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테마기획① 구조조정 한파 뛰어넘기

정치권도 ‘무풍지대’ 아니다

미국발 금융위기에 따른 국내 경기침체가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일반 국민들의 ‘허리띠 졸라매기’는 이미 시작됐다. 기업들도 비용절감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 가장 먼저 단행하는 것이 바로 구조조정이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의 구조조정은 기업이나 공직사회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에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경제위기 상황과 맞물려 정치권은 지금 혼란스럽다. 여야가 민생은 뒷전인 채 한 치의 양보 없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1 
 국회의원“너무 많다”

지난 17대 국회는 2백73명이던 정원을 2백99명으로 대폭 늘린데 이어 지난 18대 총선 직전에도 인구 변동에 따라 지역구(2백43명)는 2~4명 늘리고 비례대표(56명)는 줄이지 않는 국회 선거구획정위원회의 안을 두고 홍역을 앓은 바 있다.

이 안이 그대로 통과됐을 경우 3백명을 넘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지역구국회의원정수는 2백45인, 비례대표국회의원정수는 54인, 총 국회의원정수는 2백99명을 유지했다. 지역구 의원수는 두 곳 늘어났고 비례대표를 두 석 줄인 것이다.

그동안 국회는 의원수를 늘리려고 하는 움직임만을 보여줬지만 여태껏 국회가 보여준 생산성, 효율성에 비추어 볼 때 의원수를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종종 제기돼 왔다.

이른바 ‘파행 국회’만 거듭하는 국회의원들에게 국민의 혈세로 월평균 4백만원이나 하는 월급을 ‘노는’ 의원들에게 줘야하는가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누적돼 왔기 때문이다.

지난 17대 국회에서는 본회의나 상임위조차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무산된 게 다반사고 지역구 예산 챙기기, 보좌관 늘리기, 선진국 시찰 명분으로 외유성 출장을 하는 등 국민의 대표라는 인상을 주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한 행적이 더 많았다.


18대 국회도 예외는 아니다. 임기 개시 후 81일간 원(院) 구성도 하지 않은 채 국회 개원은 지체됐고 이후 국정감사 등의 일정에서 여야가 보여준 모습은 실망 그 자체였다. 여권은 전 정권 탓하기에 바빴고 야권은 그런 현 정권을 욕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정책도 없고 대안도 없었다.

게다가 지난 18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불거진 비례대표 공천 의혹을 둘러싸고 여러 의원들이 검찰의 수사를 받고 일부 의원들은 의원직 상실 위기에 처한 점에 비춰보면 비례대표 의원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비례대표 의원의 경우 당초 전문성 제고와 소수자 배려를 위해 도입됐지만 사실상 각 당에 물질적인 혹은 측근 챙기기로 악용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경제위기 상황 속에서 대안과 해결책 없이 정치권이 정쟁만 계속할 경우 국회의원 정수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들 것으로 전망된다.

상황2
 선거패배, ‘야당은 서러워’

정치인과 정당들은 선거에 울고 선거에 웃는다.
여당이 야당이 되면 당의 위상은 180도로 바뀐다. 야당이 되면 청와대나 정부 부처의 공직자로 진출하는 길은 막히고 국고보조금 등이 줄어 긴축재정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8월 18대 총선 패배로 80여석의 야당으로 돌아간 민주당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구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 통합으로 2백51명에 달했던 인원을 총선 후 명예퇴직 신청을 받아 모두 91명을 감원하는 등 1백60명에 대한 인사발령을 완료한 것이다.

또 과거 60여명에 달했던 국장급 간부를 14명으로 줄이고 중간급을 늘이는 한편, 상위직을 중심으로 월급을 삭감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직책당비도 부활시켜 매달 당 지도부는 1백50만원, 일반 의원은 75만원의 당비를 납부하도록 했다.

이는 민주당이 18대 국회 들어 선관위로부터 지급받은 3분기 국고보조금은 25억8천4백21만원으로 17대 국회 때보다 4억여원이 줄자 피할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거대 여당인 한나라당도 민주당과 같은 시련을 겪은 바 있다.

지난 2004년 탄핵 후폭풍으로 총선에서 패배한 이후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사무처 직원 3백여명 중 1백45명을 감축하고 사무처 당직자와 여직원의 월급을 절반 이하로 깎는 등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또 당사를 천막 당사로 옮겼고 명예퇴직, 비례대표 국회의원 비서진을 활용하면서 1~2급 당직자 1백17명을 57명으로 줄이고 중앙당 체제도 몸집을 줄였다.

이 가운데는 사표를 내고 뒤늦게 사법시험에 도전해 법조인의 길을 걷는 사람이 5명이나 된다. 일부는 대학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각 당의 당직자뿐만 아니라 각 후보들을 도왔던 선거캠프 인원들도 선거에서 패배하고 나면 살길 찾기에 바빠진다. 특히 본업이 없을 경우엔 생계를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와 함께 국회에 입성하지 못한 ‘낙천·낙선’ 인사들은 정치권을 한동안 떠나게 된다. 물론 이 경우에도 야당이냐 여당이냐에 따라 입장의 차이는 있지만 선거 패배와 동시에 이들은 ‘자동적으로’ 구조조정이 된다.

여당 의원들의 경우엔 개각이나 청와대나 당의 개편 때를 기다리며 내실 다지기에 들어가지만 야당 의원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의원들은 유학, 집필, 강연 등의 활동에 전념하거나 본업이 있었던 사람들은 본업으로 돌아간다.

오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도 지난 총선에서와 마찬가지로 승리를 거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의 분위기는 극명하게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최근 논란이 된 수도권규제완화 문제를 두고 지방 민심이반이 심각한 상황에서 선거 결과에 따라 여야의 입장이 뒤바뀔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상황3
보좌관 ‘하루하루가 가시방석’ 

법안 발의, 예산 심의, 국정감사, 청문회, 대정부 질문 등 국회의원 한 사람이 이를 혼자서 준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보좌관들이 이를 준비하게 된다.

국회의원은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1명, 6?7?9급 각 1명씩 비서진 총 6명을 둘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인턴 2명을 고용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보좌관이라고 하면 4급을 지칭하고 신분은 별정직 공무원이며 연봉은 4급 기준으로 5천여만원이다.

하지만 보좌관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자료를 준비해도 국정감사가 끝나고 자신이 보좌하고 있는 의원이 이른바 ‘국감스타’로 떠오르지 않거나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면 퇴출 위기에 내몰리게 된다. 의원에 대한 평가는 곧바로 보좌관에 대한 평가로 직결되는 이유에서다.


그중 초선의원들을 보좌하고 있는 보좌관들은 재선 이상 의원들의 보좌관보다 이같은 처지에 더욱 내몰리게 된다. ‘얼굴 알리기’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초선의원의 경우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리는 데 가장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또한 보좌관에 대한 임면권이 전적으로 의원에게 있어 소위 ‘마음에 안 들면’ 잘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이들에겐 불안한 실정이다. 결국 언제든지 구조조정을 당할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다.

특히 총선이 다가오면 보좌진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한다. 총선에서 당선되지 못할 경우 실업자 신세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다. 그렇기 때문에 총선 직전 지지율에 따라 다른 당 소속 의원실로 옮기기도 하지만 정책적 성향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이 또한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지난 총선을 통해 민주당 현역 의원 1백36명 중 생존자는 52명에 불과하다. 국회의원 1인당 6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5백여명에 달하는 이들이 순식간에 직장을 잃게 되는 상황도 발생한 바 있다.
때문에 당선이 되기만을 바랄 뿐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지낼 수밖에 없다.

상황4
계파·세력간 ‘한판 붙자’

정치권은 여야의 대립 못지않게 각 당 내부 세력 간 힘겨루기로 구도가 결정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 당내 구조조정이다. 당을 주도하는 세력과 그렇지 않은 세력 간 구도 개편이 이뤄지는 것이다.

특히 여당인 한나라당의 경우 지난 총선 공천과정에서 친이-친박 계파 간 갈등으로 내홍을 겪은 데 이어 총선 후에도 당의 요직을 친이계에서 장악하면서 당의 구조조정을 이뤘다.

하지만 끊임없는 친박계 의원들의 반발과 친이계 내부의 갈등, 당 지도부 사이의 불협화음 등이 누적된 상황에서 내년 초 개각설과 맞물려 당의 분위기를 쇄신하는 차원에서 또 한 번의 대대적인 당 차원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러한 상황은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의 경우에도 정세균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와 구 민주계 인사들의 대립 양상으로 정체성 논란을 겪은 바 있으며 아직 봉합되지 않은 상태다. 정 대표는 원만한 야당 대표라는 평가를 듣고 있기는 하지만 거대 여당에 맞서야 하는 당의 위상에 비춰볼 때 원만함보다는 야성을 키워야 된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의 경우 좀처럼 오르지 않는 당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당 차원의 전면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할 여지는 충분히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유선진당도 창조한국당과의 교섭단체 구성이라는 ‘빅딜’을 달성한 후 정치권 세력 판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도 정치권의 구조조정으로 꼽힌다. 하지만 교섭단체 구성 당시 논란이 됐던 정체성이 다른 두 당의 공조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또 한 차례 구조조정도 전혀 배제할 순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정치권의 구조조정 바람은 항상 존재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급박하게 진행되는 경우도 있으며 천천히 물밑작업을 통해 서서히 그 실체를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정치권에서의 구조조정은 ‘정치논리’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가 더 많다. 사회적 분위기와 시대적 요구에 발 맞춰 정치권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기보다는 고육지책으로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한 경우가 더 많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2008년 말 위기의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국민들은 구태의연한 정치권에 매서운 구조조정 바람이 불길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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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채 상병 특검법)이 야당 주도로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7월19일 사건 발생 10여개월 만이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반발하며 퇴장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서 ‘이태원참사특별법’을 합의 처리된 뒤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제출하며 채 상병 특검법 상정을 요구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한 사건을 초동 조사하고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서 대통령실·국방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특검이 수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경찰 이첩 개입 의혹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를 수용해 의사일정 변경동의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졌고, 재석 168명 전원 찬성표로 가결됐다. 표결에는 야당만 참여했고, 국민의힘은 반발해 사실상 표결에 불참했다. 민주당은 원래 본회의 안건에 없었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기 위해 의사일정 변경을 우선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은 이번 본회의에 합의되지 않은 법안이 올라가는 것 자체를 반대해 왔다. 당초 김진표 의장도 여야가 합의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양당 원내대표를 의장석으로 불러서 마지막으로 중재를 시도했지만 5분 뒤 김 의장은 여러 가지로 고려한 끝에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양당의 마지막 협상도 결렬됐고, 국민의힘에서는 유일하게 자리에 남았던 김웅 의원만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방청 중이었던 해병대 예비역연대 법률 자문, 김규현 변호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년의 해병대 예비역들도 연신 눈물을 흘렸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야당이 강행 처리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로텐더홀서 규탄대회를 열고 “그간 우리 당은 이태원참사특별법에 합의 처리하는 조건으로 의사일정에 동의했다. (민주당과 김 의장이)채 상병 특검법을 애초에 처리하겠다고 했으면 저희는 오늘 본회의 의사일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모처럼 이태원법 합의 처리를 통해 협치 분위기가 조성되고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있는데 오늘 의사일정 변경까지 해서 채상병법을 처리하겠다는 것은 정치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채 상병 특검법 표결 시 본회의장을 퇴장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채 상병이 의사일정으로 상정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규탄대회 뒤 거부권 행사 건의와 관련한 질문에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국힘 퇴장 속 야당 전원 찬성 조각난 협치···대통령 또 거부?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 의사일정 변경안을 제출한 상태다. 이날 본회의는 이태원특별법 처리를 위해 여야 합의로 잡은 일정인 반면, 여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상황서 입법을 강행하기 위해 의사일정을 변경해 본회의 부의를 시도하겠다는 의도였다. 대통령실은 이날 야당의 강행 처리 예고를 예의주시하면서도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서 “민주당이 오늘 국회 본회의서 채 상병 특검법을 의사일정까지 바꿔가면서 일방 강행 처리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 표명은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실장은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며 “공수처와 경찰이 이미 본격 수사 중인 사건인데도 야당 측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특검을 강행하려고 하는 것은 진상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여권에선 채 상병 특검법 자체의 법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이미 수사 중인 사안에 특검을 도입하는 배경에 정쟁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바라봤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서 진행 중인 수사가 끝난 다음, 그 과정이나 결과를 토대로 특검 도입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야당이 특검을 당장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대통령실은 무엇보다 2021년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해병대수사단에 수사권이 없어졌기 때문에 야권이 주장하는 ‘수사외압’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해병대수사단이 기초 조사는 할 수 있겠지만, 관계자 수십명을 소환하고 연루자가 몇 명이고 하는 것은 법에 규정된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당시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의 ‘월권’ 가능성을 지적한 셈이다. “정치적 의도” 대통령실 발끈 또 과거 공수처 설치와 군사법원법 개정을 주도했던 민주당이 특검을 추진하는 모순을 거론하며, ‘참사의 정쟁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분위기다. 이날 정 실장은 “현재 공수처와 경찰서 철저한 수사를 진행 중이므로 수사 당국의 결과를 지켜보고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공수처와 경찰이 우선 수사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특검 도입 등의 절차가 논의되고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공수처는 민주당이 패스트트랙까지 동원해 설치한 기구다. 당연히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는 것이 상식이고 정도”라며 “지금까지 13차례 특검이 도입됐지만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진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야당이 단독으로 주도한 이유도 있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과정서 윤 대통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수사를 왜곡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관련 정황은 이미 상당 부분 나왔다. 국방부는 사단장 등 고위 지휘관들의 혐의를 축소하려 했고, 경찰에 넘긴 수사기록도 매끄럽지 않은 과정을 통해 회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관계자들이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조율한 흔적도 엿보였다. 국민의힘은 특검법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서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공수처 수사가 1년 가까이 진척을 보이지 않으면서 야권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과거 대통령실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조그마한 사고’라고 언급한 사건도 국민적 분노를 유발했다. 지난 3월22일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 매체와 인터뷰서 ‘조그마한 사고’로 표현하고 “전 지휘관이 법적인 문책을 받는 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실언한 바 있다. 더구나 공수처는 지난해 8월 고발장을 접수한 이후 인력 부족, 수사 의지 등을 핑계로 현재까지 ‘수사 진행 중’이라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해병대를 비롯한 국민 여론도 특검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눈물 흘린 해병들 왜? 해병대예비역연대는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채 상병 특검법 상정과 통과를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 모여 “채 상병 특검법 통과, 박정훈 대령 탄압 중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같은)이런 세력들이 우리나라의 집권여당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장은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이 나라의 안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인가. 국민의힘과 대통령은 민심을 외면하지 말고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하길 바란다”고 외쳤다. 해병대예비역연대에 법률자문을 하고 있는 해병대 출신 김규현 변호사는 “(국민의힘은)처음엔 ‘독소 조항이 있다’고, 지금은 ‘공수처와 경찰이 수사 중이니 그 수사가 끝난 다음에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과거 특검 때에는 (앞서)경찰·검찰이 수사를 안 했는가”라고 되물었다. 사실상 가장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할 방법은 법정 수사 기간을 최대 3개월로 정해놓고 있는 특검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병대 측은 이날 “3개월이 지나면 우리 군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안보에 전념할 수 있고, 정치권도 채 상병 문제를 일단락하고 지금 산적한 안보, 민생 정책을 논의할 수 있게 된다”며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수사를 기다리며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채 상병 문제로 정쟁을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국민의힘은 오후 2시에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전원 참석해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집회를 마친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 45명은 채 상병 특검법의 상정·통과 여부를 보기 위해 곧장 국회 본회의장으로 이동했다. 앞서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민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후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지난달 3일 본회의 자동 부의 요건을 충족했다. 여야는 지난 1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처리에는 합의했지만, 채 상병 특검법과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안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통한 것이다. 1년 가까이 진척 없는 수사 역풍 뻔한데···용산 선택은? 특검법 통과에 대해 대통령실은 야당을 향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수세에 몰린 대통령실이 야당을 지적할수록 부정 여론만 키우는 분위기다. 더구나 대통령실은 스스로가 수사 대상이 되는 사안서 ‘협치’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으나, 이로 인해 역풍을 맞게 되는 형국이다. 당장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용산의 뜻을 따를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어렵사리 여당 의원들을 단속하더라도 다음 달에 시작하는 22대 국회에서는 궁지에 내몰릴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신중한 모습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거부권을 행사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며 “김진표 국회의장은 합의 정신을 존중하는 분”이라고 일축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여야 합의 없이 거대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안들에 대해선 ‘과도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젊은 병사의 죽음’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인 데다 야권과 언론이 국가안보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 등 대통령실 연루 의혹을 잇달아 제기한 상황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당의 총선 참패 한 달여 만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다. 국회 재표결 시 여당 이탈표도 우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 회담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의 적극적인 수용을 요구한 데 대해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것도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공수처는 특검 출범 여부와 별개로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 외압 의혹’과 관련된 핵심 인물들을 불러 조사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방부가 채 상병 사건을 회수하고 재조사하는 과정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대통령실 등 ‘윗선’으로부터 외압이 있었는지 의혹을 풀어줄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환조사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수사는 진행 중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이대환)는 지난 2일 오전 9시25분쯤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날 공수처는 박 전 직무대리를 상대로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재조사한 후 혐의자를 축소해 경찰로 넘기는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 등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