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장여행 ②광주 1913송정역시장

104년 시간 위에 청춘의 밤이 차오른다

요즘 광주 여행의 키워드는 ‘회춘’이다. 투박하고 낡은 시간에 청춘의 감성을 덧칠해 많은 곳이 젊어지고 환해졌다. 그 복판에 있는 것이 1913송정역시장이다. 1913년에 형성되어 104년 전통을 자랑하는 재래시장으로, 2016년 4월에 리모델링했다.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와 광산구, 중소기업청 등이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로 지원한 결과다.

컴컴하고 한산하던 시장이 한층 밝아지고, 찾는 이도 대폭 늘었다. 무엇보다 20~30대 여행객의 방문이 늘어 오래된 장터가 젊은이의 활기로 술렁댄다. 그 정점에 밤이 있다. 리모델링 때부터 본격적으로 개설 운영한 야시장 덕분이다. 저녁놀이 지고 노란 조명이 하늘을 촘촘하게 채울 때면, 야시장 특유의 달뜬 분위기와 수런거림이 함께 켜져 재미도 두 배, 활기도 두 배다. 이곳의 옛 이름은 송정역전매일시장이다.

광주송정역 앞에 있어 붙은 이름인데, 역에서 시장까지 불과 200여m 거리다. 송정역이 개설될 때 시장이 함께 형성됐고, 이를 기반으로 한때 광산구를 대표하는 시장으로 활황을 누렸다. 최근엔 같은 이유로 광주송정역을 거쳐 가는 자유 여행객의 쉼터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곳에는 KTX 광주송정역 대합실도 있다. 국내 최초로 역사 밖에서 해당 역의 실시간 열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전광판이 설치됐고, 한쪽에는 짐을 맡기고 편하게 시장을 둘러볼 수 있도록 무인 물품 보관소가 마련됐다.
 

입이 즐거운 가게들

시장의 규모는 작다. 골목이 직선으로 170m 정도라 이 끝과 저 끝이 한눈에 담긴다. 여기에 재기 발랄한 청년 상인들의 점포와 각자의 터전을 재해석한 터줏대감 상인들의 점포 60여개가 어깨를 맞대고 앉았다. 그런데 생경하지 않고 조화로우며, 옛날 느낌 물씬 풍기는 세트 같다. 리모델링할 때 종전 시장의 몸에 현대의 스타일을 적절하게 입힌 덕분이다.


간판도 여행객의 시선을 끄는 데 한몫한다. 아직 ‘상회’라는 간판을 쓰는 점포도 있고, ‘느린먹거리’ ‘갱소년’ ‘밀밭양조장’ ‘우아한쌈’ ‘고로케삼촌’ 같은 개성 있는 간판을 단 점포도 있다. 업종도 다양해 시쳇말로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대충 봐도 어물전, 빵집, 국숫집, 의상실, 사진관, 제분소, 미용실, 채소전 등이 늘어섰다.
 

컴컴하고 한산하던 시장 ‘불야성’
자유 여행객 쉼터로 인기 폭발

손님이 많은 곳은 아무래도 입이 즐거운 가게다. 식빵, 크로켓, 국밥, 꽈배기, 계란밥, 양갱, 부각 등이 잘 팔린다. 고소하고 달콤한 빵 냄새가 솔솔 나는 ‘또아식빵’은 발 디딜 틈이 없고, 채소와 김치를 삼겹살로 뚱뚱하게 말아 구운 삼뚱이를 파는 곳에도 손님이 많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승부한 우아한쌈도 눈에 띈다. 노릇노릇하게 구운 삼겹살 한 점을 채소와 함께 싸 먹으면 1000원, 소주 한 잔을 마시면 500원이다. 쌈에 소주 한 잔을 마시는 데 1500원이 들고 3분이 걸린다. 당연히 자유 여행객에게 인기다.

음식 대신 사투리를 파는 곳도 있고, 대여 가게도 있다. 대여 가게에는 ‘누구나가게’라는 간판이 붙었다. 물건을 팔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이곳을 일주일 단위로 빌려 장사할 수 있다. 사투리를 파는 곳은 ‘역사서소’다. 전라도 사투리를 디자인에 활용한다. 까만 연필에 ‘암시랑토 안 혀 개안해야’라고 새기거나, 캘린더에 ‘조깐 쉬다 올랑께 찾지 마쇼’라고 적는 식이다. 
 

오랜 시간이 쌓인 곳에는 이야기가 담기게 마련이다. 104년이나 된 1913송정역시장에서는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일이 소중하다. 옛 간판 아래 새로운 간판이 켜켜이 쌓인 풍경을 보고, 간판과 문에 적힌 가게의 유래와 역사를 읽으며 지나는 여행객의 표정이 흐뭇하다.

길을 걷다가 만나는 연도 역시 하나같이 귀하다. 1920년, 1959년, 1964년… 점포 앞 길바닥에 새겨진 숫자는 해당 가게가 문을 연 시기다. 마치 역사를 밟으며 현재를 돌아보는 기분이다. 이것이 1913송정역시장의 가장 큰 매력이다. 노란 조명등 아래서 이곳의 역사를 좇는 재미가 그토록 좋다.

시장의 정기 휴무일은 매월 둘째 월요일, 자율 휴무일은 넷째 월요일이다. 점포마다 영업시간이 다르지만 대체로 평일 주말 상관없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한다. 
 


1913송정역시장과 함께 광주의 회춘을 이야기하는 곳으로 청춘발산마을이 있다. 서구 양동에 있는 이 마을은 방직 산업이 호황을 누린 1970~1980년대에 성장했으며, 방직공장과 함께 쇠퇴의 길을 걸었다. 가장 눈에 띄는 볼거리는 당연히 미로 같은 골목이다. 광주를 대표하는 달동네답게 구불구불하고 경사진 골목을 따라 각종 조형물과 미술 작품이 들어섰고, 글귀가 새겨졌다. 백상옥 작가의 ‘발산마을을 지키는 영웅들’도 그중 하나다. 고무신에 사람 얼굴을 그려 계속 눈길이 간다.

‘청춘은 무엇이고 어디에 있을까 / 폭풍 같은 날들로, 희망이 안 보일지라도 / 오늘의 삶에 꿈이라는 / 빛나는 벗은 잃지 않을 거야 / 나의 오늘이 내일의 청춘이기를’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108계단도 빛난다. 그림으로 가득한 여타 벽화마을과 달리 글귀로 가득 차 여운이 길다. 
 

광주의 시간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양림동이다. 근대의 풍경을 100년 넘게 지켜온 양림동역사문화마을은 처마 선이 고운 한옥과 이국적인 벽돌집이 공존해 독특한 면모를 풍긴다. 과거와 현재, 동서양의 시간을 교차해서 보고 싶을 때 찾을 만하다.

과거와 현재의 공존

시간이 넉넉하다면 펭귄마을과 사직공원전망타워도 돌아보자. 양림동과 이웃한 펭권마을은 정크아트로 꾸몄다. 낡고 오래된 물건이 죄다 세상 구경을 나온 듯, 마을 골목을 빼곡하게 채운다. 고장 난 벽시계부터 손목시계까지 시계가 가득한 펭귄시계점을 비롯해 익살과 풍자로 버무린 각종 전시물이 재미있다.

펭귄마을을 돌아보고 남은 광주 여행의 아쉬움은 사직공원전망타워에서 풀면 된다. 지난해 3월 개장한 전망타워는 높이 13.7m로, 4층 옥상 전망대에 서면 무등산과 광주 시가지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오후 10시까지 개방해 야경을 보기도 좋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근대 문화 코스] 펭귄마을→양림동역사문화마을→사직공원전망타워→1913송정역시장 [문화 예술 코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청춘발산마을→1913송정역시장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예술의거리→1913송정역시장 [둘째 날] 청춘발산마을→펭귄마을→양림동역사문화마을→사직공원전망타워

2박3일 여행 코스 [첫째 날] 만귀정→서창향토문화마을→용아 박용철 생가→1913송정역시장 [둘째 날] 청춘발산마을→펭귄마을→양림동역사문화마을→사직공원전망타워 [셋째 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예술의거리→동명동 카페촌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오매광주(광주문화관광) tour.gwangju.go.kr
- 1913송정역시장 1913songjungmarket.modoo.at
- 남구 문화관광 www.namgu.gwangju.kr/index.es
- 광산구 문화관광 culture.gwangsan.go.kr
- 청춘발산마을 www.balsanvillage.com

문의 전화
- 광산구청 사회경제과 062)960-8412
- 광주광역시청 관광진흥과 062)613-3634


대중교통 정보
[기차] 용산역-광주송정역, KTX 하루 20여 회(05:10~22:25) 운행, 약 1시간50분 소요. 서울역-광주송정역, KTX 하루 7~8회(06:20~19:30) 운행, 약 1시간50분 소요.
* 문의 :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버스] 서울-광주, 센트럴시티터미널서 5~15분 간격(05:30~다음 날 01:00) 운행, 약 3시간20분 소요. 동서울종합터미널서 30분 간격(05:40~24:00) 운행, 약 3시간50분 소요. 상봉터미널서 하루 5회(06:00~19:00) 운행, 약 3시간50분 소요.
* 문의 :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이지티켓 www.hticket.co.kr 상봉터미널 02)323-5885 코버스 www.kobus.co.kr

자가운전 호남고속도로 광산 IC→제2순환도로 서창 IC→공항역→1913송정역시장

숙박 정보
- 라마다플라자광주호텔 : 서구 상무자유로, 062)717-7000, www.ramadagwangju.com
- 오아시타호스텔 : 동구 동명로20번길, 010-4145-9965, www.oasita.com
- 오가헌 : 동구 구성로194번길, 062)227-5557, www.ogaheon.co.kr
- 호랑가시나무언덕게스트하우스 : 남구 제중로47번길, 062)654-0976, www.horanggasy.kr

식당 정보
- 영명국밥(모둠국밥): 광산구 송정로8번길, 062)942-2727
- 계란밥(계란밥): 광산구 송정로8번길, 062)527-3030
- 육전명가(육전): 서구 상무자유로, 062)384-6767
- 연화식당(육전): 서구 마륵복개로, 062)384-1142
- 한옥식당(애호박찌개): 남구 백서로, 062)675-8886

주변 볼거리 용아 박용철 생가, 만귀정, 서창향토문화마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의거리, 동명동 카페촌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