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돈벌이’ 전단지 알바의 세계

“버려도 좋으니 받아만 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최근 지하철 출구 근처서 전단지 돌리는 노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전단지가 가득 들어있는 가방을 멀찍이 놓아두고 행인들에게 한 장씩 건넨다. 그냥 지나치는 사람, 받아가는 사람, 받아서 바로 버리는 사람 등 반응도 제각각이다. 지하철 역사 내 쓰레기통에는 전단지가 수북이 버려져 있다.
 

전단지 아르바이트는 한때 10대의 전유물이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은 학생들이 제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동네에 새로 생긴 피자집이나 치킨집 등은 수능을 막 마친 학생들을 고용해 아파트 주변에 전단지를 배포했다. 수년 전만해도 오토바이를 타고 가게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을 날리던 20대 초반 청년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길거리 부업

최근에는 전단지를 배포하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높아지는 추세다. 서울 마포역 주변에 새로 생긴 도시락 전문점 홍보 전단지를 나눠주는 박모 할머니는 올해로 예순여섯이 됐다. 배포해야 할 전단지 1000장이 든 가방을 한편에 놓아두고 박 할머니는 100장으로 된 묶음을 꺼내 행인들에게 건네기 시작했다.

오전 7시10분, 출근을 위해 발걸음을 서두르는 직장인과 등교하는 학생들 중 약 절반가량은 박 할머니를 그냥 지나쳤다. 100장을 나눠주는 데 걸린 시간은 30분 남짓, 하루치를 다 나눠주려면 꼬박 하루 동안 역 주변을 배회해야 한다. 박 할머니는 “주변에 부업하는 친구가 있어서 소개를 받았다”며 “날이 추워지니까 더 안 받아준다”고 말했다.

1장에 50원, 하루 5만원
대부분 쓰레기통으로 직행


박 할머니는 말하는 도중에도 계속 전단지를 내밀었지만 기온이 뚝 떨어진 날씨에 웅크린 사람들은 외면하기 일쑤였다. 하루를 꼬박 일해 1000장을 전부 배포하고 난 뒤 박 할머니가 받는 돈은 5만원 남짓이다. 

100장에 5000원으로 계산한 돈이다. 1장에 50원 꼴이다. “학생 이거 좀” “도시락 집 새로 생겼어요” 말을 건네며 배포한 전단지는 90% 넘게 지하철 역사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전단지를 받은 행인들은 읽어보지도 않은 채 바로 쓰레기통에 넣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발길을 재촉하던 한 학생은 전단지를 받자마자 걸어가면서 손으로 접어 제일 먼저 눈에 보인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쓰레기통에는 박 할머니가 배포한 전단지로 이미 가득했다. 스마트폰을 보느라 미처 박 할머니를 못 보고 지나쳤던 한 직장인은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면서 연신 뒤를 돌아봤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 자유게시판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주는 전단지는 거절하기가 어렵다”며 “웬만하면 받아주긴 하는데 읽어보진 않는다. 내가 (전단지를) 받아야 그분들 일이 빨리 끝날 거라고 생각하면 너무 가혹하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전단지, 벽에 붙은 전단지를 수거하는 고령의 알바생도 있다. 일부 지자체에선 최근 ‘불법 광고물 수거보상제’를 시행하고 있다. 
 

거리에 떨어진 광고물을 수거해 각 주민센터에 제출하면 명함형 광고물은 장당 5원, 벽보는 15∼20원, 현수막은 최대 2000원까지 보상해준다. 65세 이상 노인들과 국민기초생활수급자 등 사회취약계층이 대상인데 노인들의 지원률이 높다.


일선서 물러난 노인들은 운동이나 소일거리로 전단지 수거 작업에 지원한다. 일부 노인들은 이를 통해 생계를 잇는 경우도 있다. 한 달 동안 지급되는 보상비는 10만원서 최대 50만원까지 상한이 정해져 있다. 

한 달을 꼬박 전단지 수거 일을 해도 벌 수 있는 돈은 최대 50만원으로 한정돼있다는 뜻이다. 일부 노인들에게는 생활비로 쓰기에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전단지 배포, 수거에 뛰어드는 노인이 많아진 것은 노인 빈곤 현상의 단면이라는 분석이 있다. 우리나라 66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OECD 회원국 중 최고인 것으로 집계됐다. 

OECD 회원국 가운데 고령화가 가장 많이 진전된 국가는 일본이지만 그 속도는 우리나라가 더 빠르다. 문제는 빠른 고령화 속도를 사회가 쫓지 못한다는 데 있다.

지난 11일 OECD가 내놓은 ‘불평등한 고령화 방지’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66∼75세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42.7%, 76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60.2%로 비교 대상 38개 회원국 중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로 1위다. 

66∼75세는 OECD 평균의 4배, 76세 이상은 4.2배 높은 수치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과 비교해도 각각 3배, 4.2배 높다. 

OECD는 보고서에서 “OECD 국가의 노인 빈곤율은 전체 인구의 빈곤율과 밀접하지만 호주와 스위스에선 노인빈곤율이 훨씬 높고 한국은 그 중에서도 특히 높다”고 지적했다.

떼고 줍는 알바도 성행
노인빈곤율 OECD 1위

OECD 보고서는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높은 이유로 “국민연금제도가 1988년에야 출범해 1950년대 출생한 경우 혜택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 역시 노인빈곤율의 주원인으로 국민연금·기초연금 등 공적이전소득이 낮은 점을 꼽는다. OECD 평균 노인 전체소득 중 공적이전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은 58.7%에 달하지만 우리나라는 16.3%에 불과하다. 

대신 우리나라 노인들은 근로소득 비중이 63%로 높다. 그만큼 고령에 일하는 노인이 많다는 뜻이다.

지난해 ‘잡코리아’가 운영하는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이 성인남녀 1037명을 대상으로 ‘황혼 알바 계획’에 대해 물었다. 


‘정년 이후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82.1%가 있다고 답했다. 성인남녀 10명 중 8명은 정년 이후에도 일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 비율은 남성(78.5%)보다 여성(86.2%)에서 높게 나타났다.
 

이들이 정년 이후 생활서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경제력 상실이었다. 즉 “생활비가 부족할까봐 걱정된다”는 응답자가 77.0%에 달했다. 

가족력으로 인한 건강악화(46.0%), 자녀에게 부양 부담을 지우는 것(27.3%), 노년의 외로움과 허전함(15.5%)이 뒤를 이었다. 

황혼 알바를 하려는 이유로는 경제력을 높이기 위한 것을 포함해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라는 답변이 45.4%로 가장 높았다. 이어 일하는 즐거움을 위해(35.7%), 돈을 벌어야 하는데 취업은 잘 안 될 것 같아서(35.3%) 등의 응답이 높게 나타났다.

지난 8월 강연차 한국을 찾은 일본의 빈곤퇴치 운동 전문가 후지타 다카노리씨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한국의 노인 빈곤문제에 대해 “한창 일할 시기에는 모른다”며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노인) 빈곤은 반드시 찾아온다”고 경고했다. 

후지타씨는 <2020 하류노인이 온다> <과로노인> 등의 저서를 통해 노인 빈곤문제를 가까이서 들여다 봐왔다.


어려운 노후

그는 강연서 “일본은 젊은 빈곤층도 늘어나고 있어 젊은 층의 노후 준비는 물론 부모 부양도 하지 못하고 있다”며 “한국과 일본의 패턴이 비슷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나이가 드는 것을 피할 수 없는 한 노인 빈곤 문제는 국가를 떠나 모든 사람들의 문제”라며 “민간 보험은 물론 사회보장제도 확충 등 사회적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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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