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치는 불량 검사들 백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8.28 10:16:11
  • 호수 11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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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검사 추행에 만년필 뇌물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법무부는 최근 검찰 개혁과 맞물려 비리 검사를 무더기 징계했다. 그동안 검사들의 징계는 잘 드러나지 않았으며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이번에 법무부가 발표한 검사 징계의 내용을 보면 정직·징계부가금·견책·면직 등이다. 이들 검사들의 비위 행위 또한 다양했다.  
 

지난 2일 법무부는 13억원이 넘는 재산을 허위 신고한 평검사와 동료 직원을 반복적으로 성희롱하고 사건 관계인에게 수백만원을 받는 등 부적절한 처신을 한 검사들에 대한 징계를 확정했다. 

13억 어디로?
재산신고 누락

검사들은 검사장 승진 전까지 재산 등록을 한다. 하지만 검사장이 되면 재산공개 의무가 있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1급(검사장) 이상 재산 공개 대상자에 한해서 보유 주식의 직무연관성 평가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진경준 전 검사장의 ‘넥슨 주식 대박 사건’으로 검사들의 재산 검증이 엄격해졌다. 최근 재산을 허위 신고 혹은 누락한 검사들에 대한 징계가 이루어졌다. 

대구지검 안모 검사는 지난 2월 정기재산변동 신고 때 13억4000만원의 재산을 잘못 신고해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혐의로 지난달 18일자로 견책 처분을 받았다. 안 검사는 엘리트 검사였다. 경기고·서울대 법대 졸업, 사법연수원 35기 수료했다. 


성적이 우수한 연수생들만 갈 수 있는 서울중앙지검 초임 검사로 발령 받았다. 법무부 검찰국 검사 등 검찰총장 표창까지 받은 엘리트 검사였다.

현직 검사들 무더기 징계
법무부 이례적 내역 발표

안 검사처럼 재산 신고를 잘못한 창원지검 진주지청 허모 검사와 서울중앙지검 김모 검사도 같은 날 견책 처분을 받았다. 

허 검사는 2016년 공직자 정기 재산변동 신고시 합계 8억4423만9000원의 재산을 잘못 신고해 직무 의무를 위반했다. 허 검사는 대구 경신고·한양대 법대 졸업, 사법연수원 36기 수료 후 대구지검 포항지청서 검사 생활 시작한 11년차 검사다.

김모 검사는 2016년 공직자 정기 재산변동 신고시 합계 1억3213만5000원의 재산을 잘못 신고해 직무상 위반으로 징계처분을 받았다. 김 검사는 광주 송원여고·고려대 법대 졸업했다. 사법연수원 36기 수료 후 인천지검 부천지청서 검사 생활 시작한 11년차 검사다.
 

이들 모두 견책 처분을 받았다. 견책은 검사징계법상 해임·면직·정직·감봉·견책 5단계로 된 징계 처분 가운데 가장 수위가 낮다. 현행 법률은 견책을 ‘검사로 하여금 직무에 종사하면서 그가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게 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반성만 하면 되니 당장은 제재가 없지만 다음 인사 때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두번씩이나…
음주운전

검사의 음주운전 역시도 징계 대상에 올랐다. 서울고검 김모 검사는 두 번째 음주운전 적발로 정직 1개월 처분을 받았다. 그는 일요일이었던 지난 4월9일 점심에 술을 마신 뒤 차량을 몰고 관사로 복귀하는 길에 경찰의 음주운전 단속에 적발됐다. 

김 검사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95% 상태로 면허 정지 수준으로 전해졌다. 적발 당시 경찰 조사에서 “결혼식에 참석해 술을 마시고 나서 잠시 쉬다가 운전을 했다”며 김 검사는 음주운전 사실을 시인했다.

김 검사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5년 수도권 차장검사로 근무할 때도 음주운전을 하다 그해 8월20일 서울고검으로 인사조처되고, 감봉 1개월 징계를 받았다. 음주운전 전력이 있음에도 지난 2월 지청장 발령을 받으면서 사실상 복권됐다. 

그러나 2개월 만에 다시 음주운전이 적발돼 다시 서울고검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 검사는 대구 영신고·서울대 법대 졸업, 사법연수원 24기 수료 후 변호사로 개업해 2년간 일하며 뒤늦게 검사로 임용된 케이스다.

손을 덥석∼
성희롱·추행

여성 실무관에게 사적 만남을 제안하고 여 검사와 저녁 자리서 부적잘한 신체 접촉을 한 강모 부장검사는 면직 처분을 받았다. 면직은 공무원 신분을 해제시키는 임용행위를 말한다.

강 부장검사는 2014년 3∼4월 직원 B씨에게 “영화를 보고 밥을 먹자”는 제안을 하고 야간 및 휴일에 같은 취지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수차례 발송했다. 
 

지난해 10월엔 다른 직원 C씨에게 “선물을 사주겠으니 만나자”는 제안을 수차례에 걸쳐서 하기도 했다. 또 지난 5∼6월에는 다른 여검사 D씨에게 사적인 만남을 제안하는 문자메시지를 수회 보내고 승용차 안에서 손을 잡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강 부장검사는 대구 경신고·한양대 법대를 졸업했다. 사법연수원 26기 수료 후 부산지검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 외에도 여검사가 성추행 사건을 조사하던 중 피해자에게 “조심성이 없다”며 막말을 했다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가 접수됐다. 피해자는 검사가 참고 넘어가라며 훈계하듯 말했다고 주장했다.

홍삼정을…
금품수수


사건 브로커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은 정모 고검검사에게는 정직 6개월과 징계부가금 738만5000원의 징계가 내려졌다.

정 검사는 2014년 6월 서울고검서 취급하는 사건에 관해 사건 관계인에게 특정 변호사의 선임을 권유했다. 같은 해 5∼10월까지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한 청탁으로 사건 브로커로부터 식사 3회, 술 4회, 골프 1회 등 합계 366만7500원 상당의 향응을 수수했다. 

2016년 8월부터 12월까지 불필요한 반복 소환 및 강압적·모욕적 발언 등을 하여 인권보호 의무를 위반하며 검사의 품위를 손상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4년 솜방망이 처분 수두룩
10명 중 8명 주의·견책·경고만

정 검사는 광주 숭일고·고려대 법대를 졸업했다. 사법연수원 19기로 변호사 개업을 해 2년간 일한 뒤 뒤늦게 검사로 임용됐다.

지난 5월에는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1억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박모 검사와 현직 검사가 해임됐다. 이어 같은 해 서울중앙지검 특수 1부 박 검사를 불구속 기소했다. 


박 전 검사는 2010년께 정 전 대표로부터 감사원 감사 무마 대가로 1억원을 받았다. 정 전 대표가 감사원의 서울메트로 감사를 무마하기 위해 감사원 고위 간부와 인연이 있는 박 전 검사에게 돈을 건넸다는 의혹이다.
 

또 사건 관련자로부터 99만원 상당의 만년필 1개 및 31만원 상당의 홍삼정을 받은 서울고검 소속 김모 검사도 견책 징계를 받았다.

그동안 징계는?
10%만 중징계

이번 법무부의 무더기 검사 징계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그 동안 검사들의 솜방망이 처분 사례를 비춰보면 더욱 그렇다. 지난 4년간 징계를 받은 검사가 2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중 10명 중 8명은 ‘주의·견책·경고’ 등 솜방망이 징계를 받는 데 그쳤다.

지난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주광덕 새누리당 의원이 대검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4년(2013∼2016년 6월) 검사 감찰 및 징계현황’에 따르면 감찰로 징계를 받은 검사는 모두 202명이었다.  

징계 사유로는 직무태만이 67건(33.2%)로 가장 많았고 재산등록 49건(24.3%), 규정위반 35건(17.3%), 품위 손상 21건(5.9%), 음주운전 12건(5.9%) 순이었다. 향응 및 금품수수에 따른 징계도 13건(6.4%)에 달했다.  

반면 징계수위는 솜방망이였다. 전체 202건 중 수위가 낮은 경고(109건)·주의(44건)·견책(14건)이 82.7%(167건)에 달했다. 10명 중 8명은 형식적인 징계를 받는 데 그친 것이다. 반면 면직·의원면직·정직·해임 등 중징계 비율은 9.9%(202건 중 20건)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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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