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부리 여행 ③제주 서귀포시 중앙로62번길

입안 가득 군침 도는 주전부리 순례

여행에서 어찌 먹는 즐거움을 빼놓을 수 있을까. 더구나 요즘 같은 ‘먹방’시대에 하루 세 끼는 기본이요, 틈틈이 주전부리도 곁들여야 한다. 주전부리라고 해서 심심풀이 군것질 정도로 여기면 곤란하다. 여행 전부터 점찍어놓고 일부러 찾아가 먹을 만큼 유명한 별미가 많다. 제주로 떠난다면 흑돼지꼬치구이와 꽁치김밥을 맛봐야 한다.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은 여행자에게 ‘참새 방앗간’ 같은 곳이다. 시장 구석구석에 먹거리가 많아 구경하는 내내 입안에 군침이 고인다. 시장 남쪽 입구에 자리한 ‘지민원’의 흑돼지꼬치구이는 가장 눈에 띄는 주전부리다. 이른 아침부터 손님이 늘어서 문전성시일 정도로 인기다. 식후에도 고기 굽는 냄새에 코가 절로 벌름거린다.

두툼한 생고기가 빈틈없이 꽂힌 흑돼지꼬치구이는 언뜻 봐도 무척 실하다. 꼬치마다 파인애플과 가래떡이 한 조각씩 있는데, 돼지고기와 궁합이 잘 맞는 파인애플은 새콤한 디저트 역할을 하고 가래떡은 밥을 대신한다. 덕분에 꼬치 하나 먹으면 든든하다. 꼬치 한 개당 무게가 200g 정도니 양도 결코 적지 않다.

꽁치+김밥 의외의 조합

냉장실에 숙성시킨 꼬치는 미리 구웠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즉석에서 다시 한 번 굽는다. 손님이 끊이지 않으니 굽는 족족 동난다. 먹기 쉽게 한입 크기로 자른 뒤 소스와 가츠오부시를 듬뿍 얹어주는데 무척 먹음직스럽다. 소스는 입맛에 따라 순한 맛, 약간 매운맛, 아주 죽을 맛(매운맛) 중에 고를 수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영업하며, 꼬치 한 개에 5000원이다.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의 또 다른 명물 주전부리는 꽁치김밥이다. ‘꽁치와 김밥?’ 의외의 조합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많다. 꽁치김밥을 처음 개발한 곳이 횟집이라는 사실도 재밌다. 원래 회 상차림의 곁들이로 단골손님에게 서비스 삼아 주었는데, 꽁치김밥을 따로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메뉴가 됐다. 시장 서쪽 주차장 입구에 보이는 우정회센타 1호점이 원조집이다.


‘흑돼지꼬치구이’ ‘꽁치김밥’ 맛봐야
피로감 들 때 새콤달콤 ‘귤하르방’

꽁치김밥에는 꽁치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간다. 김밥에 으레 들어가는 단무지와 햄 같은 부재료 없이 밥과 꽁치뿐이다.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을 김에 펴 담고, 오븐에 구운 꽁치를 통째로 올려 그대로 만다. 김밥 앞뒤로 꽁치 머리와 꼬리가 나와 처음 보면 당황스럽기도 하고,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꽁치김밥은 모양에 한 번, 맛에 두 번 놀란다. 따끈한 흰쌀밥과 바삭한 김, 노릇하게 구운 꽁치가 입안에서 어우러진다. 생선 비린내가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필요 없다. 보들보들한 꽁치 살이 고소하고 담백하다. 굵은 뼈와 내장을 모두 발라내고 굽기 때문에, 잔가시만 주의해서 먹으면 된다.

회를 주문하면 상차림에 꽁치김밥이 기본으로 제공되며, 추가 시 한 줄에 3000원이다. 꽁치김밥을 따로 주문하면 한 줄에 4000원이고, 포장만 가능하다. 시장 안에 1·2호점이 있고 표선에 3호점을 운영한다. 어디나 맛은 동일하다.
 

가벼운 간식거리로 ‘귤하르방’의 빵과 주스도 맛볼 만하다. 돌하르방을 본떠 만든 앙증맞은 풀빵이 별미다. 반죽에 직접 만든 귤 커스터드 크림을 넣어 한입 베어 물 때마다 달콤한 귤 향이 퍼진다. 감귤을 착즙해 만든 주스도 인기 만점이다. 여행 중 피로감이 들 때 마시면 새콤달콤한 맛에 눈이 번쩍 뜨인다. 빵 한 봉지 3000원, 주스 한 병 3000원이다.

서귀포매일올레시장서 차로 5분 거리에 자구리문화예술공원이 있다. 쪽빛 바다를 품은 아름다운 경관과 예술 작품이 어우러져 잠시 쉬었다 가기 좋다.
 

부근에 전망이 근사한 카페도 여럿 있다. 올레길 7코스 길목에 자리한 카페 ‘뷰크레스트’는 푸른 바다와 문섬이 펼쳐진 풍경에 바라보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따뜻한 커피와 자몽차 한 잔 곁들이면 일상의 피로가 스르르 녹는다. 전문 작가들의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도 운영해 문화의 향기까지 덤으로 즐길 수 있다.


문화의 향기는 덤

법환포구 앞 카페 ‘제스토리’는 소품 숍을 겸해 즐길 거리가 많다. 곳곳에 재미난 문구와 그림이 숨어 있고, 지역 작가들이 만든 재기 발랄한 기념품이 자꾸 지갑을 열게 만든다.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2층 창가는 야생 돌고래와 조우하는 명당이다. 바닷가 가까이 돌고래가 출몰해 운이 좋으면 수면 위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제스토리에서는 둘째·넷째 금요일마다 플리마켓 소랑장이 열린다.

대포포구에 있는 카페 ‘바다다’는 감각적인 인테리어와 음악이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마치 휴양 리조트에 온 듯 이색적인 분위기가 마음을 끈다.
 

올레길 6코스의 비경으로 꼽히는 소천지, 바닷속 신비를 탐험하는 아쿠아플라넷 제주도 가볼만하다.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해안가에 바닷물이 들락날락하며 작은 호수를 이룬 소천지는 백두산 천지를 축소한 것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날씨가 맑고 바람이 잔잔하면 한라산이 바닷물에 비쳐 더욱 신비롭다.

상어 등 관람객 유혹

온 가족이 나선 여행이라면 아쿠아플라넷 제주로 발걸음을 돌려보자. 메인 수조 ‘제주의 바다’는 가로 23m, 세로 8.5m에 달하는 초대형 관람 창을 자랑한다. 거대한 가오리와 상어, 자이언트그루퍼, 전갱이 등이 물속을 날듯이 헤엄치며 관람객을 유혹한다.

펭귄과 물범, 큰돌고래를 비롯해 아마존 강 유역을 재현한 아쿠아 사파리, 해양 생물을 직접 만져보고 체험하는 터치 풀 등 흥미로운 전시가 많다. 해녀 물질 시연, 가오리 먹이 주기 등 아쿠아리움 프로그램도 놓치면 아쉽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서귀포매일올레시장→자구리문화예술공원→소천지→아쿠아플라넷 제주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서귀포매일올레시장→자구리문화예술공원→소천지 [둘째 날] 아쿠아플라넷 제주→섭지코지→지니어스로사이

관련 웹 사이트 주소
·제주특별자치도청 관광정보 www.visitjeju.net/index.jto
·귤하르방 jejuholdings.com
·아쿠아플라넷 제주 www.aquaplanet.co.kr/jeju/index.jsp
·뷰크레스트 www.vuecrest.co.kr

문의 전화
·서귀포시청 관광진흥과 064)760-3941
·서귀포매일올레시장 064)762-1949
·우정회센타 064)732-0303
·지민원 064)763-2923
·귤하르방 070-4523-6600
·제스토리 064)738-1134
·뷰크레스트 064)738-0388
·바다다 070-4139-2000
·아쿠아플라넷 제주 064)780-0900

대중교통 정보 
[버스] 제주국제공항서 600번 리무진버스 승차, 뉴경남관광호텔 하차. 도보 약 10분. / 제주시외버스터미널서 781번 버스 승차, 동문로터리 하차. 도보 약 7분. / 서귀포 시내서 100번 버스 승차, 남군농협 하차. 도보 약 2분. *문의 : 삼영교통 064)713-7000, 제주시외버스터미널 064)753-1153 


자가운전 정보 제주국제공항→용문로→월성사거리 우회전→오라오거리서 시청·종합경기장 방면 좌측→광양사거리 우회전→중앙로→516로→비석거리 우회전→중앙로터리서 천지연폭포 방면 9시 방향→서귀포매일올레시장

숙박 정보
·베니키아크리스탈호텔 : 서귀포시 중정로, 064)732-8311 
·베니키아중문호텔 : 서귀포시 천제연로, 064)802-8889, www.benikeajungmun.com
·제주R호텔 서귀포점 : 서귀포시 중정로, 064)733-5477, www.rgeho.com
·제주이도펜션 : 서귀포시 일주서로, 064)739-0525, www.penthousejeju.com

식당 정보
·네거리식당(갈치조림·갈치구이): 서귀포시 서문로29번길, 064)762-5513
·진주식당(전복뚝배기): 서귀포시 태평로, 064)762-5158
·해운대가든(흑돼지구이·전복뚝배기): 서귀포시 태평로, 064)738-6939,739-7347,
  blog.naver.com/tomato1488
·수희식당(전복뚝배기·갈치조림): 서귀포시 태평로, 064)762-0777

주변 볼거리 
천지연폭포, 새연교, 새섬, 정방폭포, 소정방폭포, 왈종미술관, 기당미술관, 외돌개, 이중섭미술관, 쇠소깍, 섭지코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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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