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무차별 개인테러 주의보

아무 이유 없이 묻지마 공격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과거 한국은 ‘테러 청정국’이라고 불릴 만큼 테러 위험에서 비켜나 있었다. 영국이나 러시아서 일어난 폭탄 테러에 충격을 받으면서도 큰 공포를 느끼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한국도 서서히 테러 위험국으로 향하고 있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징후는 사회 곳곳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각) 영국 잉글랜드 맨체스터 아레나서 발생한 폭탄 테러로 22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이번 테러는 2005년 이후 영국서 일어난 최악의 폭탄 테러였다. 앞서 4월3일(현지시각)에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서 테러로 의심되는 폭발 사고가 발생해 15명이 사망했다. 러시아 정부는 폭발 사고가 테러 단체에 소속된 무슬림 남성 등 2명의 소행으로 보고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사건사고 늘어

영국과 러시아서 일어난 테러는 연세대서 발생한 폭발 사고에 영향을 끼쳤다. 폭발물을 만든 용의자가 앞서 일어난 테러 관련 보도를 보고 범행을 결심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 소재한 연세대 1공학관에서 테러로 의심되는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연구실 앞에 놓여있던 나사못과 폭발 촉매로 채워진 사제 폭발물이 폭발하면서 해당 연구실의 김모 교수는 양손과 목에 1∼2도의 화상을 입었다. 경찰은 용의자와 피해 교수 사이의 개인적인 감정을 범행동기로 추정하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서울 한복판, 그것도 학교 내에서 테러로 의심되는 폭발 사고가 발생하면서 테러에 대한 위기감이 커졌다. 


경찰은 대테러국을 신설, 테러에 대응할 수 있는 인적·물적 자원의 확대를 검토 중이다. 또 테러 발생 시 수사 활동에 필요한 가이드라인으로 테러사범 수사 매뉴얼도 만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데올로기→개인 성향
개인적 불만·원한 분출

경찰의 이 같은 구상은 내년에 있을 2018평창동계올림픽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지난해 새로 설치된 경비국 산하 대테러위기관리관실을 경비국서 분리해 격상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테러위기관리관실로는 향후 국내서 발생할 수 있는 테러를 대응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있어왔다.

한국의 테러 현황은 1990년대를 기점으로 이데올로기 중심서 개인적 성향에 의한 사건으로 변화 양상을 띠고 있다. 

경찰청이 경찰대 산학협력단에 연구 의뢰해 발표한 ‘경찰의 대테러 관련 법·조직·임무 재정비 방향 연구’에 따르면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발생한 국내 테러는 북한의 폭탄테러, 대학생들의 반미주의 운동 위주였다.
 

북한에 의한 테러는 분단국가라는 한국의 특수 상황과 맞닿아 있다. 1986년 9월 서울 아시안게임 개막을 5일 앞둔 상황서 김포국제공항 청사 앞에서 의문의 폭발물이 폭발해 5명이 사망하고 30여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사건이 북한에 의해 발생했다고 추정했으나 뚜렷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1987년 11월 ’KAL기 폭파사건’은 북한의 직접적인 테러로 분류된다. KAL기 폭파사건은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858편이 폭발물로 인해 인도양 상공서 폭발한 일이다. 당시 비행기에 타고 있던 한국 승객 93명, 외국 승객 2명, 승무원 20명 등 115명이 전원 사망했다.


1982년 3월 부산서 일어난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이나 1983년 9월 ‘대구 미국문화원 폭발사건’은 이데올로기로 인한 테러로 분류된다. 

1970∼198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불어닥친 반미주의 운동이 가져온 사회·문화·정치적 신념의 차이서 일어난 사건들이다. 이런 움직임은 1990년 초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로 냉전의 한 축이 사라지면서 점차 줄어들었다.

대신 개인이 불특정 대상을 상대로 저지르는 테러가 늘어났다. 1999년 대구 어린이 황산테러 사건이 대표적이다. 대구 동구 효목동의 한 골목길에서 정체불명의 남성이 6세 남자 어린이에게 황산을 끼얹은 후 도주했다. 소년은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채 고통에 시달리다 49일 만에 사망했다. 어린 소년을 상대로 저질러진 끔찍한 범죄에 사회는 경악했다.

소년의 부모는 범인을 잡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공소시효가 만료되면서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이를 계기로 2015년 7월31일부터 2000년 8월 이후 발생한 모든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폐지됐다. 이 법은 소년의 이름을 따 ‘태완이법’으로 불리고 있다. 

2003년 192명 사망, 21명 실종, 151명 부상이라는 끔찍한 희생을 낸 대구 지하철 참사의 경우 피의자의 울분이 방화로 분출됐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2006년 5월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 후보의 지원유세 도중 한 남성에게 피습당해 얼굴에 상해를 입은 사건이 발생했다. 피의자는 변호사와 접견한 자리서 감호소 안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벌인 일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방화로 국보 1호인 숭례문이 전소된 사건도 토지보상금 문제로 불만을 품은 70대 노인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2014년에는 재미교포 신은미씨의 북콘서트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고체연료를 이용한 사제폭탄을 투척해 3명이 다쳤다. 북한에 수차례 방문했던 신씨는 당시 종북 논란에 휩싸여 있었다.

불특정 대상 향해…
자생적 테러로 발전?

2015년에는 마크 리퍼트 미국 대사가 피습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리퍼트 대사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가 주최한 조찬 강연회에 참석하던 중 문화운동단체인 우리마당의 대표 김모씨의 습격을 받았다. 김모씨는 체포된 이후 군사훈련과 관련해 미 대사에게 항의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사건들 외에도 주변에서 개인적인 앙심을 품고 테러를 저지르는 일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 13일 경기 의정부시의 한 백화점서 20대 남자 직원에게 염산을 뿌리고 달아난 30대 여성이 경찰에 붙잡힌 일이 있었다. 

이 여성은 남성의 결별선언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5월에는 어선 매매금을 놓고 다투던 상대방에게 염산을 뿌린 60대 남성이 검거됐다.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BMW 차주가 차에 염산 테러를 당했다며 도움을 호소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CCTV 영상에는 정체불명의 남성이 두 차례에 걸쳐 차에 정체불명의 액체를 뿌리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차의 도장면은 부풀어 올라 처참하게 망가졌다.

터지는 분노

지난 13일에는 남성 2명이 심야시간에 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행인을 상대로 비비탄을 마구 쏘는 바람에 6명이 다치는 일이 있었다. 용의자는 경찰 조사에서 “장난으로 그랬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청 보고서는 “사회에 대한 불만·가난·문화·인종 차별·사회적 배제 같은 상대적 박탈감이 자생적 테러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있다”며 “상대적 박탈감은 사회에 대한 분노와 연결돼 극단적인 폭력을 행사하게 되고 결국 그 분노는 무차별적으로 대중을 향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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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