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문의 부름 받은 문무일 검찰총장 후보자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7.10 10:55:24
  • 호수 11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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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박상기? 윤석열…‘빅4’ 진용 완성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문무일 부산 고검장이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됐다. 옛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중수1과장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차례로 지낸 ‘특수통’이다. 신임 검찰총장 문재인정부 인사의 화룡점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 후보자는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검찰 개혁’과 ‘검찰 조직의 안정’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일 신임 검찰총장에 문무일 부산고검장을 지명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법무부장관 대행을 맡고 있는 이금로 차관이 임명제청한 문 후보자를 지명했다고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연수원 18기
부산고검장 

박 대변인은 “문 후보자는 법무부 범죄예방 정책국장, 대전지검장 등 주요 공직을 두루 거쳤고 치밀하면서도 온화한 성품으로 검찰 내부 신임이 두터워 검찰 조직을 조속히 안정시킴은 물론 검찰개혁을 훌륭히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광주 출신인 문 후보자는 광주제일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뒤 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검사로 임용됐다. 대검 특별수사지원과장·과학수사2담당관, 수원지검 2차장, 인천지검 1차장, 서울서부지검 지검장, 대전지검장, 부산고검장 등을 지냈다. 

지난해에는 검찰개혁추진단 내 ‘바르고 효율적인 검찰제도 정립 TF’ 팀장을 맡아 검찰 개혁 작업을 맡았다. 문 후보자는 당시 검찰 제도 개혁 관련 연구 책임을 맡았다.


문 후보자가 임명될 경우 광주 출신으론 첫 번째 검찰총장이 된다. 호남 출신 검찰총장으로는 김종빈 전 총장 이후 약 12년 만이다. 문 후보자 지명은 검찰 개혁에 대한 의지와 조직 장악력을 두루 고려한 결과로 해석된다. 

새 검찰총장은 67년 만의 비법조인 출신 법무부장관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박상기 법무부장관 후보자와 함께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검찰 개혁을 이행하면서 동시에 유례 없는 격랑을 맞게 될 검찰 조직을 추슬러야 한다. 

앞서 검찰총장 후보 추천위원회는 전날 문 후보자 외에 소병철 농협대 석좌교수, 조희진 의정부지검장 등 4명을 법무부에 추천했다. 

노무현 측근 수사했던 검사가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 후보로

문 후보자는 그동안 풍부한 특수수사 경험과 조직 내 신망을 갖춘 현직이라는 점에서 차기 검찰총장으로 하마평에 오르내렸다. 1988년 2월 2차 사법파동 당시 보였던 소신, 수사검사로 쌓아온 신망이 장점으로 거론된다.

문 후보자는 사법연수생(18기) 시절부터 두각을 보였다.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정기승 대법관을 대법원장으로 지명하자 법조계 반발로 이어진 2차 사법파동 당시 연수생 서명을 주도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당일 긴급이사회를 소집하고 “안보를 핑계로 인권이 무시되던 제5공화국시대의 대법관을 새 대법원장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대성명을 내는 등 법조계의 반발이 일었다. 


이에 사법연수원생 185명은 ‘사법부 독립에 관한 우리의 견해’라는 성명서를 발표해 “정기승 후보자는 사법부에 대한 실추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에 미흡한 인물”이라며 임명철회를 촉구하는 성명과 함께 연대서명을 했다. 

당시 연대서명에는 문 후보자와 문형배 부산가정법원장, 이재명 성남시장 등이 참여했다. 특히 문 후보자가 이러한 움직임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뒤 정기승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은 국회서 부결됐다. 당시 사법연수생들의 집단 행동은 법조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큰 충격을 줬다.

꼼꼼하고 
자기관리 철저

문 후보자는 부실한 초동 수사로 묻힐 뻔했던 지존파 사건 전모를 밝혀내 세상에 이름을 떨친다. 23년 전인 1994년 초임급 검사였던 문 후보자는 전주지검 남원지청서 근무하고 있었다. 작고 한적한 동네서 어느 날 교통사고 한 건이 당시 검사였던 문 후보자에게 보고됐다. 

승용차가 지리산 자락의 험한 산길을 오르다 계곡으로 굴러떨어져 운전자가 즉사했다는 내용이다.

워낙 산세가 가파른 곳이라 그냥 넘길 수도 있는 사안이었지만 문 후보자는 의심하기 시작했다. ‘운전자의 거주지가 성남인데 왜 이 산골까지 왔을까’하는 아주 기초적인 의문서 시작, 시신 상태와 자동차 파손 정도 등을 문 후보자가 캐물었다. 

수사 지휘도 모자라 문 후보자는 직접 교통사고 현장을 찾는 등 사실상 직접 기초 조사해 추락사고를 위장한 살인 사건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것이 바로 당시 천하를 떠들썩하게 했던 지존파 사건의 시작이었다. 20대 7명으로 구성된 지존파는 돈 많은 자들을 표적으로 삼아 5명을 살해하고 이 가운데 시신 2구를 불태웠다. 당시 문 후보자의 수사지휘와 수사기법은 검찰 수사 교본에도 실렸고 후배 검사들 사이에서는 ‘수사 지휘의 바이블’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문 후보자는 지존파 사건으로 이름을 알린 후 정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굵직한 사건들을 도맡아 수사해왔다. 1995년 서울지검 특수부로 발탁돼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수사했다. 

대검찰청에 몸담았던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비리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2007년엔 신정아·변양균 사건을 지휘하며 당시 파견검사였던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문 후보자는 2008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지내며 BBK 사건 주역인 김경준씨의 기획입국설 의혹과 효성그룹 비자금 의혹 수사를 진행했다. 서울서부지검장 재직 때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을 지휘했다. 

2015년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장을 맡아 홍준표 당시 경남도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를 재판에 넘겼다. 당시 수사 방향에 대해 정치권 등에서 의구심을 제기하자 “나는 없는 집안서 태어나 여기까지 왔다. 영예롭게 끝낼 거다. 수사만 볼 뿐 정무적인 건 생각하지 않는다”고 취재진에게 토로하기도 했다. 


검찰총장으로 지명된 문 후보자에 대한 일선 법조계의 평가는 대체로 후했다. 

“한없이 부드럽고 온화한 원칙주의자” “난폭하지 않은 특수검사” 등 호평을 받고 있다. 문 후보자 연수원 동기 이재명 성남시장은 지난 4일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연수원에 의해 집단서명이 제지되자 봉천동 여관에 문무일 최원식 등 몇몇이 다시 모여 밤샘 토의 끝에 반대서명을 하기로 결의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면서 그런 용기와 결단으로 일할 것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이재화 변호사는 문 후보자 만큼 ‘정치 검사’란 소리를 안 듣는 사람도 없다고 평가했다. 이재화 변호사는 “특수통이지만 민주당 내에서도 정치 검사란 소리는 안 들었다”고 평가했다.

판사 출신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문 후보자에 대해 “현직서 총장 후보를 지명한다면 서울중앙지검특수1부장, 법무부 중수1과장을 지낸 문무일 고검장밖에는 아마 대안이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 의원은 지난 5일 YTN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과 전화통화서 “퇴직을 한 소병철 전 고검장이 아니면 현직의 문무일 부산고검장, 두 카드 중 현직 카드를 뽑은 셈”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강단 있고 
명예 중시


하지만 문 후보자 앞에 놓인 현안도 산적하다. 현 정부 초반 2년간 검찰 조직을 이끌면서 각종 개혁 과제를 해결하고 부정부패 수사라는 본연의 업무도 처리해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10년 만의 정치권력 교체기에 출범하는 문무일호는 대규모 인적 쇄신과 제도 개선을 양대 축으로 한 검찰개혁의 거대한 태풍 앞에 섰다.

법조계에선 이르면 7월 하순께 단행될 대규모 정기 간부 인사가 문 총장 후보자의 조직 안착 여부를 가늠할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으로 관측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대통령 선거 등의 영향으로 반년 넘게 지연된 이번 정기 인사를 통해 대대적인 인적 쇄신이 예고된 상태다.

문재인정부는 과거 권력 눈치 보기식 수사를 했거나 권력과 적극적으로 유착한 ‘정치 검사’들을 대대적으로 솎아낼 계획이다. 

법무부는 지난달 청와대와 긴밀한 조율 속에서 ‘과거 부적정한 사건 처리를 한 검사’라는 이유로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 김진모 전 서울남부지검장 등 검사장 이상 고위 간부 4명을 좌천시키는 인사를 단행하기도 했다.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이 모두 공석인 가운데 단행된 소규모 원포인트 인사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검사장급서 차·부장급에 이르는 전체 간부를 대상으로 한 인사가 본편이기 때문이다. 문 후보자는 인사 숙청이 있고 동요하는 검찰 조직을 다독거려 조직을 시급히 안정시켜나가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는 지적이다.

12년만에 호남 출신 특수통 검사
지존파 사건 실체 파헤친 열정파

인적 쇄신 이후 문 후보자가 본격적으로 마주할 난제들은 한둘이 아니다. 문재인정부는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법무부 탈검찰화 등을 구체적인 검찰개혁 과제로 제시한 상태다. 

모두 무소불위의 권력 기관이라는 비판을 받는 검찰의 힘을 다른 기관에 분산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이런 점에서 기존에 가진 힘과 권한을 내려놓아야 할 검찰 내부서 반기기 어려운 내용들이다.

실제로 검찰은 줄곧 공수처 신설, 검·경 수사권 조정 등에 일관된 반대 입장을 취해왔다. 이런 상황서 문 후보자가 검찰총장에 취임하게 될 경우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검찰개혁 방향에 관한 내부적 합의를 모아내는 과정에도 적지 않은 진통이 따를 것이라는 관측이 고개를 든다. 

문 후보자는 청문회 문턱을 넘어 공식 임명장을 받게 되면 곧바로 이 같은 내용의 검찰개혁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문 후보자는  공직사회 부패에 대한 사정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그는 “부패한 공직자는 국가와 국민의 적이자 그 사람이 속했던 조직의 적”이라며 “국민의 여망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 후보자는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 마련된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나 수사권 조정과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그 논의가 시작된 발단이나 배경을 잘 이해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 잇따른 고위검사 비리와 최근의 ‘돈봉투 만찬’ 등 구태에 대한 자성이자 향후 검찰 개혁 의지를 피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검찰 개혁은?
조직 흔들까

문 후보자는 지난 3월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때 21억4300여만원을 신고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12억원대(공시가격 기준) 아파트와 개포동에 부인 명의의 1억7000만원대 상가를 보유하고 있다. 가족 예금은 모두 7억8800만원가량 된다.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89년 5월∼92년 2월 육군 중위로 군복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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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