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삼각연대설 추적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9.11 10:34:22
  • 호수 11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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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당 뭉치면 아무도 못 말린다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문재인정부가 들어섬과 동시에 민주당의 독주가 지속되면서 야권을 중심으로 연대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현재 정치권서 떠오르는 연대론은 다양하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제안한 자유한국당-바른정당-국민의당을 포함한 ‘야권통합론’부터 시작해 한국당-바른정당의 ‘보수통합론’, 국민의당-바른정당의 ‘중도통합론’까지 거론된다. <일요시사>는 정가에 떠도는 연대설을 기초로 향후 정국을 예측해봤다. 
 

연대론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취임 이후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극중주의’를 표방한 안 대표가 선명 야당을 주창하면서 야권연대가 용이해진 모습이다. 야3당 연대에 신호탄은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이 쐈다. 이들은 여당이 50% 안팎의 지지율로 야3당을 압도하고 있는 가운데 이대로 지방선거를 치르게 되면 ‘공멸된다’는 위기론을 내세우고 있다.

최근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지난 대선처럼 내년 6월 지방선거서 야권이 각각 광역단체장 후보를 공천하면 승산이 없다”며 “야3당이 최소한 수도권 3곳서라도 시·도지사 후보 단일화를 이루는 지방선거 연대를 해야 한다”고 야3당 연대를 공식 제안했다. 

정책연대 ‘솔솔’
곧바로 선거연대?

그가 언급한 수도권 3곳의 광역단체장은 현재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원순 서울시장, 한국당 소속 유정복 인천시장, 바른정당 소속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으로 구성돼있다. 하지만 정 원내대표의 3당 연대 구상은 현 시점 바로 성사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중론이다. 

‘한국당-바른정당’ 연대론은 대선 이후 정치권 정계개편 시나리오에 빠지지 않고 거론돼왔다. 앞서 대선을 앞두고 바른정당 의원 10여명이 집단 탈당했다가 한국당으로 복귀했다. ‘혁신보수’를 기치로 내세웠지만 세력 확장성의 부재는 일부 의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후 홍준표 대표는 바른정당을 ‘첩’으로 비유하며 한국당에 흡수되는 방식의 통합을 강조했다. 하지만 바른정당의 대표적 ‘자강론’자로 알려진 이혜훈 의원이 당 대표에 오르면서 바른정당은 ‘자강’ 분위기에 더욱 빠졌다.

통합의 방식도 두 당의 합당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통합전대’를 통해 새 지도부 구성을 주장하는 바른정당과 ‘박근혜 출당→바른정당 흡수통합’ 방식을 구상 중인 홍 대표와의 의견 폭이 좁아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두 당의 합당을 부정적으로 보는 의원도 존재한다. 바른정당 하태경 최고위원은 “한국당이 (바른정당 의원) 몇 명이라도 빼가려는 작전”이라며 “박 전 대통령 출당으로 그 (바른정당 의원들의 탈당) 명분을 만들어주려 하는데 박 전 대통령 탈당은 유효기한이 지났다”고 탈당 논의에 선을 그었다.

위기의 한국당…연대론 띄우기 감지
정책 공감대…내친김에 선거연대도?

그러면서 “한국당 자체가 폐족이고 무엇을 해도 수구정당이 돼버린 것이다. 한국당과의 통합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앞서 국민의당 손학규 상임고문은 하 의원을 만난 자리서 “바른정당이 한국당과 손을 잡는 것은 정치 퇴행”이라며 “국민의당과 함께 ‘제3의 물결’을 일으켜야 한다”고 조언한 바 있다. 

다만 최근 한국당과 바른정당 의원들이 초당적 토론 모임인 ‘열린토론, 미래’가 두 당 연대의 시발점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열린토론, 미래’는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과 한국당 정진석 의원이 문재인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을 저지하자며 만든 정책연대 모임이다.


출범식서 열린 토론회 주제는 ‘원전의 진실, 거꾸로 가는 한국’이었지만 토론 내용보다는 참석자들 면면에 더 큰 관심이 쏠렸다. 한국당에선 김성태·김학용·이만희·장석춘·정종섭 의원 등 바른정당 탈당파 의원들이 참석했다.

바른정당에선 주호영 원내대표와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 등 원내 지도부와 대선 과정서 유승민계로 분류된 의원 12여명이 참석했다. 

해당 모임을 이끈 김무성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정책연대를 위해 출범했지만 양당 통합의 베이스캠프로 갈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 “그런 고민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당 및 바른정당 일각서 야권 통합에 반대하는 것에 대해선 “다 극복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한국당 ‘YES’
국민-바른 ‘NO’

바른정당은 한국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당과도 정책연대를 통해 통합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국민의당과 정책연대 모임의 중심에는 바른정당 내 중도파들이 자리하고 있다. 두 당을 잇는 역할은 바른정당 내 유일한 지역구 의원인 정운천 최고위원이 맡고 있다.
 

정 최고위원은 “내주 국민의당 의원들과 함께 가칭 ‘중도통합포럼’을 만들어 본격적인 정책연대를 시작할 것”이라며 “바른정당 내 상당수 의원들이 참여의 뜻을 보이고 있으며 국민의당 의원들과도 이미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국민의당은 바른정당과의 정책연대 모임 추진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확대 해석에 대해서는 경계했다.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는 “당 차원서 바른정당과 공식적으로 연대하는 것은 적절치도 않고 그런 얘기를 꺼낼 필요도 없다”면서도 “바른정당과 우리 당이 안보를 제외하면 비슷한 부분이 많으니 중도통합포럼 모임을 통해 자연스럽게 개별 의원들끼리 의견을 공유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당은 포럼뿐만 아니라 정기국회 교섭단체 연설을 통해서도 교감을 드러냈다.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와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지난 6일과 7일 각각 정기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했다. 국민의당은 바른정당 주 원내대표의 연설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평가했고 바른정당도 국민의당 김 원내대표 연설을 “속 시원하고 공감된다”고 호평했다.

양당의 교섭단체 연설 내용을 들여다보면 각 분야서 겹치는 부분이 많아 연대 가능성이 점쳐진다. 

양당 원내대표는 나란히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인 소득주도 성장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다. 주 원내대표는 “소득주도성장이 아니라 혁신주도 성장이어야 한다”며 “정부가 새로운 산업혁명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다면 민간기업 차원서의 준비라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원내대표 역시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은 이론적으로나 정책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며 “산업과 노동시장의 구조개혁과 혁신, 기업의 신규투자가 뒤따라야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있어서도 입장을 나란히 했다. 주 원내대표는 “신고리 5·6호기의 공사 중단과 공론화위원회 설치를 통한 탈원전은 절차적으로 큰 문제를 갖고 있다”며 “적법절차를 무시한 설익은 정책 남발은 중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국민의당 소속 의원은 주 원내대표 연설에 대해 “국민의당 연설인 줄 알았다. 바른정당은 우리와 노선이 비슷하다”며 “북핵에 대응하는 부분에 있어서 바른정당이 조금 더 강경한 것을 제외하면 거의 똑같다고 보면 된다”고 말해 정책연대에 긍정적 입장임을 시사했다.

국민의당 최명길 원내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소득주도 성장의 한계를 지적한 점과 복지 포퓰리즘의 위험성을 지적한 대목은 어제 우리당 원내대표가 밝힌 진단과 해법의 방향이 일치한다는 점에서 환영한다”며 “진단과 해법이 같다는 것은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해 협력해갈 수 있다는 뜻일 것”이라고 러브콜을 보냈다. 
 

바른정당도 국민의당과 같은 입장을 보였다. 바른정당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오랜만에 국민들 가슴속을 들여다 본 듯한 속시원하고 공감되는 연설”이라고 평했다. 

정국 소용돌이 
연대 시너지


정치적 이념이 서로 다른 3당 사이에 물리적 결합이 당장 이뤄지긴 어렵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하지만 3당 중 2당이 정책연대를 넘어 선거연대로 나아간다면 정국은 소용돌이 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안보를 제외하고는 정책적 측면서 사실상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연대 가능성은 한껏 높아진다. 만약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두 당이 선거연대에 나선다면 명실상부한 원내 3당으로 거듭날 수 있다. 

아울러 전국정당으로 발돋움할 가능성도 높다. 국민의당은 호남의 지지를 기반으로 탄생한 정당으로 호남의 지지 없이는 정당이 유지되기 힘든 태생적 한계를 지녔다. 반면 한국당을 박차고 나온 바른정당 의원들의 경우 특정 지역에 편중되지 않고 전국에 골고루 분포돼있다.

또한 바른정당 의원들은 대부분 재선·3선 이상으로 국회 및 지역서 정치적 영향력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서 양당이 선거연대에 나선다면 양당 입장서 가장 큰 숙제인 ‘확장성’에 대한 고민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 일각에선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민주당과 합당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꾸준히 대두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민주당서 반발할 가능성이 커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게 사실이다.

지지율 50% 정당이 지지율 5%대 당과 합쳐 ‘득’ 볼 게 없다는 얘기다. 진퇴양란의 상황서 국민의당은 바른정당과의 연대가 유일한 돌파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바른정당도 마찬가지다. 바른정당은 원내 20석으로 간신히 교섭단체를 구성한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세력의 차이로 인해 한국당으로부터 흡수에 대한 요구를 꾸준히 받고 있다. 또, 바른정당서 한국당과 합당한다고 하더라도 목소리를 높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국민의당과 합친다면 한국당과 비교해 동등한 위치서 협상이 가능하다.

국민-바른 시너지↑…한국당 물음표 
민주당 적폐세력 주장…과연 결과는?

또한 양당 의원들도 나란히 인정하는 부분인 정책적 공감대도 합당 혹은 연대 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해봄직하다. 그렇다면 국민의당과 한국당의 연대는 과연 가능할까. 일단 두 당 간 연대 그림은 내년 지방선거 전략적 연대가 거론된다.

즉 특정 광역시에 연대를 통해 전략공천을 내세운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3당 간 지방선거 연대를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국민의당은 지방선거 연대에는 선을 긋고 있다. 

우선 ‘자강’의 아이콘인 국민의당 안 대표가 연대에는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섣불리 한국당과 연대에 나설 경우 여당으로부터 ‘적폐세력’이라는 프레임에 갇힐 가능성도 배제키 어렵다. 또, 각종 부정적 여론속에 당선 된 안 대표가 정치적 계산에 바탕을 둔 연대에 나설 경우 호남 민심의 이반 가능성도 예측된다. 

특히 이번 당내 경선서 안 대표는 호남 민심을 상당 부분 잃을 것으로 파악된다. 우여곡절 끝에 당의 선장이 됐지만 정치적 상처를 입었다. 

다만, 한국당 입장에선 국민의당과의 연대가 돌파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연대를 거론한 만큼 선거연대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양새다. 한국당 홍 대표가 안 대표와의 회동서 ‘NO연대 제스처’를 분명히 했지만 이면에는 연대의 불가피성을 충분히 인식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내년 지방선거서 패할 경우 향후 다가올 총선과 대선을 맞이하기도 전에 당이 존폐 기로에 설 수 있다는 공감대가 당내에 형성돼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한국당의 연대 강조가 국민의당에게 공을 넘기는 액션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즉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국민의당이 한국당과의 연대설에 휘말릴 경우 국민의당 내부에선 민주당과의 연대 및 합당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민주당-국민의당) 대 (한국당-바른정당)의 양당 체제를 형성코자 3당 연대설을 키웠다는 것이다. 

민주 적폐프레임
3당 명분 딜레마

만약 3당이 실질적으로 연대에 이른다면 정국은 소용돌이 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적폐’ 프레임을 내세워 3당 연대를 거세게 압박할 경우 당 색깔이 뚜렷한 3당이 내분에 휩싸일 가능성도 거론된다.

최근 정치권에 쏟아지는 3당 연대에 대해 민주당 최재성 정당발전위원장은 “연대를 성립시키는 3당의 목적도 불분명하다”며 “이미 여소야대인 상황서 그들의 연대는 근본적으로 다른 큰 세력과 경쟁하기 위해서라는 명분도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당을 연대의 중심으로 세우게 된다는 점에서 적폐 본진 입장에선 흡수고, 적폐 이탈 세력인 바른정당은 회귀며 적폐를 나무랐던 국민의당은 배반”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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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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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