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DJ 비자금 파문’ 박주원 강남 사무실의 비밀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12.18 10:39:03
  • 호수 1145호
  • 댓글 0개

아버지가 물려준 의문의 오피스텔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김대중 전 대통령 비자금 의혹(이하 DJ 비자금)’ 사건의 제보자로 지목돼 논란이 된 국민의당 박주원 최고위원이 지난 15일 최고위원직을 사퇴했다. 그러나 박 전 최고위원의 사퇴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강남에 사무실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박 전 최고위원의 해명이다. <일요시사>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서 박 전 최고위원의 사무실로 의심되는 공간을 발견했다.

DJ 비자금 제보 의혹은 지난 8일 <경향신문>이 최초 보도했다. 해당 언론사는 이명박정부 출범 초인 2008년 10월, 주성영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국정감사 때 제기한 DJ 비자금 의혹의 제보자가 박 전 최고위원이라고 밝혔다. 박 전 최고위원이 주 전 의원에게 DJ 비자금 의혹을 제보해 폭로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같은 장소
다른 사건

보도에 따르면 사정당국 관계자는 “주 전 의원이 2008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DJ 비자금 의혹을 제기한 후 검찰 조사를 받으며 ‘2006년 초 박주원씨(전 국민의당 최고위원)로부터 먼저 연락을 받고 밤에 강남에 있는 그의 개인사무실로 가 박스에 담겨 있는 많은 자료를 받았다’고 했다”고 밝혔다.

박 전 최고위원은 즉각 반박했다. 

보도가 된 당일 저녁 기자회견을 갖고 “완전히 대하소설”이라며 검찰 수사를 통해 명명백백히 진위 여부가 가려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박 전 최고위원은 “해당 언론보도에 어떤 정치공작의 의도가 숨겨져 있는지 개탄스럽다. 명예훼손 등 적절한 법적 대응을 강구할 것”이라며 반발했다.


박 전 최고위원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주 전 의원이) 박스를 전달받았다는 강남 사무실 또한 존재하지도 않는 공간”이라며 “평소처럼 주 전 의원을 만났다면 커피숍이나 어느 식당서 만났을 텐데 커다란 박스가 어디에 있었겠나? 안산시장 재임 시절이라서 (나는) 안산에 있었고 강남엔 내 사무실 자체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일요시사> 취재 결과 서울 강남구에 박 전 최고위원의 사무실로 추정되는 공간이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박 전 최고위원은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위치한 D오피스텔 B동 OOOO호를 소유하고 있다.

전격 사퇴한 자리에 의혹만 주렁주렁
제보 파일 주고받은 장소도 수수께끼

D오피스텔 OOOO호는 박 전 최고위원의 아버지 고 박지오씨가 지난 1999년 11월경 사들였다. 박 전 최고위원이 안산시장으로 재임했던 2010년 2월 박씨가 별세하면서 박 전 최고위원에게 유증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박 전 최고위원은 OOOO호가 사무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지난 14일 전화통화서 “지금도 (해당 공간을) 소유하고 있다”면서도 “사무실로 쓴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가 살았다. (나는 안산)시장 선거를 준비해야 돼서 대부분 안산에 있었다”고 해명했다. 

즉 주 전 의원이 박 전 최고위원 소유의 강남 사무실서 박스를 받았다는 2006년 2월, 강남 사무실로 의심되는 장소에 아버지 박씨가 살고 있었고 본인은 선거 준비를 위해 그 기간 안산에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살았다는 박 전 최고위원의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OOOO호 등기부등본을 보면 박씨의 주거지는 경기도 안산시 사동에 위치한 요진아파트로 나온다. 박 전 최고위원은 안산시 단원구 호수공원아파트에 살고 있다. 


요진아파트와 호수공원아파트는 안산호수공원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하고 있다. 정치권서 효심이 지극한 것으로 알려진 박 전 최고위원이 노령의 아버지를 멀리 있는 강남구 도곡동 D오피스텔에 살게 했을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 보인다.

“(그런) 사무실
존재하지 않아”

아버지 박씨가 생전에 안산광림교회서 권사로 활동했다는 점도 박씨의 실 거주지가 안산시 요진아파트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근거다. 박씨의 발인도 고대 안산병원 장례식장서 지난 2010년 2월 진행됐다. 

박 전 최고위원의 동생들도 안산광림교회서 권사 및 집사로 활동 중이다. 여러 정황상 D오피스텔에 아버지 박씨가 거주했었다는 박 전 최고위원의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이러한 내용을 박 전 최고위원에게 질문하자 해명이 달라졌다. 

그는 “세를 줬다. 전세를 줬는지 모르겠다.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말을 바꿨다.

그러나 1999년 D오피스텔이 건설된 후 전세권 계약을 한 사람은 2012년 4월 조모씨가 유일했다. 즉 박 전 최고위원이 주 전 의원에게 자료를 건넸을 것으로 추정되는 2006년 2월, 전세 계약을 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박 전 최고위원에게 ‘서류상 해당 기간에 전세를 내준 사실이 없다’고 질문하자 그는 “서류상으론 그랬어도 누가 살았을 것이다. 내가 거주한 게 아니니까. 모르겠다. 오래 돼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안산에 쭉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그런 자료는 어디서 받으신 겁니까?” 등의 질문을 하기도 했다.

박씨가 소유한 OOOO호 확인
2007년 뇌물사건 때도 등장

D오피스텔 OOOO호가 사정기관 관계자가 말한 강남 사무실로 추정되는 근거가 또 있다. 

박 전 최고위원은 지난 2010년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은 바 있는데, 당시 공소장에 D오피스텔이 등장한다. 


박 전 최고위원이 안산시장이던 지난 2007년 해당 건물 1층 카페서 3조5000억원이 투입된 안산시 복합단지개발사업 사업자의 선정 편의를 봐달라는 청탁과 함께 김모 건설사 회장으로부터 1억3000만원을 받았다는 혐의였다.
 

사건을 수사한 수원지검 특별수사부는 박 전 최고위원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재판부는 1·2심서 박 전 최고위원에게 징역 6년에 추징금 1억3000만원이라는 중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 재판부가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박 전 최고위원은 파기환송심서 무죄 판결을 받아 기사회생했다.

‘2007년에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 받을 당시 D오피스텔이 등장한다’라는 기자의 질문에 박 전 최고위원은 “그때 당시 아버지께서 거기(D오피스텔)에 살았다. 나도 시장이 되기 전 거기(D오피스텔)서 몇 년 동안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적이 있다”고 해명했다. 

“아버지 거주”→“전세를 내줬다”→“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순으로 해명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주장 오락가락
진실은 무엇?

DJ 비자금 제보 의혹과 관련해 박 전 최고위원의 발언은 공식석상서도 갈지(之)자 행태를 보였다. 당초 박 전 최고위원은 주 전 의원에게 어떠한 자료도 전달한 바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최근 박 전 최고위원은 당 최고위원회의서 “2003년 ‘현대 비자금’ 내사 과정서 입수한 해당 양도성예금증서를 주 전 의원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최근 박 전 최고위원은 의혹 자료를 주 전 의원에게 건넨 사실을 일부 시인하면서도 “DJ라고 못 박진 않았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놨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박 전 최고위원은 지난 15일 최고위원직을 사퇴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강남 사무실 관련 박주원 입장은?

<일요시사>는 강남 사무실로 추정되는 D오피스텔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소유자인 국민의당 박주원 전 최고위원과 지난 14일 직접 통화했다. 그는 해당 장소에 대해 “사무실로 쓴 적이 없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면서 “그런 자료는 어디서 받으신 거냐?”며 출처를 의심했다. 

통화 내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음은 박 전 최고위원과 일문일답.

- 일부 언론 등에 “강남에 사무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 사무실이 없다. 주 전 의원도 헷갈리시는 것 같은데, 강남 사무실서 만난 게 아니고 오피스텔 뒤 일식당서 함께 식사를 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쪽에서 몇 번 만났던 것 같다. 식사한 뒤 그 건물 2층 내지 3층에 있는 커피숍에 갔다가 헤어졌다. 사무실 자체가 없다.

- 확인해보니 아버지께서 1999년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있는 D오피스텔을 매매했고, 2010년 유증됐다. 이곳이 강남 사무실 아닌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유증 받은 것인데, 아버지가 살았고 시장으로 당선되기 전 아버지 (살아)계실 때 선거를 준비해야 돼 (나는)안산에 대부분 있었다.

- 기록상 아버지는 안산에 있는 요진아파트서 거주하셨고 본인은 안산 호수공원아파트에 거주하셨다. D오피스텔에 거주하지 않고 소유만 한 것으로 나오는데.
▲지금도 소유하고 있다.

- 그렇다면 이곳이 강남 사무실이라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한데.
▲사무실이 아니다. 사무실로 쓴 적 없다.

- 그렇다면 어떻게 사용됐나?
▲세를 줬다. 전세를 줬는지 모르겠다.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 서류상으로는 해당 기간 전세를 준 사실이 없는데.
▲서류상으론 그랬어도 누가 살았을 것이다. 내가 거주한 게 아니니까. 모르겠다. 오래 돼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안산에 쭉 있었다. 그런데 그게 뭐가 중요한가?

- 방송 인터뷰서 강남 사무실이 없다고 하셨지만 사무실로 활용됐을 만한 공간을 소유하고 계셨으니 질문한 거다.
▲그런 자료는 어디서 받으신 건지?

- 누구로부터 받은 게 아니다. 자체 취재로 알아냈다.
▲아 그래요?

- 2007년 모 건설사 회장으로부터 돈 받았다고 해서 수원지검의 수사를 받았다. 혐의서 나온 곳이 D오피스텔이던데?
▲허허허. 당시 아버지께서 살았기 때문에 나도 시장되기 전에는 거기 몇 년 동안 살았던 적이 있다.

-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안산시 요진아파트서 사셨던 것으로 나온다.
▲기억이 잘 안 난다. 아버지·어머니 모시고 그곳(D오피스텔)서 같이 살았다. 그러다가 헤어져 살기도 하고 그랬다. 내가 대검찰청서 근무하다 보니까. 어쨌든 거긴 사무실이 아니다.

- 결론은 사무실이 아니다?
▲그렇다.

<목>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