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호 특집대담> ‘세균맨’ 정세균 국회의장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7.02.06 11:02:11
  • 호수 11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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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과 허물없이 지내는 의전서열 2위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행정부 수반의 탄핵을 목전에 둔 지금, 입법부 수장이자 국가 의전서열 2위인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쏠리는 국민들의 관심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설 연휴 기간 동안 민심의 엄중함을 확인한 각 정당이 대선 모드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는 가운데 정 의장의 행보가 향후 정국을 좌우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 정치권의 상황은 ‘오케스트라’에 비유되곤 한다. 20년 만에 4당 체제로 재편되면서 정치권은 각자 다른 소리를 낼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20대 국회에 들어 ‘협치’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국회선진화법은 과반수의 의석을 확보하는 데 실패한 각 당 원내대표들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냈다.

오케스트라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꼽으라면 단연 지휘자다. 각양각색의 소리를 하나의 음악으로 만드는 데는 지휘자의 능력이 절대적이다. 지휘자의 손은 선율을 만들어내고 관객은 박수를 보낸다. 마치 오케스트라를 감상하는 관객처럼, 국민들은 정치권서 나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국회 지휘자’ 정세균 국회의장이 서로 다른 4당의 목소리를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2월 정기국회가 불협화음으로 얼룩질지, 아니면 하모니를 만들어낼지 결정된다. <일요시사>는 ‘마에스트로’의 면모를 보이고 있는 정 의장을 만나 현 정치권 상황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 다음은 정 의장과의 일문일답.

- 설 연휴 어떻게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계시는 경기도 광주의 ‘나눔의 집’을 다녀왔습니다. 할머니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국회가 역사를 바로잡는 데 앞장서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왔습니다. 또한 전통시장 상인들과 시민들을 만나 설 민심을 듣고 왔습니다.


민생이 어렵습니다. 설 명절을 앞두고 날씨만큼이나 싸늘한 체감 경기는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했습니다. 국회가 나서서 민생문제를 살펴 달라는 민심을 받들어 민생경제와 국정운영 안정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일요시사> 창간이 올해로 21주년을 맞았습니다. 의장님께서도 지난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 원내부총무로 정계 입문하신 이후 21년이 흘렀는데요. 그간 가장 눈에 띄는 정치권의 변화를 꼽아주신다면?

▲ 여러 변화가 있었지만 통합선거법, 정치자금법 등이 만들어지면서 정치가 많이 투명해졌습니다. 그리고 지역주의가 그때에 비해 완화됐습니다. 그러나 20년 전에 비해 여야 간 양보와 타협이 줄어든 것도 사실입니다. 제 의장 임기 동안 국회의 위상을 높이고, 정쟁보단 협치를 통해 국민에게 힘이 되는 국회를 만들 생각입니다.

- 최근 국회 청소근로자 직접고용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제도권의 이 같은 결정이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대한 사회 전반의 움직임으로 확대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는데요.

▲ 취임 초부터 약속했던 국회 청소용역 직접고용 문제가 소기의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동안 말만 있고 결과는 없어 안타까웠는데, 숙원사업이 잘 해결돼 기쁩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기획재정부 관계자, 원내대표, 국회 예결위원장 및 운영위원장 등과 지속적으로 협의한 성과입니다.

이번 일은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국회가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입니다. 국회로부터 시작된 이러한 변화가 공직사회와 기업 등 우리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쳐 더 많은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안정과 근로조건 향상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국회서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균블리’ ‘세균맨’ 등 친숙한 별명이 많습니다. 이렇듯 국민들과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 제 인스타그램 계정이 ‘gyunvely_413’입니다. 그래서 ‘균블리’로 불리고 있는데요. 많은 분들이 균블리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인스타그램은 저의 팬들이 운영하는 SNS입니다. 제 개인의 노력이라기보다 그 분들이 홍보를 잘해줘서 인기가 올라간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 인스타그램을 보면, 가끔 망가진 사진들도 올라오는데요. 그것으로 국민들에게 작은 웃음을 줄 수 있다는 데 만족합니다. 든든하게 일하는 국회, 친근하게 소통하는 의장이 되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 제25차 아시아·태평양 의회포럼(APPF) 폐회식서 국회가 제출한 ‘한반도 평화에 관한 결의안’이 채택됐습니다. 결의안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요?

▲ 폐회식에 앞서 전 APPF에 참석해 ‘아·태 지역 평화협력을 위한 북핵문제 해결 구상 제안 - 6자회담 당사국 의회 간 대화 필요성’을 연설했습니다. 이 자리서 전 ‘제재와 관여전략의 병행’ 및 ‘6자회담 당사국 의회 간 대화’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효과적인 틀임을 제안했습니다.
 

폐회식서 ‘한반도 평화에 관한 결의안’이 채택된 것은 이런 제 연설이 재확인된 것입니다. 포럼 회원국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또한 같은 날 채택된 공동선언문(Joint communique - 18 January 2017)서도 한반도의 안정과 관련 국가 의회의 대화 필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나눔의 집·시장 찾아 설 민심 청취
국회 청소근로자 직접고용 약속 지켜

- APPF서 위안부 피해자 관련 12·28 합의에 대해 “절차적 미흡함 때문에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하셨습니다.

▲ 이번 정부는 국민·국회와의 소통에 너무나도 인색한 정부라고 생각합니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단순히 한일 정부 간 밀실협의를 통해 해결할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사드배치 때와 마찬가지로 국민·국회와의 소통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의사조차 묻지 않고 합의를 추진했습니다. 법원이 “대한민국 국민은 일본 정부가 어떤 이유로 사죄 및 지원을 하는지 등을 알아야 할 필요성이 크다”며 위안부 강제연행과 관련된 문서를 공개하라고 판결을 내렸음에도 우리 정부는 이를 공개하지 않고 오히려 항소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정부가 법원의 결정에 불복할 것이 아니라 판결 내용대로 해당 문서를 포함한 합의 전반에 관해 공개해 국민께 이해를 구하고 그 과정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국회와 협의해서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렵더라도 그것이 문제점을 시정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이고 바람직한 방법입니다.

정부의 주장대로 외교적 사안을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도 이해가 안 되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국민들 대다수가 합의결과나 진행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피해자 할머니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합의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정부는 현 상황서 누구의 의견을 가장 중요하게 경청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 미 공화당이 대선은 물론, 상 하원 선거서도 승리해 행정부·의회를 모두 장악했습니다. 때문에 공화당과의 공조 여부가 미국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요소가 됐는데요.


▲ 외교와 안보만큼은 여야가 따로 없습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여야 중진을 중심으로 구성한 동북아평화협력 의원 외교단이 미국 의회를 방문해 한미동맹을 재확인했습니다. 의회 간 대화는 행정부보다 국가 간 갈등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국회가 가진 다양한 외교채널을 활용해 대미 외교뿐만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의장으로서 역할을 다하겠습니다.

- 촛불집회를 지켜본 심정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 최순실 게이트는 대통령 측근들의 ‘국익 사유화’에 대통령 및 정부기관이 적극 가담한 초유의 권력형 비리사건입니다. 이러한 후진적 권력형 비리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너무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촛불집회는 우리 국민들의 저력을 보여줬습니다.

국민들은 평화적이고 성숙한 방법으로 주권자의 권리를 적극 행사하고 있습니다. 정의롭고 공정한 대한민국을 바라는 촛불시위서 희망의 씨앗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현 사태를 초래한 책임자들은 이러한 민심을 받들어 사태수습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입니다.

- 지난해 12월 황교안 권한대행과의 회동서 여야정 협의체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협의체 논의에 진전이 있나요?

▲ 현재 경제부총리 및 여야정책위의장단 단위서 정책협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당 대표들과 권한대행이 정책을 협의하는 상위 단위의 국정협의체도 가동돼야 할 것입니다. 얼마 전 바른정당 지도부가 구성됐고 황 권한대행 또한 지난 신년 기자간담회를 통해 국회와 협력하겠다고 했으니 국정협의체가 원만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황 권한대행과의 소통은 잘 이뤄지고 있나요?

▲ 얼마 전 황 권한대행이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국회와 소통하겠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저 역시 입법부의 수장으로서 상호신뢰와 존중으로 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민생을 돌보는 일이 중요한 시기인 만큼 국회와 정부 간 협치를 통해 하루빨리 국정운영이 안정화될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하겠습니다.

APPF ‘한반도 평화 결의안’ 성과
원내대표들 만나 탄핵혼란 막기로

- 2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기존 원내 3당 체제서 4당 체제로 늘어났는데요. 때문에 합의 도출에 난항이 예상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 저는 다당제가 가진 장점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행위자들이 늘어 여러 의견들이 충돌할 경우 난항에 부딪칠 수 있지만, 반대로 협의·협치를 통해 진정한 대의민주주의를 실현할 수도 있습니다.
협치를 위해 지난해 연말부터 지금까지 두 차례 여야 4당 원내대표들을 만나 국회운영에 대한 의견을 나눴습니다.
 

이 자리서 탄핵정국의 혼란을 막고 국회가 국정운영의 한 축으로서 역할을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여야가 협치하고 더 나아가 정부와도 협력해야 합니다. 국회의장으로서 이러한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계획입니다.

- 최근 야3당 원내대표와 함께 선거연령을 18세로 하향하는 데 뜻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교사들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고려한다면 현행 제도가 적절하다는 주장이 있는데요.

▲ 현재 OECD 가입국 중 우리나라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18세 선거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선진국처럼 미래의 주인이 될 청소년들의 의견을 현재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 청소년들이 세계 여러 나라의 청소년들과 비교했을 때 더욱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만 18세는 혼인이 가능하며 국방 및 납세의 의무, 주민등록증 발급 등 사회적 의사결정에 대한 판단력을 갖춘 연령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오히려 청소년들까지 정치참여 기회를 확대한다면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에 기여할 것입니다.

- 취업·결혼·주택 문제 등으로 청년들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 그 어느 때보다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합니다. 졸업 후 실업자가 되는 것이 관례가 돼 버렸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에 청년고용 확대, 학자금대출 상환 유예 등을 담은 청년법과 열정페이 근절 법안 등을 발의했거나 준비 중입니다. 앞으로도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및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의무 준수 실현을 위한 정책 지원에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 개헌특위가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대선 전 개헌 가능성을 진단해주신다면?

▲ 정상적인 대통령 임기라면 대선 전 개헌이 가능할 수 있지만, 조기대선으로 간다면 다음 대통령 임기 중에 개헌을 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개헌을 위한 절차에 최소한의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개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형성돼 있고 정치권서도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다수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가급적 제 임기 내에 개헌이 되면 좋겠지만, 그것이 힘들다면 20대 국회 내에서라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 권력구조에 초점을 맞춘 ‘원포인트 개헌론’과 국민의 기본권을 포함한 ‘포괄적 개헌론’이 맞붙고 있습니다. 의장님은 어떤 입장이신가요?

▲ 개헌은 국민적 공감이 기본이고, 그 토대 위에 국회의 각 정당이 합의를 해야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우선 국회 개헌특위 내에서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 될 것입니다. 논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손질이며 그 외에도 국민의 기본권 향상, 민생경제개념, 지방분권문제 등에 대한 전반적 수정이 불가피합니다. 정치적 이익이 아닌 국익에 따라 국민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일요시사>가 1100호를 맞았습니다.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 먼저 독자 여러분과 함께 축하를 드립니다. 지난해 우리 사회는 상식과 원칙, 정도를 벗어난 일들로 심한 몸살을 앓았습니다. 그러던 중 국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희망의 불씨를 살려놓았습니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을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보여주고 실천했습니다.

국회는 새해를 맞아 책임과 권리가 상응하는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자 합니다.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국정의 한 축을 담당하는 국회가 국정 공백은 물론, 중요한 민생경제를 회복시키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chm@ilyosisa.co.kr>

 

[정세균 의장은?]

▲전라북도 진안 출생
▲전 쌍용그룹 상무이사
▲제9대 산업자원부 장관
▲전 민주당 대표
▲제15·16·17·18·19·20대 국회의원
▲제20대 국회 전반기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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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