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아내까지 바꾸고…” 뉴보텍 전 대표의 충격 고백

”형이 모두 앗아갔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4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사회로 나왔더니 모든 게 바뀌어 있었다. 소재파악이 안 되는 거주불명 등록자가 돼있었고, 인감이 변경된 것도 모자라 특허권이 양도됐다. 심지어 아내까지 다른 사람으로 뒤바뀐 상황이었다. 소설이나 영화 이야기가 아니다. 한승희 뉴보텍 전 대표가 실제 겪은 일이다. 이야기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승희씨는 지난 2003년 3월 뉴보텍 대표로 선임됐다. 코스닥 상장기업인 뉴보텍은 상‧하수도관 등 환경 관련 배관자재를 제조하고 판매한다. 2009년 4월부터 한씨의 형 한거희씨가 대표에 취임해 회사를 이끌고 있다. 한씨는 “믿었던 형이 내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며 “2006년 일어난 사건이 모든 일의 시발점이었다”고 토로했다.

이영애 사건에
징역 4년 받아

▲‘이영애’가 불러온 나비효과= 한씨는 뉴보텍 대표 시절 ‘주식회사 이영애’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펼치려다 이영애씨 측으로부터 명예훼손과 주가조작 혐의 등으로 고소당했다. 2006년 2월 한씨는 “영화배우 이영애씨를 영입해 주식회사를 설립한 뒤 이와 관련한 영화, 광고, 판권사업들을 진행할 예정”이라는 내용의 허위 보도자료와 공시를 낸 혐의를 받았다.

한씨는 이영애씨의 오빠인 이○○씨와 법인 설립 관련 합의서를 체결하기로 했지만 의사소통 과정서 오해가 생겼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영애씨 측은 애초에 사업 관련 이야기조차 없었다며 그의 주장을 일축했다. 

결국 한씨는 기자회견서 고개를 숙였다. 이영애씨 측은 사과를 받아들여 고소‧고발을 취하했지만 뉴보텍 주주들은 그를 증권거래법상 허위 공시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그러다 2006년 7월 한씨는 검찰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잠적했다. 그는 서울 한남동 소재의 도피처서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고 4년 동안 숨어 지내다 2010년 10월 검거됐다. 2010년 11월 구속 기소된 한씨는 배임, 업무상 횡령, 조세범처벌법 위반 혐의 등이 인정돼 2012년 대법원서 징역 4년형이 확정됐다.

▲뒤바뀐 아내= 처음 이상기류가 감지된 때는 한씨가 서울구치소에 있던 2011년 초 무렵이다. 당시 한씨의 아내 정○○씨는 남편을 면회하기 위해 서울구치소를 찾았다. 정씨는 아주버님인 한거희 대표의 요구로 남편의 수감증명서를 떼려 했다. 서울구치소 측은 수감증명서는 가족만 발급받을 수 있다며 정씨의 요청을 거절했다.

정씨가 자신을 한씨의 아내라고 말했지만 서울구치소 창구 직원은 “컴퓨터 서류상에 기재된 한씨의 아내 이름은 정○○씨가 아니라 다른 이름”이라며 “본인이 정말 아내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가족관계증명서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정씨는 주민센터서 가족관계증명서를 떼어가고 나서야 수감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정씨는 지난 2월5일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서 “한거희 대표가 회사 업무에 필요하다고 해서 수감증명서를 두 번 떼다줬다”며 “그때마다 서울구치소는 가족관계증명서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서울구치소 직원이 언급한 다른 이름은 이○○씨다.

4년 수감생활 하고 나왔더니…
가족 잃고 돈 잃고 ‘엉망진창’

지난달 1월19일 서울 청담동의 한 사무실서 만난 한씨는 “이름도 처음 들어보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내 아내로 등록돼있고 진짜 아내(정씨)는 그 여자(이씨)가 누구냐고 묻고 정말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서울구치소 입소 당시 한씨가 직접 작성한 수용기록부 가족사항란에는 아내 이름이 정씨로 기재돼있다.


그는 “2011년 초 아내 정씨가 서울구치소에 가족관계증명서를 두 번 제출한 일 말고도 최소 6차례에 걸쳐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아달라고 요청했지만 묵살당했다”고 주장했다. 한씨는 2013년 7월 경주교도소 정기재심 과정에서 분류심판관으로부터 가족관계를 확인받던 중 “두 사람(정씨와 이씨) 가운데 누가 진짜 부인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 자리서 그는 잘못된 정보를 수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2014년 5월 천안개방교도소서 귀휴심사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씨는 “몇 번을 요구해도 수정되지 않아 직접 정보 공개를 요청했다”고 했다. 그는 전산 수용기록부에 기재된 본인(한승희)의 처(정씨) 외 아내로 등록돼있는 사람(이씨)의 신상정보를 천안개방교도소 측에 요구했다.

회사 전 직원
아내로 둔갑

2014년 5월 천안개방교도소 측이 공개한 내용에는 한씨의 아내가 정씨가 아닌 이씨로 나온다. 이씨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제외한 주소나 주민번호, 등록일자에 대해서는 ‘기록없음’으로 적혀있다. 

해당 정보를 근거로 한씨는 대리인 변호사를 통해 서울구치소에 내용증명을 보냈다. 누가, 언제, 무엇을 근거로 이씨가 자신의 아내로 등록된 건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2014년 6월 서울구치소 측은 “2010년 10월19일 신상정보 입력담당자 박○○ 교사가 (한씨의 정보를)등록한 사실이 확인됐지만 오랜 기간의 경과로 당시 등록 경위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며 “다만 접견예약자 등록 과정서 단순 착오에 의해 오등록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해명했다. 

서울구치소 측은 “가족사항 오등록으로 인해 불이익을 당했다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그 사이 가족은 이미 파탄 상태였다.

의문점은 한씨의 아내라고 기입된 이씨의 정체다. 

한씨는 면회 온 아내 정씨가 ‘이씨는 대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이름이 비슷했던 자신의 담당 검사로 착각할 만큼 그녀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그러다 한씨가 출소 후 확인한 결과 이씨는 뉴보텍 경영지원본부에 근무했던 직원으로 밝혀졌다.

다시 말해 수용기록부에 한씨의 아내로 잘못 기입된 여성이 공교롭게도 뉴보텍 전 직원이었다는 것. 

한씨는 “2014년 10월13일 출소해 이씨에 대한 정보를 찾았고 11월20일 만났다”며 “그 자리서 자초지종을 물었고 이씨는 다음날(21일) 모든 사실을 알려준다고 했다. 그런데 다음날 만나기로 한 장소에 나오지도 않고 연락이 두절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본인도 해당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았다고 답했다. 

1월31일 <일요시사> 취재 결과 이씨는 “뉴보텍을 그만둔 후 교도소서 전화가 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무척 황당했다”며 “한씨와는 당연히 아무 관계도 아니다”고 말했다. 뉴보텍 비서실 관계자는 “잘 모르겠다. 전 직원에 대해서는 확인이 어렵다”고 밝혔다.

거듭 놀라운 점은 한씨의 1심 재판을 맡고 있던 변호사 역시 뉴보텍 고문변호사였다는 사실이다. 

한씨는 “1심 변호사 양종관씨가 뉴보텍 고문변호사인 줄 그때는 전혀 몰랐다”며 “양 변호사는 형이 소개해준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뉴보텍 내부 사정에 밝은 익명의 관계자는 “양 변호사는 2009년 한거희 대표가 대표이사로 선임된 이후 뉴보텍 고문변호사가 된 걸로 안다”고 설명했다.

▲인감은 왜?= 황당한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씨의 주민등록은 수감기간 중인 2011년 5월20일 재등록됐다가 같은 해 9월5일 거주불명 등록 상태가 됐다. 2011년 5월25일 그의 인감이 바뀌었고, 같은 날 인감증명이 5부 발급됐다. 


6월3일에는 누군가 그의 주민등록초본 2부를 떼어갔다. 한씨는 약 4개월 사이 자신의 개인정보가 여러 번 바뀐 사실을 거의 모르고 있었다.

양 변호사가 보낸 서신을 통해 전입신고를 한 게 한 대표라는 점만 파악한 상태였다. 양 변호사는 2011년 5월20일 “형님께서 한승희님의 주소를 형님 주민등록 내 동생으로 전입신고를 해 두었다고 합니다. 한승희님의 주민등록상 주소는 형님 집 주소와 일치합니다”라는 내용의 서신을 한씨에게 보냈다.

한씨는 사실 확인을 위해 출소 후 서울 관악구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자신의 주민등록 재등록‧전입‧거주불명 등록 등이 누구에 의해 이뤄졌는지, 2011년 5월부터 9월 사이 인감‧초본‧등본 등 자신의 개인증명서 발행 여부와 신청자를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형수가 인감을
특허권 때문에?

관악구청은 청구 내용이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정보라는 점을 들어 ‘비공개’ 결정을 통보했다. 한씨는 “나도 모르는 새 내 개인정보가 난도질됐는데 그 행위자가 누군지 당사자가 확인을 못하는 게 어이없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후 수차례의 정보공개 청구 끝에 그는 정보의 일부가 공개된 서식을 받아볼 수 있었다. 주민등록 재등록, 거주불명 등록 신고서였다. 해당 신고서는 성명, 주민번호, 세대주와의 관계 등 신고인의 신상정보가 검게 지워져 있었다. 다만 세대주는 한 대표로 돼있다.

한씨는 전북 순창으로 주소 이전까지 하면서 떼어본 인감대장을 통해 자신의 인감을 변경한 사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1년 5월25일 서면 신고를 통해 한씨의 인감 변경 신고를 한 사람은 김○○씨. 한씨의 형수, 즉 한 대표의 아내였다.

당사자가 아닌 대리인이 인감을 변경할 경우 그 절차는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다. 일반적으로 복역이나 징집 등 대통령령이 정한 사유를 제외하고는 본인이 직접 변경 신고를 하도록 돼있다. 

대리인이 인감을 변경하려면 서면신고용 인감 변경 신고서, 사유 입증 서류, 보증인 1명의 인감이 필요하다. 이때 보증인은 대리인과 동일한 사람이면 안 된다.

허무맹랑한 이야기?
아버지도 안 믿어줘

특히 수감자의 인감을 대리인이 변경하기 위해서는 기관의 직인이 찍힌 수감증명서는 물론 서면신고서 여백에 수감자 본인의 무인 날인과 교도관 서명이 있어야 한다. 한씨는 “내 인감을 바꾸기 위해 아내에게 수감증명서를 떼오라고 한 것 같다”며 “수감돼있는 동안 인감이 바뀌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무인 날인을 한 적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이한 점은 5월20일 작성된 한씨의 주민등록 재등록 신고서에 5월25일 김씨가 변경한 인감도장이 사용됐다는 점이다. 

한씨는 “양 변호사가 전입신고와 관련해 서신을 보낸 2011년 5월20일은 금요일이다. 수감자는 서신을 바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그 다음 주 월요일에야 내용을 파악했다. 그때서야 전입신고에 대해서 확인했을 뿐 주민등록 재등록은 물론 인감 관련 내용은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김씨는 왜 한씨의 인감을 바꿨을까. 

특허청에 따르면 특허 양도 절차를 진행할 때는 권리이전 등록신청서와 양도인의 인감 날인이 된 양도계약서가 필요하다. 여기에 발급일로부터 6개월 이내의 인감증명서를 준비해야 한다.

실제 2011년 6월경 한씨가 권리를 가지고 있던 다수의 특허권과 디자인권이 뉴보텍으로 ‘권리의 전부 이전 등록’된 사실이 확인됐다. 

한씨가 2005년 12월23일 출원한 ‘다관절 자유곡관을 구비한 오수받이 장치’의 권리가 2011년 6월23일 뉴보텍으로 양도된 식이다. 이렇듯 특허권 4개, 디자인권 5개 등 확인된 것만 총 9개 물품에 대한 권리가 2011년 6~7월 사이에 뉴보텍으로 이전됐다. 같은 해 9월에 그는 거주불명 등록자가 됐다.

한씨는 2015년 9월30일과 지난 2월13일 특허권 권리 변경에 대해 뉴보텍의 소명을 요구하는 최고서를 두 차례에 걸쳐 발송했다. 

그는 “특허권의 권리 이전과 관련해 양도 또는 사용에 대한 의사 표시를 한 사실이 없다”며 “어떤 사유로 권리가 이전됐고 그 과정서 필요했을 인감증명과 그 발급자, 발급 경위, 발급에 따른 위임사항 등에 대해 10일 이내에 소명해달라”고 뉴보텍에 요구했다. 

한씨에 따르면 뉴보텍은 2015년 9월에 보낸 최고서에 어떤 답변도 하지 않았고, 2월에 보낸 최고서는 아예 ‘수취거절’을 한 상태다.

내용증명 보내도
전혀 답변 안 해

한씨는 “다른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들으면 다 3류 막장드라마라고 한다. 심지어는 아버지조차 내 이야기를 믿어주지 않아 이 많은 자료를 모았다”며 서류뭉치를 들어 보였다.

그는 “4년 수감생활을 하고 나왔더니 고향(전북 순창)에선 천하의 사기꾼, 아내에게는 바람피는 난봉꾼이 돼있었다”며 “내 명예, 권리, 재산 등 형에게 빼앗긴 모든 것을 되찾아 딸들에게 떳떳한 아빠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뉴보텍 측 입장은?
“동생은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

-한거희 뉴보텍 대표가 한승희 전 뉴보텍 대표의 아내(정○○씨)에게 수감증명서를 요청한 이유는?
▲요청한 사실이 없다.

-2011년 6월 한승희 전 대표 앞으로 돼있던 특허권이 뉴보텍으로 권리 양도된 이유는?
▲당초 한 전 대표가 권리자로 돼있던 특허권은 뉴보텍 연구 인력의 노력과 비용으로 발명했다. 특허출원을 하면서 대표이사였던 한 전 대표 개인 명의를 사용한 것에 불과할 정도로 특허권리 등은 뉴보텍에 있다. 한 전 대표에게 어떤 실질권리가 있던 것도 아니다.

개발, 출원, 유지에 필요한 모든 비용 역시 뉴보텍이 부담해 왔다. 한 전 대표가 뉴보텍에 100억원 상당의 손해를 입히고 장기간 수용생활을 하다 보니 회사 측이 특허권 행사 및 유지를 위한 비용 납부 등에 어려움이 있었다.

-김○○씨(한거희 대표 아내)가 한승희 전 대표의 인감도장을 바꾼 이유는?
▲2011년 5~6월경 정재원‧한거희 대표이사, 우석배 부사장 등이 한 전 대표가 수용돼있던 구치소를 방문 면회해 한 전 대표 명의로 형식적으로 등록돼 있던 특허권과 디자인권을 뉴보텍으로 이전 등록의 필요성과 협조를 구했다.

당시 한 전 대표는 특허권을 이전 등록하는 데 동의했고 이에 필요한 서류작성, 발급 권한 등을 모두 포괄적으로 위임하면서 수감증명서 발급도 동의해줬다. 또 인감을 어디에 뒀는지 알 수 없다고 해 교부받은 수감증명서를 통해 인감변경 후 정당하게 특허권 등록 명의를 바꿨다.

또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에서 진행된 재산 명시 사건에서 한 전 대표가 작성해 제출한 재산목록에도 특허권과 디자인권 등 자기 재산이 없다고 한 사실이 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한 전 대표는 2012년 증권거래법위반, 특정경제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 특정경제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횡령), 조세범처벌법위반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한 사람으로 뉴보텍에 큰 손해를 끼쳤다.

뉴보텍이 민사 청구를 해 확정된 서울중앙지방법원 손해배상 지급명령 결정문에 따르면 한 전 대표는 2018년 3월8일 현재 241억원의 채무금액을 가지고 있다. 한 전 대표는 이를 당사에 변제하지 않고 있으며 연락 또한 두절돼 뉴보텍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고 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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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단독] ‘2조 물먹은’ 한양 수상한 계열사와 의문의 돈거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광주 노른자위 땅을 개발하는 사업이 건설사 간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총사업비 2조여원의 초대형 프로젝트가 양측이 제기한 고소·고발로 표류하는 모양새다. 갈등의 본질은 사업을 좌지우지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의 최대주주 지위가 누구에게 있는지다. 최근 지분확보를 위한 소송 과정서 의문의 돈거래가 포착됐다. 2020년 7월1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도시계획시설서 도시공원으로 지정해놓은 개인 소유의 땅에 20년간 공원 조성을 하지 않을 경우 땅 주민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도시공원서 해제하는 제도인 ‘도시공원 일몰제’가 시행됐다. 도시공원 일몰제의 도입으로 민간공원 특례사업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민관 합작 윈윈 사업 민간공원 특례사업은 민간에 사업시행권을 주고 공원을 조성해 지자체에 기부채납하도록 하는 제도다. 민간 사업시행자는 공원부지 30% 범위서 아파트 건설 등 비공원사업을 진행해 수익을 챙길 수 있다. 정부나 지자체는 민간 자본으로 공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간 사업시행자는 주택 공급 사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서로 이득 볼 수 있는 구조다. 현재 전국 각지서 진행하고 있는 민간공원 특례사업 중 ‘중앙공원 1지구 민간공원 특례사업’의 규모가 가장 크다. 광주시 서구 금호동과 화정동, 풍암동 일대 243만5027㎡에 공원시설과 비공원시설을 건축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비공원시설 부지에는 지하 3층~지상 28층, 39개동 총 2772세대 규모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총사업비가 2조2000억원에 달한다. 2020년 1월 사업시행사인 특수목적법인(SPC) 빛고을중앙공원개발(이하 빛고을)이 설립되면서 추진되기 시작한 사업은 최근 시행사 지위와 시공권 등을 두고 고소·고발이 난무하고 있다. SPC 설립 시점부터 컨소시엄에 참여한 한양과 이후 시공자로 들어온 롯데건설, 지분 다툼을 벌이고 있는 우빈산업, 케이앤지스틸 등이 갈등의 주체다. SPC 빛고을 설립 초기 한양이 30%로 최대주주, 우빈산업(25%), 케이앤지스틸(24%), 파크엠(21%) 등이 주주로 참여했다. 한양이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의 SPC 빛고을 참여를 위한 초기자본 49억원을 댔다. 한양이 우빈산업에 49억원을 빌려주고 우빈산업이 다시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대여해 지분을 분배했다. 이때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콜옵션’ 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콜옵션은 특정한 기초자산을 만기일이나 만기일 이전에 미리 정한 행사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다시 말해 우빈산업은 언제든지 원할 때 케이앤지스틸의 지분을 회수할 수 있는 조건을 걸어둔 것이다. ‘초대형’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이면 한양-케이앤지스틸 모종의 관계 의혹 SPC 빛고을 주주구성에 변화가 생긴 시점은 컨소시엄 구성 당시 한양이 맡기로 한 시공권이 롯데건설로 넘어가면서부터다.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의 지분 24%를 위임받아 주주권을 행사해 롯데건설과 중앙공원 1지구 아파트 신축 도급 약정을 체결했다. 이 과정서 30% 지분의 한양은 배제됐다. 롯데건설을 시공자로 선정할 당시 우빈산업에 지분을 위임했던 케이앤지스틸의 태도가 변한 시기는 2022년 5월경으로 추정된다. SPC 빛고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25억3000만원(대여금 24억원+이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빌린 돈을 갚았으니 24% 지분만큼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우빈산업은 케이앤지스틸에 24억원을 빌려주면서 맺었던 콜옵션을 행사하고 49%의 지분을 확보해 SPC 빛고을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우빈산업 내부 사정이 변하면서 한 차례 더 지분구조에 변화가 생겼다. 우빈산업은 대출금 100억원에 대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부도를 내면서 지급보증 섰던 롯데건설에 보유지분 25%를 넘겼다. 지분양도는 롯데건설이 근질권(담보물에 대한 권리)을 행사해 채무를 대신 갚아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우빈산업이 빠진 자리에 롯데건설이 들어오면서 현재 기준 빛고을 SPC 지분구조는 한양 30%, 롯데건설 29.5%, ㈜파크엠 21%, 허브자산운용사 19.5%로 재편된 상태다. 허브자산운용사는 롯데건설로부터 지분을 일부 양도받은 것으로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는 사실상 롯데건설인 셈이다. 나뉜 지분 콜옵션으로? 사업시행권과 시공권을 두고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이 궤를 같이 하면서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쟁점은 우빈산업과 케이앤지스틸이 가진 지분이 최종적으로 누구의 소유냐는 것이다. 두 회사의 지분이 어느 쪽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바뀔 수 있다. 케이앤지스틸은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을 갚았으니 24%에 대한 주주권이 자사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양은 SPC 빛고을 설립 과정서 우빈산업에 49억원의 출자금을 대여하면서 맺은 특별약정을 내세웠다. 해당 약정에 한양이 중앙공원 1지구 사업의 비공원시설 시공권을 전부 갖는데 우빈산업이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항목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우빈산업이 주도해 롯데건설로 시공사를 바꾼 것은 특별약정에 어긋난다는 설명이다. 광주지방법원은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이 각각 우빈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서 모두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주주권 확인 소송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우리가 SPC 주식을 실제로 소유한 주주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한양 관계자도 “1심 법원은 우빈산업이 한양에게 490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보유 주식 25% 전량을 양도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말했다. 반면 롯데건설은 소송 판결 한 달 전, 우빈산업의 지분을 인수해 최대주주(49%)가 됐다고 설명했다. 우빈산업이 한양에 양도할 주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과정서 한양은 우빈산업의 ‘고의 부도’를 의심하고 있다. 한양은 1심 법원 판결을 근거로 자사가 지분 55%(한양 30%+우빈산업 25%)의 SPC 빛고을 최대주주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대법원서 한양에 ‘시공권이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으면서 시공자 지위는 잃게 됐다. 소송 이겨도 지위 잃었다 최근 SPC 빛고을 지분 갈등서 케이앤지스틸의 역할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케이앤지스틸은 상하수도 설비공사 업체로 2003년에 설립됐다. SPC 빛고을에 우빈산업과 함께 참여했다가 현재는 빠진 상태다.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전 대표가 우빈산업과 친분이 있어서 (SPC 빛고을에)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 사태서 롯데건설과 우빈산업은 이른바 ‘비한양파’로 묶여있다. 두 업체의 지분 이동도 비교적 명확히 드러나 있는 상황이다. 반면 케이앤지스틸과 한양은 두 업체 모두 우빈산업과 소송을 진행하면서도 서로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적(우빈산업)이 같을 뿐 특별히 관계가 있는 업체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양의 모기업인 보성그룹 계열사에 속한 ‘앤유’라는 업체가 케이앤지스틸에 2022년 4월, 2억원을 빌려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앤유는 이기승 보성그룹 회장의 동생인 이점식씨가 지분 83.6%를 가지고 있는 친족회사다. 전기 조명장치 제조업체로 2007년에 설립됐다. 2022년 기준 매출은 28억2900만원, 영업이익은 3억300만원으로 확인된다. 한양과의 거래를 통해 27억79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앤유는 케이지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주는 과정서 1주일짜리 주식근질권을 설정했다.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이 2억원을 갚지 못하면서 케이앤지스틸의 주식이 전부 앤유로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 1주일 뒤 케이앤지스틸의 대표이사를 비롯해 사내이사 3명 등 4명이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케이앤지스틸 수뇌부가 물갈이된 것이다. 당시 케이앤지스틸의 채무가 수십억원에 이를 정도로 적자가 누적된 상태였다고 해도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배권을 넘겨준 것을 두고 석연찮은 의문이 일었다. 1주일이라는 짧은 주식 근질권 설정도 의문으로 떠올랐다. 보성그룹에 기생하는 ‘앤유’ 푼돈 주고 1주 만 회사 꿀꺽? 더 흥미로운 대목은 같은 해 5월 케이앤지스틸이 우빈산업에 주금 대여금 25억3000만원을 송금한 뒤 주주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는 의혹이 동시에 불거진 점이다. 다시 말해 2억원을 갚지 못해 회사의 지분 100%를 앤유에 넘겨주고 한 달 만에 20억원이 넘는 돈을 융통해 SPC 빛고을 지분을 확보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여기에 우빈산업을 상대로 한 주주권 확인 소송 등에 김앤장을 변호인으로 선임하면서 수임료에 대한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케이앤지스틸이 지분확보를 위해 사용한 자금 출처가 한양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양 입장서 케이앤지스틸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확보하면 54%로 SPC 빛고을의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법원 판결로 시공자 지위는 상실했지만 롯데건설에 넘어가 있는 시공권을 흔들 수 있는 상황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분 갈등 구조가 롯데건설과 우빈산업, 한양과 케이앤지스틸로 정리되는 셈이다. 하지만 한양과 케이앤지스틸 모두 두 업체 간 모종의 관계 의혹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한양 관계자는 “앤유라는 계열사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앤유서 케이앤지스틸에 2억원을 빌려줬다거나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우빈산업서 (1심)소송에 져서 계속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듯하다. 대응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보다 광주시가 우빈산업과 결탁해 여러 가지로 유리하게 상황을 봐주고 있다고 판단해 광주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광주시는 사업시행자이자 감독관청으로서 해야 할 일이 참 많은데 그런 일을 하지 않아 공모 제도가 다 무너졌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광주시의 행정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석연찮은 자금 출처 케이앤지스틸 관계자는 한양이 주금 대여금을 대줬다는 의혹에 대해 “우빈산업서 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주주가 들어와 투자가 이뤄지면서 주금 대여금을 갚은 것이다. 우빈산업에서는 (우리가)한양의 위장계열사 아니냐, 대표이사 선임 과정이 의심스럽다, 자금 출처가 어디냐 같은 의혹을 제기하는데 그건 주주권 확인 소송서 져서 그러는 것이다. 한양이랑 우리랑은 큰 관계가 없는데 자꾸 엮어서 흠집을 내려 한다”고 주장했다. 2022년 4월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 케이앤지스틸 대표로 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 사업이 잘 마무리되면 우리 회사에 300억원 정도의 수익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행이익을 1100억원으로 계산했을 때 우리 회사 지분이 24% 정도니까 그렇게 계산한 것이다. 수익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회사를 맡게 됐고, 새로운 주주들도 그 사업성을 보고 투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