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많은 ‘부자 경찰’ 이야기

금테 두른 민중의 지팡이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지난달 29일 관보를 통해 ‘2018년 정기 재산변동사항 신고내역’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치안감 이상 경찰 고위간부 30명의 재산내역도 포함됐다. 재산공개 대상인 치안감 이상 경찰 고위직은 평균 9억7000여만원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30명 중 21명의 재산이 늘어났다. 일각에선 이들의 재산 증가가 달갑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에 시달리는 서민들에게는 다른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경찰 최고위 간부 30명의 평균 재산이 9억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지난달 29일 공개한 ‘2018년도 고위공직자 정기재산변동 사항’에 따르면 경찰청 소속 치안감 이상 경찰 간부 30인의 평균 재산은 9억7406만원을 기록했다. 

재산 최다 21억
최소 -2000만원

이용표 경남경찰청장이 보유재산 약 21억원으로 경찰 고위 간부 중 최고액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청장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21억5371만원을 신고해 재산 공개 대상 간부(치안감 이상) 중 1위를 차지했다. 

재산 공개 대상 경찰고위직 30명의 평균 재산액(약 9억7406만9000원)보다 2배 이상 많은 수준이다. 

이 청장은 전체 재산서 부동산과 예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았다. 본인·배우자·부모·자녀 명의의 건물(9억9763만8000원)과 예금(9억9473만원), 부모 명의의 토지(5641만2000원), 본인과 배우자 명의의 자동차 2대(733만원), 배우자 명의의 사인간 채권(9760만원)을 가진 것으로 신고됐다. 


두 번째로 재산이 많은 경찰 고위 간부는 김상운 경북경찰청장으로 총 21억3777만3000원을 신고했다. 김 청장은 본인·배우자 명의의 토지(3억384만3000원), 본인·배우자·자녀 명의의 건물(26억7362만2000원), 본인 명의의 자동차(371만원), 본인·배우자·자녀 명의의 예금(9억2031만3000원), 배우자·자녀 명의의 유가증권(3394만원)를 소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채무는 본인과 배우자, 장·차남 명의로 17억9765만5000원이다. 

이 청장과 김 청장 다음으로 이재열 충남경찰청장(16억6623만5000원), 박기호 경기남부경찰청 차장(15억6851만1000원), 박운대 인천경찰청장(13억2781만원), 장향진 대구경찰청장(13억1170만1000원) 등이 뒤를 이었다. 

평균 9억대…이용표 경남청장 21억 1위
공개대상 30명 가운데 21명 재산 증가

경찰 총수인 이철성 경찰청장은 경기 고양시에 있는 본인 명의 아파트 4억4700만원, 강원도 횡성 소재의 배우자 명의 단독주택 1억2200만원, 본인·배우자·자녀 명의의 예금(5억5477만6000원) 등 총 11억106만4000원을 신고, 공개 대상 경찰 간부 30명 중 11번째로 재산이 많았다.

이밖에 제주 출신인 박진우 경찰대학장은 11억2554만원, 민갑룡 경찰청 차장은 4억8559만7000원,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은 11억1739만원을 신고했다. 황운하 울산지방경찰청장의 재산은 9억4635만원으로 집계됐다. 

박재진 경찰청 보안국장은 유일하게 재산보다 빚이 더 많았다. 박 국장은 아파트 공시가격 감소와 금융기관으로부터 4억원 넘는 대출 등으로 현재 빚만 2000만원이라고 신고했다.


치안감 이상 간부들의 전년 대비 재산 증감액은 9975만원으로 집계됐다. 

공개 대상 30명 가운데 21명(70%)은 예금 재산이 늘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1억3627만9000원 증가했다. 항목별로는 토지 96만원, 건물 5억6900만원, 자동차 1509만원, 예금 5억5477만원, 유가증권 123만원, 채권 2000만원 등이었다. 
 

건물 재산의 경우 이 청장 소유의 경기 고양시 아파트는 가격 변동이 없었다. 다만 배우자 소유의 강원 횡성군 단독주택 가격이 전년대비 300만원이 증가했다. 예금 재산은 5억5477만6000원으로 나타났다. 본인과 장녀 소유의 보험·증권, 배우자 소유의 보험 등으로 전년과 비교해 1억824만원이 증가했다.

부동산과
주식으로

전년대비 재산이 가장 많이 늘어난 고위 공직자는 이상철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장이었다. 이 국장은 3억4423만5000원이 늘어났다. 이 국장의 경우 본인 소유의 4억9700만원 상당의 서울 성동구 아파트를 매각하고 8억4000만원 상당의 아파트를 매입하면서 재산이 크게 늘었다. 

조회현 경찰청 정보국장 재산이 예적금 증가 등으로 두 번째로 많은 2억4304만원 늘었다. 3위는 2억1718만8000원으로 박화진 경찰교육원장이었다. 박기호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차장이 2억274만7000원, 원경환 강원지방경찰청장이 2억137만9000원으로 뒤를 이었다. 

물론 전년대비 재산이 감소한 고위직도 있었다. 강성복 전남지방경찰청장은 219만5000원이 감소했고 김재원 경찰청 외사국장과 박재진 경찰청 보안국장이 각각 5912만3000원, 1217만7000원씩 감소했다.

한편 법조계 고위 공직자 226명의 평균 재산은 22억원으로 경찰 고위공직자 평균 재산을 훨씬 웃돌았다. 법무부와 검찰의 고위 간부 49명의 평균 재산은 19억4770만원, 경찰 고위직 30명의 평균 재산은 9억7406만원이었다. 검찰이 경찰에 비해 약 2배 이상 더 많았다.

인천지법원장을 지낸 김동오(61·사법연수원 14기)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187억원대의 재산을 신고해 법조계 고위인사 가운데 최고 자산가에 올랐다. 김 부장판사를 포함해 100억대 자산가도 5명이나 됐다. 

판검사도 공개
경찰보다 많아

김 부장판사가 187억3410만원, 윤승은(51·23기)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148억1034만원으로 1·2위에 랭크됐다. 이어 김용대(58·17기)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144억5547만원으로 3위, 조경란(58·14기) 특허법원장이 135억8604만원으로 4위를 차지했다. 

최근 7년간 매년 법조계 고위인사 가운데 최고 자산가 타이틀을 차지했던 최상열(59·14기) 광주고법원장은 113억6720만원으로 5위에 자리했다. 


사법부 재산공개 대상자 가운데 재산이 가장 적은 법관은 최창영(50·24기·1억3609만원) 대전고법 부장판사, 황진구(48·24기·1억7403만원) 광주고법 부장판사, 천대엽(54·21기·2억973만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순이었다. 

김명수(59·15기) 대법원장과 안철상(61·15기) 법원행정처장 등 대법원장 및 대법관 13명의 평균재산은 19억4784만원으로 전년도보다 1억1868만원 줄었다. 

대법관 이상 고위 법관 가운데 재산이 10억원에 못 미치는 사람은 김 대법원장과 김신(61·12기·9억 1217만원) 대법관 등 2명이다. 

법무부와 검찰의 검사장급 이상 고위간부 재산공개 대상자 중 27명의 자산 총액이 10억원 이상이었다. 20억원 이상인 자산가는 13명이다. 

이상철 사이버안전국장 3억↑ 증가율 1위
판검사는 평균 22억원…100억대 자산가도

올해 처음으로 재산공개 대상자에 포함된 윤석열(58·사법연수원 23기) 서울중앙지검장은 64억3566만원을 신고해 법무·검찰 고위간부 중 최고 자산가로 이름을 올렸다. 윤 지검장은 부부가 가진 예금이 지난해 32억여만원서 올해 52억여만원으로 늘었다. 2억4000여만원이 윤 지검장, 50억4000여만원이 배우자 몫이다. 


2위는 노승권(53·21기) 대구지검장으로 55억3420만원이었다. 양부남(57·22기) 광주지검장이 54억7977만원, 이영주(51·22기) 춘천지검장이 50억4260만원으로 뒤를 이었다. 박상기 장관은 4207만원 늘어난 12억9588만원을 신고했다. 

문무일(57·18기) 검찰총장의 재산은 32억5375만원으로 나타났다. 문 총장은 보유하던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매각하면서 재산이 전년보다 8억원이 늘었다. 이금로(53·20기) 법무부 차관은 전년보다 4491만원이 증가한 7억878만원, 봉욱(53·19기) 대검 차장은 4647만원이 증가한 18억4951만원을 신고했다. 
 

가장 재산이 적은 검찰 간부는 송삼현(56·23기) 대검 공판송무부장으로 6019만원을 신고했다.

공직자들의 재산공개 결과가 공개됐지만 이를 바라보는 서민들의 시각은 씁쓸하기만 하다. 치솟는 물가에 시달리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 증가가 달갑지 않다. 

한 전문가는 “자본주의 국가서 돈이 많음을 탓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일부 고위 공직자의 재산 증가 이유가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인한 경우로 땀의 대가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공직자 재산증가가 부정한 방법에 의한 것은 아닐지라도 서민 입장에선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위화감 조성
서민들 씁쓸

공직자윤리위원회는 6월 초까지 이번 공개한 재산을 심사한 뒤 거짓 또는 불성실 신고 사례가 드러나면 과태료 부과 등의 시정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한 전문가는 “공직자 재산신고가 당초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서민들과의 위화감만 조성된다면 차라리 폐지를 검토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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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