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사활 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실패하면 ‘쉰밥’ 성공해도 ‘찬밥’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전망이 밝다. 그런데 반대로 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아 유치작업을 이끌어온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낯빛은 어둡다. 조 회장이 손수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얹으려는 이들이 많아서다. 유치에 성공해도 밥상엔 남은 찬이 없을 것으로 보여 조마조마하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조 회장은 고민이 가득한 표정이 역력하다.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지난 18일 평창이 유치를 위한 마지막 수능을 치렀다. 평창과 독일 뮌헨, 프랑스 안시는 이날 스위스 로잔의 올림픽박물관에서 전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을 대상으로 ‘테크니컬 브리핑’을 마쳤다.

개최지는 오는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IOC 총회에서 결정 난다. 이번 브리핑은 투표권을 갖고 있는 IOC 위원 모두를 대상으로 각자의 장점을 피력하는 마지막 자리였다. 브리핑은 뮌헨, 안시, 평창 순으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45분간의 프레젠테이션을 마친 뒤 45분 동안 IOC 위원의 질문에 답하며 표심 잡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테크니컬 브리핑
순조롭게 마쳐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평창 유치위가 프레젠테이션을 마치자 복수의 IOC 위원들은 “평창이 앞선 두 번의 유치 신청 때보다 엄청난 진전을 이뤘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간의 숨은 노력이 결실을 이룬 것이었다. 무엇보다 지난 2월14일부터 20일까지 진행된 현지실사가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다.

현지실사 후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홈페이지를 통해 평창과 뮌헨, 안시 등에 대한 평가 보고서를 공개했다. 119쪽의 보고서는 각 도시별로 비전, 유산, 콘셉트, 경기장, 숙박, 재정 등 총 17개 분야에 대한 강점과 약점을 지적했다. 직접적인 순위를 매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평창이 우위에 선 것만은 확실했다. 외신들이 쏟아낸 호평 때문이다.

우선 이번 동계올림픽 유치 경쟁을 두고 후보 도시에 대해 시종일관 중립적인 자세를 유지해온 AP통신은 평창이 약점 없이 골고루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AP통신은 “동계올림픽 유치에 3번째 도전하는 평창이 빛나는 평가를 받아 선두주자로 입지를 강화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AP통신은 평창 지역 주민 92%의 지지를 받고 있고, 전 국민으로부터 87% 높은 지지를 받아 다른 경쟁 도시인 뮌헨(지역 53%·전국 56%)과 안시(지역 63%·전국 62%)보다 월등히 앞섰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 회장, 유치 위해 세계 누비는 등 적극적인 모습
현지실사 보고서 두고 외신들 일제히 호평 쏟아내

로이터통신은 “이번 보고서에서 세 후보도시가 모두 올림픽을 개최하는 데는 큰 문제점이 없다고 평가받았다”면서도 “평창이 앞선 2차례의 경험으로 유치 경쟁에서 근소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제스포츠행사 유치평가 전문 인터넷사이트인 ‘게임비즈닷컴’은 세 후보도시의 평가 결과를 소개하면서 평창을 가장 먼저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이번 올림픽 유치를 위한 장기 레이스의 ‘숨은 공신(?)’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다. 지난 2009년 7월부터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직을 맡은 조 회장은 유치를 위해 전 세계 곳곳을 누비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 대표로서의 역량을 발휘하기도 했다. 조 회장은 실사단이 독일의 루프트한자 항공기를 타고 한국을 방문했을 때 탑승동이 본청사에서 멀리 떨어져 입국 수속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 점을 감안, 인천공항공사와 협의를 통해 대한항공이 들어오는 본청사로 변경해 의전실까지 바로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보유 항공기 및 비즈니스 제트기를 평창 유치활동에 적극 지원하기도 했다.

조 회장은 대기업 오너가 아닌 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으로서 올림픽 유치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IOC위원 방한 당시 맥주를 서빙하며 대화를 이어가 주변을 놀라게 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에 대해 한 재계관계자는 “그 동안 계속 경영일선에 있던 조 회장이 평창 유치를 위해 ‘영업마인드’로 바뀐 모습을 보고 놀랐다”며 “그만큼 유치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맥주 서빙 회의 진행
영업마인드로 전환

또 유치활동에 주력하기 위해 총괄사장 이하 각 부사장의 책임경영 체제를 가동했다. 부사장들이 경영공백을 메꾸는 동안 조 회장은 이번 올림픽 유치를 위해 투표권이 있는 IOC위원들과의 스킨십 강화에 힘쓰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이 같은 숨은 노력은 결국 좋은 결과를 보였다. 하지만 조 회장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미간에 주름에 잔뜩 잡혀 있는 모습이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 이들이 있어서다.

가장 먼저 ‘회장님의 밥상’을 탐한 건 손학규 민주당 대표다. 손 대표는 지난 2월9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뜻하지 않게 자리에서 물러난 이광재 지사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이뤄냈어야 하는데 하는 강한 아쉬움이 있다”며 “당 대표인 제가 직접 평창동계올림픽 지원을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서 당이 총력을 기울여 유치를 이뤄내겠다”고 밝혔다. 이어 손 대표는 “이 지사가 야인의 몸으로 있지만 강원도민들이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뜻이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소속 이 전 지사가 낙마하면서 차질이 우려되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전에 손 대표가 ‘대타’로 나서 직접 챙기겠다는 것이었다. 4?27재보걸 선거의 최대 격전지가 될 강원도지사 선거를 겨냥한 측면이 강하지만, 당 대표가 당내에서 구성된 특위 위원장을 맡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먼저 ‘회장님의 밥상’ 탐한 건 손학규 민주당 대표
한나라당 특위 조성…위원장에 김진선 전 강원지사

문제는 이때가 ‘결전의 날’로부터 불과 150여일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2년 전부터 물밑 작업을 벌여온 조 회장으로선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어 2월17일에는 한나라당이 단체로 숟가락을 올렸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적극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당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특위’를 설치한 것.

한나라당은 특위 위원장에 김진선 전 강원지사를, 고문에 남경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을 각각 선임했고, 특위 위원으로는 강원도 지역 국회의원과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을 중심으로 14명을 선임키로 했다.

특위 위원들 가운데 가장 눈에 거슬릴 법한 인사는 김 전 강원지사다. 그는 지난 2009년 6월말 조 회장과 함께 평창유치위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도지사가 임기가 끝나면서 김 전 지사는 자리에서 물러났고 조 회장의 사실상 단독위원장 체제로 전환됐다. 모든 공이 조 회장에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5달 후인 11월 김 전 지사는 대통령 특임대사에 임명됐다. 2차례 유치도전에 나섰던 김 전 지사의 경험을 살리겠다는 의도에서였다. 이에 김 전 강원지사도 유치도시 결정까지 국제 유치 활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김 전 지사는 그동안 2010년과 2014년 평창유치위 집행위원장과 2018 평창유치위 공동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그는 두 차례의 유치 활동을 통해 IOC를 비롯한 국제체육계 인사들과 탄탄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고, 국제스포츠계 흐름에도 밝아 이번 유치전에 필요한 적임자로 평가 받아왔다. 조 회장의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건희 IOC 위원도
조양호 눈엣가시

설상가상으로 김 전 지사는 지난 3월2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까지 당내 ‘평창동계올림픽유치특위’ 고문으로 끌어들였다. 박 전 대표가 당내 공식직함을 갖는 건 이명박 대선후보 선대위 상임고문이었던 지난 2007년 10월 이후 3년 5개월 만이다. ‘공주의 귀환’에 조 회장은 더더욱 찬밥 신세를 면키 어려워졌다.

IOC위원으로 활동 중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눈엣가시다. 특유의 존재감 때문에 언제나 스포트라이트가 따라다녀서다. 물밑에서 아무리 뛰어다녀도 시선은 항상 이 회장을 향한다.

현재로선 개최지 선정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간의 고생의 물거품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공 시 공로를 나누는 것과 반대로 실패 시 질책의 화살은 조 회장에 집중될 게 뻔하다. 조 회장으로선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일이다. 아직 확정된 게 없다는 점에서 동계올림픽을 어디서 유치할 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그 때까지 조 회장의 고민은 깊어갈 것으로 보여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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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채 상병 특검법)이 야당 주도로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7월19일 사건 발생 10여개월 만이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반발하며 퇴장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서 ‘이태원참사특별법’을 합의 처리된 뒤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제출하며 채 상병 특검법 상정을 요구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한 사건을 초동 조사하고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서 대통령실·국방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특검이 수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경찰 이첩 개입 의혹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를 수용해 의사일정 변경동의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졌고, 재석 168명 전원 찬성표로 가결됐다. 표결에는 야당만 참여했고, 국민의힘은 반발해 사실상 표결에 불참했다. 민주당은 원래 본회의 안건에 없었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기 위해 의사일정 변경을 우선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은 이번 본회의에 합의되지 않은 법안이 올라가는 것 자체를 반대해 왔다. 당초 김진표 의장도 여야가 합의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양당 원내대표를 의장석으로 불러서 마지막으로 중재를 시도했지만 5분 뒤 김 의장은 여러 가지로 고려한 끝에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양당의 마지막 협상도 결렬됐고, 국민의힘에서는 유일하게 자리에 남았던 김웅 의원만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방청 중이었던 해병대 예비역연대 법률 자문, 김규현 변호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년의 해병대 예비역들도 연신 눈물을 흘렸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야당이 강행 처리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로텐더홀서 규탄대회를 열고 “그간 우리 당은 이태원참사특별법에 합의 처리하는 조건으로 의사일정에 동의했다. (민주당과 김 의장이)채 상병 특검법을 애초에 처리하겠다고 했으면 저희는 오늘 본회의 의사일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모처럼 이태원법 합의 처리를 통해 협치 분위기가 조성되고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있는데 오늘 의사일정 변경까지 해서 채상병법을 처리하겠다는 것은 정치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채 상병 특검법 표결 시 본회의장을 퇴장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채 상병이 의사일정으로 상정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규탄대회 뒤 거부권 행사 건의와 관련한 질문에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국힘 퇴장 속 야당 전원 찬성 조각난 협치···대통령 또 거부?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 의사일정 변경안을 제출한 상태다. 이날 본회의는 이태원특별법 처리를 위해 여야 합의로 잡은 일정인 반면, 여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상황서 입법을 강행하기 위해 의사일정을 변경해 본회의 부의를 시도하겠다는 의도였다. 대통령실은 이날 야당의 강행 처리 예고를 예의주시하면서도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서 “민주당이 오늘 국회 본회의서 채 상병 특검법을 의사일정까지 바꿔가면서 일방 강행 처리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 표명은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실장은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며 “공수처와 경찰이 이미 본격 수사 중인 사건인데도 야당 측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특검을 강행하려고 하는 것은 진상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여권에선 채 상병 특검법 자체의 법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이미 수사 중인 사안에 특검을 도입하는 배경에 정쟁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바라봤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서 진행 중인 수사가 끝난 다음, 그 과정이나 결과를 토대로 특검 도입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야당이 특검을 당장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대통령실은 무엇보다 2021년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해병대수사단에 수사권이 없어졌기 때문에 야권이 주장하는 ‘수사외압’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해병대수사단이 기초 조사는 할 수 있겠지만, 관계자 수십명을 소환하고 연루자가 몇 명이고 하는 것은 법에 규정된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당시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의 ‘월권’ 가능성을 지적한 셈이다. “정치적 의도” 대통령실 발끈 또 과거 공수처 설치와 군사법원법 개정을 주도했던 민주당이 특검을 추진하는 모순을 거론하며, ‘참사의 정쟁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분위기다. 이날 정 실장은 “현재 공수처와 경찰서 철저한 수사를 진행 중이므로 수사 당국의 결과를 지켜보고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공수처와 경찰이 우선 수사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특검 도입 등의 절차가 논의되고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공수처는 민주당이 패스트트랙까지 동원해 설치한 기구다. 당연히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는 것이 상식이고 정도”라며 “지금까지 13차례 특검이 도입됐지만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진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야당이 단독으로 주도한 이유도 있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과정서 윤 대통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수사를 왜곡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관련 정황은 이미 상당 부분 나왔다. 국방부는 사단장 등 고위 지휘관들의 혐의를 축소하려 했고, 경찰에 넘긴 수사기록도 매끄럽지 않은 과정을 통해 회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관계자들이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조율한 흔적도 엿보였다. 국민의힘은 특검법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서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공수처 수사가 1년 가까이 진척을 보이지 않으면서 야권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과거 대통령실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조그마한 사고’라고 언급한 사건도 국민적 분노를 유발했다. 지난 3월22일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 매체와 인터뷰서 ‘조그마한 사고’로 표현하고 “전 지휘관이 법적인 문책을 받는 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실언한 바 있다. 더구나 공수처는 지난해 8월 고발장을 접수한 이후 인력 부족, 수사 의지 등을 핑계로 현재까지 ‘수사 진행 중’이라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해병대를 비롯한 국민 여론도 특검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눈물 흘린 해병들 왜? 해병대예비역연대는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채 상병 특검법 상정과 통과를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 모여 “채 상병 특검법 통과, 박정훈 대령 탄압 중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같은)이런 세력들이 우리나라의 집권여당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장은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이 나라의 안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인가. 국민의힘과 대통령은 민심을 외면하지 말고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하길 바란다”고 외쳤다. 해병대예비역연대에 법률자문을 하고 있는 해병대 출신 김규현 변호사는 “(국민의힘은)처음엔 ‘독소 조항이 있다’고, 지금은 ‘공수처와 경찰이 수사 중이니 그 수사가 끝난 다음에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과거 특검 때에는 (앞서)경찰·검찰이 수사를 안 했는가”라고 되물었다. 사실상 가장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할 방법은 법정 수사 기간을 최대 3개월로 정해놓고 있는 특검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병대 측은 이날 “3개월이 지나면 우리 군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안보에 전념할 수 있고, 정치권도 채 상병 문제를 일단락하고 지금 산적한 안보, 민생 정책을 논의할 수 있게 된다”며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수사를 기다리며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채 상병 문제로 정쟁을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국민의힘은 오후 2시에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전원 참석해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집회를 마친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 45명은 채 상병 특검법의 상정·통과 여부를 보기 위해 곧장 국회 본회의장으로 이동했다. 앞서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민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후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지난달 3일 본회의 자동 부의 요건을 충족했다. 여야는 지난 1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처리에는 합의했지만, 채 상병 특검법과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안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통한 것이다. 1년 가까이 진척 없는 수사 역풍 뻔한데···용산 선택은? 특검법 통과에 대해 대통령실은 야당을 향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수세에 몰린 대통령실이 야당을 지적할수록 부정 여론만 키우는 분위기다. 더구나 대통령실은 스스로가 수사 대상이 되는 사안서 ‘협치’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으나, 이로 인해 역풍을 맞게 되는 형국이다. 당장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용산의 뜻을 따를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어렵사리 여당 의원들을 단속하더라도 다음 달에 시작하는 22대 국회에서는 궁지에 내몰릴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신중한 모습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거부권을 행사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며 “김진표 국회의장은 합의 정신을 존중하는 분”이라고 일축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여야 합의 없이 거대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안들에 대해선 ‘과도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젊은 병사의 죽음’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인 데다 야권과 언론이 국가안보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 등 대통령실 연루 의혹을 잇달아 제기한 상황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당의 총선 참패 한 달여 만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다. 국회 재표결 시 여당 이탈표도 우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 회담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의 적극적인 수용을 요구한 데 대해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것도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공수처는 특검 출범 여부와 별개로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 외압 의혹’과 관련된 핵심 인물들을 불러 조사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방부가 채 상병 사건을 회수하고 재조사하는 과정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대통령실 등 ‘윗선’으로부터 외압이 있었는지 의혹을 풀어줄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환조사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수사는 진행 중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이대환)는 지난 2일 오전 9시25분쯤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날 공수처는 박 전 직무대리를 상대로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재조사한 후 혐의자를 축소해 경찰로 넘기는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 등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