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토이키노’ 박물관 손원경 대표

“토이키노는 부모와 아이 연결 ‘소통’의 장소”

서울 종로구 삼청동 박물관 거리는 익히 알려진 서울의 명소다. 최근 새로운 박물관이 속속 들어서며 그 면모가 더욱 새로워지고 있다. 현재 이 일대의 박물관은 모두가 개인 박물관으로 규모는 작지만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자랑한다. 특히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만화 영화 캐릭터 인형을 갖고 놀아 봤을 것이다. 유년시절의 ‘추억’으로 쉽게 잊혀졌을 법한 기억을 끄집어 내어 이를 고스란히 박물관에 재현한 공간이 있다. 바로 ‘토이키노’ 박물관이다. <일요시사>는 지난달 29일 삼청동에 위치한 ‘토이키노’ 박물관을 운영하는 손원경 대표를 만났다. 그의 어린 시절 꿈을 모아 놓은 ‘토이키노’에 담긴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북촌 일대는 예술의 거리로 유명하다. 은행잎이 가득한 거리에는 갤러리, 카페, 옷가게, 독특한 장신구 숍 등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기 저기 위치해 있는 독특한 미니 박물관들도 또 하나의 볼거리다.
지난 2006년 10월 문을 연 ‘토이키노 박물관’은 아이들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공간으로 유명하다. 토이키노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 엄마 손을 잡은 초등학생 2명이 재미있고 신기한 듯 영화 캐릭터 장난감을 구경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꿈 담은 박물관
유년시절의 꿈이 현실로

토이키노(TOYKINO)는 장난감의 TOY와 영화를 뜻하는 KINO를 합성한 이름이다. 이 재미있고 신기한 박물관을 만든 주인은 바로 손원경 대표(37)다.
“이곳 ‘토이키노’는 제 유년시절의 꿈이 현실로 이뤄진 곳이라 할 수 있어요. 어릴 때부터 하나 둘 사 모으기 시작한 영화 캐릭터 인형과 장난감이 의도하진 않았지만 저만의 취향,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 놓았어요.”
토이키노에는 영화 및 만화 캐릭터를 소재로 한 각종 인형과 장난감들이 전시되어 있다. 손 대표가 중학 시절부터 20여년간 모아 온 소장품만 무려 40만점에 달한다고 한다.

“토이키노 박물관은 1, 2관으로 나눠져 전시되어 있어요. 1관에 3만~4만여 점, 2관에 2만여 점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공간의 제약 때문에 모두 전시하지 못하고 있죠. 대신 정기적으로 디스플레이 된 작품을 교체하고 있어요.”
1관에는 주로 미국 할리우드의 영화, 만화 캐릭터들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1관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스타워즈에서부터 슈퍼맨·배트맨·원더우먼 등 영화 주인공 캐릭터, 미국 프로야구(MBA)·미국 프로농구(NBA)의 스포츠 스타 캐릭터 등 다양한 테마로 방을 분류해 놓았어요. 2관에는 추억의 장난감들로 가득해요. 아톰·마징가 Z·은하철도 999 등 30~40대의 향수를 자극할 만한 만화 캐릭터들이 전시 되어 있죠.”

가족 단위의 방문객, 특히 장난감을 갖고 노는 시기의 아이들이 많이 방문하다 보니 2관에는 아예 보드게임 같은 간단한 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토이키노 박물관은 삼청동의 1,2관에 이어 헤이리에 3관까지 문을 열고 있다.
그런데 왜 이 많은 장난감을 수집했을까. 궁금증이 생겨서 손 대표에게 물었다.
“1977년도에 스타워즈가 개봉했고, 이듬해인 1978년에는 슈퍼맨이 개봉하면서 인기를 끌 때였어요. 여섯 살 때 부모님과 함께 허리우드극장에 가서 본 스타워즈가 기억에 남더군요. 또 마침 미국에 교환교수로가 계시던 아버지가 영화 속 캐릭터 장난감을 사다주시면서 자연스럽게 장난감들을 접할 수 있었고 좋아지더군요. 그때 잔뜩 기대감을 안고 아버지가 사오신 장난감을 풀었던 설렘이 지금의 제가 있도록 한 힘인 것 같아요.”
그가 영화 캐릭터 장난감을 이렇게 모을 수 있었던 것은 풍족한 집안 형편 덕분이었다. 손 대표의 할아버지가 유명한 서예가인 소전 손재형 선생(1903~1981)으로 하나 둘 골동품을 모으는 모습에 영향을 받았다고.

내 꿈 열어준 유년시절 캐릭터 조각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즐거운 ‘놀이터’


손 대표의 할아버지 소전 선생은 20세기 한국 서예의 거목으로 1945년 ‘서예’란 말을 처음 붙인 서예가이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예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소전 선생은 일본으로 건너가 간곡한 설득 끝에 추사의 ‘세한도’(국보 180호)를 되찾아 온 일화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하다.
“할아버지에게 모으는 취미를 전수 받은 것 같아요. 제가 어릴 적 할아버지가 돌아 가셨는데 할아버지는 고서와 고가구, 붓을 좋아하셨어요. 서너 살 때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할아버지가 정성껏 벼루를 닦고 계셨던 모습이 떠올라요. 할아버지는 예술가이면서 정치에도 뜻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손 대표에게 할아버지 손재형 선생은 수집하는 것에 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지금도 손 대표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어디 가서 소전의 손자라고 하면 사람들이 한 번 더 봐주고 생각해주는 것이 할아버지의 영향인 거죠. 할아버지는 저희 가문의 자랑이자 자부심이죠.”
손 대표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장난감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용돈만 생기면 명동, 중국 대사관 앞, 동부이촌동과 남대문을 찾아가 영화 캐릭터 장난감을 샀다. 영화를 보고, 영화관련 자료를 스크랩하면서 영화 캐릭터를 수집했다.

“집안 가구에 곰팡이가 생기니까 어머니가 옷가지를 종이 상자에 넣어 정리하는 걸 보고 저도 장난감을 분류하며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1997년부터는 인터넷으로 쉽게 영화 관련 물품을 모을 수 있게 되어 수집점수가 늘었고 결국 하고 싶었던 박물관을 만들게 된 것이죠.”
손 대표는 또 지금은 사라진 잡지를 사서 주말의 명화, 명화극장을 챙겨보거나 비디오테이프를 빌려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본 후에는 스크랩을 하고 영화감상을 적었는데 그 노트가 무려 30권. 그러다보니 영화보기, 영화음악에 자연스레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외롭고 힘든 ‘인생의 암흑기’
삶의 위로가 되어 준 장난감

그러나 손 대표에게 행복한 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그는 외갓집으로 갔다.
“그 당시 제 인생은 암흑기였죠. 부모님이 이혼한 후 어머니를 따라 초등학교 때부터 외갓집에서 살았어요. 미국에 계신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는데, ‘아버지가 이러시면 제 인생이 비참해집니다’라고요. 어릴 때인데 어떻게 그런 단어를 떠올렸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 당시 영화 캐릭터 수집은 그의 상실감을 메워 주었고 위로가 됐다. 그에게 수집의 완성은 수집품을 진열할 공간을 꾸며 전시하는 것이었다.
“장난감을 하나하나 늘어놓으면 설치미술과 다를 바 없었어요. 분류하고 디스플레이하다 보니 인형 옷 하나하나도 중요한 요소라는 걸 새삼 깨달았죠. 사진을 전공한 덕에 수집품은 사진으로 한 장 한 장 기록되어 있어요.”

“장난감은 ‘시대적 유물’이자 ‘역사적 증거’를 말한다”
할아버지 평생 업적 담긴 ‘소전문화예술사업회’ 계획


토이키노를 세우기 위해 손 대표는 전 재산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사진과 연극영화를 전공한 그는 사진과 광고 관련 일을 하면서 버는 돈을 모두 장난감을 사는 데 쓴다.
“학교에서 강의하고 받은 강의료나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어 번 돈을 모두 박물관 운영에 투자했어요. 개관 후에도 과연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보러 올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관객들이 입소문을 타고 찾아와주니 고맙더군요. 요즘은 경제가 어렵다 보니 관람객이 줄어서 걱정이에요.”
그래도 손 대표는 박물관을 세우고 나서 많은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박물관에 있다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가장 즐겁고 보람을 느낄 때는 가족 관객들이 왔을 때에요. 아이들이 잘 모르는 캐릭터 장난감이 나오면 아빠, 엄마는 어릴 때 보던 만화영화 이야기를 해주면서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공간이 돼죠.”
토이키노 박물관이 자연스럽게 소통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부모와 아이들이 정겹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그냥 기분이 좋아지죠. 요즘같이 부모와 아이들 사이에 대화가 단절된 것을 자연스럽게 캐릭터 장난감을 통해 풀어주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토이키노가 부모세대와 아이들 세대를 연결해주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죠.”     
팔면 안 되느냐고 끈질기게 요구하는 관객도 많다.
“그럴 때는 제가 수집을 통해 끈기와 상상력을 키웠던 것처럼 모으는 재미를 느껴 보라고 제안합니다. 적게는 몇백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대를 호가하는 장난감들도 있어요.”

“손 대표는 꿈 많은 사람”
간절한 꿈은 이루어 진다


아이들에게 장난감은 꿈이다. 우주를 날아가는 변신 로봇, 예쁜 드레스를 입은 공주 인형. 아이는 장난감을 통해 세상을 꿈꾸고 미래를 꿈꾼다. 토이키노 박물관이 바로 그런 곳이다.
“장난감은 시대적 유물 이예요. 또 역사적 증거인 셈이죠. 아이들은 장난감을 통해 세상을 보고, 미래를 꿈꿉니다. 어른에게 장난감은 추억인 셈이죠.”
손 대표는 토이키노에 이어 또 다른 꿈이 있다. 〈메가키노>라는 영화잡지를 만드는 게 꿈이다.
“영화잡지는 20대 때부터 만들고 싶었어요. 예전에는 방송사 프로듀서가 되고 싶어서, 시험도 준비했지만 마지막 관문에서 고배를 마셨어요. 이제는 직접 미디어를 기획, 운영해 보려고요. 내공이 깊어 좋은 잡지 하나를 더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현재 영화 관련 잡지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추진 중에 있다. 그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꿈과 소망은 사단법인인 ‘소전문화예술사업회’를 추진하는 것이다.
“할아버지 고향인 전남 진도에 소전미술관이 있지만 너무 멀리 있어 사람들이 찾아가기 불편해요. 그래서 장난감 박물관과 더불어 할아버지가 평생을 바쳤던 서예를 위한 박물관을 서울에 세우는 게 꿈이에요. 아는 지인들과 함께 내년 초쯤 사단법인으로 ‘소전문화예술사업회’를 출범 하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손 대표는 내년에 공연뮤지컬도 계획하고 있고, 다시 다음 학기에는 대학 강의도 더 열심히 하려고 준비 중이다.
손 대표는 “결혼도 내년쯤 해야 하는데 이것저것 일을 많이 벌려 놓은 것 같아 약간은 걱정스러워요”라며 웃는다.
어릴 때부터 영화 캐릭터에 매료돼 문방구, 벼룩시장을 전전하던 한 소년이 어른이 된 지금 장난감 박물관을 세웠을 뿐 아니라 현재 영화·디자인 관련 일에 종사하고 있다.
손 대표의 ‘간절한 꿈은 현실로 이뤄진다’는 진부한 표현이 이곳에서는 유독 설득력을 갖고 마음에 와 닿는다. 그는 자신이 꿈꾸는 또 하나의 꿈과 비전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열정을 가지고걸어가는 중이다.

사진 송원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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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