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5주년 기획특집>④한보사태 주역 ‘로비의 귀재’ 정태수

로비 먹혔던 15년 전으로 ‘나 돌아갈래!’

IMF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한 1996년. 당시 암흑의 시대를 예고한 국내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의 줄도산 이어졌다. ‘대우그룹, 쌍용그룹, 동아그룹, 삼미그룹, 진로그룹, 해태그룹…’ 한국경제 파탄의 서곡을 알린 기업이 바로 한보그룹이다. 그 뒤엔 ‘로비의 귀재’ 정태수씨가 있었다.

IMF 도화선 한보 부도 이어 금융스캔들 터져
15년형 선고 2002년 사면…4년째 도망자 신세

1996년 재계 서열 14위였던 한보그룹은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다 결국 이듬해 1월 부도가 났다. 이는 대기업들의 연쇄부도로 이어졌고, 한국경제의 파탄을 불러온 IMF 도화선이 됐다. 한보그룹의 부도액은 국내 부도사상 최대 금액인 1조원을 넘어 전 국민을 경악케 했다.

특히 부도 과정에서 5조7000억원에 달하는 특혜 대출 비리가 드러나 온 나라가 술렁거렸다. 권력형 금융 스캔들엔 정계와 관계, 금융계 등 핵심 인사들이 연루돼 충격을 더했다. 건국 이래 초유의 금융부정 사건으로 기록된 이른바 ‘한보 사태’의 주역이 바로 정태수씨다.

한보그룹 오너였던 정씨는 세무공무원 출신으로 1976년 그룹을 창업했다. 23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접고 52세란 적잖은 나이에 무일푼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분양에 성공한 자금으로 그룹 몸집을 불려 신흥재벌로 급부상했다. 한보그룹은 문민정부 시절 급성장했는데, 정씨의 강력한 로비력으로 일군 천문학적인 정치자금이 도약의 디딤돌이었다.

법정·철창 들락날락

그러나 정씨의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올해 88세인 정씨는 비리 혐의로 법정과 철창을 들락날락 거렸다. 재계 총수 가운데 가장 많이 법원을 드나든 불명예를 안고 있다.

그는 1991년 12월 수서지구 택지 특혜분양 사건으로 구속기소돼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1995년 특별사면됐다. 그로부터 석 달 뒤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100억원을 준 사실이 밝혀져 다시 구속돼 1심에서 징역 2년이 선고됐지만, 항소심에서 공소시효 만료를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고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그러던 중 ‘한보사태’때 또 다시 구속돼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02년 말 대장암 판정을 받아 특별사면됐다.

정씨가 유죄 선고를 받은 것은 수서 비리, 대통령 비자금 사건, 한보사태, 대학 교비 횡령 등 모두 7번이다. 실형을 받은 것은 5번. 정씨가 선고받은 징역형만 20년이 넘는데, 이중 3차례에 걸쳐 5년9개월만 복역했다.

이 와중에도 ‘황제생활’하던 정씨는 지금까지 ‘비리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현재 해외로 잠적한 상태다. 4년째 감감무소식이다.

정씨는 2006년 2월 자신이 설립한 강릉영동대학에서 72억원을 횡령한 뒤 이중 27억원을 세탁해 은닉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항소, 재판을 받던 중 2007년 5월 신병 치료를 이유로 일본으로 출국한 뒤 행방이 묘연하다. 정씨의 측근들도 “정씨가 머무는 정확한 거주지를 알지 못한다”고 전했다.

한 측근은 “이미 다른 사건으로 오랫동안 수감 생활을 한 정씨가 또다시 실형을 받을 것을 두려워해 입국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그가 노구의 몸을 이끌고 국내에 모습을 드러낼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2009년 5월 정씨가 없는 상태에서 징역 3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검찰은 그가 범죄인 인도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키르기스스탄에서 유유자적한 초호화 도피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며느리, 아들, 측근 등이 정씨의 도피자금을 댄 정황 탓이다. 이들은 정씨의 해외 도피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정씨의 재산 은닉 의혹도 제기된다. 정씨는 증여세 등 6개 세목에 걸쳐 2000억원이 넘는 세금을 내지 않아 2004년 이후 7년째 국내 고액·상습 체납자 1위에 올라있다. 그동안 단 한 푼도 납부하지 않았다. 역시 체납순위 상위권에 있는 두 아들 보근(645억원)씨와 한근(294억원)씨의 체납액을 합하면 정씨일가의 체납액은 모두 3000억원이 넘는다.

2000억 체납…잠적


검찰과 국세청은 “정씨의 숨겨진 재산을 끝까지 찾아내겠다”며 그의 행방을 좇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정씨의 신병 확보를 위해 범죄인 인도 청구 등 국제 사법 공조까지 구했지만 공염불에 그쳤다. 검찰은 “정씨가 자진 귀국할 가능성이 상당히 낮다”며 강제 송환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키르기스스탄이 한국과 범죄인 인도 협정을 맺지 않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세청도 정씨의 체납액을 추징하기 위해 그의 행방을 추적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검찰은 2008년 9월 한보일가가 해외로 은닉한 320억원대의 비자금을 찾아낸 바 있다. 하지만 추가 추징 작업은 그리 녹록치 않아 보인다. 정씨가 공식적으로 ‘땡전 한 푼 없는’무일푼 신세인 탓이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세무당국이 정씨의 은닉 재산을 끝까지 추적하는 끈질긴 근성을 발휘하고 있다”며 “그러나 현재로선 정씨의 명의로 된 재산이 전혀 없기 때문에 빚쟁이를 그냥 지켜만 봐야 하는 신세”라고 말했다.

정씨의 아들 한근씨도 ‘도망자’신세다. 13년째 도피 생활을 하고 있다. 한근씨는 1998년 한보철강 비리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잠적했다. 그는 1997년 11월 다른 회사 임직원들과 짜고 시베리아 가스전 개발을 위해 설립된 동아시아가스(EAGC)에서 회삿돈 3270만달러(약 323억5000만원)를 스위스의 비밀 계좌로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2008년 9월 한근씨를 궐석 상태에서 불구속기소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모씨와 조직원 3명이 필리핀 현지 수용소서 탈옥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와 함께 보이스피싱 등의 범행을 함께한 조직원 포함 총 4명은 최근 필리핀 루손섬 남동부 지방 비콜 교도소로 이감됐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지난 4월 말, 현지서 열린 재판에 출석한 박씨와 일당은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수사 당국 관계자는 “박씨와 일당 3명이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구체적인 탈출 방식 등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던 바 있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간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왔다. 특히, 박씨는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는 후문이다. 박씨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박씨가 마닐라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필리핀 루손섬 비콜교도소 수감 보이스피싱 이어 마약 유통까지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 박씨는 새로운 마약왕으로 떠오르고 있는 송모씨와 함께 비콜 교도소로 이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비쿠탄 교도소에 수감돼있는 한 제보자에 따르면 “박씨의 텔레그램방에 있는 인원이 10명이 넘는다. 대부분 보이스피싱과 마약 전과가 있는 인물들로 한국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씨는 본래 마약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다. 송씨와 안면을 트면서 보이스피싱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교도소 내에서 마약 사업을 이어왔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경찰 안팎에서는 “새로운 조직을 꾸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일각에서는 이들이 비콜 교도소서 탈옥을 계획 중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비쿠탄 교도소 관계자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서 약 100만페소(한화 약 2330만원) 정도면 인도네시아로 밀항이 가능하다. 비콜 지역 교도소는 비쿠탄보다 탈옥이 쉬운 곳”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한편, 지난 7일 외교부와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측은 정확한 탈출 방식이나 사건 발생 일자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일축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