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바른 상권은 오래 못 간다

부동산 시장이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혼란정국을 벗어나 불확실성은 다소 걷혔지만 조기대선으로 인한 관망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관망세와 별도로 김영란법 전격 시행과 중국의 사드보복으로 인한 내수위축,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 등의 영향으로 전반적인 시장 분위기 반전은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대부분의 변수들이 주택 쪽에 쏠리고 있고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도 사라지고 있어 수익형 부동산에 대한 기대감은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또 고령화, 조기퇴직과 노후대책의 준비 부족 등으로 수익형 부동산에 대한 관심과 역할이 커질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천편일률적은
도태되기 쉽다

2011년부터 전체 인구의 14.6%에 달하는 714만명의 1차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노후 대비수요가 앞으로 크게 증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와 맞물려 임대사업과 개인창업에 관심이 늘면서 상가 등 수익형 시장이 활성화 되고 있다. 수요가 몰리면서 상권이 발달한 지역을 중심으로 투자도 늘고 있는데 이런 가운데서 문화와 개성이라는 콘텐츠가 상권 형성의 중요한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이들이 상권 형성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를 잡은 데는 문화와 상권 고유의 개성을 담은 콘텐츠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가 다양해지고, 수요 주기도 짧아져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을 넘어 문화와 개성을 강조한 콘텐츠를 가진 상권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천편일률적인 상권은 도태되기 쉽기 때문에 상권이 문화와 개성을 입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실제 돈이 만든 상권 오래가지 못하고, 반대로 뜨는 상권엔 문화와 개성 녹아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부분 상권들은 상권이 형성되고 유동인구가 많아지면 자본잠식이 일어나지만 문화와 개성이 넘치는 상권은 예외다. 중심상권 및 그 이면, 또 다른 지역에 개성 있는 개인 점포들과 대기업 브랜드 매장이 공존하는 상권으로 발돋움했다.


대부분 변수들 주택 쪽에 쏠려
수익형 기대감 상대적으로 높아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가 올라 기존 상점들이 다른 지역으로 내몰림) 현상 때문에 기존 상권이 가졌던 성격이 바뀌고, 독특한 개성과 문화를 가진 곳이 새로운 상권으로 뜨기도 한다. 먹거리, 볼거리, 쇼핑장소가 즐비한 상권인 홍대, 이태원, 가로수길, 압구정은 현재 높은 임대료와 한정된 주제의 로테이션에 막혀 있어 이러한 ‘개성의 획일화’에 지친 패션 선도자들은 몇 년 전부터 인근 상권으로 빠져나가는 추세다.

최근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심해진 이태원 경리단길, 신사동 가로수길, 서대문구 연남동과 연희동이 인기 상권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문화와 독특한 개성 덕분이다. 높아진 임대료를 피하려는 상인들이나, 프랜차이즈 상점이 더 많아진 기존 상권을 벗어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새롭게 주목받는 곳은 문화와 개성이 뚜렷한 것이 특징이다.

독특한 문화와 개성을 가진 곳에 새로운 상권이 형성된 것은 단순히 저렴한 임대료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기존 상권에 만족하지 못한 소비자들이 늘 새롭고 개성 있는 대체지를 찾는 바람에 상권도 따라 움직였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서촌이나 북촌은 얼마 전만 해도 조용한 상권이라 사진이 취미인 사람들이 자주 찾았는데, 지금은 주말이면 사람이 북적거려 피하게 됐다. 대신 사진 촬영이 취미인 사람들 사이에선 인근 익선동이나 옥인동, 서순라길과 같이 조용한 곳이 점차 입소문을 타고 있다.

문래동 상권도 홍대의 높은 임대료를 피해 공연장이 생기거나 전시공간이 생긴 경우가 많다. 인디밴드들 사이에서는 문래동의 스튜디오와 공연장 등이 유명해진 지 몇 년 됐는데 서울시나 문화재단 등도 문래동을 많이 지원하면서 최근 이 동네에는 문화와 개성이 넘치는 카페도 많이 생겼다. 상권을 형성하고 활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그 지역만의 문화와 특색을 갖추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데 대학로나 홍대 상권이 오랜 기간 유지된 것은 확실한 개성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최근 새롭게 주목받는 곳도 이런 특색이 뚜렷한 경우가 많다. 문화와 개성으로 가장 주목받는 상권을 꼽으라면 당연 망리단길이다.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곳을 찾아온 1인 창업자들이 모여들면서 이곳은 망원동의 ‘망’과 대표적인 핫 플레이스인 경리단길을 딴 합성어인 ‘망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요즘 뜨는 상권엔 문화와 개성
두 콘텐츠 중요한 요소로 부상


보통 상권이 역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것과 달리 망원동은 망원시장 방향으로 뻗어 나온 ‘포은로길’이 중심축이다. 이 길을 중심으로 서교동 쪽으로 갈수록 임대료가 높아지고 망원2동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경향이 뚜렷한데 홍대와 합정동의 비싼 임대료에 밀린 이들이 서교동과 합정동으로, 또다시 망원동 일대로 이동하면서 생긴 현상으로 보인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016년 3분기 기준 망원동 상권의 경우 보증금을 제외한 순수임대료가 3.3㎡당 10만3090원으로 홍대 일대(12만1440원)와 합정동(13만840원), 상수동(12만8330원)보다는 낮은 수준이지만 임대료 상승 속도는 여타 홍대 상권보다 빠른 편이다. 2015년 말 대비 순수임대료 상승률은 21.1%로 합정동(16.6%)이나 상수동(6.59%)을 훌쩍 뛰어넘는데 2016년 3분기에는 연남동 순수임대료(3.3㎡당 9만9545원)를 추월했다.

상수·합정동이 홍대 상권의 연장선에서 운영되는 것과 달리 망원동은 기존 생활상권과 신 상권이 어우러지면서 홍대 상권과는 다른 독특한 정체성을 확보했다. 상권 발달 단계로 보면 아직 성장기로 임대료 상승세가 앞으로 더 가파를 것으로 전망된다. 월세보다 더 뛴 것은 바닥권리금(시설·인테리어 비용과는 상관없이 상권에 따라 형성된 최초의 권리금을 말함)인데, 이곳 상가의 경우 권리금이 없거나 1000만원 선에서 형성돼 있던 바닥권리금이 최근 1년 새 4000만원까지 뛰었다. 다만 지나치게 높은 권리금 탓에 거래는 활발하지 않다는 게 현지 부동산 중개업소들의 설명이다.

상권 변화는 매매시장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망원동 단독주택을 매입해 카페로 리모델링한 ‘카페부부’는 독특한 외관으로 입소문을 타며 손님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런 식으로 단독·다가구주택을 매입해 상가나 상가주택으로 바꾸는 사례가 이 일대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2~3년 전부터 망원동 일대에 부동산 투자 바람이 불면서 개인이 투자할 만한 10억원대 다가구주택과 상가 등은 대부분 손바뀜이 일어난 상황인데 리모델링이나 용도변경 등을 통해 건물 몸값도 상승일로에 있다.

단순 먹거리만?
특색 뚜렷해야

망원로2길에 있는 상가주택은 3.3㎡당 3400만원 선에서 거래가 이뤄지고 있지만 포은로길 인근 상가주택은 3.3㎡당 4850만원에 시세가 형성됐다. 이나마도 매물 자체가 쏙 들어가 거래가 쉽지 않다는 게 인근 중개업소의 공통된 설명이다. 중소형 빌딩 매매거래 전문업체인 리얼티코리아에 따르면 2015~2016년 망원동에서는 총 18건의 빌딩 거래가 이뤄졌다. 이 중 눈길을 끄는 것은 망원역 2번 출구를 나오자마자 보이는 유용빌딩으로 2015년 7월 97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초역세권인 데다가 유동인구가 많아지면서 임대료 역시 크게 올랐는데 2016년 공시지가가 4.5% 상승한 것을 감안하면 현재 건물가치는 100억원이 훌쩍 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전문가들은 매매가격이 단기간에 상승한 만큼 투자에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망원역 인근 단독주택과 상가주택의 매매가는 3.3㎡당 5000만원, 호가는 7000만~8000만원까지 치솟았는데 마포구청·월드컵경기장 쪽으로 이어지며 발전 가능성이 엿보이는 상권이지만 현재 매매값이 지나치게 오른 만큼 무리한 투자는 금물이라는 것이다.

신도시나 택지지구 등에서도 문화와 개성을 강조한 상가들의 투자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상가의 트렌드가 단순히 쇼핑의 공간이 아닌 문화시설과 상권 고유의 개성을 함께 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면서, 콘셉트형 상가의 가치는 높아지는 추세다. 콘셉트형 상가는 상업시설 내에서 문화시설을 누릴 수 있어 고객의 체류 시간을 늘릴 수 있으며 이는 추후 상가의 수익률을 극대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콘셉트를 갖춘 상업시설의 미래가치가 더욱 돋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호반건설이 판교신도시에 공급한 주상복합 ‘호반써밋플레이스’의 상가 ‘판교 아브뉴프랑’은 단지 내 상가를 브랜드화시킨 대표적 성공 모델이다. ‘아브뉴프랑’은 ‘프랑스’와 ‘길’이라는 의미로 유럽형 스트리트몰로 조성됐다. 고급 맛집과 독특한 콘셉트의 테마숍, 다양한 휴게 공간, 문화갤러리 등을 배치해 판교의 명소로 꼽힌다. 최근 광교신도시에도 2호점을 오픈해 브랜드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인천 송도에 위치한 ‘송도 커넬워크’ 역시 유럽풍 쇼핑몰로, 송도국제도시의 중심에 위치한 인공 수로를 중심으로 양옆에 설계된 상가다. 분양가에 비해 현재 1억원가량의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다. 다음은 문화와 개성을 강점으로 선을 보이고 있는 신개념 상가 현황이다.

▲지젤엠청라= 지젤엠청라는 문화시설이 미비한 청라국제도시에 들어서는 최초의 복합문화공간이다.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비롯해 컨벤션센터, 청라 최대 스포츠센터, 다양한 문화와 체험이 가능한 엔터테인먼트 공간, 크고 넓은 최고의 주차공간 등이 조성된다.

이 단지는 청라 명소인 커넬웨이 수변도로 진입 상가다. 커넬웨이와 지하광장이 직통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쾌적함은 물론 풍부한 유동인구를 흡수할 수 있다. 대지면적 1만995㎡, 건축면적 6484㎡, 연면적 5만9546㎡ 규모다. 지하 3층~지상 5층으로 지어진다. 600여대 동시 주차가 가능하다. 53%대의 높은 전용률을 자랑한다. 계약금 20%, 중도금 40% 무이자 혜택을 제공한다. 준공은 오는 8월 예정.


▲김해 장유 네오 푸드앤조이= 김해 장유신도시에 푸드(Food)를 중심으로 쇼핑, 휴식, 여가를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푸드타운인 ‘네오 푸드앤조이’가 분양 중이다. 김해 장유신도시 장유출장소 앞에 들어서는 네오 푸드앤조이는 지하 2층~지상 3층으로 각종 외식 프랜차이즈, 맛집, 대형마트, 노래방, 스크린골프장, 키즈카페, 패션매장, 의류 등 다채로운 매장들로 구성됐다. 평당 1000만원대의 상대적으로 낮은 분양가는 풍부한 임대 수요 확보가 가능하다. 70%대의 높은 전용률로 공간 활용도가 높은 게 특징이다.

또 상가 구역 내 음용 합격 판정을 받은 지하수를 사용할 수 있어 관리비가 절감되는 등 입점 상가의 편의와 실용성이 높은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네오 푸드앤조이는 건물별로 개별 소유가 가능한 독립형 스트리트 상가로 고객의 동선을 고려해 점포를 양쪽으로 배치, 노출도를 극대화하고 유동 인구를 효과적으로 흡수한다. 대형마트가 입점해 고정 고객 확보와 모든 야외 테라스에서 760여평에 달하는 대규모 중앙광장이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구조로 고객이 보다 오래 머물 수 있는 상가를 구현하고 있다. 고객들의 주차편의를 위해 315대의 대규모 주차장을 확보했다.

▲창원 플래츠나인= 창원시 의창구 북면 감계지구에 신개념 복합테마상가 ‘플래츠나인’이 분양 중이다. 감계지구는 계속된 도시개발로 향후 신규 아파트와 단독주택 1만가구에 초등학교 2곳, 중학교 2곳, 고등학교 1곳이 들어섰거나 들어설 예정이다. 특히 감계 최초 3300여㎡(1000여평)의 대형사우나에 아이들과 함께 안전하게 즐기는 ‘유아 스파’는 지역의 관광명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플래츠나인 바로 옆에는 4500여㎡ 부지의 대형마트가 내년 9월 준공 예정에 있어 인근 무동, 신촌 지역까지 상권 유입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1층 전면 광장은 기존 다른 상가와 달리 주차공간을 없애고, 테마형 공원으로 꾸며 각종 문화행사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콘셉트형 상가
가치 높아져

여름에는 공연도 보고 분수광장에서 아이들과 물놀이를 할 수 있다. 실내에 설치한 ‘자이언트 슬라이드’는 또 다른 문화시설로 각광받으면서 새로운 상가문화를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테마파크를 조성해 반려동물을 데리고 외출해 함께 쇼핑과 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요즘 상가 쇼핑 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차공간은 지하 2층 전체와 지하 1층 일부, 옥상 리프트 주차방식으로 동시에 200여대 주차가 가능한 넉넉한 공간으로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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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