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또 죽고’ 이명박 주변인 의문사 추적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3.26 10:47:38
  • 호수 11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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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만 터지면 죽거나 사라지거나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MB(이명박 전 대통령)를 둘러싸고 자살 사건이 많다. MB가 구속되면서 그를 둘러싼 사망사건들이 주목 받고 있다. 숨졌던 사람들 대부분 이 전 대통령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돼있다. 이들은 어떻게, 왜 한순간 목숨을 끊었을까.
 

그동안 이명박 전 대통령 주변서 일어난 사망사건은 총 4건이다.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전 대통령의 조카 사위와 얽혀 자살한 사업가, 최측근의 석연치 않은 죽음, 자원외교로 검찰 수사를 받던 사업가와 전직 국회의원의 자살 사건 등이 바로 그것이다. 

조카 사위·목숨 끊은 CEO

2011년 3월6일 상장폐지 위기에 몰리자 씨모텍의 김모 대표가 사망했다. 발견 당시 발견 당시 차 안에는 연탄불이 피워져 있었다. 씨모텍은 이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가 한때 몸담았다가 구설에 올랐던 회사다. 

여기에 씨모텍과 제이콤이 보유했던 수백억원의 회삿돈이 사라져 버린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일각에서는 “대통령 친인척이 연루된 대형 게이트”라는 주장이 나왔다. 

당시 씨모텍 최대 대주주는 나무이쿼티라는 기업이었다. 씨모텍 임직원들은 최대주주를 검찰에 고소했다. 나무이쿼티서 씨모텍 자금 256억원을 빼돌렸으며, 자살한 김 대표도 나무이쿼티가 내세운 '바지사장'에 불과하다는 것. 


나무이쿼티의 씨모텍 인수과정은 석연치 않았다. 당시 나무이쿼티는 설립된지 3년도 채 되지 않은 회사였다. 설립 3개월 뒤인 2009년 10월27일 이 전 대통령의 친형 이상은 다스 회장의 사위 전모씨를 대표이사로 임명한다. 

나무이쿼티는 전씨 영입 8일 만에 씨모텍의 최대주주 지분(10.1%)을 매수하는 계약을 체결한다. 당시 매입 대금은 300억원이었는데 50억원은 사채 시장서 빌렸고 잔금 250억원도 나중에 씨모텍 자금으로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나무이쿼티가 무일푼으로 씨모텍을 삼켰다.
 

인수 후 경영도 문제가 많았다. 대통령의 친인척인 전씨가 경영에 참여한 회사라는 점도 주가에 영향을 미쳤다. 잡음이 일자 전씨는 2010년 7월 말 씨모텍 부사장 자리서 물러났고, 그 이전인 4월엔 나무이쿼티 이사직도 그만둔다. 

전씨가 물러난 나무이쿼티의 대표이사는 자살한 김 대표가 물려받았다.

MB 친인척 연루 사건들     
하나같이 자살로 종지부

나무이쿼티는 전씨가 물러나기 직전 또 다른 코스닥 기업인 제이콤을 인수한다. 당시 제이콤의 최대주주는 디에이피홀딩스였는데 나무이쿼티가 디에이피홀딩스를 230억원에 매입하면서 제이콤의 경영권을 확보하게 됐다. 


제이콤 대표이사엔 나무이쿼티 이사인 한모씨가 파견됐다. 당시만 해도 제이콤은 동아제약의 지분 3%를 갖고 있는 등 800억원대의 자산을 가진 기업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제이콤은 피인수 9개월 만에 하나은행으로 지급 제시된 25억원짜리 수표를 결제하지 못해 최종부도 처리됐다. 동아제약 주식 매각 대금 300여억원도 증발해 버리는 등 회사가 거덜나 버렸다. 

나무이쿼티의 짧은 지배 기간 씨모텍과 제이콤의 자산 1000여억원 어치의 행방이 묘연해졌고, 상장폐지 위기로 투자자 2만여명이 피해를 입었다. 

모든 책임은 김 대표가 짊어져야하는 상황이었다. 김 사장은 자살 전날까지 대통령 조카사위 전씨와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김 사장은 ‘회사 자금이 사라진 데 대한 감사 의견 거절까지 받게 됐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고, 전씨는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 당장 김모씨와 이모씨를 횡령으로 고발하고 자수하라. 그게 김 사장님이 살 길’이라는 답을 보낸다.
 

김 사장은 ‘옙’이라고 회신한다. 하지만 그는 다음날 밤 차량에 연탄불을 피워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이 때문에 당시 전씨가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던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저축은행 의혹·최측근의 선택

2012년 6월25일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김병인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이 홍콩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김 전 사무처장은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 시절 대변인을 맡았으며 대통령직인수위원회서 법무행정분과위 전문위원을 맡았다. 

당시 홍콩 경찰은 외부 침입과 타살 흔적이 없는 것으로 미뤄 김 전 처장이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법한 뚜렷한 이유나 설명이 나오지 않아 의문을 남겼다. 

유일하게 남은 단서는 김 전 처장이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정우택 의원의 성추문 의혹’을 다룬 글을 퍼 나른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4·11 총선 직전인 지난 3월 야후 블로그 ‘크라임 투 길티(Crime2guilty)’에 올라온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이 제주도서 골프를 치고 성접대를 받았다’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연동했다. 

이와 관련해 경찰 조사를 받던 김 전 처장은 3월 말 “글을 본 적도 없다. 페이스북이 해킹당한 것 같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그는 조사를 마치고 3일 뒤 급히 홍콩으로 출국했다. 


대부분 수사 임박 앞두고 
연탄불·목매서 목숨 끊어

경찰은 4월 초 김 전 처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 김 전 처장이 수사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러나 김 전 처장은 문제의 글을 직접 올린 사람이 아니어서 이를 자살의 원인으로 보기엔 석연치 않다. 경찰은 글의 최초 유포자를 찾기 위해 수사를 벌였지만 이 블로그가 홍콩 IP를 사용해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범인의 신원은 엉뚱한 곳에서 확인됐다. 이 블로그는 문제의 글이 게시된 3월 이전까지 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회장의 비리를 집중적으로 폭로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김 회장과 이 전 대통령의 인연은 깊다. 
 

이 전 대통령 형 이상득 전 의원은 제17대 대선을 앞둔 2007년 10월 김 회장에게 불법정치자금 3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2012년 구속기소돼 징역 1년2월의 실형을 확정받아 복역했다. 

당시 검찰은 저축은행 비리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이 블로그 주인이 신우코리아 이왕재 대표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씨는 김 회장이 저축은행으로부터 178억원의 불법 대출을 받도록 명의를 대주고 이를 빌미로 블로그에 폭로 글을 8차례 올렸다. 


일각에선 김 전 처장이 이씨 블로그와 연동이 된 게 미래저축은행 사건과 이 전 대통령이 연관이 있어서가 아니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홍콩으로 출국한 김 전 처장이 당시 홍콩에 머물던 블로그 개설자 이씨를 만났는지 여부 등 의문으로 남았다.

자원외교 선봉장 시신으로 발견

2013년 4월 CNK 임준오 전 부회장이 갑작스레 목숨을 끊었다. 사망 당시 임 전 부회장은 CNK 인터내셔널 주가조작 의혹 사건으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던 중이었다. 그의 시신 주변에는 타고 남은 번개탄과 유서가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CNK는 2010년 12월 ‘아프리카 카메룬서 다이아몬드 4.2억 캐럿 매장량으로 추정되는 지역의 개발권을 획득했다’는 외교부 발표로 유명해졌다. 당시 CNK의 주가는 급등했다. 3000원 내외였던 CNK 주가는 보도자료 발표 이후 1만6000원대로 5배 이상 폭등했다.

하지만 매장량이 과대평가 됐다는 주장이 나왔고, 결국 외교부가 사실을 부풀렸다고 발표하면서 파장이 커졌다. 카메룬 다이아몬드 광산개발사업은 당시 MB정부의 대표적인 자원외교 성과로 꼽혀왔다.

검찰은 임 전 부회장이 다이아몬드 매장량을 부풀리고 대량생산계획 등을 허위로 유포해 90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취했다고 판단했다. 더불어 CNK 주가 조작 의혹 사건에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제2차관 등 MB정부 실세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 전 차관은 카메룬 정부당국에 CNK의 다이아몬드 광산개발권 획득을 직접 요청하는 등 부적절하게 개입한 의혹을 받으며 검찰 조사까지 받았다. 

박 전 차관은 2010년 5월 오 대표와 함께 민·관 고위급 대표단 단장으로 카메룬을 방문했다. 박 전 차관이 소속한 총리실은 물론 외교부, 지식경제부, 국토해양부 등 정부 기관 소속 19명이 카메룬 정부를 상대로 사흘간 머물며 CNK에 다이아몬드 개발권을 주라고 요청했다.

석 달 뒤 8월에는 카메룬 대표단이 한국을 답방했고 지식경제부 차관으로 자리를 옮긴 박 전 차관을 만난다. 카메룬 대표단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서 지경부와 외교부가 마련한 ‘카메룬 에너지·광물 투자포럼’에 참석했으며 CNK 측으로부터 항공비와 체재비 등을 지원받았다.

이 뿐만 아니라 이 사건에 이 전 대통령 일가가 개입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이 대통령의 조카이자 이상득 전 의원의 아들인 지형씨가 연루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건 당시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우제창 의원은 CNK에 유입된 해외 자금의 출처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며 ‘우리투자증권→크레딧스위스→브림(BRIM, 지형씨 재직 회사)→CNK’로 이어지는 투자의 고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즉, 지형씨가 제이리(Jay Lee)라는 이름으로 마케팅담당 이사를 맡고 있는 헤지펀드 회사 '브림'이 주선해 크레딧스위스 싱가포르지점이 CNK에 120억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임 전 부회장의 죽음으로 검찰 수사는 어려움을 겪게 됐다. 한때 1만8500원까지 주가가 치솟았던 CNK는 상장폐지됐고 개미 투자자들은 큰 피해를 봤다.

의문만 남은 특사 커넥션

2015년 4월 9일 자원외교 비리 관련 조사 대상이었던 전 국회의원이었던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했다. 나무에 넥타이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 전 회장은 2006∼2013년 5월 회사 재무상태를 속여 해외 자원개발 사업에 지원되는 정부융자금과 금융권 대출 800억여원을 받아내고 관계사들과의 거래대금 조작 등을 통해 250억원가량의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횡령)를 받고 있었다.

경남기업은 러시아 캄차카 석유탐사 사업과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광산 개발사업 비용 명목으로 석유공사로부터 성공불융자금 330억원, 광물자원공사에서 일반융자금 130억원을 지원받았다.

어느날 갑자기 행방불명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검찰은 경남기업이 정부지원금뿐만 아니라 수출입은행 등 금융권서 대출을 받는 과정서도 분식회계 등 불법행위가 있었다고 보고 800억원대 사기 혐의를 적용했다.

성 전 회장이 융자금 일부와 회삿돈을 빼돌려 20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도 확인했다. 부인 동모씨가 실소유주인 건물운영·관리업체 체스넛과 건축자재 납품사 코어베이스 등에 일감을 몰아주거나 거래대금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성 회장이 이런 비리를 저지른 시기는 이 전 대통령 시절 자원외교 사업을 하면서다. 당시 이 전 대통령과 성 회장의 관계가 도마에 올랐다. 성 회장의 두 번째 특별사면을 이 전 대통령 인수위원회서 결정됐다는 것. 
 

최초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특별사면 리스트에  당시 이 전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추가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수사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성 회장은 자살을 택했다. 목숨을 끊기 직전 로비 리스트를 남겨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성완종 리스트’에는 김기춘, 허태열, 이병기 등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과 당시 이완구 총리, 유정복 인천시장, 홍문종 의원, 부산시장, 홍준표 경남도지사 등 유력 정치인들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하지만 성 회장이 죽으면서 리스트에 올랐던 인사들은 모두 무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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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채 상병 특검법)이 야당 주도로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7월19일 사건 발생 10여개월 만이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반발하며 퇴장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서 ‘이태원참사특별법’을 합의 처리된 뒤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제출하며 채 상병 특검법 상정을 요구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한 사건을 초동 조사하고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서 대통령실·국방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특검이 수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경찰 이첩 개입 의혹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를 수용해 의사일정 변경동의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졌고, 재석 168명 전원 찬성표로 가결됐다. 표결에는 야당만 참여했고, 국민의힘은 반발해 사실상 표결에 불참했다. 민주당은 원래 본회의 안건에 없었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기 위해 의사일정 변경을 우선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은 이번 본회의에 합의되지 않은 법안이 올라가는 것 자체를 반대해 왔다. 당초 김진표 의장도 여야가 합의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양당 원내대표를 의장석으로 불러서 마지막으로 중재를 시도했지만 5분 뒤 김 의장은 여러 가지로 고려한 끝에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양당의 마지막 협상도 결렬됐고, 국민의힘에서는 유일하게 자리에 남았던 김웅 의원만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방청 중이었던 해병대 예비역연대 법률 자문, 김규현 변호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년의 해병대 예비역들도 연신 눈물을 흘렸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야당이 강행 처리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로텐더홀서 규탄대회를 열고 “그간 우리 당은 이태원참사특별법에 합의 처리하는 조건으로 의사일정에 동의했다. (민주당과 김 의장이)채 상병 특검법을 애초에 처리하겠다고 했으면 저희는 오늘 본회의 의사일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모처럼 이태원법 합의 처리를 통해 협치 분위기가 조성되고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있는데 오늘 의사일정 변경까지 해서 채상병법을 처리하겠다는 것은 정치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채 상병 특검법 표결 시 본회의장을 퇴장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채 상병이 의사일정으로 상정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규탄대회 뒤 거부권 행사 건의와 관련한 질문에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국힘 퇴장 속 야당 전원 찬성 조각난 협치···대통령 또 거부?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 의사일정 변경안을 제출한 상태다. 이날 본회의는 이태원특별법 처리를 위해 여야 합의로 잡은 일정인 반면, 여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상황서 입법을 강행하기 위해 의사일정을 변경해 본회의 부의를 시도하겠다는 의도였다. 대통령실은 이날 야당의 강행 처리 예고를 예의주시하면서도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서 “민주당이 오늘 국회 본회의서 채 상병 특검법을 의사일정까지 바꿔가면서 일방 강행 처리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 표명은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실장은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며 “공수처와 경찰이 이미 본격 수사 중인 사건인데도 야당 측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특검을 강행하려고 하는 것은 진상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여권에선 채 상병 특검법 자체의 법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이미 수사 중인 사안에 특검을 도입하는 배경에 정쟁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바라봤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서 진행 중인 수사가 끝난 다음, 그 과정이나 결과를 토대로 특검 도입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야당이 특검을 당장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대통령실은 무엇보다 2021년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해병대수사단에 수사권이 없어졌기 때문에 야권이 주장하는 ‘수사외압’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해병대수사단이 기초 조사는 할 수 있겠지만, 관계자 수십명을 소환하고 연루자가 몇 명이고 하는 것은 법에 규정된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당시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의 ‘월권’ 가능성을 지적한 셈이다. “정치적 의도” 대통령실 발끈 또 과거 공수처 설치와 군사법원법 개정을 주도했던 민주당이 특검을 추진하는 모순을 거론하며, ‘참사의 정쟁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분위기다. 이날 정 실장은 “현재 공수처와 경찰서 철저한 수사를 진행 중이므로 수사 당국의 결과를 지켜보고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공수처와 경찰이 우선 수사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특검 도입 등의 절차가 논의되고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공수처는 민주당이 패스트트랙까지 동원해 설치한 기구다. 당연히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는 것이 상식이고 정도”라며 “지금까지 13차례 특검이 도입됐지만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진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야당이 단독으로 주도한 이유도 있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과정서 윤 대통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수사를 왜곡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관련 정황은 이미 상당 부분 나왔다. 국방부는 사단장 등 고위 지휘관들의 혐의를 축소하려 했고, 경찰에 넘긴 수사기록도 매끄럽지 않은 과정을 통해 회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관계자들이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조율한 흔적도 엿보였다. 국민의힘은 특검법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서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공수처 수사가 1년 가까이 진척을 보이지 않으면서 야권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과거 대통령실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조그마한 사고’라고 언급한 사건도 국민적 분노를 유발했다. 지난 3월22일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 매체와 인터뷰서 ‘조그마한 사고’로 표현하고 “전 지휘관이 법적인 문책을 받는 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실언한 바 있다. 더구나 공수처는 지난해 8월 고발장을 접수한 이후 인력 부족, 수사 의지 등을 핑계로 현재까지 ‘수사 진행 중’이라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해병대를 비롯한 국민 여론도 특검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눈물 흘린 해병들 왜? 해병대예비역연대는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채 상병 특검법 상정과 통과를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 모여 “채 상병 특검법 통과, 박정훈 대령 탄압 중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같은)이런 세력들이 우리나라의 집권여당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장은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이 나라의 안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인가. 국민의힘과 대통령은 민심을 외면하지 말고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하길 바란다”고 외쳤다. 해병대예비역연대에 법률자문을 하고 있는 해병대 출신 김규현 변호사는 “(국민의힘은)처음엔 ‘독소 조항이 있다’고, 지금은 ‘공수처와 경찰이 수사 중이니 그 수사가 끝난 다음에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과거 특검 때에는 (앞서)경찰·검찰이 수사를 안 했는가”라고 되물었다. 사실상 가장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할 방법은 법정 수사 기간을 최대 3개월로 정해놓고 있는 특검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병대 측은 이날 “3개월이 지나면 우리 군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안보에 전념할 수 있고, 정치권도 채 상병 문제를 일단락하고 지금 산적한 안보, 민생 정책을 논의할 수 있게 된다”며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수사를 기다리며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채 상병 문제로 정쟁을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국민의힘은 오후 2시에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전원 참석해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집회를 마친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 45명은 채 상병 특검법의 상정·통과 여부를 보기 위해 곧장 국회 본회의장으로 이동했다. 앞서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민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후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지난달 3일 본회의 자동 부의 요건을 충족했다. 여야는 지난 1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처리에는 합의했지만, 채 상병 특검법과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안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통한 것이다. 1년 가까이 진척 없는 수사 역풍 뻔한데···용산 선택은? 특검법 통과에 대해 대통령실은 야당을 향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수세에 몰린 대통령실이 야당을 지적할수록 부정 여론만 키우는 분위기다. 더구나 대통령실은 스스로가 수사 대상이 되는 사안서 ‘협치’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으나, 이로 인해 역풍을 맞게 되는 형국이다. 당장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용산의 뜻을 따를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어렵사리 여당 의원들을 단속하더라도 다음 달에 시작하는 22대 국회에서는 궁지에 내몰릴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신중한 모습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거부권을 행사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며 “김진표 국회의장은 합의 정신을 존중하는 분”이라고 일축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여야 합의 없이 거대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안들에 대해선 ‘과도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젊은 병사의 죽음’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인 데다 야권과 언론이 국가안보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 등 대통령실 연루 의혹을 잇달아 제기한 상황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당의 총선 참패 한 달여 만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다. 국회 재표결 시 여당 이탈표도 우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 회담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의 적극적인 수용을 요구한 데 대해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것도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공수처는 특검 출범 여부와 별개로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 외압 의혹’과 관련된 핵심 인물들을 불러 조사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방부가 채 상병 사건을 회수하고 재조사하는 과정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대통령실 등 ‘윗선’으로부터 외압이 있었는지 의혹을 풀어줄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환조사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수사는 진행 중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이대환)는 지난 2일 오전 9시25분쯤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날 공수처는 박 전 직무대리를 상대로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재조사한 후 혐의자를 축소해 경찰로 넘기는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 등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