으로 증원…본격 채비
수면 아래 가라앉은 사건 다시 수사

대상 사건은 ▲김근태 고문사건(1985년) ▲형제복지원 사건(1986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1987년)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1991년) ▲삼례 나라 슈퍼 사건(1999년) ▲약촌오거리 사건(2000년) ▲PD수첩 사건(2008년) ▲청와대 및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사건(2010년) ▲유성기업 노조파괴 및 부당노동행위 사건(2011년)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사건(2012년) ▲김학의 차관 사건(2013년) ▲남산 3억 원 제공 의혹 등 신한금융 관련 사건(2008년·2010년·2015년) 등 12건이다.

과거사위는 “지난 3월12일부터 지난 16일까지 3회에 걸쳐 대검 진상조사단으로부터 1차 사전조사 대상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보고 받아 검토했다”며 “그 결과 수사나 공판과정서 인권침해 또는 축소·은폐 의혹이 있다고 판단된 3건에 대해 추가로 본 조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의결했다”고 설명했다.
 

당초 조사단은 외부단원인 교수 12명, 변호사 12명과 내부 단원인 검사 6명이 참여하는 규모로 꾸려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방대한 업무량 등을 감안해 검사 6명을 추가 파견하고 수사관 6명도 조사단에 합류한 상태다. 

위원회는 업무량에 따라 조사단 추가 확대도 검토 중이다. 논란이 됐던 여러 사건을 조사 대상으로 선정하고, 조사단 규모를 확대하는 등 위원회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전전 정권 
부실수사 겨냥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향후 과거사위가 특수부보다 더 주목 받을 것이라고도 평가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과거사위는 현 정부서 밀어주고 있는 곳”이라며 “이뿐만 아니라 당시 사건들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는데도 석연치 않게 끝났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나 과거사위 조사 과정에 전현직 검사들이 연루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번에 과거사위에 선정된 장자연 리스트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사건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연예계의 성상납 실태를 고발하고 세상을 등진 장자연 사건이 청와대 국민 청원 재수사 요청으로 인해 재점화된 바 있다. 

지난 2월26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고 장자연의 한 맺힌 죽음의 진실을 밝혀주세요’라는 청원글이 올라왔다. 이 청원은 한 달만에 동의자 수가 20만명을 넘어섰다. 청와대는 지난달 13일 이 청원에 대해 “앞으로 검찰 진상조사단은 사전조사를 통해 본격 재수사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고 답변까지 했다.

장자연 사건은 2009년 신인 배우 장자연이 유력인사들에게 성상납을 강요받다 이를 폭로하는 내용의 유서 및 성 상납 대상자인 유력인사에 대한 리스트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다. 
 

일명 ‘장자연 리스트’에선 언론사와 기업체 대표, 방송사 PD 등 실명 등이 공개돼 큰 파문이 일었다.

대형 의혹들
봐주기 있었나

장자연은 당시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31명에게 100여번의 술 접대와 성상납을 강요받았다. 내가 죽더라도, 죽어서라도 저승에서 꼭 복수하겠다”고 전했다. 그는 “룸살롱서 술 접대를 시켰다. 잠자리를 강요받았을 뿐 아니라 방안에 가둬놓고 때리고, 온갖 욕설을 들었다. 그렇게 지내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당시 넉 달간 경찰 수사에 이은 검찰 보완수사에도 불구하고 술접대 강요와 유력인사 성접대 의혹에 대해 모두 증거 부족을 이유로 ‘혐의 없음’ 처분이 내려졌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사건은 검찰의 대표적인 ‘제 식구 감싸기’ 수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현직 검사들에게 불똥이 튈 것으로 전망된다. 법조계에선 조사 결과에 따라 당시 수사 라인에 있었던 전현직 검사들의 형사처벌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김 전 차관은 지난 2013년 3월 강원도 원주시 한 별장서 건설업자로부터 성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에 연루됐다. 당시 현장서 찍은 동영상이 유출되면서 논란이 일었고, 김 전 차관은 취임한 지 6일 만에 차관직서 사퇴했다.


경찰은 수사를 벌인 뒤 같은 해 6월 김 전 차관과 윤씨에 대해 특수강간 등 혐의를 적용,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같은 해 11월 증거 부족 등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다. 

이후 피해 여성으로 알려진 A씨가 등장해 동영상 속 여성이 자신이라며 지난 2014년 7월 검찰에 김 전 차관 등을 고소했고 재수사가 진행됐지만 ‘혐의없음’으로 결론났다. 

A씨 진술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등이 근거였다.

벌벌 떨고 있는 전현직 검사들 
당시 특혜·면죄부 여부 초점

당시 법조계에서는 검찰의 수사 결론에 대한 비판이 고조됐다. 특히 재수사 과정서 김 전 차관 등을 단 한 차례도 소환 조사하지 않고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기 때문에 검찰이 사실상 ‘봐주기’수사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검찰 재수사가 종결된 지 4년이 지나 과거사위의 본 조사 결정으로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다. 특히 과거사위는 김 전 차관 사건을 두고 부당한 사건 축소·은폐 의혹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진상 규명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진상조사단이 실체적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지 의문도 제기된다. 조사단에 정식 수사권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 사건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서는 전·현직 검사 등 당시 사건에 연루됐던 당사자들에 대한 조사가 필수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당사자들이 조사를 거부하면 이를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과거사위 관계자는 “조사단의 조사는 임의조사에 불과하고 강제 조사할 방법이 없다. 임의 협조에 의존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구체적으로 어떤 분들에 대해 조사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다만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당시 수사상 불가피했던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적극 진술할 분들도 계신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강제성이 없는 조사에 전현직 검사 등 핵심 인물 등이 응할지는 불투명하다. 이미 종결된 사건이기에 이들이 조사를 거부한다면 수사가 한계를 노출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걸리면?
처벌·징계 주목

또 위원회 활동 기간에 비해 조사 대상이 많다는 점도 한계라는 평가가 나온다. 위원회 활동이 한 차례 연장되더라도 최장 9개월에 불과하다. 시간에 쫓겨 진상 규명에 이르지 못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일부 위원이 담당했던 사건이 조사 대상에 포함되는 등 사건 선정을 두고 공정성 시비도 일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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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