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먹는’ 토익의 이면

깜깜이 시험에 취준생 허리 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요즘 청년들은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가졌다는 말을 듣는다. 그들은 잠 줄이고 돈 쏟아가며 스펙을 쌓는다. 기업들은 스펙보다는 업무능력이라며 ‘탈 스펙’을 외치지만 취업준비생들은 쉽게 그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토익은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에 해당하는 시험이다. ‘스펙탑’의 시작점으로 불리는 토익의 이면을 <일요시사>가 들여다봤다.
 

기온이 영하 10도를 밑도는 최강 한파가 몰려왔다. 체감온도는 영하 20도에 달한다. 사람들은 갑자기 떨어진 기온에 몸을 움츠리고 있다.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에겐 이번 한파가 더욱 뼈아프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꽁꽁 얼어붙은 취업시장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취준생의 겨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스펙 높은데
취업은 안 돼

지난해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역대 최악 수준으로 떨어졌다. 정부가 일자리 정책을 추진 중이지만 청년들이 느끼는 체감 수준은 아직 낮은 모양새다. 

지난 1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12월 및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층 실업률이 2000년 이래 가장 높은 9.9%로 집계됐다. 2013년 8.0%, 2014년 9.0%, 2015년 9.2%로 해마다 악화되고 있다.

여기에 체감실업률을 나타내는 ‘고용보조지표3’은 22.7%로 전년보다 0.7% 포인트 높아졌다. 체감실업률은 근로시간이 주당 36시간 미만이면서 추가로 취업을 원하는 근로자와 비경제활동인구 중 지난 4주간 구직활동을 했지만 취업이 불가능한 경우를 모두 실업자로 보고 계산한 수치다. 


공식 실업자의 경우 경제활동인구 중 지난 4주간 일자리를 찾았지만 1시간 이상 일하지 못한 사람의 수로 따진다.

반현준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은 “최근 청년 고용상황이 안 좋다”면서도 “11월은 공무원 추가 채용 시험 원서 접수가 있었고 12월은 조사 대상 기간에 지방직 공무원 시험이 있었다. 그래서 20대와 청년층 중심으로 기존 구직단념자 취업준비생이 실업자로 옮겨온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분석했다. 

구직 단념자는 취업의사와 능력이 있음에도 아예 구직에 나서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청년실업률 역대 최악
스펙에 돈쓰는 청춘들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는 취업 장벽에 취준생은 갈팡질팡 감을 못 잡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공공일자리 증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근로시간 단축, 블라인드 채용 등 노동 관련 이슈를 쏟아내고 있지만 취업시장의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하다. 취업절벽에 몰린 취준생은 결국 스펙 시장으로 내몰린다.

스펙은 영어 ‘Specification’서 유래한 말로 2004년 국립국어원 신어 자료집에 수록된 단어다.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서 학력·학점·토익 점수 따위를 합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스펙은 취준생의 무기로 작용한다. 그들은 남들과는 차별화된 스펙을 쌓기 위해 숱한 도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20∼30대에만 겪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채우기 위한 도구로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다.


스펙에 대한 취준생의 압박감은 이미 한계수준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아르바이트포털 ‘알바몬’이 지난 8월 4년제 대학교에 재학 중인 대학생 772명을 대상으로 8월 졸업식을 뜻하는 ‘코스모스 졸업’에 관해 물었다. 그 결과 대학생 10명 중 3명은 코스모스 졸업을 하겠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졸업을 유예해 취업 스펙을 쌓기 위해’라는 답변이 37.9%로 가장 많았다.

너도 나도 스펙 쌓기에 돌입하면서 경쟁이 심화됐다. 과잉 경쟁은 잉여 스펙, 과잉 스펙 등의 문제점을 낳았다. 스펙을 많이 쌓아도 취업을 못하고 백수로 전전하며 빈곤층으로 빠져드는 취준생을 뜻하는 스펙푸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그만큼 요즘 청년층은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가졌다고 평가 받으면서도 취업 문턱에서 좌절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부 기업 등 사회 한편에서는 탈 스펙의 움직임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지만 정착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점수나 자격증 유무 등으로 지원자를 가릴 수 있는 스펙을 배제한 채 직무 능력으로만 직원을 선발하는 건 공공기관은 물론 중견·중소기업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또 일각에서는 스펙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처럼 사회 분위기상 취준생들은 아직 스펙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원하는 단체나 기업에 맞는 역량은 따로 쌓더라도 기본 스펙은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점수 상향 평준화
그래도 토익 시험

그중에서도 토익은 ‘스펙탑’의 가장 아랫부분에 있는 시험이다. 점수가 높든 낮든 취준생이라면 토익 성적표 하나쯤은 갖고 있다는 뜻이다. 예전만 못하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취업시장에서 토익의 위상은 여전히 절대적이다. 

2016년 기준으로 한 해 동안 200만명이 토익 시험을 봤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는 수험생이 매년 60만여명인 것을 감안하면 가히 어마어마한 숫자다.

토익 문제의 출제와 개발을 맡은 미국의 미국교육평가원(ETS)은 지난 2011년 전 세계 토익 응시 인원이 600만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그 해 우리나라의 토익 응시 인원은 210만명으로 전 세계 응시자의 무려 40%를 차지했다. 

만점(990점)을 받은 응시자도 회화 등 실전서 부족함을 드러낸다는 토익무용론이 수년째 불거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서 토익의 독점적 지위는 공고하다.

2015년 채용공고 1000여건 중 94%가 토익 점수를 채용에 활용했고, 25%는 일정 점수 이상을 지원 자격으로 삼았다. 일부 대학은 졸업 조건으로 특정 기준 이상의 토익 점수를 요구한다. 


졸업과 취업에 있어 가장 밀접한 시험인 셈이다. 최근에는 공무원시험에도 토익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국가공무원 7급 영어시험이 자체 시험이 아닌 토익이나 토플, 텝스 등 영어능력검증시험 제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공무원 시험에도
민간·공적 독점

지난해 10월30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사혁신처로부터 받은 국가공무원 7급 응시자 영어성적 제출 현황에 따르면 토익 성적을 낸 응시자가 전체(2만4437명)의 91.2%인 2만2287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7급 공무원 응시자 10명 가운데 9명이 토익으로 영어 성적을 대체한 셈이다.

지난해 7급 응시자는 4만8361명으로 전년 대비 27.5%나 감소했다. 국가공무원 9급 응시자수가 매년 사상 최대 규모를 갱신하는 것과는 대비되는 대목이다. 인사혁신처는 지난해 국가공무원 7급 응시자가 2만명 가까이 줄어든 것이 영어 때문이라고 말했다. 

초기 단계서 일정 점수 이상의 공인 영어 성적을 받지 못한 응시자들이 걸러졌다는 것이다.


국가직 7급 국가검정능력시험 통과 기준 점수는 토익 700점 이상, 텝스 625점 이상, 지텔프 65점 이상(레벨2), 플렉스 625점 이상, 토플 PBT 530점 이상, CBT 197점 이상, IBT 71점 이상이다. 

토익은 다른 시험에 비해 준비 과정이나 방법이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에 응시자들의 선호도가 높다.

그러면서 토익무용론은 토익 독점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구직과 사내 평가 등 민간 영역은 물론 공무원 채용의 공적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국내서 우월적 지위를 노리고 있는 시험이 아예 독점적 지위를 얻어 그에 따른 폐해가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너도 나도 고득점이라 스펙으로서 큰 매력이 없고”(대학생) “오로지 점수만을 위한 시험”(공무원 시험 준비생)인데도 불구하고 매달 혹은 2주에 한 번씩 토익을 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는 것.

한 해 200만명 시험 보는데
정답·배점조차 공개 안 돼

이 과정서 YBM한국토익위원회(이하 토익위원회)의 자의적 운영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토익은 미국 민간재단인 ETS가 출제하고 국내에서는 역시 민간기업인 YBM이 대행을 맡는다. 

토익위원회는 토익 시험 전반을 실제 운영하는 곳이다. 토익 시험이 워낙 광범위한 분야서 이용되고 있기 때문에 정부 관계자 등 공적 인사가 참여한 위원회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지만 토익위원회는 실제로 한 기업의 사내기구로 운영되고 있다.

토익은 응시 횟수나 응시료, 유형, 접수, 성적 발표 등과 관련해 응시자들에게 많은 정보를 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 운영 내용이 응시자들에게 불리한 부분이 많아 불만이 나오고 있지만 독점적 지위를 누리 있는 현 상황서 시험을 아예 외면하긴 힘들다.

토익위원회는 홈페이지 공지 방식을 통해 시행 두 달 전 응시료 인상과 추가 시험에 대해 전달한다. 지난해에는 11월7일 ‘2018년 토익 정기시험 일정’을 발표했다. 

올해(2018년) 토익 정기시험은 총 24회 시행되며, 개인 사정으로 인해 일요일 응시가 어려운 수험생을 위해 1·3·6·7·9·12월에 한 번씩 모두 6회는 토요일에 치르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한 달에 한 번 꼴이던 응시횟수는 매년 꾸준히 늘어 한 달에 두 번 꼴로 늘어났다.

응시료 역시 명확한 설명 없이 통보 형식으로 오르고 있다. 2006년 3만4000원이던 응시료는 2016년 3월21일 4만4500원까지 올랐다. 우리나라 토익 응시료는 30%가량 오른 데 반해 일본은 꾸준히 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2016년 토익 유형을 바꾼 이른바 ‘신토익’ 원서접수 개시일을 불과 1주일 앞두고 기습적으로 응시료 인상을 공지한 것은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당시 토익위원회는 안내문을 통해 “현행 응시료는 2012년 1월 조정된 후 4년간 동일하게 적용돼왔으나 물가 상승과 시험시행 관련 제반 비용 증가로 부득이하게 인상됐다”고 설명했다. 

반면 우리나라와 같은 시기에 신토익을 도입한 일본은 응시료를 인상하지 않았다. 이에 토익위원회 측은 “(응시료는) 시행 국가 상황에 따라 조정하고 있어 인상 시점은 국가마다 상이할 수 있다”며 “국내 응시료는 저렴한 편”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토익 응시료 인상은 고스란히 응시자들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지난 2014년 청년 유니온의 발표에 따르면 4년제 대학생의 평균 토익 응시횟수는 9회에 달한다. 현재 응시료 기준으로 평균 40만500원에 이르는 돈을 토익에 쏟아 부었다는 뜻이다. 

토익위원회가 응시자들의 성적을 분석한 내용을 보면 응시횟수와 성적은 비례했다. 많이 볼수록 높은 점수를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유명 토익 강사들은 ‘문제 중심’의 공부를 권유한다. 모의고사나 실제 시험을 많이 접할수록 유형에 익숙해지면서 고득점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조언한다. 

듣기(LC)와 독해(RC) 각각 100문제로 구성된 토익 시험은 파트별로 유형이 존재한다. 그림을 정확히 묘사한 것을 찾는 유형(파트1), 질문에 대한 답을 고르는 유형(파트2), 문법(파트5), 장문 독해(파트7) 등이다.

신촌이나 강남 등 토익 학원이 즐비한 학원가에 가보면 유명 토익 강사들은 이른바 ‘정답 고르는 법’을 알려준다. 첫 두 단어를 듣고 답을 파악하거나 긴 지문의 경우 어디서 답을 찾아야 하는지 등의 기술이 반복 학습을 통해 수험생들에게 전달된다. 

다시 말해 유형을 파악하고 문제를 많이 풀수록 시험을 정복할 확률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2016년 토익 유형이 바뀌어 신토익이 등장했을 때 시장은 큰 부침을 겪었다. 문제는 한정된 응시횟수 말고도 접수 과정서 수험생들에게 불리한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이전 회차 시험 점수를 확인한 후 다음 회차 도전 여부를 정한다. 하지만 토익의 경우 성적 발표일보다 시험일이 앞서 있다. 예를 들어 346회차 시험의 경우 1월16일에 성적이 발표되는데 347회차 시험은 1월13일에 치러지는 식이다.

그렇다고 점수를 미리 파악할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토익은 정답이 공개되지 않는다. 토익 시험이 끝난 직후 관련 사이트에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문항을 외워온 응시자가 게시글을 올리면 그 아래 정답이 댓글로 달리는 현상이 하루 종일 반복된다. 그리고 반나절 정도 지나면 유명 토익 강사들은 듣기와 독해 문항 200개를 전부 복원해 정답을 공유한다. 시험 다음 날 복원된 해당 회차 시험을 가지고 강의를 하는 강사도 많다.

또 정답을 전부 알았다 해도 각 문항마다 배점이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점수를 산출하는 게 힘들다. 배점에 대한 정보 역시 제대로 알려진 바는 없다. 토익 문제집에 배점표가 기재돼있긴 하지만 비슷한 점수로 환산할 수 있을 뿐 딱 떨어지는 수치는 아니다. 

보통 난이도가 높을수록 상대적으로 정답률이 낮을수록 배점이 높다는 풍문만 있을 뿐이다.

정책상 공개 어려워
수험생이 선택해야

토익위원회는 “시험 문제와 정답은 ETS 정책에 의해 공개하지 않는다”며 “이는 토플, GRE, SAT 등 ETS에서 주관하는 모든 시험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글로벌 정책”이라고 답했다. 

이어 “한 회차의 토익 시행을 위해서 약 8주간의 접수 기간과 성적 발표 약 2주까지 총 10주가 소요된다”며 “국내서 연간 24회의 시험이 시행되고 있어 회차별 접수기간이 서로 겹치게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토익위원회는 수험자의 시험 일정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시행일, 접수 기간, 성적 발표일을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안내하고 있다”며 “응시자는 공개된 연간 일정을 통해 시험 응시 일정을 임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서점도 먹여 살리는 토익’ 방학 때 되면 판매량 급증

방학이 되면 서점가도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방학 동안 부족한 과목을 보완하거나 외국어 공부를 하려는 수요가 증가하면서 관련 책의 판매량이 수직 상승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여름방학 직후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외국어 학습서의 순위가 큰 폭으로 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서점들 다양한 기획행사도

교보문고에서는 토익으로 유명한 출판사의 단어장 순위가 6월 대비 10계단이나 올랐고, 독해(RC) 문제집과 종합서 등도 순위가 급등했다. 

yes24 역시 베스트셀러 30위권 안에 토익 단어장 등 외국어 학습서가 5권이 포함됐다. 방학 시즌에 학습서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온라인 서점들은 다양한 기획 도서행사를 선보이기도 한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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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