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김영란법 이후…수렁에 빠진 대한민국 ①‘직격탄’ 업계 표정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2.06 09:52:45
  • 호수 1100호
  • 댓글 0개

줄줄이 폐업 “다 망하게 생겼다”

경제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습니다. 서민 주머니는 두말하면 잔소리. 구멍이 날 정도로 너덜너덜해진지 오랩니다. 올해는 더한답니다. IMF 이후 최악이란 전망이 우세합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애꿎은 ‘김영란법’이 타깃이 되고 있습니다. 이 법 때문에 경기침체가 더 심화됐다는 게 원망의 시선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김영란법’이 시행되고 연말도 지났고, 명절도 지났습니다. 각종 통계와 조사 결과, 그리고 본지 취재를 통해 ‘김영란법’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해 봤습니다. <편집자주>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김영란법 시행으로 여러 업종에서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설 특수를 누리지 못하고 매출 급감으로 일부 업종은 고사위기에 직면했다. <일요시사>는 김영란법 이후 위기에 처한 업계 상황을 짚어봤다.

김영란법은 지난 2012년 국민권익위원장을 역임한 김영란 전 대법관이 처음 제안했다. 지난 2015년 국회를 통과했고 지난해 9월28일 시행됐다. 김영란법의 공식 명칭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부패 청산을 기치로 내건 김영란법은 시행 초기부터 우리나라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지적이 있어왔다.

초상집 분위기

시행 반년이 지난 현재, 정치권에서는 김영란법의 가이드라인 ‘3만원(식사 및 음식물), 5만원(부조), 10만원(부조)’을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우선 선물을 주력으로 하던 화훼업계는 초상집 분위기다. 지난달 30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1월1일부터 15일까지 전국 화원협회 1200개소의 소매 거래금액은 모두 1억3020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7.1%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영란법 시행직후인 지난해 10월부터 같은 해 12월31일까지 소매 거래금액도 28% 감소한 6억3520원에 머물렀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4개월간 꽃 소비가 눈에 띄게 위축된 것이다. 특히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화환이나 난 선물을 꺼리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상황서 김영란법은 화훼시장에 직격탄을 날린 모양새다.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에 따른 2005년 1인당 연간 화훼 소비액은 2만870원을 기록했다. 이후 2010년 1만6098원, 2015년 1만3000원을 기록해 10년 새 37% 급감했다. 같은 기간 화훼 생산 규모도 2005년 1조105억원에서 2015년 6332억으로 반 토막 났다.

앞서 서울 양재동 aT 화훼공판장은 출하물량이 줄고 경매단가가 떨어지자 경매를 주 2회에서 1회로 줄였다. 난 시장이 호전될 경우 난 경매를 원래대로 복구하려 했지만 김영란법이 겹치면서 앞으로의 계획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법 시행 초기인 지난해 10월, 결혼 시즌임에도 꽃을 찾는 사람들이 대폭 줄었고, 연말연시, 인사철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꽃집들은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반 토막 났다. 김영란법 시행 초기에 불필요한 오해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축하 난을 보내는 관행이 줄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화훼농가와 소매점을 운영하는 한 점주는 “예년에는 6500원에서 8500원 사이에 팔리던 국화 한 단이 김영란법 시행 이후에는 4000원대에 팔리고 있다”며 “이대로 가다간 화훼업계 절반 이상이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aT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꽃 소비의 대부분이 경조사용·선물용인데, 기업과 금융권의 경우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이 아닌데도 막연한 ‘두려움’이 깔려 있는 것 같다”며 “일상에서의 꽃 소비를 확대하는 등 다양한 대책을 고민하고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화훼업계뿐만 아니라 축산업계도 울상이다. 국내 축산업계는 대목인 설을 맞아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섞은 상품을 내놓는 등 김영란법 맞춤 선물세트를 내놨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특히 선물 5만원이 넘지 않는 4만9000원대 선물세트는 축산업계의 주력 상품이었지만 택배비를 포함하면 김영란법을 위반할 소지가 높다는 이유로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았다.


음식점, 화훼, 축산, 주류…
매출↓ 폐업하는 가게 속출

지난달 3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1월2일부터 26일까지 롯데백화점 축산부문 설 선물세트 판매율은 전년 동기 대비 3.9% 감소했다. 신세계백화점도 축산부문 매출이 3.1% 떨어졌다. 반면 수입산 축산품 판매는 예년에 비해 큰 폭으로 신장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소상공인연합회 최승재 회장은 “김영란법을 개정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종합적인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이라며 “김영란법이 도입된 이후 국산 농수산물이 외면받고 수입 농수산물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것은 법의 취지가 변질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류업계도 김영란법에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접대 문화가 자취를 감추면서 유흥업소의 매출이 감소해 맥주, 위키스 업체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김영란법은 성장가도를 달리던 와인 업계에도 타격을 입혔다.

다만 가격과 도수를 낮춰 소비자층을 넓힌 소주의 인기는 치솟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김영란법 이후 외식업 매출이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그 여파가 고스란히 주류업계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자영업도 김영란법을 피해가지 못했다. 특히 일부는 생계까지 위협받는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지난해 12월20일부터 26일까지 전국 709개 외식업 운영장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84.1%는 지난해 12월에 비해 매출이 크게 감소했다고 답했다.

룸살롱·단란주점 등 유흥업계도 경기침체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가운데 김영란법 시행으로 그나마 드나들던 손님들의 발길이 끊긴 상황이다. 지난달 4일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에 따르면 전국의 유흥업소는 2만5000여개, 서울 지역의 유흥업소는 2500여개에 달한다.

특히 업소가 밀집된 강남은 현재 300여개가 운영되고 있는데 이 중 30여개 업체가 이미 문을 닫았다. 10여개 업체는 업종전환을 준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 서울지부회장은 “김영란법으로 인해 경제계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법이 본격 시행되면서 폐업하는 가게가 속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공연업계는 특히 올해 된서리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난해에는 기업들이 이미 대형 공연에 대한 협찬금 책정을 마무리한 상황이었지만,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공연예술 분야 지원을 감축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직격탄을 맞은 곳은 기업 의존도가 높은 클래식 업계다. 은행·카드사들은 클래식 공연 협찬 비용의30∼50%를 티켓으로 환산받아 고객 초청이나 거래처 접대에 사용해왔다. 하지만 초대권을 받는 이들 중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이 상당수 포함될 수 있어 기업들이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다.

현 공연업계의 흐름을 두고 원종연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기업과 제작자들이 김영란법을 엄중하게 받아들이면서 투자심리와 홍보활동이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관람객의 공연 문턱을 낮춰주는 초대권이 위축되고 비평가와 평론가 등에게 티켓 제공이 까다로워지면서 입소문을 내는 홍보활동의 어려움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역시 무리수?


주영섭 중소기업청장은 지난달 9일 김영란법에 대해 “김영란법 취지에는 100% 찬성하나 3·5·10만원으로 규정된 제한 금액이 적절한지는 살펴봐야 한다”며 “법 취지는 살리고 소상공인·중소기업 피해는 줄이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