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VS 안철수’ 서울시장 빅매치 관전포인트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2.26 10:44:58
  • 호수 11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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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으로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안철수 전 대표가 서울시장 출마를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3선 도전을 시사, 그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경선을 넘으면 두 사람의 빅매치가 성사된다. 무려 7년 만의 조우다. <일요시사>는 안 전 대표 출마와 박 시장의 경선 통과 가능성을 살펴봤다.
 

서울시장 자리를 건 여야의 한판 승부는 지방선거의 꽃으로 불린다. 역대 지방선거만 살펴봐도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다. 인구 1000만명인 서울시정을 살피는 자리라는 점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관심이다. 

서울시장은 ‘소통령’이라 불리며 그만한 권한과 위상을 가진다. 정치적으로는 차기 대권에 가장 근접해 있는 자리다. 이 때문에 대권에 꿈이 있는 정치인이라면 한번쯤은 탐내는 자리기도 하다.

안철수 출격
장고 들어가

2선 후퇴를 선언한 바미당 안 전 대표가 서울시장 출마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당이 요구하면 무슨 역할이든 하겠다”라며 원론적 입장을 표하고 있지만 출마 여부에 대해선 숙고 중에 있다고 한다.

바미당 측 관계자는 “안 전 대표가 출마한다면 서울시장 내지 부산시장일 것”이라며 “두 곳 모두 현재 여당 기세가 높은데, 기왕 힘든 게임이라면 서울시장 쪽을 택하지 않겠나”라고 조심스레 점쳤다.


또 다른 바미당 측 관계자는 “여러 가능성이 열려있다”면서도 “당내에서는(안 전 대표가) 서울시장으로 나서주길 바라는 사람이 많다”고 귀띔했다.

실제 바미당 내에서는 안 대표 스스로 서울시장 출마를 결정해야 한다면서도 그의 출마를 은근히 바라는 눈치다. 

이태규 사무총장은 지난 20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당에서 아직 결정한 바는 없지만 본인의 생각과 잘 맞아떨어져야 하지 않겠나”면서도 “내 개인적으로는(서울시장에) 나가는 것이(당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태경 최고위원도 같은날 “안 전 대표는 어디든 나올 자세가 돼있다”면서도 “보궐선거에 나갈 수도 있다는 안도 있다. 그러나 그건 극소수 안이고, 다수 안으로 1순위는 서울시장, 2순위는 부산시장 이런 식으로 가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이어 “안 전 대표는 서울시장에 반드시 출마해야 한다. 당을 살리려면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이기 때문”이라며 “유승민 대표도 서울시장 히든카드 정도로 생각한다. 대구시장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사실 박원순-안철수 작전이 베스트”라고 언급했다.

전국적으로 봤을 때 바미당은 지방선거에 낼 만한 카드가 풍족하지 않다. 이제 갓 세상에 나온 신생 정당이 가진 인재풀은 기존 정당들에 비해 그 폭과 깊이서 밀릴 수밖에 없다. 현 상황서 이름값 있는 인재들은 당선 가능성이 높은 민주당-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을 향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바미당은 이번 지방선거서 사실상 사활을 걸어야 할 만큼 중대 기로에 서있다. 지방선거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향후 정국서 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미당은 기존 국민의당-바른정당서 각자 만들고 키워왔던 인재풀을 핵심 지역에 투입해 최대의 효과를 노리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장은 상징성이 있는 자리이다. 만약 바미당이 서울시장직을 차지하는 데 성공한다면 이번 지방선거 최대 돌풍으로 떠오를만하다. 여세를 몰아 2020년으로 예정된 21대 총선까지 바람을 이어갈 수 있는 교두보가 되는 셈이다. 
 

캐스팅보터가 아닌 민주당-한국당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정당으로 거듭나는 일도 꿈은 아니다. 바미당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카드를 서울시장 선거에 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안 전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서 바미당이 꺼내들 수 있는 최선의 카드다. 안 전 대표가 정치권에 입문해 ‘안철수 돌풍’을 일으킨 때도 지난 2011년 서울시장 선거였다. 당시 후보군으로 거론됐던 안 전 대표는 범야권 후보였던 박 시장과 단일화를 선언하며 한발 물러났다.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지지율을 보였던 안 전 대표 입장에선 큰 양보였다. 당시 박 시장의 지지율은 5%였다. 단일화로 힘을 받은 박 시장은 본선서 50%를 넘기며 압승했다.

안 전 대표 입장에서는 서울시장 자리를 탐낼만한 이유가 있다. 꿈꿔왔던 대권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차기인 제20대 대선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모두 2022년에 열린다. 그 사이 서울시장으로서 문재인 대통령과 대립 구도를 형성,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전략이 가능하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서울시장 연임으로 방향을 틀수도 있다. 선택지가 많아지는 점은 정치인 입장서 결코 나쁘지 않다.

1순위 서울
2순위 부산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만은 않다. SBS가 ‘칸타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1일부터 14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시장 후보 선호도서 박 시장은 30.8%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10.4%, 황교안 전 총리 9%, 안 전 대표 8.2%, 민주당 박영선 의원 7.5% 순으로 나타났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아무리 선거가 바람이라지만, 20%포인트 이상 나는 차이를 뒤집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현 상황서 안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는 도박에 가깝다. 

더욱이 바미당의 미래, 자신의 정치적 생명까지 고려해야해 부담감이 크다. 정치권 안팎에선 안 전 대표가 이번에도 패배할 경우 ‘낙선 정치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시 재기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안 전 대표의 숙고가 길어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안 전 대표 측은 최근 “안 전 대표가 통합 과정을 이끌어온 만큼 서울시장 출마 혹은 선거대책위원장 등 이번 지방선거서 무엇이 됐든 분명히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 박 시장의 출마는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다. 지난 1월 복수와의 인터뷰서 박 시장은 “결심을 굳혀가고 있다”며 은근히 속내를 드러냈다. 설 연휴를 앞둔 지난 14일에는 서울 중랑구에 위치한 전통시장 2곳, 장애인종합복지관 등을 찾아 민심을 점검했다.


박 시장이 3선 도전을 선언할 경우 치열한 당내 경선을 뚫어야 한다. 민주당에 복당한 정봉주 전 의원이 최근 서울시장 도전을 선언함으로 인해 민주당 내 서울시장 후보군은 박 시장을 포함해 6명으로 늘었다.

정 전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SNS를 통해 “서울을 공정하고 활기차게 바꿀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것으로 정치 복귀의 명분을 찾았다”며 “공식 출마 선언은 3월 초에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안, 당 미래 짊어지고 출마?
지금은 밀리지만…안풍 변수

정 전 의원에 앞서 우상호·박영선·민병두·전현희 의원이 서울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우 의원은 지난 1월 민주당 인사 중 처음으로 서울시장 경선 출마를 선언하며 “문재인정부의 성공을 도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 의원은 평창과 재래시장 등을 다니며 출마를 준비 중이다. 


민 의원은 지난 1월 자신의 싱크탱크인 ‘미래전략 연구소’ 창립 심포지엄서 “혁신의 기관차가 되겠다”며 사실상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전 의원은 지난 4일 “서울 강남의 지지를 받는 유일한 민주당 후보이자 강남권서 가장 많은 표를 가져올 수 있는 내가 서울시장 선거서 민주당의 압승을 보여주겠다”며 출마 선언을 했다.
 

본선보다 힘든 경선이 예상되기 때문일까.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군은 전방위 네거티브전을 벌이며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행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종 여론조사에서 가장 앞서 있는 박 시장에 대한 공세가 주를 이룬다.

출마를 선언한 날 자신이 두 번이나 선거를 도왔던 박 시장에게 날선 비판을 가했던 우 의원은 서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가격 급등과 관련해 박 시장 책임론을 제기했다.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는 박 시장 3선 도전에 대해 “아무래도 부정적인 여론이 많다”며 “다음 정치세대를 키우는 데 새로운 목표를 두시는 게 더 좋지 않겠냐 하는 여론이 있다”고 각을 세웠다.

박 의원도 박 시장을 겨냥했다. 미세먼지 감소를 위해 대중교통 무료정책을 펼치고 있는 박 시장을 겨냥해 “서울시의 대중교통 무료정책을 더 이상 해선 안 되고 중단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시장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도 “정부와 서울시의 엇박자로 집값을 잡는 데 굉장한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들었다”며 정면 비판했다.

민 의원의 공세는 다른 후보군에 비해 한층 매섭다. 복수의 언론과 인터뷰서 박 시장의 시정에 대해 “박 시장의 상상력은 이미 멈췄다” “서울시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아이디어를 가진 새 인물이 필요하다” “박 시장은 뚜렷이 내세울 실적이 없어 조바심을 낸다” 등의 저평가를 내놨다. 

3선 도전
기정사실

비판뿐 아니라 박 시장에게 정책 대결을 제안하는 모습도 보였다. 박 시장과 SNS상에서 일자리와 안전, 강남 집값 등 서울시의 주요 현안을 놓고 정책으로 겨루겠다는 각오다. 

그는 “민병두의 정책은 120% 준비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7년간 서울시장을 맡은 박 시장과 정책으로 정면승부를 하자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전 의원은 출마를 선언한 자리서 “서울시장 자리가 대권으로 가는 디딤돌이나 징검다리로 생각해선 안 된다”며 “박 시장이 만약 대권 도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당장 (대권을)도전하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정봉주 전 의원은 박 시장의 7년 서울시정을 꼬집었다. 2월 초 여의도 한 식당서 기자들과 만나 “박원순 7년을 보자.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다. 초기엔 워낙 ‘난장판’이라 정리하는 데 3∼4년이 걸렸다. 하지만 지금 서울시는 민생국장급이 할 만한 일을 서울시 전체가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쟁자들의 비판에 박 시장은 의연하게 대응하고 있다. “비판은 쉽지만 구체적 해결방안을 내놓고 실천하는 일은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현 상황에서는 박 시장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변수는 존재한다. 바로 민주당 경선 룰이다. 지방선거까지 4개월이 채 남지 않은 상황서 ‘권리당원 50%, 국민 50%’라는 비율 외에는 합의된 룰이 없다. 

민주당은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을 전후로 경선 룰 논의에 속도를 낸다는 입장이다.

박, 네거티브에도 끄떡없어
“독주 막자” 반박연합 슬슬∼

‘컷오프’ ‘결선투표’가 경선 룰 논의의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2016년 8월27일 전당대회 전 4명의 당대표 후보 중 1명을 떨어뜨리는 컷오프를 실시한 바 있다. 

이번 지방선거서도 이와 비슷한 형식을 따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6명의 후보군을 3명 내지 4명까지 추려내야 경선 집중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지난 2016년 모델을 그대로 적용할지, 여론조사 방식을 채택할 지는 미지수다. 

2016년의 경우 국회의원과 지역위원장, 지자체장 등으로 구성된 350명의 제한된 선거인단 투표로 컷오프를 결정했다. 

제한된 선거인단 투표로 결정할 경우 상대적으로 당내 세가 약한 박 시장이 불리한 반면, 여론조사 방식을 선택할 경우 현역 프리미엄을 등에 엎은 박 시장이 유리하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어떤 방식이든 박 시장이 컷오프 될 확률은 희박하다”며 “나머지 두 개 내지는 세 개 자리를 놓고 후보군들이 각축을 벌이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결선투표’ 도입 여부도 쟁점이다. 결선투표는 1위 득표율이 과반(50%)에 미달할 경우 1위와 2위 후보가 2차 투표를 실시하는 제도다. 박 시장을 제외한 나머지 후보군이 도입을 적극 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원순 독주’를 막기 위해 ‘반박(원순)연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만약 결선투표가 도입돼 박 시장이 과반에 미달하면 ‘박원순 대 반박연합’ 구도가 완성된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결선투표가 도입되지 않으면 현역 의원들 중 상당수가 경선을 포기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현행 민주당 당규도 박 시장 편에 서있다. 박원순·정봉주를 제외한 현역 의원들은 서울시장에 출마할 경우 10%의 페널티를 받게 된다. 
 

민주당은 지난 2015년 9월 ‘임기를 4분의 3 이상 마치지 않고 다른 공직에 출마하는 선출직에 대해서는 최고위원회가 정한 기준에 따라 심사결과의 10%를 감산한다’는 규정을 신설한 바 있다. 

2016년 4월13일 20대 총선을 치른 우상호·박영선·민병두·전현희 의원의 임기는 아직 4분의 3 이상을 마치지 못해 페널티 대상이다. 후보군들 사이서 “현역 지자체장에게 절대 유리한 당규”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후보 난립
그래도 유리

민주당 입장에선 행복한 고민이다. 여러모로 유리한 고지를 점한 상태서 높은 인지도와 강한 내공을 지닌 소위 ‘스타성’ 있는 정치인들이 경선 열기를 달구고 있기 때문이다. 후보 층도 두터워 유권자들의 관심을 받기 충분하다. 

여러모로 야권보다 최소한 한 발 이상 앞서 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과연 여러 변수를 뚫고 박원순 대 안철수의 대결이 성사될 수 있을 것인가. 현 상황이 6월까지 이어진다면 두 사람의 대결은 시간문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돌고 돌아 결국 오세훈?

6·13 지방선거가 4개월도 채 남지 않았음에도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은 좀처럼 서울시장 후보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당 지도부가 전직 시장·도지사 등 소위 ‘올드보이 차출’에 나서는 모습이다. 

대구·경북을 제외하곤 ‘인물난’에 시달리는 한국당의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올드보이 차출설은 홍준표 대표가 군불을 지폈다. 

설 연휴 직전에 가진 기자간담회서 홍 대표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 차출설에 대해 “원 오브 뎀(여러 명 중 한 명)”이라며 “당의 제일 중요한 자산이고 당을 이끌어나갈 지도자감”이라고 평가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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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