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 세태> 노래방 꽃뱀 주의보 천태만상

도우미와 하룻밤 다음날 피의자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최근 성폭력 사건이 잇따라 불거지고 있다. 가정, 학교, 직장서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등 피해를 당한 여성들의 호소가 이어지면서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런 변화에 찬물을 끼얹는 게 이른바 꽃뱀이라 불리는 이들이다. <일요시사>가 꽃뱀 관련 사건들을 추적해봤다.
 

서지현 통영지청 검사가 성추행 피해 사실을 폭로하면서 파장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가해자로 안태근 법무부 소속 검사가 지목됐고 사건 장소에 법무부장관이 동석한 사실도 알려졌다. 검사를 상대로 한 성추행 사건이 발생하자 여성들은 더 이상의 안전지대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검사까지?
성폭력 만연

그럼에도 과거 숨기기 급급했던 성폭력 범죄는 최근 SNS 발달 등으로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 경험을 공론화 하는 데 예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저하지 않는 모양새다. 

성폭력 범죄를 대하는 사회적 분위기 또한 피해자에 공감하고 나아가 예방과 엄격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방향으로 서서히 변하고 있다.

문유석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는 지난달 30일 자신의 SNS에 서 검사 관련 글을 올렸다. 그는 “딸들을 키우는 아빠로서 서지현 검사님이 겪은 일들을 읽으며 분노와 눈물을 참기 어려웠다. 이따위 세상에 나아가야 할 딸들을 보며 가슴이 무너진다”고 글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거기서 그쳐서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며 “내 앞에서 (성폭력 사건이) 벌어졌을 때 절대로 방관하지 않고 나부터 먼저 나서서 막겠다는 #Me First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제안했다.

문제는 성폭력 범죄 상황을 꾸며내거나 악용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변화를 더디게 만든다는 점이다. 

최근 합의금이나 명예훼손을 목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며 거짓 신고를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6년 무고죄 발생 건수는 모두 3617건으로 2012년 2734건보다 1000여건 가까이 늘어났다. 전체 무고죄의 40%가량이 성범죄 관련이다.

지난해 8월 학생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던 전북 무안의 한 중학교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는 직위해제 상태로 교육청 산하 학생인권교육센터서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처음 신고한 학생이 거짓말이라고 털어 놓으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학부모까지 나서 교사를 처벌하지 말라고 탄원서를 냈지만 인권센터는 성희롱과 인권 침해가 있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성추행 교사로 낙인찍힌 그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현행법상 무고죄는 최대 법정형 징역 10년, 벌금 1500만원 수준의 처벌을 받는 중범죄지만 초범의 경우 집행유예나 가벼운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허위 신고를 당한 사람은 성추행범, 성폭행범 등으로 알려져서 사회적 타살 위기에 처한다. 2016년 10월 한 SNS 이용자는 시인 박진성씨가 2015년 미성년자인 자신을 성희롱했다는 글을 올렸다. 당시 문단 내 성폭력 문제가 불거지고 있던 때라 해당 글은 빠르게 확산됐다.

성폭력 사건 공론화↑
사회적 인식 변화 중

최초로 문제가 제기된 후 1년 가까이 지속된 사건은 지난해 10월 검찰이 박씨를 무혐의로 불기소 처리하면서 마무리됐다. 박씨는 자신을 허위로 고소한 두 여성을 무고죄로 고소했는데, 각각 기소유예와 벌금 처분을 받았다. 

“사회적 생명이 끊겼다”고 토로한 박씨는 자살을 시도했으나 가족에게 발견돼 의식을 회복했다.

지난해 무고로 기소된 2105명 가운데 109명만 구속됐고 나머지 95%는 불구속 기소되거나 약식 명령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무고죄에 대한 가벼운 처벌이 ‘아님 말고’ 식의 고소를 양산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 피해를 당하지 않았지만 금전 등의 이유로 일단 신고하고 보자는 식의 행위가 늘고 있는 것.

인천지방검찰청은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형사 사법질서를 왜곡해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고 수사력 낭비와 재판을 방해한 거짓말 사범에 대한 집중 단속을 실시했다. 이 과정서 40대 노래방 도우미 A씨가 합의금을 받기 위해 손님에게 성폭행 당했다고 허위 신고한 사례가 적발됐다.

A씨는 생활비 등을 마련하기 위해 손님으로 만난 남성 B씨에게 접근해 성관계를 가진 후 성폭행을 당했다고 허위로 신고했다. 

A씨와 B씨는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지만, 이후 A씨는 전화와 문자 등으로 협박해 합의금 명목으로 2000만원을 요구했다. B씨는 1000만원을 건넸고, A씨는 남은 1000만원을 더 받기 위해 경찰에 성폭행을 당했다고 거짓으로 신고했다가 범행 사실이 들통 났다.

지난 2013년 대전에서는 손님과 두 차례 성관계를 가진 후 합의금을 뜯어내기 위해 협박한 노래방 도우미가 실형을 선고 받았다. 당시 노래방 도우미는 성관계 이후 “네가 나를 강간했지? 네 가정부터 모든 것이 파탄난다”며 돈을 요구해 1150만원을 챙겼다. 

그러다 추가로 돈을 받아내기 위해 강간당했다는 취지로 고소장을 제출했다가 덜미를 잡혔다.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면서 만난 손님을 상대로 혼인 빙자 사기를 쳐 거액을 뜯어낸 일도 있다. 충북 음성서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던 심모씨는 손님으로 찾아온 이모씨에게 접근해 사채를 갚아주면 같이 살겠다고 속여 1억5000만원을 가로챘다. 피해자는 심씨의 꾐에 빠져 모든 재산을 탕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인과 함께 역할을 분담해 범행 대상에게 돈을 뜯어내는 일도 부지기수다. 

중년 교사들에게 접근해 성관계를 맺고 간통이나 성폭행으로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돈을 뜯은 사기단도 남성 1명과 여성 1명이 공범으로 활동했다. 

최모씨는 2014년 5월 김모씨에게 전남의 한 중학교 교사와 성관계를 맺도록 만들고는 남편 행세하며 협박해 1억1000만원을 뜯어냈다. 이들은 전남 인근 한 고등학교 교감에게도 비슷한 수법으로 1억원을 갈취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무고죄 처벌
초범은 약해

30대 재력가를 유혹한 후 성폭행 당했다며 합의금 명목으로 수천만원을 뜯어내려한 남녀 사기단도 있었다. 바람잡이, 꽃뱀 등으로 역할을 분담한 이들은 피해 남성이 꽃뱀 역할을 맡은 여성을 모텔로 데려가 성관계를 맺으려 하자 경찰에 강간당했다고 주장했다. 

사기단은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서 3000만원에 합의하자고 종용했지만 피해자가 결백을 주장하며 거절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들에게는 징역형이 선고됐다.


초등학교 동창을 상대로 꽃뱀을 붙여 돈을 갈취한 경우도 있었다. 
 

지난 2015년 경기 수원중부경찰서는 고향 친구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꽃뱀 여성을 소개한 후 돈을 뜯은 혐의로 박모씨를 구속했다. 이들은 총책, 꽃뱀 등으로 일을 분담해 범행을 저질렀다. 

박씨 일행은 노래방으로 고향 친구를 불러내 꽃뱀 역할을 맡은 김씨와 단둘이 있게 만든 후 “왜 강간하느냐”고 협박해 1700만원을 뜯은 혐의를 받았다.

지인을 이성과 합석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한 후 성추행을 당한 것처럼 협박해 돈을 가로챈 범행도 발각됐다. 주범이 꽃뱀 역할을 할 여성을 섭외하는 등 전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각각 임무를 부여하는 식이다. 

송년회 등의 장소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주범은 범행 대상과 술을 마시면서 미리 섭외한 꽃뱀 역할 여성들에게 자연스럽게 합석을 권유한다.

이후 노래방으로 유인해 범행 대상에게 만취할 때까지 술을 권한 후 꽃뱀 역할의 여성만 두고 자리를 피하는 수법이다. 일정 시간을 기다리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면 꽃뱀 역할의 여성이 눈물을 흘리는 등 성추행을 당한 것처럼 연기하고, 공범들은 만취한 피해자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추궁하며 협박했다. 

공범들은 꽃뱀 역할의 여성을 귀가 시킨 후 합의금이 필요하다며 돈을 요구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즉석만남을 통해 만난 남성을 술집으로 유인해 바가지를 씌우는 범죄도 기승을 부렸다. 이들은 남성들이 메뉴판을 보지 못하게 하거나 일방적으로 고가의 술을 주문하는 수법으로 돈을 뜯어냈다. 

여성 섭외해
지인까지 농락

예를 들어 한 남자는 맥주 한두 잔을 비우고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난 후 두 곳의 술집서 나온 술값 370만원을 결제해야 했다. 카드 한도가 넘어서면 이른바 ‘어깨’들이 나타나 은행서 돈을 찾아오도록 협박했다.

꽃뱀 여성들은 대부분 인터넷 아르바이트 모집공고를 보고 찾아왔다가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범행에 가담했다. 나이트클럽 등에서 만난 남성과 연락처를 주고받은 뒤 ‘간단하게 맥주나 한 잔 더 하자’는 말로 꼬드겨 술집으로 유인하고 술값 바가지를 씌웠다. 

술집 점주는 여성들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의사나 판사 등은 데려오지 말라고 사전 교육까지 시킨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과거 술집, 나이트클럽 등 유흥가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꽃뱀은 이제 집회 등 생소한 장소까지 그 활동범위를 넓히고 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범행 대상을 물색한 후 노래방 등의 원래 활동 장소로 유인해 돈을 갈취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보수단체의 집회가 활발했던 무렵 그들의 단체채팅방에는 이른바 ‘꽃뱀주의보’가 내려졌다. 집회에 참석한 노인들을 상대로 “술 한 잔 하자”며 접근한 뒤 노래방 등에 데려가 바가지를 씌우는 수법이다. 

피해자들은 이 같은 일을 당했다는 부끄러움에 관련 사실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집회가 열리기 전날 관련 내용을 공지하는 단체채팅방을 통해 만남 장소와 시간을 결정한다. “내일 대한문에서 봐요, 커피 한 잔 해요” 등의 방식이다. 

현장 만남이 성사되면 개인 채팅을 통해 연락처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집회가 열리는 날 실제 만남이 이뤄진다. 보통 팀을 구성해 움직이는 꽃뱀 사기단은 만남 장소서 술판을 벌인다. 피해자가 거나하게 술에 취하면 사기단은 “노래나 부르자”며 노래방으로 이끈다.

합의 하에 했는데
“당했다” 돈 뜯어내

피해자가 자리를 비우면 그 때부터 사기단의 움직임이 빨라진다. 이때 꽃뱀들은 피해자가 두고 간 금반지, 시계 등 물건을 훔치기도 했다. 피해자가 노래방으로 다시 돌아오면 점주는 술값을 요구한다. 술값은 보통 술집서 받는 것보다 2배 이상 비싸다.

모든 일처리가 끝나면 사기단은 단체채팅방과 개인채팅방서 모두 자취를 감춘다. 노인들은 수치심에 피해 사실을 공개하지 못한다. 사기단은 여러 개의 집회 단체채팅방을 드나들며 또 다른 범행대상을 물색한다.
 

노인을 대상으로 한 꽃뱀 범죄는 최근 급증하고 있다. 젊은 재력가, 중년 사업가 등 돈이 많은 사람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던 과거와는 달라진 풍경이다. 혼자 사는 노인이 많아지면서 그들의 외로움을 파고드는 방식으로 수법도 진화 중이다. 

꽃뱀들은 낮 시간대 공원 등에 혼자 앉아있는 노인에게 접근한다. 처음에는 말동무로 시작하지만 상대가 관심을 보이는 등 호감을 나타내면 성매매를 하자고 유인한다. 돈은 10만∼15만원가량 요구한다.

범행 대상이 꽃뱀의 요청에 응하면 집으로 이동한다. 꽃뱀은 먼저 돈을 받고 담배를 사오겠다고 둘러댄 후 그대로 도망간다. 심지어 노인들에게 같이 살자고 접근한 후 급전이 필요하다고 돈을 뜯어낸 후 잠적하는 사례도 있다. 

평소 다른 사람과 별다른 교류가 없던 노인들은 대화를 나누며 외로움을 달래주는 이들에게 선뜻 큰돈을 내어준 것.

2015년에는 충북 보은서 다방을 운영하던 한 여성이 단골 노인들을 대상으로 성관계를 갖고 운영자금 등을 갈취한 사건이 발생했다. 또 피해자들이 경작한 농산물을 비싼 값으로 팔아주겠다며 가로채기도 했다. 

해당 여성은 노인들에게 ‘오빠’라는 호칭을 사용해 환심을 사거나 스킨십을 하면서 자신을 믿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3년에는 치매노인을 꾀어 혼인신고까지 한 뒤 90억원대의 재산을 빼돌리고 이혼한 꽃뱀이 구속돼 놀라움을 안긴 바 있다.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던 80대 노인에게 이모씨는 건강에 도움을 주겠다고 접근했다. 

신뢰를 쌓아가던 이씨는 형제들과 상속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노인에게 도와주겠다고 달콤한 말을 흘린다. 이씨를 철석같이 믿은 노인은 재혼은 물론 재산처분권까지 맡겨 버렸다.

철썩 믿은 노인
전 재산 털려

심지어 “모든 재산을 이씨에게 양도한다”는 내용의 유언장과 양도증서까지 만들도록 했다. 이 과정서 이씨는 노인이 자신을 더욱 믿도록 혼인신고까지 했다. 하지만 이씨는 가로챈 돈을 가지고 동거남 등과 함께 호화롭게 지냈다. 

혼인관계를 지속하면 재산상 손해가 난다는 말로 이혼을 제안해 법적 관계도 정리했다. 그 사이 노인의 모든 재산은 처분됐다. 노인의 자녀들은 미국에 있어 이씨에 대해 이렇다 할 제지를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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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