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우의 시사펀치> 이 나라, 망하지 않은 게 신기하다

대학서 영문학을 전공하던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아마도 ‘영미시’ 과목 시간인 듯한데, 담당 교수께서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시 ‘The Road Not Taken(선택하지 않은 길)’을 분석해 발표하라는 과제를 냈다.

공교롭게도 과에서 처음 발표자로 지정돼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그리고 발표 당일 열과 성을 다해 근 30분에 걸쳐 발표를 마치자 급우들이 수고했다며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교수께서 작심하고 한마디 하셨다. 요약하자면 ‘이제 걸음마 단계에 있는 학생이 어떻게 대시인의 작품을 함부로 재단하느냐’였다. 필자가 발표를 마무리할 즈음 강력하게 주장했던 시의 주제에 대한 지적이었다.

아울러 미국서 오랜 기간 공부하셨던 그분의 입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배웠던 교육, 즉 주제 찾기에 혈안이 되었던 잘못된 습성에 대해 강하게 질타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물론 모든 학생이 일순간 침묵에 빠져들었다.

그 조그마한 사건이 계기가 돼 이후 나의 사고에 일대 변화가 찾아왔다. 나의 사고를 제한하는, 주제넘게 주제 찾기에 몰두하는 방식을 버리고 다양성을 염두에 두고 사고하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후일 이러한 일이 또 다시 발생했다. 정치판을 접고 소설가로 변신한 바로 직후의 일이었다. TV를 시청하던 중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들 문제로 대국민 사과하는 장면을 보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고백했다. ‘김 전 대통령도 인간이었다’고 말이다.


창피한 고백이지만, 필자는 그 순간까지 김 전 대통령을 인간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필자가 정치판에 있었던 13년이란 기간 동안 김 전 대통령은 인간 이전에 그저 타도해야 할 대상에 불과했다.

물론 김 전 대통령과 대치 상태를 이루는 패거리에 속해있고 그 문화에 함몰돼 있었기 때문인데, 결국 나의 사고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극히 편협하게 변화한 결과였다.

이후 한동안 치를 떨 정도로 나에 대한 회의감에 빠져들었다. 언급한 것처럼, 대학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폭넓게 바라보자고 스스로에게 굳게 다짐했건만, 그 다짐은 철저하게 공염불이 돼버렸다.

그를 자각하고 일체의 패거리서 벗어나면서 서서히 욕심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더불어 내 머릿속에 박혀 있던 더러운 생각들을 지워갔다. 그러자 주변, 즉 가정의 분위기는 다운돼 갔지만 내 마음은 홀가분하게 변해갔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지금 <일요시사>의 이 지면을 통해 필자의 시선에 왜곡돼 보이는 현상들을 과격하다 할 정도로 질타하고 아울러 그 대안을 제시하곤 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창피할 정도로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글은 이제 그만 썼으면 좋겠는데, 귀한 밥 먹고 남들 질타하는 이야기 말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지면을 채웠으면 좋겠는데 이 사회가 나의 조그마한 소망마저 짓밟고 있다. 나오느니 한숨뿐이다.

이제 조만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 헌재서 결판날 모양이다. 그런데 현 시국을 살피면 탄핵이 인용되어도 또 기각되어도 문제다. 참으로 기가 막힌 형국이다. 그저 유구무언, 이 나라가 망하지 않고 있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모씨와 조직원 3명이 필리핀 현지 수용소서 탈옥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와 함께 보이스피싱 등의 범행을 함께한 조직원 포함 총 4명은 최근 필리핀 루손섬 남동부 지방 비콜 교도소로 이감됐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지난 4월 말, 현지서 열린 재판에 출석한 박씨와 일당은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수사 당국 관계자는 “박씨와 일당 3명이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구체적인 탈출 방식 등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던 바 있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간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왔다. 특히, 박씨는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는 후문이다. 박씨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박씨가 마닐라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필리핀 루손섬 비콜교도소 수감 보이스피싱 이어 마약 유통까지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 박씨는 새로운 마약왕으로 떠오르고 있는 송모씨와 함께 비콜 교도소로 이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비쿠탄 교도소에 수감돼있는 한 제보자에 따르면 “박씨의 텔레그램방에 있는 인원이 10명이 넘는다. 대부분 보이스피싱과 마약 전과가 있는 인물들로 한국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씨는 본래 마약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다. 송씨와 안면을 트면서 보이스피싱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교도소 내에서 마약 사업을 이어왔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경찰 안팎에서는 “새로운 조직을 꾸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일각에서는 이들이 비콜 교도소서 탈옥을 계획 중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비쿠탄 교도소 관계자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서 약 100만페소(한화 약 2330만원) 정도면 인도네시아로 밀항이 가능하다. 비콜 지역 교도소는 비쿠탄보다 탈옥이 쉬운 곳”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한편, 지난 7일 외교부와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측은 정확한 탈출 방식이나 사건 발생 일자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일축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