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발 정계개편 막전막후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08.14 10:26:00
  • 호수 1127호
  • 댓글 0개

당권 잡아도 문제 못 잡아도 문제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정계개편의 핵’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다시 한 번 움직였다. 대선 패배 이후 잠행을 거듭하던 안 전 대표는 국민의당 8·27전당대회(이하 전대)에 당 대표로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재 국민의당은 친안(親安)과 반안(反安)이 나뉘어 내홍을 겪고 있다. 일각에선 전대를 기점으로 당이 찢어지는 사태까지 예상하고 있다. <일요시사>는 안 전 대표의 당 대표 출마 선언 후 예상되는 정계개편 시나리오를 취재했다.
 

“결코 내가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우선 당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지난 3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국민의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연 안철수 전 대표가 당 대표 선거 출마를 공식선언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차기 대선 출마라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 당 대표 출마를 선언했다는 일각의 비판을 의식했는지 기자회견장서 “다음 대선에 나서는 것을 우선 생각했다면 물러나 때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이라고 해명했다.

안철수 출마
정치계 ICBM

안 전 대표의 선언은 국민의당뿐 아니라 정치권 전체를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현 대변인은 안 전 대표의 선언이 있던 날 논평을 통해 “반성문에 잉크도 마르지 않았음에도 국민의당 대표로 출마한다고 도전장을 낸 것은 국민을 기망하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상대적으로 말을 아꼈다. 바른정당 전지명 대변인은 구두논평을 통해 “정계서 물러났던 정치인이 다시 정치복귀 선언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면서도 “다만 안 전 대표의 당 대표 출마 선언은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한국당은 별다른 논평을 내지 않다가 안 전 대표가 극중주의(진보·보수가 아닌 완전한 의미의 중립노선을 고수하는 것)를 표방하자 그때서야 “오락가락하던 과거 행적을 볼 때 실천에 옮겨질지 미지수”라고 비판했다.

다른 당보다 국민의당 내부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선언 당일 당내 의원 12명은 “안 전 대표의 출마에 반대한다”며 성명을 냈다. 그들은 지도자로서의 책임을 강조하며 안 전 대표에게 출마 철회를 요구했다.

특히 반안(철수)계 의원들과 호남 출신 의원들의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호남 출신 황주홍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서 “3·15부정선거 때의 최고책임자가 4·19혁명 이후 민주정부 구성을 위한 대선에 출마한다면 반대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반안·호남 반발
집단 탈당설도

안 전 대표와 투톱을 이뤘던 박지원 전 대표 역시 “명분도 실리도 없고, 시기상조라고 생각해 (안 전 대표의) 출마를 만류했다”며 “당 의원 40명 중 30명 이상이 반대하고 있고, 당 고문단도 분노의 경지까지 도달해 탈당하겠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 전 대표의 말처럼 당 고문단인 동교동계는 안 전 대표의 출마에 놀라움을 넘어 분노를 표출했다. 동교동계서 한때 집단탈당설까지 나오며 안 전 대표를 압박했지만 그는 ‘마이웨이’를 선택했다. 이에 동교동계는 “정치적 책임을 지고 출마를 철회했으면 좋겠다”며 거듭 철회를 압박했다.
 

지난 8일은 동교동계의 분노가 극에 달했던 순간이다. 정대철 상임고문을 비롯해 홍기훈, 박양수, 박명석, 이훈평, 최락도, 이경재, 이창근, 류의재 등 원로 고문단 9명은 이날 서울 여의도 한 음식점에 모여 안 전 대표의 출당 건의까지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반대 목소리는 결국 허공의 메아리로 그쳤다. 안 전 대표는 지난 10일부터 시작된 전대 후보 등록 첫날 서울 여의도 당사를 찾아 절차를 마쳤다. 등록을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난 안 전 대표는 “지금은 당이 위기상황”이라며 “이번 전대는 혁신 전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정배·정동영 등 다른 당 대표 출마자를 중심으로 반안 조직이 공고해지고 있다. 여기에 결선투표제가 전대 룰로 결정돼 구도는 ‘친안 대 반안’ 대결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결선투표제는 과반을 득표하는 당선자가 없을 시 1·2위 후보자를 대상으로 재투표하는 선거 제도로 당 설립자이자 지명도가 가장 높은 안 전 대표 대 다른 반안계 후보의 대결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렇다면 안 전 대표는 이 같은 상황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왜 출마를 강행하는 것일까. 중론은 국민의당 창당 때부터 이어져온 ‘호남 중진 대 친안계(새정치)’의 갈등을 이번 기회에 매조지하겠다는 의지 표명이란 해석이다.

정계개편의 핵, 국민당에 직격
‘친안 VS 반안’ 파워게임 비화

이는 안 전 대표가 발표한 출마선언문의 행간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외연을 넓혀서 전국 정당으로 우뚝 서겠다” “좌우 이념에 경도되지 않고 실제로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일에 매진하겠다” 등 호남과 진보를 겨냥한 듯한 발언이 안 전 대표의 입에서 쏟아졌다. 친안계 내에서도 “호남색을 빼야 한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온다.

안 전 대표의 출마가 ‘호남색 빼기’ 전략의 일환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지난 대선 국면을 주목한다. 

즉, 안 전 대표가 지난 대선서 ‘호남당’의 한계를 느꼈을 것이란 해석이다. 대선 패배의 원인을 진단한 안 전 대표의 생각이 ‘전국 정당으로 거듭나지 않는 이상 민주당을 이길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실제 대선 직후 수많은 언론과 정치전문가들이 문 대통령의 대선 승리 요인으로 ‘전국의 세’를 꼽은 바 있다. 반면 호남 정당으로 불리는 국민의당은 상대적으로 세 확장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친안 측에서는 ‘호남 책임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호남서 압도적 의석수를 가지고 있음에도 지난 대선 때 민주당 문재인 당시 후보보다 호남서의 득표가 적었던 것을 두고 책임론을 제기한 것이다.

호남색 빼기를 진단한 안 전 대표와 친안계가 들고 나온 처방전이 바로 당 대표 출마 카드다. 여기에 호남·반안 측이 쉽사리 국민의당을 탈당할 수 없다는 판단은 안 전 대표가 수많은 철회 요구에도 뜻을 굽히지 않는 이유로 작동하고 있다. 


동교동계와 호남·반안 측이 연일 출마 철회를 요구했지만, 안 전 대표는 후보 등록일 첫날 당사를 찾아 그들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호남색 빼기
작심한 듯

결국 ‘나가려면 나가’라는 식의 신호라고 해석될만하다. 그러나 동교동계 및 호남 진영은 섣불리 국민의당을 떠날 수 없는 상황이다. 유일한 선택지라고 할 수 있는 민주당이 입당에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국민의당 의원들이 민주당을 떠날 때 ‘친문 패권주의’를 그 이유로 들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지난 19대 대선서 당선됨에 따라 민주당은 국민의당 의원들이 떠날 당시보다 친문 세력이 더욱 공고해졌다. 국민의당 의원들이 민주당으로 복당할 명분이 약할뿐더러 민주당 내에서의 반발도 예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방선거를 1년여 앞두고 있는 상황서 민주당은 지지자들의 반발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민주당 친문계와 그 지지자들은 국민의당 의원들이 친문 패권주의를 주장하며 떠난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서 민주당 지도부가 이들을 덥석 받아들였을 때 얻을 표와 잃을 표를 가늠한다면 쉽게 결정 내리기 힘든 게 사실이다. 큰 실익이 없다면 굳이 입당을 받아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민주당 입장에선 이들이 입당해 당내 분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만약 새로 민주당에 입당한 사람들이 내년 지방선거 공천권이라도 요구한다면 민주당이 그려놓은 큰 그림이 오히려 망가질 수도 있는 일이다. 계파 갈등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극중주의 내건 안의 본심은?
정동영·천정배 전격 단일화?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선 안 전 대표가 당 대표로 당선되면 반대파가 집단 탈당할 수 있다고 예상한다. ‘민주당 입당’이라는 구심력보다 ‘안철수 반대’라는 원심력이 더 강하다면 입당 여부와는 관계없이 집단적으로 국민의당을 뛰쳐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지방선거를 앞둔 정계개편의 시작을 의미한다.

정계개편은 몇 가지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정동영·천정배 의원 중 한 명이 당 대표로 당선되면 민주당과의 연대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면 안 전 대표가 당선되면 바른정당과 손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당-바른정당이 손잡는 그림은 새로울 것이 없는 시나리오다. 대선을 전후로 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설이 꾸준히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두 정당이 합당에 나서기엔 호남과 영남이라는 현실적 걸림돌이 존재한다. 

곧바로 합당으로 이어졌을 때 불거질 반발도 예상해야 한다. 이에 서로 간의 연대를 통해 접촉면을 늘려간 후 합당으로 나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 첫걸음이 바로 ‘안철수 당 대표’다.

안 전 대표는 출마선언문 발표서 “바른정당과의 연대는 너무 앞서나간 얘기”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함께 발표한 극중주의 전략은 결국 바른정당을 염두에 뒀다는 게 정치권 중론이다.

친안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바른정당과의 공조 움직임이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최근 국민의당 일부 초선 의원들은 바른정당과의 정책연대를 추진 중이다.
 

국민의당 의원들이 만들어 지난 1일 회동을 가진 ‘한국판 제3의 길 모색과 실천을 위한 모임’도 공조의 일환이다. 현재는 구성이 국민의당 의원들에 한정된 모임이지만, 향후 멤버십을 넓혀 바른정당 등 뜻을 함께하는 다른 당 의원들에게 문호를 넓힐 방침이다.

국민의당-바른정당 의원들이 힘을 합쳐 함께 토론회를 꾸리고 있다는 점도 심상치 않다. 일례로 국민의당 이언주 의원과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은 최근 ‘최저임금 1만원 시대 가능한가’ 등을 주제로 공동주관 토론회를 열었다. 이 의원은 대표적인 친안계 인사 중 한 명이다.

대선 직후 안 전 대표 스스로가 바른정당과의 공조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도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안 전 대표는 대선 후 새로 꾸려질 원내지도부 구성에 대해 “바른정당과 연대·공조 능력을 갖췄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출마 선언 때 “함께 하는 정치세력을 두텁게 하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반발하는 의원들 사이에선 ‘안철수 리더십’ 보이콧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안 전 대표가 당선되면 반안계 의원들이 탈당해 국민의당의 원내교섭권을 박탈할 것이란 극단적인 시나리오다.

당권 레이스는 이미 불이 붙은 상황이다. 안 전 대표보다 앞서 출마를 선언했던 천정배 의원은 지난 6일 기자간담회서 “안 전 대표의 출마는 구태 중의 구태”라며 “몰염치의 극치, 협박의 정치이자 갑질의 정치”라고 비난했다.

바른정당 겨냥
극중주의 호소

같은 날 또 다른 당권 주자인 정동영 의원 역시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고 아무 때나 출마해 당선될 수 있다면 사당화의 명백한 증거”라며 “안 전 대표가 공당이 아닌 사당을 만들려고 한다”고 비난했다. 안 전 대표가 내세운 ‘극중주의’에 대해서도 “‘새 정치’라는 말이 모호했듯이 극중주의라는 구호 역시 모호하다”며 기회주의적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반안 전선을 구축을 위한 정동영-천정배 단일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지난 8일 호남 중진 의원들은 조찬 회동 자리서 이 같은 얘기가 언급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회동에 참석한 장병완 의원은 “안 전 대표가 전당대회에 나오는 순간 단일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오늘만의 이야기가 아닌 (안 전 대표가 출마하는 순간부터)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얘기”라고 밝혔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민의당 ‘제2제보조작’ 사태
“지지자들 실체가 없다”

국민의당 이상돈 의원이 안철수 전 대표의 당대표 출마 지지 선언을 ‘제2의 제보조작’ 사건으로 규정했다. 안 전 대표 출마를 지지한다고 선언한 국민의당 지역위원장 109명의 실체가 없다는 주장이다.

지난 7일 tbs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이 의원은 “(안 전 후보의 당대표 출마를 요구했다는 지역위원장) 109명이 지지 선언을 했다고 하는데 실체가 없다”며 “제2의 제보조작사건이다”라고 전했다. 이 의원은 안 전 대표가 출마를 선언한 이후 꾸준히 “109명 명단을 공개하라”며 조작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지역위원장 109명 누구?
이상돈 의원 의문 제기

앞서 지난 6일 국민의당 김현식, 고무열 지역위원장은 국회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09인의 서명을 확보하는 과정에 일부 거짓과 왜곡이 개입됐다는 합리적 의심이 제기되고 있다”며 “서명과정에 참여한 지역위원장들의 증언에 의하면 취지가 불분명한 질문에 대한 단순한 지지의사 표명이 전대 출마에 동의하는 ‘서명’으로 둔갑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안 전 대표 측은 109명의 명단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서명을 주도한 김철근 전 선대위 대변인은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전당대회를 앞두고 명단을 발표하면 ‘줄 세우기’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며 “(명단을) 준비를 했던 10여명의 지역위원장들이 있는데 그 분들하고 의논을 해서 명단은 발표하지 않은 게 바람직하겠다고 해서 명단을 발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목>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