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가평 별장의 비밀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10.16 10:36:20
  • 호수 11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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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값만 30억대 이른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이던 시절부터 서울시장 때까지 애용한 ‘별장’. 그 별장이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선촌리 ‘된섬’에 위치해 있다.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지난 2006년 서울시 테니스협회장과 호화 파티를 열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그 별장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해당 별장은 이 전 대통령의 ‘현대가 인맥’이 자자손손 물려주는 ‘부의 대물림’ 현장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가평 한적한 곳에 위치한 별장서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해당 별장은 국도 46호선(경춘국도)서 신청평대교를 건너 설악면 쪽으로 가다가 사룡리 방면으로 10㎞가량 떨어진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선촌리 북한강 자락에 위치해 있다. 별장이 있는 ‘된섬’은 지역 주민들 사이서 최고의 명당으로 꼽힌다. 대로변서 진입로를 따라 한참 들어가야 별장에 닿을 수 있다. 남향으로 북한강 줄기가 흐르고 있다. 북한강 뒤로는 산이 막고 있는 밀폐된 구조다.

한적한 장소
실소유주는?

별장 진입로 입구는 철대문으로 막혀있다. 철대문을 지나 15분 정도 걸어가면 20여m 간격으로 놓인 단층 주택 4동이 남향을 보고 나란히 들어선 모습을 볼 수 있다. 15평형 3개와 25평형(사진) 1개동이다. 건물 사이에는 테니스장 등이 위치해 있다.

주택 내부는 방과 화장실 각 한 개, 그리고 거실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거실 한쪽 벽면은 통유리로 제작돼 거실서 북한강과 강변의 맞은쪽 야산을 바라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기자가 찾아갔을 때는 두꺼운 커튼으로 통유리를 모두 가려놨었다. 앞마당에는 수백 평의 잔디밭과 벚꽃나무 등 정원수로 단장해 놓았다.

별장 부지는 1만3200㎡(4000평), 공시지가 기준 28억7100만원(1㎡당 21만7500원)의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이는 토지만 계산한 것으로 건물까지 포함하면 그 가치는 훨씬 높다. 인근의 한 부동산업자는 “모르긴 몰라도 35-40억원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해당 별장은 지난 1988년 이 전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서 현대그룹 회장으로 승진한 때 건축됐다. 호화 파티 의혹이 제기됐을 때 당시 서울시는 “해당 별장은 현대건설이 장기 근무한 임원들을 위해 지어 나눠준 것”이라며 별장의 실소유주가 사실상 이 전 대통령 아니냐는 의혹을 부인한 바 있다.

그러나 별장이 이 전 대통령의 소유임을 짐작케 하는 정황은 곳곳서 발견된다. 별장 인근서 펜션을 운영하는 주민 A씨는 <일요시사>에 “별장이 아니고 이 전 대통령 집안의 ‘안가’”라고 설명했다.

현대가 인맥? 
이렇게 관리!

지난 2006년 4월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은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가평 ‘별장’서 선모 전 서울시 테니스협회장과 호화 파티를 열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선 전 협회장은 그해 3월 이 시장을 위해 테니스장을 사전에 독점 예약하고 테니스장 사용비용을 대납토록 해 ‘황제 테니스 파문’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우리당이 제기한 별장서의 호화 파티 의혹은 황제 테니스 파문의 장본인인 이 시장과 선 전 협회장이 얼마나 돈독한 사이였는지를 입증하고자 하는 취지로 제기됐다.
 

해당 별장서 지난 2003년 10월 이 시장과 선 전 협회장이 30대 중반의 성악과 강사를 포함해 몇 명의 여성들과 함께 별장에서 파티를 개최했다는 의혹이다. 

당시 안민석 우리당 의원은 “선 전 협회장이 여성들을 파티에 참석하도록 주선했다”며 “이 자리서 이 시장과 선 전 협회장은 여흥을 즐겼다”고 주장했다. 이어 “별장은 이 시장을 비롯한 7인의 현대 고위간부 출신 공동 소유로 등기부상 소유주는 이 시장의 처남과 현대 계열사 출신 6인 등 7인”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당의 의혹 제기에 당시 서울시 측은 “별장 파티는 없었고 모임의 날짜나 별장 소유 모두 허위”라며 “안 의원을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어 “이런 정치공세를 계속해서 시정을 방해하고 이(명박) 시장을 음해해 지방선거를 유리하게 이끌어보려는 정치공작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받도록 하겠다”며 “2004년 7월 테니스 동호인 모임의 수련회에 가서 저녁에 불고기를 구워먹고 아침에 테니스를 친 게 전부”라고 해명했다.

‘된섬’에 위치…한적하고 은밀한 곳
인근 주민 “별장 아닌 MB ‘안가’”

앞서 안 의원이 언급한 처남은 김재정씨다. 김씨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다스(DAS)의 최대주주이자 회장이었다. 다스는 최근 이 전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를 최고재무책임자로 선임해 실소유주 논란을 불러왔다. 

별장의 경우처럼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이후 이 전 대통령이 다스의 진짜 주인 아니냐는 의혹이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등기부상 단층 주택 4동과 주변 토지는 7명이 지분을 나눠가지고 있다. 눈에 띄는 사람은 권영미씨. 권씨는 지난 2010년 2월에 사망한 이 전 대통령의 처남 김재정씨의 부인이다. 김씨가 가지고 있던 별장의 1/7 지분은 지난 2010년 2월7일 부인 권씨에게 넘겨졌다.

권씨는 별장 지분과 함께 김씨가 보유하고 있던 다스 주식도 물려받았다. 이후 승계된 주식 중 5%를 청계재단에 기부해 논란을 낳았다. 청계재단은 이 전 대통령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며 설립한 재단이다.

권씨의 남편 김씨는 현대가에 잠시 몸담은 바 있다. 1949년 대구서 태어나 경북중·고를 거쳐 명지대를 나온 후 1976년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6년 후인 1982년 국내공사지원팀 과장을 끝으로 현대건설을 나왔다.
 

김씨는 이 전 대통령의 재산관리인으로 의심을 받았던 인물이다. 이 전 대통령 ‘차명 재산’ 의혹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등장한다.

현대건설을 나온 후 5년이 지난 1987년, 김씨는 이 전 대통령의 큰형 상은씨와 함께 다스를 설립했다. 김씨는 지분 48.99%를 소유, 최대 주주인 동시에 회장까지 역임했다. 다스는 현대자동차에 부품(시트프레임)을 생산·납품하는 업체다. 

현대 출신인 이 전 대통령이 깊숙이 연관돼있을 것이란 의혹이 꾸준히 제기된 이유다.

MB 차명 재산
때마다 등장


다스는 BBK가 운영한 펀드에 190억원을 투자했다가 손해를 보기도 했다. BBK는 재미교포 김경준씨가 운영하고 있었다. 또 김씨는 이 전 대통령이 대주주로 있었던 ‘엘케이이뱅크 중개’(LKe뱅크의 자회사)에도 9억원을 투자한 바 있다.

김씨는 땅을 사는 데 열성적이었다. 1982-1991년 사이 수도권·충청·경북 등 전국 47곳에서 총 224만㎡(67만7600평)의 땅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가평 별장도 그중 하나였다. 

다스가 BBK에 투자한 자금일 것이라고 의심받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 땅은 김씨가 지난 1985년 이 전 대통령의 큰형 상은씨와 함께 사들였다. 이 일대는 같은 해 10월 지하철 3호선(서대문~양재)이 개통되면서 개발붐이 일어 땅값이 크게 상승했다. 

김씨와 상은씨는 도곡동 땅을 16억원에 사 263억원에 되팔았다. 흥미로운 점은 김씨가 도곡동 땅 가운데 일부를 현대건설로부터 사들였다는 점이다.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었다. 

이 때문에 이 전 대통령이 ‘김재정’을 자신의 재산등록용 이름으로 활용했다는 의혹이 짙다.

재산관리인 김재정, 이번에도 등장
대부분 자녀에 증여·상속된 상태


표면상으로 김씨는 수백억원대의 자산가다. 그러나 일련의 모습을 보면 그가 실제로 자산가였는지 의심을 갖게 한다. 1995년 수억원대의 채무를 해결하지 못해 법원으로부터 자택 가압류 조치를 당한 바 있다. 

1998년에는 서울 강남구청이 세금 미납을 이유로 김씨의 논현동 자택을 압류했다. 김씨가 자신이 가진 재산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제기가 가능하다.
 

김씨 외 별장 지분을 가진 6인은 모두 이 전 대통령의 ‘현대가 인맥’이다. 김정국·김광명·박재면 전 현대건설 회장, 심철규 전 현대건설 부사장, 이양섭 전 현대증권 회장, 유재환 전 현대중공업 사장이 그들이다.

김정국·김광명·박재면·심철규는 현대건설 인맥이다. 이중 김정국·김광명·박재면은 이 전 대통령과 ‘정주영 사관학교’ 출신이다. 함께 테니스를 즐길 정도로 이 전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이양섭은 이 전 대통령과 고려대 상학과 선후배다. ‘절친’인 두 사람은 이 전 대통령의 개인적 문제뿐 아니라 기업 문화를 함께 논의할 정도로 돈독한 사이로 정평이 났다. 이 때문에 이 전 대통령 당선된 후에는 여러 언론으로부터 조언가 그룹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지난 17대 대선 때 물밑서 이 전 대통령을 도왔다. 대선을 목전에 둔 12월 ‘서울포럼’ 고문으로 임명돼 이 전 대통령 당선을 위해 막후서 움직였다. 현대가 출신들이 모여 만든 서울포럼은 이 전 대통령을 위해 움직인 대표적 사조직이다. 

선물 받아
자식에게로

이양섭은 지난 14대 대선 때 정주영 현대건설 명예회장이 이끄는 국민당의 선거대책본부장을 역임했던 경력도 있다.

이들 6인은 소유하고 있던 별장의 1/7 지분을 자신의 자녀들에게 증여·상속했다. 즉, 사실상 별장의 주인인 이 전 대통령이 자신의 ‘현대가 인맥’을 위해 별장을 선물했고 이젠 자녀들에게 돌아간 셈이다. ‘부의 대물림’이 착실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좁혀지는 MB 포위망

이명박정권 시절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사이버외곽팀’을 담당한 국정원 직원, 양지회 전현직 간부, 외곽팀장 등을 지난 12일 무더기 기소했다. 양지회는 국정원 퇴직자 모임이다.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은 이날 “외곽팀 담당 국정원 직원 2명을 국정원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이와 관련된 외곽팀 활동 관계자 8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2009년 4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 등과 공모해 심리전단 사이버팀과 연계된 민간인 외곽팀의 불법 정치관여 활동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중 장모씨는 2011년 4월부터 2012년 6월까지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허위 외곽팀장 프로필 8건 작성·행사하고, 2014년 4월 원 전 원장 재판과정서 외곽팀 존재 및 활동 여부와 관련해 위증을 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이 취임하자마자 국정원 퇴직 직원 활용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고도 전했다. 

검찰 관계자는 “원 전 원장이 2009년 2월 취임 직후 퇴직직원 활용 특별지시를 내린 사실이 수사결과 밝혀졌다”고 밝혔다. 이에 원 전 원장은 양지회 회장 이모씨와 직접 만나 외곽팀 ‘사이버동호회’가 전격 창설됐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국정원으로부터 수사의뢰된 외곽팀이 48개에 이르고 소속 팀원들도 다수이다. 이를 담당한 국정원 직원들 수도 많아 일부 추가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현재 나머지 외곽팀들 및 담당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수사도 상당 부분 진행됐으므로 추가 수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조만간 신속히 처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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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