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보는’ 박근혜 18개 혐의 총정리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4.24 11:32:42
  • 호수 11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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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공주의 반격이 시작된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박근혜 전 대통령이 뇌물죄로 법정에 선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18가지 혐의를 적용했다. 전직 대통령이 구속 기소된 건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은 국민의 이목이 이제는 법원으로 쏠린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가 지난 17일,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 기소했다. 지난해 10월5일부터 195일간 이어졌던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검찰 단계 수사가 사실상 마무리되는 것이다.

검찰은 이날 오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강요·강요미수·공무상 비밀누설 등 18개 혐의로 박 전 대통령을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대기업서 걷은 돈으로 자금을 마련했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부패혐의로 기소된 세 번째 대통령으로 헌정사에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기게 됐다.

검찰이 인지한 사건이 11개, 특검이 인지한 박 전 대통령의 19개 혐의 중 15개 사건이 7개(3개 혐의는 검찰과 특검이 겹침)로 나뉜다. 특검서 수사한 대표적인 혐의는 삼성으로부터의 뇌물수수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및 시행 등이다. 검찰 2기 특수본은 SK, 롯데 등과 연루된 뇌물 혐의를 추가했다.

검찰은 지난 3월 21일 박 전 대통령을 소환조사하고 같은 달 31일 구속해 수사를 벌여왔다. 이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5번에 걸친 옥중조사를 실시하며 수사를 보강해왔다. 이 가운데 특가법상 뇌물 관련 혐의만 5가지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뇌물로 실제 수수한 금액은 368억2535만원, 약속 또는 요구한 금액을 포함하면 592억2800만원이라고 밝혔다.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 보고서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의 혐의는 다음과 같다.


[강제모금]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공모해 2015년 10월 ~ 2016년 1월 전국경제인연합회 소속 18개 그룹에 재단법인 미르·K스포츠 설립 출연금 774억원을 강제 모금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강요를 한 혐의로 기소했다.

이번 게이트의 핵심 혐의 중 하나로 미르·K스포츠재단은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을 봐도 설립뿐 아니라 인사·운영 모두 청와대 주도로 이뤄졌다. 두 재단 의혹이 확산될 무렵 그의 수첩에 적힌 ‘BH 주도 X’란 문구는 청와대 내부서 말 맞추기를 시도한 정황까지 보여준다.
 

헌법재판소도 탄핵 결정문서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이 필요했다면 공권력의 개입을 정당화할 수 있는 기준과 요건을 법률로 정하고 공개적으로 재단을 설립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직권남용·강요]

검찰 수사 결과 박 전 대통령은 주요 대기업들에 재단 관련한 모금을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다. 먼저 박 전 대통령은 현대자동차그룹에 최씨의 지인 회사인 KD코퍼레이션과 11억원 상당의 납품 계약을 맺도록 했으며, 최씨가 운영하는 광고 회사 플레이그라운드에 71억원 상당의 광고를 발주하도록 한 혐의가 있다.

노태우·전두환 이어 세 번째 
부패 혐의 기소 전직 대통령


박 전 대통령은 롯데그룹에선 2016년 5월 K스포츠재단에 하남 체육시설 건립비용 명목으로 70억원을 지급하게 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강요를 한 혐의가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독대한 뒤 안 전 수석에게 “롯데그룹이 하남시 체육시설 건립 관련 75억원을 부담하기로 했으니 진행상황을 챙기라”고 지시했다. 최씨의 이른바 ‘5대 거점 체육인재 육성사업’ 계획에 따른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포스코는 펜싱팀을 창단하게 시켜 운영권을 최씨 소유의 더블루케이에 주도록 합의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강요 혐의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2월22일 권오준 포스코 그룹 회장과 만난 자리서 포스코의 펜싱팀 창단을 제안했다.

포스코 측이 경영 여건 등을 이유로 창단이 어렵다고 하자, 안 전 수석은 포스코에 다시 연락해 “청와대의 관심사항이니 대안을 생각해보라”고 압박했다. 결국 포스코 측은 16억 상당의 펜싱팀 창단을 결정하고, 최순실 씨 회사인 더블루케이에 운영을 맡겼다.
 

박 전 대통령은 KT에게 최씨의 지인을 광고담당 임원으로 채용하도록 했으며, 플레이그라운드에 68억원 상당의 광고를 발주하도록 강요한 혐의가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월과 8월 안 전 수석에게 “이동수라는 홍보전문가를 KT가 채용할 수 있도록 하고, 신혜성도 호흡을 맞출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내용을 황 회장에게 전달하도록 지시했다.

이후에도 안 전 수석은 대통령의 뜻이라며 두 사람의 보직이동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차은택씨의 측근, 신씨는 최순실씨가 또다른 측근으로부터 추천받은 인물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안 전 수석은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황 회장에게 “플레이그라운드를 KT의 신규 광고대행사로 선정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외에 박 전 대통령은 그랜드코리아레저에게 장애인 펜싱팀을 창단하게 하고, 더블루케이를 에이전트로 하는 전속계약을 체결하게 했으며, 삼성그룹에게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2800만원을 지원하게 했다. CJ그룹 손경식 사장에게는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강요했지만 미수에 그쳤다.

[공무상비밀누설]

박 전 대통령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에게 공무상 비밀을 담고 있는 청와대 정부부처 공문서 47건을 최씨에게 유출한 혐의가 있다. 박 전 대통령은 2013년 1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정 전 비서관에게 국토교통부가 작성한 ‘4·1 부동산 종합대책’ ‘복합 생활체육시설 추가대상지 검토’ 문건 등 직무상 비밀에 해당하는 문건 47건을 최씨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국토부가 2013년 10월에 작성한 ‘복합 생활체육시설 추가대상지 검토 문건’엔 “수도권에 조성할 복합생활체육시설 후보지로 경기 하남시 미사동, 경기 남양주시 마석우리, 경기 양평군 용문면 등 3곳을 검토했고, 그중 경기도 하남시 미사동이 최상의 조건을 갖추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최씨는 2008년 6월 하남시 미사동 ‘복합생활체육시설 대상지’서 500m 떨어진 곳에 건물과 토지를 사들였다가 지난해 4월에 팔아 무려 18억원의 이익을 얻었다.

[제3자 뇌물수수]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신 회장으로부터 잠실 월드타워점 면세점 사업권 재허가 등 부정한 청탁을 받았다고 보고 있다. 이후 최씨의 지시를 받은 더블루케이 이사들은 3월 중순과 하순 두 차례 롯데그룹 상무 등을 만나 “75억원을 후원해달라”고 요구했다.

또한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안 전 수석은 K스포츠 사무총장, 롯데그룹 관계자들과 수시로 전화통화를 하면서 75억원의 지원 여부와 진행상황을 점검했다. 이후 롯데그룹은 6개 계열사를 동원해 2016년 5월25일부터 31일 사이에 K스포츠에 70억원을 송금했다.

[제3자 뇌물요구]

박 전 대통령이 최씨와 공모해 SK그룹으로 하여금 K스포츠재단 등에 ‘가이드러너 지원사업’ ‘해외전지훈련사업’ 등 명목으로 89억원을 공여토록 요구했다는 점에 대해 제3자 뇌물요구 혐의를 적용됐다. SK그룹은 워커힐호텔 면세점 특허사업자 선정에 탈락해 지난해 5월16일 영업을 종료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용은 구속영장 청구단계와 비슷
적용되는 뇌물 액수에 관심 쏠려

또 케이블 방송업체인 CJ헬로비전 인수 과정서 경쟁업체들의 반대 등으로 관계당국으로부터 기업결합 승인을 받는 데 난항을 겪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최태원 SK그룹 회장으로부터 경영 현안과 관련된 부정한 청탁을 받고 뇌물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뇌물수수]

박 전 대통령이 최씨와 공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부터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 등을 도와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받고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말 구입비 등 승마지원 명목으로 213억원을 지급 받기로 약속해 이 중 77억 9735만원을 지급 받은 점에 대해 뇌물수수 혐의가 적용됐다.

검찰은 또 박 전 대통령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미르·K스포츠재단에 각 16억 2800만원, 204억원을 지급하게 한 점에 대해 제3자 뇌물수수 혐의를 적용했다.

[블랙리스트]

박 전 대통령은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관련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부장관 등과 공모해 예술위·영진위·출판진흥원 소속 임직원에게 지원 심사 과정에 부당개입하도록 했다. 정부정책에 반대하거나 야당 인사를 지지하는 문화예술계 인사에 대한 지원을 배제토록 함으로써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강요 혐의가 적용됐다.
 

문체부 실장 3명 인사조치 관련해서도 박 전 대통령은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소위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인사를 지원대상서 배제하는 데 미온적이라는 이유로 기획조정실장 등 3명의 문체부 실장으로 하여금 사직하게 강요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대한승마협회 감사업무를 담당한 문체부 국장이 ‘최씨 측에도 문제가 있다’는 보고서를 작성한 이유로 그를 좌천 시킨후 사직하게 한 혐의도 있다.

[기업 인사개입]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하나은행에 대한 감시·감독 권한 등 직권을 남용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최씨에게 2015년 11월쯤 독일 프랑크푸르트 지점장으로 재직하던 이상화씨를 유럽 총괄법인장에 임명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안 전 수석에게, 안 전 수석은 정찬우 이사장에게 동일한 지시를 내린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같은 행위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강요죄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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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