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내리는’ 포스코 수난사 막전막후

더는 국민기업을 흔들지 마라!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포스코를 주목하는 시선이 부쩍 많아졌다. 문재인정부가 포스코 인사권에 개입할 수 있다는 추측이 더해진 탓이다. 순탄치 않았던 회장 교체 이력을 돌이켜보면 단순 억측쯤으로 치부하기 힘든 구석이 존재한다. 하지만 권오준체제 ‘2기’를 막 가동한 포스코 입장서 보자면 불편하기 짝이 없는 풍문임에 분명하다.  
 

포스코는 2000년 9월 정부 지분 전량 매각과 함께 민영기업으로 재탄생했다. 하지만 여전히 완전한 민영기업으로 불리는 데 한계가 있다. 정부의 의중이 반영되는 국민연금공단이 지분 10%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데다 민영화와 상관없이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던 탓이다. 혼란스러웠던 역대 포스코 회장 변천사 때문에 재계는 권오준 현 회장이 임기를 제대로 채울지 주목하고 있다. 예정된 재임 기간을 꽉 채울 거란 낙관론과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혼재된 양상이다. 

정권만 바뀌면
계속되는 교체

정권이 바뀌고 친정권 성향의 새 회장이 포스코에 부임하는 과정서 기존 회장의 비리 혐의는 단골 메뉴처럼 부각됐다. 초대 회장부터 이 같은 논란서 자유롭지 못했다. 관련 업계에선 정권마다 기업 수장이 바뀌는 것을 두고 ‘포스코 잔혹사’라고 표현할 정도다. 

포스코를 일으켜 세운 고 박태준 전 회장은 김영삼정부 출범 직전 24년 6개월간 자리를 지키던 회장직서 물러나야 했다. 박 전 회장은 1993년 회사기밀비 7300만원을 횡령하고 포항제철 계열사와 협력사 20개 업체로부터 39억7300만원을 받은 특가법 위반 및 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다. 

포항제철 명예회장직도 이때 박탈당했다. 여전히 박 전 회장이 보복성 조치를 당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박 전 회장은 1992년 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내각제 대통령선거 공약화를 요구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회장의 뒤를 이은 황경로 회장(1992년 10월∼1993년 3월)은 김영삼정부 출범과 함께 자리서 물러났다. 약 5개월 남짓한 그의 재임 기간은 포스코 역대 회장들 중 가장 짧다. 황 전 회장은 거래업체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9200만원을 받은 혐의로 1심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박 전 회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던 정명식 3대 회장은 1993년 3월부터 1994년 3월까지 1년간 회장직을 유지했다. 4대 김만제 회장(1994년 3월∼1998년 3월)은 1998년 김대중정부 출범 직후 사임했다. 

그는 1994년부터 4년여에 걸쳐 회사기밀비 4억2415만원을 유용한 업무상 횡령 혐의로 1999년 2월 불구속 기소됐다. 

민영화 이후에도 정권교체에 따른 회장 변동은 여전했다. 5대 유상부 회장(1998년 3월∼2003년 3월)은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돼 노무현정부가 출범하면서 자리서 물러났다. 6대 이구택 회장(2003년 3월∼2009년 1월)도 이명박정부 출범 초기인 2008년 검찰이 정기세무조사 무마 청탁설 조사에 나서자 돌연 사퇴했다.

정준양 7대 회장(2009년 1월∼2014년 3월)은 배임·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은 끝에 2015년 11월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부실기업 인수로 회사에 1600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정 전 회장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지난 1월 1심 무죄 판결을 내린 상태다.

혹시나 하는
섣부른 비관론

이전 사례들은 권 회장의 앞날이 마냥 순탄치 않을 거란 전망에 힘을 싣는다. 진짜 문제는 정부 차원서 코드 인사를 감행할 경우 막아내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물론 포스코는 나름대로 독자적인 행보를 보여줬다. 포스코는 2004년 이사 선임에 있어서 소액 주주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한 집중 투표제를 도입했다. 
 


2006년에는 사외이사들로 꾸려진 최고경영자(CEO) 후보추천위원회가 회장 후보를 결정하고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쳐 최종 선임하도록 했다. 주요 인사 선임과 관련해 정권의 외풍에 시달린다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취지였다.

그러나 각종 장치를 마련해도 포스코는 정부의 입김서 벗어나는 데 한계를 드러낸 전력이 있다. 이 때문에 권 회장 체제도 언제든 정권의 입맛에 따라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한다.

재계 관계자는 “민영기업의 회장 자리를 정부 차원서 내정한다는 건 당사자의 입장서 매우 불쾌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며 “다만 포스코를 흔들고자 마음먹는다면 포스코는 상대적 약자 입장에 몰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내실 쌓는 권
내칠 명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재계 관계자들은 권 회장의 임기 완수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연임이 결정된 지 얼마 안된 상태서 코드 인사가 내려올 가능성이 적고, 능력 검증은 이미 끝났기 때문에 예정된 재임 기간을 꽉 채울 거란 분석이다. 

2014년 포스코 8대 수장에 오른 권 회장은 지난 3월 ‘최순실 게이트’라는 악재를 딛고 연임에 성공했다. 원칙대로라면 권오준체제 2기의 종료 시기는 2020년 3월이다. 중간에 위기도 있었다. 

포스코는 2015년 창립 이후 처음으로 연간 적자를 기록하는 수모를 겪었다. 권 회장의 임기가 절반도 안 남았던 시점이다. 외부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내부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권 회장은 임기 연장에 성공했다. 그 어렵다던 포스코 체질개선에 일정부분 성공시켰다는 점이 임기 연장에 영향을 미쳤다.

2014년 3월 권 회장 부임 당시 포스코는 철강시장 여건 악화와 경기불황, 내부 문제가 한꺼번에 터지면서 큰 혼란에 직면했다. 이때 권 회장이 내세운 경영 전략은 본연에 충실한 내실 다지기였다. 

이때부터 포스코는 철저한 다이어트와 체질개선에 돌입했다. 철강사업과 관련이 없거나 입지가 불완전한 못한 계열사는 구조조정 대상에 올랐다. 2014년 49개였던 포스코 계열사는 10개 이상 줄어들었다.

순탄치 않았던 회장 교체 잔혹사 ‘이제 끝’
굳건해지는 ‘권오준 2기’ 체제  

체질개선의 순기능은 올해 1분기부터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포스코는 1분기 연결기준 매출액 15조772억원, 영업이익 1조3650억원, 당기순이익 9769억원을 기록했다. 권 회장 취임 이래 가장 좋은 실적이다. 


매출액은 평년 수준이었지만 영업이익 및 당기순이익은 껑충 뛰었다. 지난해 3분기의 영업이익 1조342억원도 가볍게 넘어섰다. 포스코의 1분기 실적은 ‘권오준 2기’의 첫 성적표란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외부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작업도 서서히 빛을 발하고 있다. 권 회장 취임 초 글로벌 철강시장은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안정적이지 못했다. 다행히 권 회장 취임 후 줄곧 ‘고부가제품’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포스코는 독보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며 이익률 개선에 성공했다. 

당장 권 회장을 대신할 만한 인물도 마땅치 않다. 과거 포스코 회장이 교체되던 당시에는 기존 회장을 대신할 만한 인물이 여럿 거론됐다. 그러나 최근엔 권 회장 외에 거론되는 유력한 후보가 없는 상황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최순실 게이트 등 크고 작은 구설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권 회장이 연임에 성공한 건 권 회장을 대체할 만한 인물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본인의 연임 의지도 강하다. 권 회장은 지난 2월 초 임원인사서 조직개편을 단행해 COO(Chief Operating Officer, 철강부문장) 체제를 도입했다. 기존 철강부문의 운영은 COO가 책임 경영토록 하고, 회장인 자신은 비철강 부문, 신사업 등 미래성장 동력을 챙기며 그룹 매출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한다는 복안이다. 

여기에는 정치권 낙하산 인사를 막고 임기를 무사히 끝내면 내부 인물을 차기 후계자로 인선한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 


코드 인사커녕
정부만 믿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무작정 포스코 인사권에 개입하지 않을 거란 낙관적 전망이야말로 그의 임기 만료 가능성을 한층 높인다. 적폐 청산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해온 문 대통령의 성향상 권 회장에게 큰 압박을 가하기 힘들 거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문재인정부의 코드에 부합하는 인물을 내세워 낙하산 인사를 자행할 경우 자가당착에 빠질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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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