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비공’ 홍준표 신임 한나라당 대표

15년 ‘변방지킴이’ 접고 중심으로 도약한 ‘홍반장’

[일요시사=정혜경 기자] 홍준표 대표가 좌초 위기에 빠진 한나라호의 새 선장으로 당선됐다. 지난 1996년 15대 총선으로 정치판에 뛰어든 지 15년만의 일이다. 홍 대표는 치열한 선두권 경쟁이 예상됐던 7·4전당대회에서 선거인단 투표와 여론조사 결과를 합산한 결과, 4만1666표를 얻어 1위를 기록했다. 2위와의 표차는 무려 1만표. 압도적인 승리였다. 지난해 7·14전대에서 조직의 벽을 넘지 못하고 안상수 대표에 밀려 고배를 마신 지 1년 만에 명예를 회복한 것이다. 내내 비주류에 머물다 신주류로 급부상하게 된 홍 대표, 그의 ‘A to Z’를 낱낱이 공개한다.

아버지 억울한 누명에 검사되기로 마음먹어
변호사 개업 후 조폭들 협박에 정치권 입문

1954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달비(가발을 만들기 위한 부녀자나 처녀들의 머리카락) 장사를 하던 어머니와 일당 800원을 받고 조선소 앞 철근 조각을 지키던 아버지 밑에서 빈곤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만 다섯 번 전학을 다녀야 했다. 매번 도망치듯 이사를 했고, 도시락을 쌀 형편이 되지 않아 점심시간에는 물로 배를 채워야 했던 기억도 있다. 그 뒤엔 늘 학교 뒷산에 올랐다. 밥과 반찬냄새를 맡으면 허기가 더 심해졌기 때문이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 친구집에서 머슴처럼 일을 하기도 했다.

가난했던 유년기
물로 주린 배 채워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그의 가족은 낙동강과 가야강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터를 잡고 땅콩을 심었다. 하지만 극심한 가뭄과 장마가 이어지면서 밭은 물에 잠겨버렸다. 이 일로 홍 대표 가족의 꿈은 사라져 버렸다. 게다가 가야강 둑이 무너지면서 집도 없어졌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그의 가족엔 늘 가난이 따라붙었다. ‘빈곤의 늪’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홍 대표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공부뿐이었다. 홍 대표는 미친 듯이 학업에 매달렸다. 그 결과 학창시절 내내 홍 대표는 한번도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당초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의대 진학을 계획했다. 그러나 비싼 학비를 감당할 수 없었고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했다. 이 가운데 홍 대표가 ‘검사’에 뜻을 품게 되는 사건이 터졌다.

농협에서 배급을 받던 그의 아버지가 당시 농협조합장의 부정을 숨기기 위해 누명을 쓴 것. 홍 대표는 그날로 1만4000원을 손에 쥐고 상경,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뒤 1982년 사법고시 24회에 합격해 당당하게 검사가 됐다.

홍 대표는 5년차 평검사로 서울지검에 근무하던 지난 1988년 이른바 ‘노량진 수산시장 사건’을 맡으면서 주목을 받게 됐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친형과 현직 법원장 등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검찰총장의 중단 압박에도 불구하고 수사를 강행, 고위급 인사들의 옷을 줄줄이 벗겼다. 수사를 만류하던 검찰총장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2년 뒤 해당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에 오르면서 그는 광주지검으로 좌천됐다. 그곳에 있던 1년3개월 간 홍 대표는 광주일대 조직폭력배들을 모조리 잡아들였다. 조폭들에게 홍 대표는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이에 조폭들은 윗선에 꾸준히 로비(?)를 감행했고 그는 결국 다시 서울지검으로 오게 됐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서울지검에서의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이른바 ‘빠찡코 사건’ 수사 때문이었다. 빠찡코 사건은 노태우 대통령 시절 2인자로 불리던 박철언씨를 비롯해 법무부 차관, 경찰청장, 안기부(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등 정권 실세들이 빠짐없이 연루된 사건이다. 조폭도 끼어있었다.

이 사건이 ‘모래시계’라는 드라마가 되면서 홍 대표는 일약 스타검사 반열에 오르게 됐지만 검찰 내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계속해서 ‘윗선’을 건드리다보니 검찰 조직 내에서 그는 부담스러운 인물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빠찡코 사건이 마무리 된 직후, 그에겐 사퇴 압력이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39살이 되던 1995년 결국 사표를 내고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그가 정치권 입문을 결심하게 된 일이 벌어진 건 이때였다.

당시 광주와 서울에서 잡아넣었던 조폭들이 출소를 해서 가족을 협박했다. 석궁테러에 납치협박, 살해협박 등이 줄을 이었다. 이들의 위협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선 힘이 필요했다. 이게 바로 홍 대표가 정치인이 된 이유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정치권에 입문한 홍 대표는 15년간 내리 4선을 했다. 그러나 그의 위치는 늘 ‘변방’이었다. 야당 시절 ‘대여 저격수’로 이름을 날린 데 이어 2006년 서울시장 후보 경선,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 잇따라 출마해 특유의 재치로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당내에서는 줄곧 ‘비주류’였다.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세 타기도

당 전략기획위원장, 혁신위원장 등 요직을 역임했지만, 본인 표현대로 ‘당직다운 당직’과는 거리가 멀었다. ‘독불장군’ ‘돈키호테’ 등으로 불리는 홍 대표의 자유분방한 성품과도 무관치 않다.

고려대 선배이자 1999년 미국 워싱턴에서 함께 생활했던 이명박 대통령과 ‘형, 동생’ 할 만큼 가까운 사이면서 친이계에 불참한 점도 ‘변방’에 머물러야 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다.

그런 홍 대표가 중심으로의 진입을 시도한 건 18대 국회에 들어서다. MB정부 첫 집권여당 원내대표에 선출된 그는 정권 초반 인사 파동과 쇠고기 파동, 친이·친박 갈등 등 수많은 난제를 차례로 풀어가며 신주류로 두각을 드러냈다.

정치권 입문 후 15년간 변방 자리만 지켜와
발군의 위기 돌파능력과 순발력, 정치감각

당시 1년간 원내사령탑을 맡으면서 홍 대표는 발군의 위기 돌파능력과 순발력, 정치감각을 보여줬다. ‘홍반장’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조직’의 벽에 가로막혀 2위에 머물러야 했다. 당연히 주류를 향한 행보엔 제동이 걸렸다.

대신 홍 대표는 서민정책특위 위원장을 맡아 내공을 쌓는데 주력했다. 17대 때 ‘반값 아파트법’ ‘이중국적자 병역기피 봉쇄법’ 등에 이어 ‘친서민 이미지’를 강화하고 나선 것. 주류로의 편입을 거부하고 친서민 행보에 몸 바친 점은 홍 대표가 이번 7·4전당대회에서 당선될 수 있던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그런 홍 대표가 ‘한나라호’의 키를 잡은 만큼 한나라당의 친서민 정책이 본격화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당선 직후 홍 대표의 라디오 연설은 이 같은 관측에 무게를 더한다.

홍 대표는 지난 6일 “그 동안 글로벌 금융위기를 벗어나는 과정에 대기업이 특혜를 누려왔다”며 “이제 성장의 과실이 중소기업과 중소자영업자를 비롯해 서민가계에 파급될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때”라고 밝혔다.

이어 홍 대표는 “실효성 있는 서민정책을 적극 추진해 늦어도 올 연말에는 서민가계가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며 “한나라당이 ‘웰빙정당’의 멍에를 벗고 ‘서민정당’으로 환골탈태할 수 있도록 산파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당장 홍 대표는 서민정책특별위원장 시절 내놨던 정책들을 재검토해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대부업체 최고 이자율 추가 인하와 전월세 상한제, 든든학자금(ICL) 이자율 인하, 택시의 버스전용차로 진입 허용 등이 그것이다.

황우여 원내대표와 이주영 정책위의장 등 당 원내지도부가 이미 일부 친서민 정책을 내놓은 상황이다. 홍 대표까지 가세할 경우 한나라당의 ‘정책 좌 클릭’에 더욱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여기에 유승민, 남경필 최고위원 등 개혁 성향의 지도부도 이런 움직임에 힘을 실을 가능성이 높다.

홍 대표는 또 당내 화합을 위해 고절적인 병폐인 계파활동의 해체에도 양팔을 걷어붙였다. 홍 대표는 “계파를 해체해야 한다”며 “앞으로 계파활동을 하면 (내년 총선에서) 공천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홍 대표는 “(계파 해체는) 국민이 바라는 것이며, 국민이 보기에도 중요한 일”이라며 “이를 발 빠르게 하는 게 첫 번째 과제”라고 설명했다.

이후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나경원, 남경필 최고위원 등 40대의 젊은 당지도부들도 홍 대표의 계파 해체에 힘을 보탰다. 나 최고위원은 “이번 전대에서 계파가 엷어졌다는 평가와 짙어졌다는 평가가 교차하는데 홍 대표도 계파 해체를 말했으니 함께 뜻을 모아 꼭 이뤘으면 한다”고 가세했다. 남 최고위원도 “새 지도부가 계파 해체를 선언하고 이를 실제로 이행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지혜를 짜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상당수의 최고위원들이 공천 잡음 등 후유증이 없도록 당내 계파를 해체하자는 데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서민정책 가속
계파활동 해체

하지만 한나라당이 계파정치를 청산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견해다.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친박계 유승민 최고위원이 홍 대표의 계파 해체 발언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했다.

유 최고위원은 “홍 대표가 계파활동에 치중하면 공천을 안 주겠다는 말씀을 했는데 이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지금 국민들의 관심은 계파보다는 민생”이라고 당 대표의 우선순위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유 최고위원은 이어 “계파활동을 한다고 공천에 불이익을 준다는 데 동의할 수 없다”며 “그러면 나부터 공천이 안돼야 하는 것 아니냐. 계파 화해는 당사자들이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홍준표 신임 대표 프로필>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세


영남중학교 졸업
영남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
제24회 사법고시 합격
신라대학교 명예법학박사
영산대학교 명예부동산박사
청주지방 검찰청 검사
부산지금 울산지청 검사
서울지검 남부지청 검사
광주지방 검찰청 검사
서울지방 검찰청 검사
15대 국회의원
16대 국회의원
17대 국회의원
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원내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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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