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철수론 풀스토리’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11.06 10:57:42
  • 호수 11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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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던 사업가가…동네북 신세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촉망받던 ‘의사’, 성공한 ‘사업가’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그는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국민의당을 원내 제3당에 올리면서 다당제의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대선 패배 이후 갈 길을 잃은 모습이다. ‘철수’ 정치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대중적 관심을 받기 시작한 순간은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하고 난 직후다. 당시 ‘안철수 편’이 16.6%의 전국 시청률로 그는 안철수란 이름을 국민들에게 각인시켰다. 그로부터 1년 뒤 그는 법륜 스님과 함께 ‘청춘콘서트’를 열면서 젊은이들의 ‘멘토’로 거듭났다. 

청년 멘토서 
대선 주자로 

청춘콘서트로 20∼30세대의 지지를 등에 업은 그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시 여론조사서 그는 지지율 50%를 상회하며 기존 정치권에 신드롬을 일으켰다. 

앞서 정치입문 가능성을 일축했던 그가 출마에 여지를 두면서 대중들의 관심은 폭발했다. 

하지만 그는 당시 지지율 5%에 불과했던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였던 박원순 변호사에게 서울시장 후보직을 양보했다. 그의 정치인생 첫 ‘철수’였다. 결국 박 변호사는 정몽준 후보를 꺾고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당시 안 대표는 ‘박 변호사에게 양보해야 하는지’ ‘선거 출마를 위해 서울대 융합대학원장직을 그만둬야 하는지’ ‘정치를 시작한다면 10년은 꾸준히 해야 할 텐데 본인이 그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의 두 번째 ‘철수’는 2012년도에 있었다. 서울시장 불출마에도 불구하고 안 대표는 각종 대선 여론조사서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다. 2012년 9월1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대중의 기대감은 폭발했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3자 가상대결에서 안 후보는 박 후보와 근소한 차이로 2위를 달렸고, 박 후보와 양자대결에선 안 후보가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선을 약 한 달 앞두고 나서야 문 후보가 안 후보를 역전해 지지율에서 조금씩 앞서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안 후보는 2012년 11월23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 돌연 사퇴를 선언했다. 당시 안 후보의 사퇴를 두고 최 측근들은 만류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안 후보의 뜻을 꺾지는 못했다. 정치권에선 문 후보와의 양자토론회에서 안 후보가 밀리면서 사퇴 수순을 밟은 것으로 분석했다.  
 

두 번의 철수가 있었지만 정치권서 안철수는 잠재적 대선 후보란 인식이 퍼졌다. 2013년 4월 그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통해 본격적으로 제도권 안으로 들어왔다. 무소속임에도 불구하고 60.5%의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2014년 3월 제3지대 창당방식으로 민주당과 합당해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한 김한길 대표와 함께 새정연 1기 공동대표를 맡아 야권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현실정치의 냉혹함을 공동대표 4개월 만에 알게 됐다. 2014년 7월 재보선서 새정연은 새누리당에 참패했다. 당시 안 공동대표는 “선거결과는 대표들 책임”이라며 “평당원으로 돌아가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정치인생 중 세 번째 ‘철수’였다. 


철수 또 철수 
창당 승부수 

평당원으로 머무르면서 반전의 기회를 모색했지만 당시 2015년 2월 당 대표에 오른 문재인 대표와의 갈등의 골만 깊어졌다. 이미 당은 ‘친문(친 문재인)계’가 장악하고 있었고 당내 입지는 점점 좁아졌다. 새정연 지도부 구성을 놓고 문 대표와 설전은 계속됐다.

문 대표는 문재인-안철수-박원순 체제로 지도부 구성을 제안했다. ‘협력’을 통해 당의 위기를 극복하자는 의미였으나 안 대표는 해당 제안을 거절했다. 표면상 협력이지만 사실상 ‘문재인 체제’의 연장선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안 대표는 문 대표에 ‘혁신전대’를 역제안했다. 문 대표가 대표직을 내려놓고 문-안 양자대결 전당대회를 통해 승자를 가리자는 의미였다. 당권을 잡아야지만 차기 대선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는 상황서 안 대표가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문 대표는 거절했고 안 대표는 결국 2015년 12월13일 국회정론관서 새정치연합 탈당을 선언했다. 그는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고, 비상한 각오와 담대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거듭 거듭 간절하게 호소했지만 답은 없었다”며 “그래도 머물러 안주하려는 힘은 너무도 강했고 저의 힘과 능력은 부족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저는 이제 허허벌판에 혈혈단신 나선다. 나침반도 지도도 없지만 목표는 확실하다. 새누리당 세력의 확장을 막고 더 나은 정치, 국민의 삶을 돌보는 정치로 국민께 보답할 것”이라며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는 정치세력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독자세력화를 천명한 셈이다. 네 번째 ‘철수’에 이른 그는 신당 창당으로 재도약을 꿈꿨다.  

TV 출연 인지도↑…서울시장·대선 양보
새정연 이끌고…재보선 참패 책임 ‘철수’

이듬해 2월2일 안 대표는 새정연을 탈당한 김한길, 천정배 등과 함께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안 대표는 당 대표 수락연설서 “지금 이 기회가 어쩌면 제게 주어진,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며 “이번에 바꾸지 못하면 정말 우리에겐 더 이상 꿈도, 희망도, 미래도 없다. 저는 국민의당에, 이번 선거에, 저의 모든 것을 걸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안철수 신당으로 불린 국민의당은 창당 이후 두 달 만에 총선을 맞이했다. 당초 새누리당의 낙승이 예상됐지만 민주당이 최다 의석을 차지했고, 국민의당은 40석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비례대표에선 국민의당이 민주당을 누르고 2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안철수의 정치 실험이 통했다고 분석했다. 또, 안 대표의 트레이드 마크로 통한 ‘오락가락 행보’와 ‘유약한 리더십’에 대한 대중 및 정치권의 의구심을 불식시켰다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호사다마’라는 말처럼 안 대표의 봄날은 오래가지 못했다. 리베이트 파문이 터진 것.  
지난해 6월 선관위는 4·13총선 당시 국민의당 선거대책위원회 홍보위원장을 맡았던 김수민 의원과 당 사무총장을 맡았던 박선숙 의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관련 기업으로부터 2억1820만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리베이트 형태로 수수하고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허위 세금계산서를 작성한 혐의였다. 당시 진상조사단장을 맡은 이상돈 의원은 “홍보업체의 자금이 국민의당으로 들어온 것은 없다”고 밝혔음에도 여론은 들끓었고 의혹은 점점 커졌다. 
 

결국 안 대표는 리베이트 논란을 책임지는 의미로 대표직서 물러난다. 그의 정치인생 다섯 번째 ‘철수’였다. 그는 사퇴를 언급하면서 “정치는 책임지는 것이다. 막스 베버가 책임 윤리를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라며 “정치를 시작한 이래 매번 책임져야할 일에 대해 책임을 져온 것도 그 때문”이라고 밝혔다.

모호한 자강론 
무리한 등판

그는 대표직서 물러나면서 훗날을 도모했다. 당시에는 대선이 1년6개월가량 남아 있었기 때문에 다시 당권을 잡고 대선주자로 나설 기회를 잡기에 시간은 충분했다. 안 대표의 공석은 박지원 전 대표가 채웠다. 박 전 대표는 비대위원장직을 유지하다가 전당대회를 통해 당 대표에 올랐다. 박 대표 체제서 안 대표는 다시 몸집을 키웠다. 

이미 사당화 논란을 겪을 정도로 국민의당은 안 대표의 입김은 강력했다. 대선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뒤 손학규 후보와 박주선 후보를 상대로 7차례 전국 순회 경선서 모두 압승하며 국민의당 대선후보로 확정됐다. 


대선과정서 안 대표는 국민의당 중심의 집권전략인 ‘자강론’에 집중했다. 자강론은 창당초기부터 시작됐는데 본격적으로 지지율이 오른 것은 올 3월부터였다.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서 줄곧 2위를 차지하던 안희정 충남도지사를 누르고 10개월 만에 2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지지율이 오르면서 당시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와 바른정당 김무성 고문 간 물밑 라인을 통한 중도·보수 통합론도 잦아들었다. 

안 대표는 지난 4월2일 서울 장충체육관서 열린 서울·인천지역 순회 경선서 “정치인에 의한 공학적 연대론은 모두 불살랐다”며 “국민에 의한 연대, 그 길만이 진정한 승리의 길”이라고 말해 인위적 연대론과 사실상 결별을 선언했다. 

하지만 대선토론회 이후 안 대표의 지지도는 급락했다. 몇몇 여론조사 기관서 실시한 가상 양자대결서 문 후보를 압도하는 것으로 나왔지만 토론회 이후에는 문 후보를 앞서지 못했다.

안 대표의 대선토론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안 후보가 ‘내가 MB 아바타입니까’ ‘갑철수입니까’라고 물을 때 국민들이 대통령 그릇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토론회서 너무 대선주자 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토론회 이후 뚜렷한 반전기회를 맞지 못하면서 안 대표는 대선서 패배한다. 성적표도 초라했다. 박근혜정부의 국정 농단 책임을 공유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의원에게도 밀렸다. 

결국 창당…초반 날다 추락중
지지율·통합론 난맥…운명은?

국민의당 대선평가위원회가 대선 이후 내놓은 ‘19대 대통령 선거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당 대표인 안 대표의 책임론을 강하게 제기했다. 대선평가위원회는 안 대표의 ‘중도노선’을 문제삼았다.

보고서는 “(안철수는) 정책에 대한 입장이 불분명하고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서
대선을 치렀다“며 ”아무런 가치도 담기지 않고 내용도 없는 중도를 표방하면서 오히려 ‘MB 아바타’라는 이미지를 강화했다“고 비판했다. 

대선 패배 이후 정치권은 안 대표가 ‘정계은퇴’ 및 ‘2선 후퇴’를 통한 칩거에 들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안 대표는 철수하지 않았다. 당내 반발을 무릅쓰고 전당대회에 출마했다. 
 

이를 두고 여당 관계자는 “안 대표가 이번에 물러나면 정계에 다시 복귀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며 “울며 겨자 먹기로 당 대표에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당내 반발은 전당대회를 통해서 드러났다. 대선 후보 선출 당시 80%이상 지지율을 기록하며 압도적 지지를 받았지만 전당대회에선 51%에 그쳤다. 즉 당내 절반 가량은 안 대표를 지지하지 않은 셈이다. 

가까스로 50%를 넘어 결선투표까지 가는 수모를 겪진 않았지만 당내 입지는 좁아진 모양새다.   

현재 안 대표는 정치적 대위기를 맞은 상황이다. 호남계 의원들은 안 대표의 통합론 및 자강론에 각을 세우고 있고, 당 지지율은 정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안 대표는 당의 수장으로서 내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어야만 하는 막중한 책임도 갖고 있다. 만약 내년 지방선거마저 민주당에 승기를 내준다면 안 대표의 정치생명은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방선거 이후
정치생명 결정

최근 당내서 안 대표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정동영 의원은 지난달 26일 “애초부터 안 대표가 (전당대회에) 등장한 것이 무리한 등판이었다”며 “일각에선 ‘이런 리더십으로 지방선거를 치르겠느냐 (안 대표가) 대표직을 물러나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라’는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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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