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옥중 창당설’ 막전막후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01.02 10:27:39
  • 호수 1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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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 모아 당 만든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2017년에 이어 2018년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국민들의 최대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검찰은 박근혜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의 수사를 조만간 마무리 짓기로 했다. 최근 문재인정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박근혜정부가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 이전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힌 이면 합의 존재를 발표했다. 그 정점에 있는 박 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자연인 신분이 되면 친박 세력을 규합, 당을 창당하려했다는 설이 있어 눈길을 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건을 심리 중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는 지난해 10월13일 직권으로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구속기간 만료일은 그해 10월16일 밤 12시까지였다. 최장 6개월이 늘어난 박 전 대통령의 구속기간은 올해 4월16일 만료다. 기존에 포함되지 않았다가 기소 단계서 추가된 롯데와 SK 관련 뇌물 혐의에 대한 구속영장이었다.

불출석 행보
구치소 칩거

형사소송법 70조에 따르면 법원은 피고인이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상당(타당)한 이유가 있고,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갈 우려가 있는 경우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 있다. 당시 재판부도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며 구속영장 발부 사유를 설명했다.

앞서 검찰은 국정 농단 사건의 중대성과 재판의 신속한 심리를 위해 박 전 대통령의 구속 기간을 연장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었다. 석방될 경우 건강 문제나 변론 준비 등을 이유로 재판에 나오지 않으면 파행 우려가 크다는 점도 들었다. 

박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와 재판에 비협조적이었던 점, 향후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점이 추가 영장 발부의 주된 근거였었다.


변호인단은 박 전 대통령이 불구속 상태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맞섰다. 롯데와 SK 관련 뇌물 혐의의 경우 사실상 심리가 마무리됐으며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으니 피고인의 권리 보호를 위해서라도 불구속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유영하 당시 변호사는 “형사소송법은 무죄 추정과 불구속을 대원칙으로 한다”며 “7개월 동안 구금된 상태서 주 4회 공판을 감내했는데 또다시 일부 공소사실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해달라는 검찰 주장은 합리적으로 설명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증거 인멸의 우려에 대해선 “롯데·SK 관련 제3자 뇌물공여 혐의와 관련해 중요 증인이 이미 증언이 마무리한 상태”라며 검찰 주장에 대해 반박했다.

1심 선고 공판을 최대한 늦춰 박 전 대통령을 우선 석방시키겠다는 변호인단의 전략이 실패한 셈이다. 앞서 법조계 안팎에서는 박 전 대통령 측의 ‘시간 끌기’ 전략으로 그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 바 있다.

이는 당시 박 전 대통령의 남은 재판 일정에 비춰봤을 때 상당한 신빙성을 가진 전략으로 점쳐졌다. 당시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 공판을 위해 10월10일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을 증인 소환키로 결정했다. 

재판부가 추가 영장을 발부하기 전 구속 만기일이 10월16일 밤 12시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상당히 빠듯한 일정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받고 있는 혐의가 방대하고, 증거의 가짓수도 많아 구속 만기일 직전 선고 공판이 열리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설령 심리가 끝났다 하더라도 판결문 작성에만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터였다.
 

이 때문에 검찰은 재판 과정서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노력했었다. 수사기관이 작성한 진술조서 중 상당수를 증거서 철회했다. 조서 대상자를 증인으로 불러 재판이 장기화되는 상황을 막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변호인단은 증인을 대거 신청하는 방식으로 시간 끌기에 들어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 등을 증인으로 신청하겠다고 했다. 

게다가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과 관련해선 51명을 증인으로 신청한 상태였다.

방어권 행사 및 무죄 입증을 위해 증인신문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당시 변호인단의 입장이었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재판이 상당시간 지연될 게 불 보듯 뻔했다. 

이러한 변호인단의 움직임에 대해 법조계 안팎에선 변호인단이 박 전 대통령의 구속 만기일을 노린다는 해석이 나왔었다. 박 전 대통령을 구속 상태서 풀려나게 하는 게 목적이라는 것이다.

변호인단
석방 전략?

변호인단은 그간 꾸준히 불구속 재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재판 초기 재판부가 주 4회 공판 진행 방침을 밝히자 변호인단은 “일본 옴진리교 재판은 1심 선고까지 10년이 넘게 걸렸다”고 반박했다. 

박 전 대통령을 ‘고령의 연약한 여자’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변호인단은 재판 과정서 수시로 박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변호인단의 수는 통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직권으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추가 영장을 발부했다.

재판부가 추가 영장을 발부하기 전,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석방 후 플랜이 나돌았다. 원칙적으로 구속기간이 만료되면 피고인을 석방한 다음 나머지 재판을 불구속 상태서 진행해야 한다. 구치소를 나온 박 전 대통령이 신당을 만들어 정치활동을 재개할 것이란 설이었다.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재판부가 추가 영장을 발부하기 전인 지난해 10월 “박 전 대통령이 불구속 상태가 되면 자신의 세력을 모아 신당을 만들 것이란 설이 있다”며 “친박(친 박근혜)계 의원 몇몇을 모아 당을 만든다는 얘기다. 과거 친박연대처럼…”이라고 말했다.

금시초문이라는 기자에게 관계자는 “이 얘기 못 들어 보셨어요?”라며 신기한 듯 쳐다보기도 했다.

창당의 목적은 전적으로 자신의 명예회복이라고 했다. 

그간 박 전 대통령은 재판 과정서 본인의 무고함을 주장해왔다. 박 전 대통령 입장서 자유의 신분이 되면 세력을 규합해 여론전을 펼치기 한결 수월해진다.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을 탄핵하고 옥중생활을 하게 만든 세력에게 반격을 가할 수도 있다.


재판에 나오지 않는 이유가…
10월부터 국회 안팎서 돌아

억울하다는 박 전 대통령의 심경이 가장 잘 드러난 시점이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의 석방이 무산된 지난해 10월16일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열린 속행 공판서 “구속돼서 재판을 받은 지난 6개월은 참담하고 비참한 시간들이었다”며 “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배신으로 돌아왔고 이로 인해 모든 명예와 삶을 잃었다”고 밝혔다.

이어 “오늘 구속 기한이 끝나는 날이었으나 재판부는 검찰 요청을 받아들여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며 “다시 구속이 필요하다는 결정을 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제 정치적 외풍과 여론의 압력에도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란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향후 재판은 재판부의 뜻에 맡기겠다”고 실망감을 토로했다.
 

관계자의 말처럼 박 전 대통령은 친박연대를 통해 위기 상황서 돌파구를 찾은 전력이 있다. 지난 2006년 6월 한나라당 대표직서 물러난 박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서 이명박 당시 후보와 격돌했지만 패배했다.

박 전 대통령이 대권을 잡는 데 실패하자 친이(친 이명박)계는 친박계에 대한 ‘공천학살’을 자행했다. 이에 반발한 친박계는 원외에서 친박연대를 조직, ‘박근혜 마케팅’을 통해 지역구 5석, 비례대표 8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친박 무소속 연대도 12명의 당선자를 배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후 이들은 친박연대를 해체하고 한나라당으로 복당해 세를 확장했다.

정치권서 박 전 대통령은 정치적 승부수에 능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일례로 지난 2004년 한나라당이 소위 ‘차떼기 사건’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천막당사를 열어 보수 지지층 결집에 성공한 바 있다. 

‘선거의 여왕’이란 타이틀은 이러한 박 전 대통령의 승부사적 기질을 대변하는 별명이었다.

“억울하다”
정계 복귀?

재판부가 영장을 발부키로 결정한 배경에도 창당설을 뒷받침할 근거가 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영장 발부 사유는 증거인멸 우려였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석방될 경우 공범 등 증인들과 접촉해 이들이 진술을 번복하거나 증언을 거부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검찰 측 주장을 받아들여 영장을 발부했다. 

기존 진술을 번복하거나 증언을 거부하는 것 역시 증거인멸에 해당한다.

또 박 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의 지위를 이용, 갖고 있던 정보와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해 증거 인멸에 활용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때 박 전 대통령이 지지 세력을 규합하고 정치 활동을 재개한다면 증인들에게 부여되는 심적 부담이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당시 변호인단은 박 전 대통령을 석방시키면 신속한 재판을 위해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의 전략이 10월16일을 기점으로 급변한 점도 창당설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시간끌기 전략을 사용하던 기존 변호인단이 모두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틀 뒤인 10월18일 박 전 대통령의 해외법률컨설팅을 맡고 있는 MH그룹은 그가 ‘교도소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고 <CNN>에 보도토록 했다. 이어 MH그룹은 박 전 대통령 인권침해 사태에 신속하게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유엔인권이사회에 제출했다.

재판부 세력규합 우려해 추가 영장?
‘조기 출소 프로젝트’로 전략 변경?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는 해당 소식을 접한 후 자신의 SNS에 “박 전 대통령은 무죄판결을 받겠다는 목표를 포기한 것 같다. 대신 법정서 형이 확정되기 전, 조기 석방을 목표로 ‘조기 출소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 인권침해 여부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한 노 원내대표는 “MH그룹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의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는 로드니 딕슨이다. 그가 속한 영국 로펌에 따르면 올해(2017년) 8월10일 박 전 대통령의 UN탄원을 목적으로 사건을 수임했다고 한다”며 “박 전 대통령은 그때부터 이미 무죄 받을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피해자, 피억압자, 중증환자 코스프레를 통해 국내외서 조기 석방 여론을 불러일으키기로 치밀한 준비를 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창당설에 대한 정치권의 시각은 다양하다. 

일리가 있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허무맹랑하다는 이도 존재한다. 여권 관계자는 “자존심이 강한 박 전 대통령의 성격을 고려한다면 석방됐을 때 본인의 정치적 복권을 위해 무슨 수라도 썼을 것”이라며 “창당도 하나의 옵션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야권 관계자는 “국회서 나도는 설이야 한두 가지겠느냐”며 “본인(박 전 대통령)도 여러 듣는 얘기가 있을 텐데 창당까지 고려했겠나. 그분(박 전 대통령)은 성격이 신중한 편이라 확신이 없으면 무리하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가능성을 낮게 봤다.
 

법조계는 박 전 대통령의 재판이 이번 달 마무리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공판 기일이 1월4일까지며 이후 한두 차례 공판이 더 열리겠지만, 1월10일이면 결심공판이 가능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사선 변호인들이 집단사퇴하면서 재판을 지연시키는 요소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산술적으로 최순실씨에 대한 선고공판이 열리는 1월26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선고도 함께 내려질 수 있다. 앞서 재판부는 최씨에 대한 결심공판서 오는 1월26일 최씨의 선고공판을 열겠다고 밝혔다.

석방→출소
계획 변경?

그러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선고를 내리기 전 재판부가 상당 기간 고심하는 기간을 거칠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앞서 최씨의 결심공판서 재판부는 “6주 후인 2018년 1월26일 금요일에 오후 2시10분에 선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안의 엄중함을 고려한다면 6주간의 시간을 가진 최씨의 선고처럼 박 전 대통령의 선고 역시 6주간의 시간을 두고 선고가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선고는 오는 2월 중으로 내려질 것으로 전망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만화책에 빠진 박근혜 심리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부분의 시간을 독서로 보내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2월25일 JTBC <뉴스룸>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최근 외부 접견을 끊은 채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와 최배달이 등장하는 <바람의 파이터> 등을 탐독하고 있다.

해당 책은 주인공이 온갖 역경을 딛고 일어선다는 공통된 줄거리를 갖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현재의 수감생활을 일종의 시련이자 성장통으로 받아들이면서 이를 발판으로 한층 성숙한 정치인으로 거듭나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 해석한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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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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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