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어 낚은 이재현 CJ그룹 회장

막판 뒤집기 한판승…‘제2의 전성기’ 맞았다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우여곡절 끝에 대한통운을 거머쥔 CJ그룹. 떡 돌리고 샴페인 터뜨리는 요란한 소리가 날만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다. 마냥 웃고 떠들 때가 아니란 분위기다. 이재현 회장의 속내는 복잡하다. 앞에 놓인 숙제가 한두 가지가 아닌 탓이다. 어렵게 ‘대어’를 낚았지만 ‘어항’에 넣기까지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다. 이 회장이 풀어야 할 현안들을 짚어봤다.

포스코 제치고 대한통운 인수 우선협상자 선정
처음 뒤지다 2조 ‘통큰 베팅’으로 전세 역전

CJ그룹이 대한통운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대한통운 주식매각 주체인 대우건설과 아시아나항공은 지난달 28일 포스코-삼성SDS 컨소시엄, CJ제일제당-CJ GLS 컨소시엄의 본입찰제안서를 평가한 뒤 CJ 측의 손을 들어줬다. 공동매각주간사인 산업은행과 노무라증권은 실사를 거쳐 이달 중 CJ그룹과 매매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이번 인수전에서 CJ그룹은 포스코 측에 비해 자금력 면에서 절대적으로 열세였다. 처음엔 포스코 컨소시엄 쪽으로 기울다가 극적인 반전이 이뤄진 것이다. 이는 이재현 회장의 ‘통큰 베팅’결과였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기준에서 인수가격은 전체 배점의 75%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가 2조2000억원
예상가 6000억 상회

CJ그룹은 주당 20만원이 넘는 인수가격을 제시, 총 인수 제안 금액은 2조2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당초 시장이 예상했던 주당 18만원대 수준인 1조5000억∼1조600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것으로, 물론 포스코 컨소시엄(주당 19만원씩 총 1조8000억원)보다 높은 가격이다.

전세를 역전시킨 CJ그룹의 베팅은 이 회장의 강력한 인수 의지에서 비롯됐다. 이 회장은 대한통운 인수를 그룹 시너지와 외형을 키울 수 있는 기회로 보고 과감한 베팅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류사업을 ▲식품서비스 ▲바이오·생명공학 ▲E&M(엔터테인먼트 미디어)과 함께 그룹 4대 핵심사업으로 삼은 이 회장은 대한통운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해 인수전을 직접 지휘했다. 2013년 그룹 목표 매출인 38조원(지난해 매출 18조원) 달성을 위해서도 대한통운을 꼭 인수해야 했다. 이 회장은 인수합병(M&A) 실무를 맡은 그룹 지주회사인 CJ㈜ 기획팀으로부터 실시간 보고를 받으며 “대한통운을 인수해 아시아 대표 물류기업으로 키우자”고 독려해왔다.

CJ그룹은 “물류회사 CJ GLS, 해외로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는 CJ오쇼핑과의 시너지를 통해 대한통운을 그룹 내 주요 성장축으로 삼겠다”며 “2020년까지 매출 20조원을 달성해 DHL 등 세계적인 물류기업과 경쟁할 아시아 대표 기업으로 키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회장의 속내는 복잡하다. 앞에 놓인 숙제가 한두 가지가 아닌 탓이다. 어렵게 ‘대어’를 낚았지만 ‘어항’에 넣기까지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다.

“그룹 외형 키울 기회다!” 이 회장 M&A 직접 진두지휘

우선 시너지에 대한 의문이 적지 않다. 업계 일각에선 CJ그룹이 이미 물류 계열사인 CJ GLS를 보유하고 있어 중복되는 사업이 많아 대한통운과의 인수 효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란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CJ그룹은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일축했다. 회사 측은 “CJ는 지식형 물류회사로 보관 배송에 강점이 있는 반면 대한통운은 운송 항만 하역에 경쟁력이 있어 양사가 결합하면 물류 전 과정에서 서비스가 가능하다”며 “CJ 고객군(소비재 전기 전자 자동차부품)과 대한통운 고객군(군수 사료 곡물 철강)이 겹치지 않는 것도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택배부문 중복에 대해선 “택배사업은 파이를 키워야 경쟁력이 생긴다”며 “택배사업은 규모의 경제가 관건인데 대한통운을 인수하면 글로벌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 물류사업을 2020년까지 20조원 규모로 키워 글로벌 7대 전문 물류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대한통운 노조의 반발도 걸림돌이다. 앞서 포스코를 지지했던 노조는 CJ그룹 인수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지난달 29일 성명을 내고 “CJ그룹이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것을 인정할 수 없다”며 “실사저지, 파업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CJ그룹의 인수를 막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노조는 “지난 80여년 동안 국내 물류의 대동맥을 책임져 온 국내 최대의 물류회사인 대한통운의 미래 비전은 무시하고 인수전이 기업 간 자존심 싸움으로 변질됐다”며 “CJ가 과도한 금액을 제시함으로써 그 부담이 고스란히 대한통운 전 종업원들에게 전가돼 결국 고용도 불안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CJ그룹은 노조 달래기에 나섰다. 노조의 반발을 충분히 예상했던 만큼 차분히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이관훈 CJ㈜ 대표는 “CJ그룹은 우수한 역량을 가진 대한통운 임직원의 안정적 고용을 보장하며, 절대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할 계획이 없다”며 “대한통운 노조와도 상생적인 발전관계를 구축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CJ그룹은 창업이념이 인재제일”이라며 “그동안 국내외 다양한 업체들과의 M&A를 통해 성공적인 통합경험을 축적해 대한통운과도 유기적인 융합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한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대우건설을 인수한 대가로 유동성 위기에 몰린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그랬고, GS그룹 등 국내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을 제치고 대우조선해양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던 한화그룹이 그랬다. 홈에버를 인수한 이랜드, 남광토건을 인수한 대한전선, 하이마트를 인수한 유진그룹 등도 모두 비슷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최근엔 현대그룹이 무리하게 현대건설을 삼켰다 도로 뱉기도 했다.

“실사저지, 파업”
노조 강하게 반발


시장에선 CJ그룹도 자칫 무리한 인수에 나섰다가 그룹 전체가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했던 지난달 28일 대한통운의 종가는 11만1000원. CJ그룹이 주당 20만원이 넘는 인수가격을 제시한 점을 감안하면 경영권 프리미엄이 80%에 이르는 셈이다. 인수 경쟁이 과열되면서 인수가격이 적정 수준을 넘어섰다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으로, 결국 CJ그룹이 ‘통큰 베팅’을 감당할 수 있을지가 물음표다.

M&A시장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대형 인수전에 나섰다가 큰 코 다친 대기업이 한둘이 아니다”라며 “CJ그룹이 무리하게 판을 키우다 수렁에 빠진 기업들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전했다.

CJ그룹은 ‘승자의 저주’는 없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인수 대금 조달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대한통운 인수 자금 2조2000억원은 50대50 투자로 컨소시엄을 구성한 CJ제일제당과 CJ GLS가 절반씩 부담하게 된다.

CJ제일제당은 보유 현금(약 1000억∼2000억원)에 1조원대의 삼성생명 주식을 유동화할 계획이다. CJ GLS는 CJ㈜를 대상으로 한 5000억원 유상증자와 5000억원 상당의 외부 차입을 통해 자금을 마련할 예정이다.

CJ그룹은 “인수가격이 다소 올랐지만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범위다. 1조5000억원 상당의 추가 차입 여력이 충분하다”며 “그룹의 연간 잉여 현금 흐름이 4000억∼5000억원에 달하기 때문에 대한통운 인수로 인해 자금 운영 안정성에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돈만 해결된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이 회장으로선 삼성과의 갈등이 이번 인수전에서 불거진 가장 큰 골칫거리다. 하루빨리 관계 복원이 시급하다.

[남은 숙제들]
1.시너지 효과
2.노조의 반발
3.승자의 저주
4.삼성과 관계
5.법적 공방전

CJ그룹은 삼성그룹과 ‘사촌기업’이다. 이재현 회장과 이건희 회장은 삼촌 조카 사이다. 둘 사이에 균열이 감지된 것은 본입찰을 나흘 앞둔 지난달 23일 삼성SDS가 포스코 쪽에 붙으면서다. 동시에 CJ그룹의 자문을 맡았던 삼성증권이 계약을 철회하면서 갑자기 CJ그룹과 삼성그룹간 갈등으로 비화됐다.

업계에선 삼성이 CJ에 등을 돌린 이유가 두 집안 사이의 오랜 앙금 때문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실제 고 이병철 섬성그룹 창업주의 장남 이맹희씨(이재현 회장 부친)는 3남 이건희 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넘기고 20년 넘게 야인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때부터 두 집안이 여러 차례 갈등을 빚어왔다.

1994년 CJ그룹이 삼성그룹에서 계열분리될 때 서로 마찰을 빚은 게 단적인 예다. 당시 한남동 이건희 회장 집에서 바로 옆에 있는 이재현 회장 집 정문이 보이도록 CCTV를 설치해 출입자를 감시하도록 한 사실이 드러나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졌었다.

삼성그룹 측은 “삼성SDS가 포스코 컨소시엄에 참여한 이유는 비즈니스적 판단이지 그룹 차원의 조직적 개입은 없었다”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CJ그룹 측은 삼성을 향해 대놓고 삿대질을 했다. CJ는 지난달 27일 보도자료를 통해 “비도덕적인 삼성증권의 행태에 배신감을 느낀다”며 “이번 사태로 인한 유무형의 손실에 대해 명백히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룹 관계자는 “삼성SDS의 지분 투자가 그룹 차원의 의사결정 없이 진행됐다고 믿을 수 없다”며 “삼성의 의도가 무엇인지 밝혀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한통운 인수전이 삼성가 집안싸움으로 흘러가자 CJ그룹은 “입찰 과정에서 삼성그룹과의 갈등을 지나치게 부각했다”며 홍보실장을 전격 교체하는 것으로 서둘러 봉합하려 했지만, 삼성과의 불편한 관계는 물론 홍보실장 경질 배경을 두고도 이런저런 뒷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법적 문제도 남아있다. CJ그룹은 삼성증권에 대해 강경 대응할 뜻을 밝힌 바 있다. CJ그룹은 “인수자문 계약을 철회한 삼성증권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 법적 책임을 물을 방침”이라며 “손해 내용으로는 삼성증권 측의 잘못으로 자문 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된 점, CJ의 정보가 누출될 가능성, CJ가 인수 성공시 얻을 경제적 이익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경고했었다.

반면 포스코는 CJ그룹 선정 과정에 의문점이 있다며 법률 검토에 들어갔다. 포스코는 “인수 주체가 CJ㈜로 알려졌는데 실제 본입찰에는 CJ제일제당과 CJ GLS가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입찰 주체가 바뀐 부분에 대해 법률적 문제가 없는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또 “CJ 측이 이사회 결의 내용을 공시한 적이 없으며 이사회 개최 여부도 불투명하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CJ그룹 측은 “법적으로 문제 될 것이 전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삼성가 갈등 비화
관계 복원 될까

우선협상대상자가 최종 승자는 아니다. M&A 전문가들은 “우선협상자로 CJ그룹이 선정됐지만 매각 작업이 완전히 마무리된 게 아닌 만큼 본계약까지 두고 봐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예비협상대상자인 포스코도 “아직 인수전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를 잘 아는 CJ그룹은 내부 단속에 들어갔다. 이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끝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유지해 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CJ그룹이 험난한 여정을 잘 마치고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지 시선이 쏠리고 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