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결단 ‘박근혜 하야 꼼수’ 플랜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02.27 10:17:24
  • 호수 11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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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남 검찰총장과 얘기 끝? 머리 굴리는 '박통'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정치권서 ‘탄핵 전 하야’ 시나리오가 재부상하고 있다. 수세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이 조만간 전격 하야 발표를 할 것이란 내용이다. 점차 탄핵 인용 쪽으로 추가 기울고 있는 현 상황서 박 대통령이 내릴 수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라는 것. 범여권과 청와대가 기획관으로 지목받고 있다.

앞서 지난해 11월 대통령 하야설이 제기됐다. 1월1일을 전후로 박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날 것이란 예상이었다.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 하야를 하면 본인의 명예를 지킬 수 있을뿐더러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도 누릴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이후 어떠한 발표도 나오지 않았고 하야설은 잠잠해졌다.

여태 버티더니
이제 와서 왜?

당시 박 대통령이 하야를 하지 않은 이유는 본인의 무죄를 밝히기 위함이라는 해석이 중론이다. 무죄에 대한 의지는 탄핵소추안 통과 이후 박 대통령의 발표를 보면 잘 녹아 있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과 특검의 수사에 차분하고 담담한 마음가짐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박 대통령은 10여명으로 구성된 법률대리인단을 꾸리는 등 탄핵 기각에 힘을 쏟았다. 특검 수사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탄핵 심판을 앞두고 적극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법률대리인단의 여론전은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최후 변론을 지연시키는 작전도 헌재가 27일로 못 박으면서 무산됐다. 사활을 걸었던 지연작전이 무위로 그치면서 박 대통령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현재 3월 초 선고가 유력해진 상황이다.


박 대통령 측에는 헌재의 탄핵 결정을 지연시킬 수단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이에 최후 수단으로 하야 카드를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략적 판단을 열어주는 하나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역풍을 맞긴 했지만, 맞불 집회는 보수 결집 가능성을 시사했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 하야설을 통해 여론의 추이를 지켜볼 수 있다.

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물론이고 특검을 피해갈 수 있는 상수라는 점에서 하야는 매력적인 카드다. 특검이 종료되면 검찰이 사건을 이어받아 수사를 진행하게 된다. 정치권이 뽑은 박영수 특검팀보다 자신이 임명한 김수남 검찰총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을 상대하는 게 편할 수밖에 없다.
 

하야를 할 경우 적어도 구속은 피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만약 특검 수사 기간이 연장되기라도 한다면, 탄핵 인용 후 곧바로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그림이 그려진다. 그러나 수사의 키가 검찰로 넘어가면 수사팀을 새로 꾸려야 한다. 시간을 벌 수 있는 것이다. 수사팀이 기록을 검토하는 시간까지 감안한다면 2∼3개월이 훌쩍 지날 수 있다. 재정비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관심을 돌릴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다. 하야를 발표하는 순간 정국은 60일간의 조기 대선모드로 전환된다. 검찰의 수사를 피할 순 없겠지만, 자신을 향한 민심의 화살을 대선으로 돌릴 순 있다. 야권의 비난도 피할 수 있다. 새로 들어선 정부가 시작부터 전직 대통령을 구속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예상 또한 하야에 무게를 싣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하야설의 진앙지는 어디일까. 정치권은 범여권과 청와대를 지목하고 있다. 최근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과 바른정당 일부에서 하야설을 골자로 한 ‘질서 있는 퇴진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선주자들의 힘이 야권으로 기울고 있는 상황에서 반전을 노린 정치적 포석이 퇴진론이란 것이다.

퇴진론은 극심한 국론 분열을 막기 위해 여야 정치권이 나서 박 대통령의 자진 사퇴 길을 열어주자는 게 핵심이다. 그 속에는 박 대통령에 대한 사면이 전제로 깔려 있다.


제 발로 나갈까
인용 예상했나?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보름 전 탄핵 결정 뒤 후폭풍에 대해 얘기한 적 있다”며 “탄핵 결정 후 국론분열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야가 정치력을 발휘해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대책을 논의할 수 있는 여야의 정치력이 강화돼야 한다.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도 비슷한 얘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박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전제로 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당시 정 원내대표는 “그렇다”고 답했다. 같은 날 정 원대대표는 YTN 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 “이 문제(퇴진론)에 대해선 이미 청와대서도 검토한 것으로 안다”고 말해 기획설에 불을 지폈다.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서 “청와대와 대통령은 탄핵 심판 전에 국민을 통합하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방안이 있는지, 탄핵 이전에 어떤 정치적 해법이 있는지 적극 모색해야 할 때”라며 “대통령이 하야하고 정치권은 사법처리의 부담을 덜어주는 쪽으로 해결해야 국론이 분열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7일 바른정당 김성태 사무총장은 “박 대통령의 명예로운 결단이 헌재 결정 이후 극단적 대립을 수습할 수 있다”고 퇴진론을 언급한 바 있다.

퇴진론은 미국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과 닮아 있다. 당시 미 의회는 닉슨 대통령에 대한 사임을 전제로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합의했다. 닉슨 대통령은 후임 제럴드 포드 대통령에게 사면받았다.

헌재 결정 앞두고 ‘하야설’ 재부상
범여권-청와대 기획설 “사면 전제”

그러나 사면 때문에 퇴진론은 정치권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실정이다. 야권은 물론 바른정당 일부서도 퇴진론은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바른정당 정병국 대표는 최근 국회 최고위원회의서 “박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판결이 온전히 이뤄지도록 협조해야 한다”며 “그것이 대한민국의 품격을 지키고 국가와 국민, 헌법 정신에 대한 마지막 도리다. 탄핵 소추 전 질서 있는 퇴진 요구를 거부하고, 이제 와서 하야를 검토한다는 것이 사실이면 비겁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국민의당 등도 냉랭하긴 마찬가지다. 오히려 크게 신경 쓸 것 없다는 모양새다. 전제조건인 사면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으며, 박 대통령의 성향상 실제 자진 사퇴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관측에서다.

하야를 하기엔 시기적으로 늦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만약 박 대통령이 하야를 하더라도 헌재가 탄핵심판 절차를 계속할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지난 2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서 “우리당에서 일관되게 주장한 게 탄핵까지 가지 말고 박 대통령의 하야 내지는 2선 후퇴였다. 그렇게 결정을 내리면 국회서 총리를 추천해주겠다고 했는데 대통령이 거부한 것”이라며 “곧 탄핵 결정이 내려질 판에 이제 와서 갑자기 해묵은 얘기(퇴진론)를 꺼내는 저의를 모르겠다”고 받아쳤다.


특히 우 원내대표는 사면을 전제한 부분에 대해 “박 대통령이 자연인으로 돌아갔을 때 사법처리를 막을 생각으로 제안하는 거라면 정말 턱도 없는 소리”라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꿩 먹고
알 먹고

같은 날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는 “이미 청와대서 그런 일(자진 사퇴)은 하지 않겠다고 의사 표명을 분명히 했고, 박근혜 대통령의 지금까지 언행으로 봐서 (하야를) 하지 않을 것 같다”며 “첫 번째 사과성명을 하면서 진솔하게 고백하고 국민의 심판을 받기 위해서도 물러나겠다고 했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그랬으면 이런 혼란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기적으로 늦었다는 뜻이다.

정의당 한창민 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서 “지금 ‘질서 있는 퇴진’을 끌고 오는 것은 여론호도용 물타기”라며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헌재의 박 대통령 탄핵과 범죄에 대한 법적 심판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하야설이 실제 현실로 이어질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국회 탄핵소추위원은 그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민주당 이춘석 의원은 tbs 라디오에 출연해 “결국은 (탄핵 심판)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그 전에 박 대통령이 선제적인 조치가 가능한 것을 검토하고 있지 않겠나”고 내다봤다.

또 다른 국회 탄핵소추위원인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은 cpbc 라디오서 “하야를 하고 안 하고는 대통령의 자유의지지만,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마지막 순간에는 대통령 측에서 온갖 수단을 동원해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알아보려고 할 것”이라며 “인용이 거의 확실시된다면 헌재로부터 탄핵 결정을 받느니 하야를 택하겠다고 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야권서는 “턱도 없는 소리”
하야하면 탄핵은 끝? 가능도

우선 청와대는 하야설에 선을 긋는 모습이다. 최근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복수의 언론을 통해 “대통령 하야설은 터무니없는 얘기고, 내부적으로 전혀 검토한 적도 없다”며 “정치권에서 자꾸 그런 식의 얘기를 흘리는데 우리 입장은 명확하다. 더 이상 언급하는 것도 부적절하다”고 못 박았다.

이제 와서 하야를 하게 되면 죄를 인정하는 셈이다. 이는 무죄를 강변해온 박 대통령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결국 ‘사면 전제’와 ‘국론 분열 방지’ 중 어떤 것에 더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판가름 날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촛불 집회와 맞불 집회 양측이 여론전을 펼칠 경우 비등한 싸움이 될 개연성도 충분하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가 박 대통령 하야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야를 할 경우 박 대통령은 연금 및 유족연금, 기념사업 지원, 경호·경비, 치료, 사무실 및 비서 제공 등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의전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다.

현재 탄핵 찬성 여론은 80%에 육박한다. 이는 지난해 12월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변함없는 흐름이다. 박 대통령에게 정치적·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국민의 뜻은 그만큼 확고하다. 사면 전제를 받아들였을 때 일어날 역풍을 고려한다면 야권이 한국당과 협상에 나설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종합해봤을 때 하야설은 범여권과 청와대의 ‘일장춘몽’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이 아예 없는 시나리오는 아니라는 게 정치권의 전언이다. 이 때문에 만약 하야를 할 시 탄핵이 그대로 진행될 수 있느냐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SBS 라디오서 “파면할 상대가 없어져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 시점에서 헌재는 탄핵 심판을 종료할 수 있다. 그게 원칙”이라고 전했다.

나라 위해?
사면 전제?

그러나 단서는 존재한다. 임 교수는 “위헌 행위가 장래에 반복될 위험이 있거나 헌법 질서의 수호 유지를 위해 긴요한 경우에는 (심판 청구 이익의 예외 조항에 해당돼) 최종 결정까지 갈 수 있다”며 “대통령이 중대한 위헌·위법 행위를 해서 탄핵을 받아야 한다면, 탄핵 결정을 내리는 것이 헌법 질서의 수호·유지를 위해 긴요한 사항이기 때문에 심판 청구의 예외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따라서 대통령이 하야하더라도 헌재는 최종 결정까지 갈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더불어민주당이 본 박근혜정부 4년
경제파탄·국기문란 “역대 최악”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3일 박근혜정부 4년을 평가한 자료집을 발간했다. 민주당 정책위원회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박근혜정권의 지난 4년은 무능한 국정으로 민생을 파탄 내고, 비선실세 국정농단으로 헌정질서를 파괴한 역대 최악”이라고 평가했다.

해당 자리에서 정책위는 ▲비선실세 국정농단 ▲안전대책 부실 ▲가계부채 증가 ▲청년층 등 실업난 ▲주거 빈곤 심화 ▲경제민주화 공약 불이행 ▲노동개악 ▲위안부협상·한일군사보호협정 체결 강행 ▲개성공단 폐쇄 ▲국정교과서 강행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언론장악 ▲국민연금의 삼성 경영승계 도구화 등을 지적했다.

희대의 국정농단 사태
가계부채 1300조 넘어

세부적으로 정책위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언급하며 “대기업 기부금 불법모금, 전 방위적 인사개입, 도를 넘은 권력남용, 부당한 특혜 편취 및 제공,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등 희대의 국정농단으로 국민의 분노를 폭발시켰다”고 지적했다.

또 경제 정책에 대해 “가계부채는 1300조원을 돌파하고 실업난과 주거 빈곤은 더욱 심화됐음에도 쉬운 해고와 임금삭감, 비정규직을 확대시키는 노동개악을 추진했다”며 “민생은 외면당했고, 경제는 파탄 났다”고 비판했다.

정책위는 “이번 자료집 발간을 통해 국민에 박근혜정부의 실정을 상세히 알리고, 향후 새롭게 출범될 민주정부가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국민에게 신뢰받을 수 있는 성공한 정부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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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