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사냥꾼’ 엘리엇 실체 해부

잊을만하면 나타나 ‘감놔라 배놔라’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최근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한국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전방위 공격을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엘리엇은 과거 적폐 청산과 기업의 지배구조 개혁을 추진 중인 우리 정부의 약한 고리를 파고드는 모양새다. 엘리엇이 국내 정부와 재계를 상대로 공세를 강화하면서 그 실체와 속셈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3월28일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을 통해 그간 공정위로부터 해결 압박을 받아온 4개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끊는 내용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놨다. 현대모비스의 모듈·AS부품 사업을 인적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에 흡수합병시키고 이후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등 대주주와 기아자동차, 현대글로비스, 현대제철 등 계열사들이 합병된 현대글로비스의 지분을 매각하는 일련의 작업을 통해 현대글로비스를 기아차 산하 기업으로 만들어 현대모비스가 실질적인 지주사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순환출자를 해소한다는 구상이었다. 

3년 만의 귀환
대기업 노리다

그간 증권가서 많이 거론됐던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 3사를 사업 부문과 투자 부문으로 정리해 현대모비스를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고 훨씬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직접 지분 매입 방식을 선택했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물론 증권가서도 호평이 쏟아져 현대차의 구상은 곧 현실화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일주일 후 변수가 등장했다. 지난달 4일,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투자자문사 ‘엘리엇 어드바이저스 홍콩’은 보도자료를 통해 자사가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3개사의 보통주 10억달러(한화 약 1조500억원) 규모를 보유하고 있다며 지배구조 개편의 추가 조치를 주문하고 나섰다. 


일단은 엘리엇이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에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다. 하지만 과거 삼성그룹이 추진했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관련해 강력한 태클을 걸었던 전력 때문에 이번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 과정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투자금융업계가 엘리엇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주시하는 이유다. 
 

엘리엇은 일반적으로 행동주의(Activism)를 표방하는 헤지펀드(hedge fund)로 분류된다. 헤지펀드는 소수의 투자자들을 비공개로 모집해 고수익을 추구하는 기업형 펀드다. 이 중에서 행동주의 펀드는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주주 이익을 추구하는 전략을 택한다. 

대표적인 행동주의 전략으로는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 인수합병(M&A), 지배구조 개편 등이 있다. 한마디로 주가를 부양할 수 있는 다양한 조치를 기업에 적극적으로 요구, 관철시키는 펀드다. 

과도한 기업 경영권 침해로 인해 일각에선 ‘기업 사냥꾼’으로 매도되기도 하지만 헤지펀드 중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보이고 있어 행동주의 펀드의 투자 규모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1977년 미국서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 변호사 폴 싱어가 설립한 헤지펀드다. 엘리엇어소시에이츠와 엘리엇인터내셔널의 두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최근까지 순 투자 수익은 14.6%이며 현재 전체 운용자산은 340억달러 이상이다. 

엘리엇의 포트폴리오 중 3분의 1 정도는 부실 채권을 초저가에 사들여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엘리엇은 지난 2014년 아르헨티나를 두 번째 국가부도 사태로 몰아넣은 것으로 유명하다. 


과거 2001년 아르헨티나가 950억달러 규모의 국가부도를 냈을 때 아르헨티나 정부는 자국의 국채를 매입한 해외 투자자들과 여러 차례 협상을 벌여 채무의 70% 내외를 탕감받았다. 하지만 엘리엇 등 헤지펀드들은 국채 탕감을 거부했다. 

특히 엘리엇은 국가부도 당시 4800만달러라는 폭락가에 구입한 아르헨티나 국채에 대해 액면가 6억3000만달러의 ‘전액 상환’을 요구했다. 

국가부도 몰아
여러나라 피해

헤지펀드들은 아르헨티나 정부가 약 15억달러의 국채를 상환하기 전까지는 채무 조정된 다른 빚들도 상환할 수 없게 해달라고 미국 법정에 소송을 걸었고, 2014년 6월 미국 대법원은 엘리엇 등 헤지펀드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아르헨티나 정부는 궁지에 몰렸다. 

아르헨티나로서는 헤지펀드들에게 액면가로 전액을 상환하게 되면, 앞서 채무 조정을 약속한 다른 채권자들에게도 같은 조건을 적용해야 했다. 결국 아르헨티나 정부는 13년 만에 다시 국가부도를 선언했다. 
 

엘리엇은 비슷한 전략을 페루 등 빈곤 국가에 적용해 거액을 벌어들였다. 2000년 말 반정부 시위의 격화로 망명을 모색하던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이 사례다. 엘리엇은 액면가 200만달러어치의 페루 국채를 1140만달러에 사들인 뒤 액면가와 이자를 합쳐 5800만달러의 지급소송을 냈다. 

페루 정부가 돈을 내지 않자 해외로 도피하려는 후지모리 대통령의 전용기를 압류해 원하던 금액을 모두 받아냈다.

엘리엇은 지배구조 관련 투자서도 2003년 미국 피앤지(P&G)가 독일기업 웰라를 인수하며 제시한 우선주의 가치가 부당하다며 독일 펀드와 손잡고 주가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2006년에는 스위스 인력컨설팅업체 아데코가 독일기업을 인수하는 과정에 개입해 지분가격을 주당 54.5유로서 113유로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이처럼 엘리엇은 헤지펀드 특성상 특정 기업 주식을 사들여 일정 의결권을 확보한 뒤 그 기업의 약한 고리를 공격하며 주로 단기이익 극대화를 추구한다. 자사주를 매입해 주가를 끌어올리도록 요구하기도 하고, 배당을 더 하라고 압박하기도 하며 때로는 지배구조 개선, 자산매각, 자기편 이사 선임 등도 요구한다. 

국내서 엘리엇이 이름을 알린 것은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을 추진할 때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 7.12%를 약 7000억원에 매입한 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 반대해 자신들이 보유한 지분가치를 높여 팔고 나갔다. 

이어 2016년에는 삼성전자의 지주사 전환설이 퍼졌을 때 지분 0.67%를 인수한 후 30조원의 특별배당을 요구하고 최소 3명의 독립적인 이사 선임과 잉여현금흐름의 75%를 주주에게 환원하라고 주장했다. 

최근에는 1조원 규모의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 지분을 무기로 지배구조 개선 추가 조치와 이익 주주환원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어 엘리엇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합병해 지주사로 전환하라고 요구하면서 노골적인 주가 띄우기라고 비판받았다. 


엘리엇은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정부를 상대한 것이다. 엘리엇은 지난 2일 한국 정부가 국민연금을 동원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주장하며 지난달 13일 우리 법무부에 중재의향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중재의향서는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의 전 단계에 해당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후 약 3년이 지난 시점에 엘리엇이 이 문제를 다시 들고나온 것은 이례적이다. 

국정 농단 걸림돌
정부 압박하기?

엘리엇은 2015년 6월 합병을 결정하는 삼성물산 주주총회 결의를 금지해달라고 가처분 신청 등을 냈지만 기각된 바 있다. 그러나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터지며 특검은 국민연금이 직권을 남용해 합병에 찬성했다고 판단했고, 법원은 1·2심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국민연금에 손해를 초래(업무상 배임죄)했다며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이는 엘리엇이 ISD에 나설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는 결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대기업의 법무 담당 임원은 “2015년 합병이 진행된 시기는 코스피 지수가 하락하던 때”라며 “주가 하락이 합병 때문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기에 엘리엇의 손해액을 산정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엘리엇이 국정 농단 사태와 관련한 재판을 지켜보면서 치고 들어갈 우리 정부의 ‘약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자산운용 업계에선 엘리엇이 우리 정부에 ‘앞으로 있을 한국 기업에 대한 경영권 공격에 개입하지 말라’는 신호를 던진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엘리엇은 현재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합병하라’며 현대차그룹을 압박하고 있는데 이런저런 기업의 일에 정부가 함부로 개입했다간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경고했다는 것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엘리엇의 제안은 금산분리 원칙을 고려하지 않은 부당한 제안”이라며 현대차를 두둔하는 듯한 평가를 내놓은 바 있다. 

한 사모투자전문회사(PEF) 관계자는 “35년간 연 평균 20%가 넘는 수익을 올린 엘리엇이 ISD를 통해 얻는 실익은 여기에 들어가는 시간·비용을 고려할 때 그다지 크지 않다”며 “다른 곳에 투자해 얻는 이익이 더 큰데도 ISD를 감행한 것은 다른 의도가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엘리엇이 노리는 한국 기업은 삼성·현대차만이 아니다”라며 “지배구조 개편, 주주 이익 환원 등을 요구하며 한국 기업을 압박해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장기적인 포석”이라고 덧붙였다. 
 

재계에선 정부가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를 힘들게 하는 상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엘리엇과 같은 투기자본의 공격이 더욱 거세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삼성 측은 공식 반응을 자제하고 있으나 각종 악재가 잇따르는 상황서 합병 적절성 논란이 다시 불거진 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정부는 엘리엇의 중재에 응하지 않을 전망이다. 이 경우 엘리엇은 3개월 후인 7월부터 한국 정부에 대한 제소가 가능하다. 

정부는 앞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 등과도 중재 없이 ISD에 들어갔다. 

법무부 관계자는 “만약 정부가 국민연금을 동원해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하더라도 그 일이 어떤 손해를 끼쳤는지 명확하게 입증돼야 하는데 중재의향서에는 이런 내용이 전혀 담겨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엘리엇의 행동은 정부가 추진하는 적폐 청산과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작업과 맞물려 있는 약한 고리를 공격하고 있는 양상이다. 

약점 간파해야…
적절한 대응 필요

한 경제연구소 연구원은 “과거의 사례를 봐도 엘리엇은 자신만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집단으로 볼 수 있다”며 “이번 정부를 상대로 한 엘리엇의 공격은 자신들의 이익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우리 정부 길들이기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헤지펀드 특성과 약점을 간파해 적절한 대응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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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