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방한’ 문재인 손익계산서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10.23 10:21:10
  • 호수 11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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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선 상극…한국에선?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아시아 순방을 떠난다. 한국 방문은 내달 7일 오전에 입국해 8일 오후에 출발하는 1박2일 일정. 주무부처는 동선 및 주요 현안 조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에 정치권에선 문재인정부가 이번 트럼프 미 대통령 방한을 통해 얻게 득실을 따지고 있다. <일요시사>는 ‘트럼프 방한 손익계산서’를 전망해봤다.
 

백악관은 지난 15일(현지시각) 성명을 통해 트럼프 미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 아시아 5개국을 방문한다고 발표했다. 그의 이번 순방은 미국과 아시아 5개국의 동맹을 강조,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려는 성격이 강하다. 

어떤 메시지?

백악관은 “한국을 방문하면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정상회담을 하고 국제사회에 북한에 대한 압력을 극대화하자고 촉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우리 정부는 트럼프 미 대통령을 맞을 준비에 착수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방한을 ‘국빈 방문’으로 규정, 초청국으로서 최고의 예우를 갖추고 있다. 청와대는 백악관의 성명 발표 후 “트럼프 미 대통령 내외가 문 대통령 내외의 초청에 따라 한국을 국빈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국 정상이 국빈 방문 자격으로 한국을 찾았던 사례는 극히 드물다. 지난 1992년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당시 ‘아버지 부시’인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미 대통령의 방한이 마지막 국빈 방문이었다. 


그로부터 25년만에 우리 대통령이 미 대통령을 국빈 방문 자격으로 초청한 것이다.

이처럼 국빈 방문 사례가 적은 이유는 대통령 임기 중 나라별로 1회에 한해 국빈 방문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재선을 하지 못하면 문 대통령 임기 중 국빈 방문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에 국빈 방문은 그 선택에 있어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트럼프 미 대통령 방한에 ‘국빈 방문 카드’를 집권 5개월 만에 꺼내든 것이다. 문 대통령이 이번 방한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 논란을 일찌감치 벗어나고자 하는 문 대통령의 의지로 해석된다. 코리아 패싱은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이후 가장 큰 외교·안보적 과제 중 하나다. 북한과 관련된 이슈들이 터질 때마다 야 3당에선 코리아 패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줄기차게 흘러나왔다. 

청와대는 “실체가 없다”며 코리아 패싱을 부정하지만 야 3당의 목소리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일례로 이달 초 북·미 간 대화 채널이 있다는 틸러슨 미 국방장관의 발언이 나가자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은 “미국이 북한과 직접 대화를 하려는 건 당사자인 우리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문재인 패싱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국민의당도 “북·미 관계가 빠르게 전개되는데 당사자인 우리가 관람객임을 인정하는 건 아니냐”며 주도적 외교를 주문했다.


그러나 트럼프 미 대통령의 중·일 방문 일정은 2박씩인 데 비해 25년 만의 국빈 방문이라는 한국 일정은 1박뿐인 것으로 확인돼 코리아 패싱 논란이 더욱 가열되는 역효과가 나고 있다.

워싱턴 주미대사관 국정감사서 한국당 홍문종 의원은 방한에 비해 방일 기간이 더 긴 것을 두고 안호영 주미대사에게 “실제 우리가 미국과 사이가 안 좋기 때문에 한국 문제를 일본과 협의하는 게 아니냐”고 캐물었다.

한·미 차관, 북핵 공조 논의
중·일은 2박인데 한국만 1박

같은 당의 유기준 의원도 “(하루에) 주한미군을 만나고 정상회담·국회연설까지(하려면) 절대적 시간이 적지 않느냐”며 “일본의 아베 총리가 트럼프 미 대통령과 골프를 치며 오해를 풀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트럼프 미 대통령과) 한 시간 이상 의견을 나눈 것처럼 문 대통령도 트럼프 미 대통령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일본은 2박3일을 방문하는데 전세계 초미의 관심사인 한반도 문제의 당사국인 한국에선 짧게 머물고 가는 일정을 잡았다. 여러 측면서 좋지 않은 후유증이 예상된다”며 “정말 속상하고 나라 체면이 말이 아니다”라고 개탄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을 하루라도 더 모시려는 중·일과의 물밑 파워게임서 한국 외교 당국이 밀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을 발표하면서 각 나라별 도착과 출발 날짜를 명시적으로 나타내지 않았다. 단지 “11월5일 일본서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이 시작된다”고만 밝혔다. 

청와대 역시 “11월7일에 공식 환영식과 한·미 정상회담 및 만찬 일정이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정확한 도착 및 출발 일정은 협의 중에 있다”고 언급했다. 결국 5박6일이라는 아시아 순방 기간을 두고 한·중·일 세 나라가 물밑 작업을 벌인 결과, 중·일에는 각 2박, 한국에는 1박으로 결정이 났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실’이 있으면 ‘득’도 있는 법. 

코리아 패싱 논란에 기름을 끼얹었다는 점이 실이라면 우리 정부가 실리를 얻은 점은 ‘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중·일에는 없는 국회연설 등 무게감 있는 일정이 포함돼있어 단순한 1박이지만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정치적으로 이득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의식했는지 청와대와 주미대사관 측은 이번 1박 일정이 절대적 시간이라는 명분보다 실리를 추구한 결정이었다는 입장을 내놨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미국 측은 당초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후 첫 방한임을 감안해 2박3일 일정을 추진하고자 했지만 한국에 너무 늦은 밤에 도착하는 데 따른 의전적 문제점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7일 오전에 도착하는 일정에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안 대사는 앞서 국정감사서 “머무르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어떤 일을 하느냐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종 득실은?

북핵과 관련해 한·미 정상이 공동의 목소리를 낸다는 점도 문 대통령에게 득이 되는 일이다. 이미 존 설리번 미 국무부 부장관이 지난 18일 서울을 찾아 임성남 외교부 1차관과 북핵 문제 공조 방안을 논의하는 등 이번 방한의 성과물이 한·미 동맹의 재확인 및 북핵 공동대응 선언임을 예고했다. 과연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이 출범 후 가장 큰 취약점으로 지적받아온 문재인정부의 외교·안보 분야에 실마리를 제공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럭비공’ 트럼프의 입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럭비공 같은 입이 또다시 구설을 낳았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전사자 유족에게 부적절한 말을 건넸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AP통신은 지난 17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니제르에서 전사한 라 데이비드 존슨 병장의 부인 마이시아 존슨과의 통화서 “그(남편)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니제르 복무를) 지원한 것 같지만, 마음이 아플 것 같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마치 전쟁터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입대를 한 것이란 의미로 들릴 수 있어 전사자 부인에게 하기엔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성토가 쏟아지고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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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