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사-연예인 돈 좇다 신뢰 무너져
정치권 일각 가칭 ‘에이전시법’ 추진
연예계에 불어닥친 소송 바람의 원인은 무엇보다 ‘돈’에서 찾을 수 있다. 연예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를 둘러싼 이권 다툼과 갈등도 커졌기 때문이다.
모 연예기획사 대표 H씨는 “특히 2~3년 전부터 본격화된 연예기획사들의 인수 합병과 코스닥 우회상장 열풍은 기획사와 연예인의 관계를 더 악화시켰다”고 전했다.
외부자금을 끌어들여 몸집을 키운 기획사들은 소속 연예인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활동 범위를 크게 넓히고자 한 반면, 기획사를 옮겨다니며 수시로 계약금을 챙기는 얌체 연예인들도 등장했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몸값은 종전 계약 파기에 대한 위약금을 치르고도 남는다. 심지어 일부 연예 기획사나 영화 또는 드라마 제작사는 위약금 이상의 몸값을 제시하며 스타들을 유혹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계약의 법적 구속력은 무의미한 휴지조각이 되곤 한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계약 당사자 간의 감정 싸움은 추악하기 그지없이 펼쳐져 연예계의 구조적 후진성을 드러낸다. 사소한 부분에 대한 흠집 잡기부터 사생활에 대한 공격까지 이어진다.
이는 결과적으로 이미지 실추로 인한 상품성 손상, 신뢰도 추락, 생명력 단축 등의 악영향을 미치는 결과가 된다.
H씨는 “몇년 전부터 연예인들이 일에 대한 지원이나 신뢰보다는 돈을 좇아 기획사를 찾는 풍조가 당연시되고 있다”며 “기획사들 역시 정상적인 이익 창출보다 수익을 외부 자금 유치에서 찾다보니 서로 상대를 이용하려는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더 큰 문제는 연예인은 기획사를 옮겨야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신인 때부터 모습을 보아온 원제작자에게는 하기 싫은 스케줄을 빼 달라거나 사소한 것에 대해 나은 대우를 요구하는 것 등이 쉽지 않으나 스타급에 올라 거처를 옮기면 부담 없이 요청할 수 있다.
H씨는 “소위 ‘떴다하는 연예인’들은 신인시절 본인이 출연했던 프로그램에서 출연 요청이 오면 ‘내가 저길 나가야 돼’하는 식으로 말하며 매니저와 싸우는 경우가 잦아 감정의 골이 깊어진다”며 “이에 자신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 주는 소속사를 찾게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연예산업의 특성상 활동에 쓰인 비용의 규모를 정확히 산출하기 어렵고, 연예인과 기획사 간 수익을 둘러싼 다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계약 초기부터 법적 자문을 구하는 연예인이나 기획사가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연예인 고문변호사를 맡고 있는 L변호사는 “최근 들어서는 연예인 전속계약을 위한 계약서 양식이 많이 보급되고, 수익구조나 회계 등에 있어서도 사전 법적 검토를 의뢰하는 곳이 상당히 많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연예인과 매니지먼트사의 신뢰 관계를 회복하는 등 연예산업 풍토개선이 우선이라는 시각도 있다.
H씨는 “아무리 처음부터 법적 검토를 하더라도 연예산업 특성상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서로의 근본 신뢰 관계가 깨진다면 법적 장치가 있더라도 일을 더불어 해나가는 건 불가능하다”며 “이 바닥의 관행을 사전에 연예인에게 충분히 숙지시켜주고, 활동을 하면서도 많은 대화를 통해 상호 오해를 만들지 않는 경영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고 밝혔다.
한편 최근 연예 매니지먼트 산업 육성 등을 목표로 정치권 일각에서 가칭 ‘공연 에이전시법’을 추진 중 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에이전시법’은 연예 에이전시의 자격증 제도와 전속계약금 폐지 등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한 연예 관계자는 “국내 엔터테인먼트가 산업화되면서 불거진 음영이 있다면 바로 연예인과 이해 관계자간에 송사다”라며 “법을 통한 해결은 계약을 중시하는 현대 사회에선 응당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당사자간 인간적 관계를 아직도 중시하는 풍토에선 ‘비정하다’고 비춰질 수 있다는 게 연예인과 업계의 이미지에 타격을 주는 가장 큰 요인이다”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