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산으로' 최순실 공판기록 공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2.15 16:57:11
  • 호수 11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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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태와 월세방 보증금 빌려주는 사이”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궁지에 몰린 쥐, 고양이를 물다. 검찰이 기소한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10차 공판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순실씨는 자신에게 씌워진 모든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최씨가 수세에 몰렸을까. 변론하는 과정 최씨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을 쏟아내며,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9차 공판 기록을 토대로 그 동안 최씨의 ‘말말말’을 살펴봤다.

최순실씨와 고영태씨가 국정농단 파문이 불거진 뒤 처음으로 법정서 마주했다. 과거 최씨의 측근으로 분류됐던 고씨는 K스포츠재단과 더블루K를 사실상 운영한 사람이 최씨라고 지목하면서 진실공방을 이어갔다.

궁지에 몰려
고양이 물다

고씨는 지난 6일 오후 2시10분 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진행된 최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9차 공판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법정에 나와 있던 최씨는 증인석으로 이동하는 고씨를 노려봤지만 고씨는 최씨 쪽으로 눈길을 주지 않았다. 두 사람이 같은 장소에서 얼굴을 마주한 것은 지난해 9월, 최씨가 독일로 도피한 뒤 처음이다.

이후 심야까지 7시간 넘게 진행된 공판서 두 사람은 때론 인신공격이나 막말에 가까운 공방을 주고받았다. 이날 고씨의 증언을 꼼꼼히 메모하던 최씨는 밤 10시가 넘어 재판이 끝날 무렵 10여분간 직접 고씨를 상대로 반말조로 질문을 퍼부었다.

이날 고씨는 최씨가 아닌 재판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한때 친밀한 관계였다가 완전히 갈라선 두 사람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다음은 9차 공판 기록서 발췌한 최씨와 고씨가 오간 내용이다.


공판 진행될수록 코너에 몰리는 형세
매번 최후의 발악…물타기 시도 정황

최순실(이하 최) : 신용불량 부분. (중략) 국민은행에서 고영태씨 계좌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신용불량 걸려있어서 카드도 못 쓰고 통장거래 안 됐잖아.

고영태(이하 고) : 모르겠다. 신용불량에 걸려본 적 없어서.

최 : 왜 모르나. 포스코 갈 때 고민우라고 명함 판 것. 고민우로 개명하려고 법률사무소에서 했는데 전과사실과 마약 전과가 나와서 못했지 않나. 그건 사실이잖나.

고 : 사실 아니다.

앞서 최씨의 변호인인 이경재 변호사도 고씨에게 공격적인 질문을 했다. 이 변호사는 “고씨는 신용불량자이고 고민우라는 가짜 이름을 사용했으며 최씨에게 빌린 월세방 보증금 3000만원도 갚지 않았다”고 했다.

이에 고씨는 “무슨 뒷조사를 했는지 모르겠는데, 신용불량자 된 적 없고, 고민우라는 이름도 쓴 적 없고 보증금은 2000만원인데 다 갚았다”고 맞섰다.

재단 주인은?
진실공방 가열


최씨는 공판서 이번 국정 농단의 사태가 고씨와의 불륜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고도 주장했다. 앞서 지난 1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10차 변론서 박 대통령측 대리인단은 “이 사건의 발단은 최순실씨와 고영태씨가 불륜에 빠지면서 시작됐다”고 주장하며 책임을 고씨에게 전가했다.

이경재 변호사 : 헌재 탄핵심판, 피청구인 대리인 측, 일방 주장에 의하면 증인(고영태)이 최서원과 불륜 관계가 생겨서 이 사건이 발단됐다고 하는데.

고 : 답변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신경 쓰지도 않았다. 신성한 헌재서 역겹다, 인격적인 모독을 하고 과연 그게 국가 원수의 변호인단이 할 말인지. 한심할 따름이다.

이처럼 공판서 최씨 측은 고씨를 향해 인신 공격성 공세를 펼치며, 국민을 아연실색게 했다. 최씨 측이 이번 공판과 무관한 고씨의 인신공격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선 최씨가 ‘물타기’를 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최씨는 고씨에게 ‘신용불량자’ ‘전과자’ ‘마약’ 등을 언급했다. 이는 고씨 증언의 신뢰도를 떨어뜨려 정보 공개에 집중하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최순실 게이트’를 폭로한 고씨의 발언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방법으로도 풀이된다. 최씨 변호인이 태블릿 PC가 증거 효력이 없다고 물고 늘어진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돌연 불륜카드
“역겹다” 일축

야당도 최씨 측이 스스로 불륜 관계임을 드러내면서까지 고씨에게 막장 공세를 편 데 대해 물타기 의혹을 제기했다.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은 지난 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서 “손자까지 둔 할머니다. 사실상 할머니로 불리는 60세 여자가 20세나 아래인 남자와 자기들이 스스로 불륜을 맺었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며 “보통 사람 같으면 아니라고 부정을 해야 하지만 막장드라마 같은 얘기를 자기들이 주장하고 있잖나”라고 개탄했다.
 

이어 손 의원은 “왜 그럴까? 그렇게 창피한 일을 앞에 내세우면서까지 숨기고 싶은 뭔가 비밀이 있는 것”이라며 “박 대통령과 최씨 두 사람 목표는 같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최씨와 관계를 끊으려고 힌다. 최씨는 자기가 했던 국정 농단의 모든 것들을 고영태와 차은택한테 미루고 있다. 국민을 정말 뭘로 보는 건지 정말 참 한심하다”고 질타했다.

이날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간 대화가 담긴 녹취파일 공개로 최씨는 수세에 몰리자 격분하기도 했다. 최씨는 “다른 죄는 다 받겠는데, 이건 너무 억울해서 물어봐야 될 것 같다”며 증인으로 나온 이성한 전 사무총장에게 직접 질문했다.

이날 검찰은 이 전 사무총장이 지난해 8월 한강변서 최씨와 고씨가 만나 대화한 내용을 녹음한 파일을 공개했다.

“계획적”…“그래 계획적이다”
막말 기본…재판장 고성 오가


최 : (이성한이) 고영태에게 여러 번 녹음파일을 공개한다고 말하니까 한번 만나 달래서 이 문제 확대되지 않게 하려고 나간 거다. 전화기를 다 없애고 만난 건데 그날 누구 전화기로 녹음을 한 거냐?

이성한 전 사무총장(이하 이) : 누가?

최 : 문제 생길지 모르니까 전화기 다 걷었잖아. 누구 전화로 녹음한 건가?

이 : 전화기는 아니고 내 주머니 속에 녹음기가 있었다.

최 : 계획적이네.

이 : 그렇다. 계획했다. 본인이 날 미친놈으로 생각하니까.


지난해 8월 경 이 전 사무총장은 고씨의 연락을 받고 서울 반포 인근 한강시민주차장에 주차된 SUV 차량서 최씨를 만난 바 있다. 당시 고씨는 녹음을 우려하며 이 전 사무총장의 휴대전화를 수거했다. 이 전 사무총장은 “향후 자신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울 수 있다”는 우려로 미리 가져간 추가 녹음기를 이용해 최씨와 대화를 녹음했다.

최씨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자신이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5일 법원의 체포영장을 집행한 박영수 특검팀에 의해 강제 소환된 최씨는 “억울하다. 특검이 자백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씨는 지난해 11월 직권남용 등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이후 특검팀으로부터 일곱 차례나 소환 통보를 받았지만 줄곧 ‘버티기’ 전략으로 일관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24일 한 차례 출석한 이후로는 건강상의 이유 등을 들며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혐의 부인했지만
증거 앞서 무너져

그간 본인의 형사 재판서조차 말을 아꼈던 최씨는 이날 호송차에서 내려 특검 사무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까지 이동하는 동안 취재진을 향해 “여기는 더는 자유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라며 작심한듯 소리쳤다. 최씨는 “(특검이) 어린애와 손자까지 멸망시키겠다고 그러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박 대통령과 경제공동체임을 밝히라고 강요(받고있고) 너무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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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