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이철성 경찰청장 막전막후

문이 되든 안이 되든 ‘시한부 파리목숨’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이철성 경찰청장 인사에 개입한 것으로 의심되는 자료가 공개됐다. 예전부터 이 청장은 여러 비위행위에도 치안총수 자리에 앉게 돼 많은 의혹에 둘러싸여 있었다. “정권이 교체되면 떠나겠다”는 발언도 다시금 수면위로 떠올랐다. 대선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여러 구설수에도 이 청장이 새로운 정권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지킬 수 있을까?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정부나 민간조직 인사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의심되는 자료가 공개됐다. 지난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이하 센터)에서 일한 김모씨가 사용하던 컴퓨터 하드디스크서 최씨가 이철성 경찰청장 임명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담긴 사진을 확보했다.

최순실 인사에…
개입 의혹 시끌

한 차례 삭제됐다가 포렌식(디지털 증거분석) 작업으로 복원된 이 사진을 보면 이 청장의 프로필 자료 출력물에는 ‘경찰청장 후보 추천 (OK)’라고 기재한 접착식 메모지가 붙어 있다. 특검팀은 최씨가 메모를 붙인 이 청장 프로필 자료를 조카 장시호 씨가 최씨의 의사와 상관없이 촬영했고 이것이 김씨에게 전달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는 평소 센터서 작성한 문서를 최씨가 직접 수정해 돌려주므로 그의 필체를 잘 알고 있고 ‘경찰청장 후보 추천 (OK)’라는 메모는 최씨의 필적으로 보인다고 올해 2월 특검팀서 참고인 조사를 받을 때 진술했다. 김씨는 “내용만 보면 최순실이 (경찰청장 후보를) 추천한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쓰여 있는 것을 처음 봤다”고 덧붙였다.

최씨가 이 청장의 임명에 실제로 개입했는지나 만약 관여했다면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등은 특검 수사 과정서 규명되지 않았다. 다만 최씨 측이 민간단체나 공공기관 인사와 관련한 정보를 미리 확보했던 만큼 박 전 대통령에게 인사에 관해 의견을 피력했을 것이라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이 청장은 이 의혹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며 한 점 부끄러움도 없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특검서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혀주길 바란다고 했지만 특검이 종료되는 그 날까지 이 사항에 대해 특검 측에서 공식적으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제 검찰에게 수사권이 넘겨졌으니 어찌 될 지는 지켜봐야 하는 상황.

최순실의 작품? 의심 자료들 공개
한점 부끄럼 없다더니…흔적 확인

아울러 요즘 검찰이 부정부패를 저지른 고위경찰을 집중 단속하기 시작했다. 일각에선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경찰 군기잡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조사 중인 모 총경이 이 청장의 측근이라고 하니 이 사건과 더불어 최순실의 경찰청장 인사개입의혹도 같이 조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경찰청 내에서 이 청장은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한 뒤 간부후보로 다시 경위로 임용돼 경찰청장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로 평가된다. 하지만 임명 당시 그의 과거에 대한 구설이 끊이지 않았다. 음주운전 경력이 드러나고 논문표절 의혹이 나오면서 당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검증이 실패한 인사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이 청장은 경찰 최말단 계급인 순경서 시작해 1989년 경찰간부 후보생 37기로 입문한 뒤 강원도 원주서장, 서울 영등포서장, 경남지방청 차장, 경찰청 외사국장, 정보국장을 거치고 청와대 치안비서관을 역임한 뒤 경찰청 차장서 경찰총수가 됐다.

경찰대 출신이 장악하고 있는 경찰 고위급 간부 구성을 놓고 봤을 때 순경서 경찰간부 후보생으로 합격해 11단계 계급을 올라 경찰총수가 된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한 법조계 전문가는 “경찰청장으로는 유일하게 하위직인 순경서부터 출발해 경찰 내의 다양한 보직을 거쳤기 때문에 경찰 내부의 생리를 속속들이 안다는 것도 장점”이라며 “이 같은 세심하고도 성실한 인품이 그를 입지전적인 인물로 자리 잡게 한 동력이 됐을 뿐 아니라 경찰조직서 두터운 신망을 받고 있는 이유”라고 유례없는 호평을 늘어놓기도 했다.

조직도 뒤숭숭
실패인사 비판

이 청장은 강원지방경찰청 소속 상황실장(경감)으로 재직하던 1993년 11월 휴무일 점심때 직원들과 반주후 운전을 하다 교통사고를 냈다. 당시 경찰의 교통사고 조사를 거쳐 기소돼 벌금 100만원의 유죄 선고를 받았지만 경찰관 신분임을 숨겨 내부 징계는 받지 않았다.

이 청장의 죄는 2년 뒤인 1995년 12월2일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일반 사면령이 공포되면서 없어졌다.

음주 운전 논란에 이어 부동산 투기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이 청장과 관련해 행정자치부와 경찰청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 청장이 지난 2005년 부인 명의로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오원리 일대의 대지(531㎡)를 매입해 2층짜리 건물을 신축한 사실을 밝혔다.

박 의원은 이에 대해 “이철성 경찰청장 내정자의 가족이 이 곳에 한 차례도 주민등록을 둔 적이 없다”며 “이는 투기 목적으로 매입해 건물을 지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의원이 인근 부동산개발업자의 평가를 인용해 밝힌 자료에 따르면 이 청장과 관련된 해당 부동산의 현재 시세는 4억원 정도로 이 청장이 재산내역서에 명시한 1억1000만원의 약 4배에 해당하는 가격이었다.

박 의원은 해당 부당산이 지난 2005년 횡성군이 금융사의 연수원 건립, 골프장 건설 등 대규모 개발 사업이 예정되며 투자 유망지로 급부상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 청장이 강원지방경찰청 산하 정선경찰서장에 재직하던 시절에 경찰 고위 간부의 지위를 통해 얻은 지역 개발정보를 활용해 부동산을 매입했다는 의혹이 있다는 지적이었다.

반면 이 청장에 대한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 경찰청 측은 “해당 부동산은 노후 대비용으로 매입한 것”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석사 논문을 표절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당시 이용호 국민의당 의원은 “이 내정자는 다른 논문을 표절한 ‘통일대비 남·북한 경찰통합방안 연구’라는 논문으로 2000년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북한학전공 석사학위를 받았다”며 “도덕적으로도 심각한 문제지만 법적으로도 저작권을 위반하는 범죄행위”라고 꼬집었다.

석사 논문은 전체 1191개 문장 가운데 동일문장이 121개, 의심문장이 428개에 이르고 표절 과정서 오타까지 그대로 쓴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기한 위장전입 의혹에 대해 “이사하면서 등록차량의 주소를 이전하지 않아 과태료가 나왔는데 이를 물지 않기 위해 기존 주소지로 두달 동안 이전했다”며 시인하기도 했다.

자질 논란 시끌
정부 바뀌면 바로?


치안총수로 음주운전 교통사고 및 신분은폐 공직자가 임명된 것에 대해 SNS에서는 비판이 쏟아졌다.

SNS에선 “음주운전해도 경찰청장되네. 그럼 음주단속은 어떻게 하나?” “박근혜의 국기문란 행보가 뜨겁다” “안될 사람을 뽑아주면 더 충성할 거라는 계산. 국민, 국격 상관없이 대통령 호위병 뽑기놀이” “심지어 음주운전 신분은폐에 사고당한 사람들 피해도 밝혀지지 않았다. 무서워”

“음주사고도 그것도 경찰이 사고기록도 없애버려도 청장이 되는구나. 현장 경찰관들이 음주운전 단속할 령이 서겠습니까?” “음주운전사고도 부동산 투기처럼 출세하기 위한 훈장인 건가” “이게 진짜 국민 무시하는 거 아니면 뭐하는 거냐” “국민은 없습니다. 기여코 경찰청장 임명 했답니다, 우병우가 검증 했답니다, 끝내주는 정부 입니다” “이철성 경찰청장 살아남으려고 최대한 충성하겠군” 등의 의견이 이어졌다.

이 청장은 자신의 비위와 관련해 “시작은 이랬지만 마무리는 잘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거듭 고개를 숙였다.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서도 과거 비위 행위에 대해 “이유를 막론하고 변명의 여지 없이 제가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경찰 동료들에게 마음의 빚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열심히 일하겠다.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야당서 자신의 사퇴를 촉구하는 데 대해서는 “(야당 입장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라며 “제가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되 조직을 책임진 입장서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좀 지켜봐 주시고 열심히 하겠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 청장은 법에서 임기(2년)가 보장된 경찰청장직임에도 “정부가 바뀌면 자리를 내려놓고 가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밝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음주운전, 논문조작, 투기…
잇단 문제·의혹 자질 논란

이 청장의 법적 임기는 내년 8월까지 2년이다. 경찰청법에서 경찰청장의 임기를 2년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1958년 6월생이기 때문에 경찰공무원 정년을 고려하면 2018년 6월 말 퇴임해야 한다. 국회 인사청문회서 이같은 임기 기준의 모호함이 지적된 바 있다.

그런데 이 청장은 “(경찰청장은) 정부가 바뀌면 자리를 내려놓고 가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며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니 나가는 게 맞다고 본다. 동양적 사고로는 정부가 바뀌면 새로운 분이 (경찰청장을) 하는 게 맞다”고 했다.

치안총수의 임기 보장 문제는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와 밀접하게 연관돼있다는 점에서 그의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동안 대다수 청장이 임기 도중 바뀌는 양상이 되풀이되면서 경찰이 과도하게 정권 눈치를 본다는 비판이 많았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도 대선 과정서 경찰청장 등의 법정 임기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2013년 취임 한 달도 안 돼 당시 김기용 청장을 교체한 바 있다. 2003년 경찰청장 임기제 도입 이후 2년 임기를 모두 채운 청장은 이택순·강신명 두 명뿐이다.

하지만 정작 일선 직원들은 이 청장을 임명한 것에 대해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우선 순경부터 치안총감까지 전 계급을 거친 최초의 경찰청장이라는 점에서 현장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19대 경찰청장인 강신명 전 청장이 경찰대 위주로 경찰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경찰대 출신이 청장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실제로 승진시험이 난이도가 다시 높아지고 직원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어 직원들 사이에서는 덕장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일련의 정치적 사건들과 관계없이 정권이 바뀌어도 임기를 채우기를 바라는 하위직 직원들이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

부메랑으로?
추후 행보 관심

대선이 한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서 이 청장의 추후 행보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 일각에선 “정권이 바뀌면 자리를 내려놓고 떠나겠다”라는 이 청장의 발언이 화살이 되어 돌아 올수 있다고 말한다. 현재 이 부분에 대해서 이 청장은 어떠한 대답도 내놓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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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