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vs 반문주자’ 불안한 안보관 비교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01.31 11:42:48
  • 호수 10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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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18개월 카드 ‘먹힐까’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유력 대선주자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안보관이 도마 위에 올랐다. 사드 배치를 두고 오락가락 행보를 보인 것. 잠룡들은 연일 맹공을 퍼부으며 문 전 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일요시사>는 문 전 대표와 반문주자들의 안보관을 비교해봤다.

지난해 7월 국방부는 경북 성주에 기습적인 사드(THAAD) 배치를 발표했다. 사전에 충분한 협의 없이 정부는 일방적으로 통보했고, 성주 군민들은 집단 반발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정치권의 사드 배치에 대한 갑론을박은 현재진행형이다. 정부가 사드 배치를 거론한 지 2달여 흐른 지난해 9월9일 북한은 보란 듯이 5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대내외적 악재가 겹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지형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고 있다.

문-반-안
사드 OK?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지지율 정체 국면을 극복하고 지지율을 30%대로 높이면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과 격차를 벌리고 있다. 반 전 총장이 귀국과 동시에 연일 엇박자·논란 횡보를 보이면서 민심은 문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상승세를 의식한 듯 여야 잠룡들은 앞다퉈 문 전 대표의 안보관 비판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현 안보 상황의 중요 키워드는 사드(북핵), 군대, 한미동맹 등이 꼽힌다. 우선 정치권에 논쟁을 일으키고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된 사드에 대해 지난달 15일, 문 전 대표는 “사드 배치 문제는 (앞으로 진행을) 다음 정부로 미루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미 합의가 이뤄진 걸 쉽게 취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9일 “사드 배치 절차를 중단하고, 외교적 노력을 다시 하자”며 조기 배치에 반대한다는 주장을 명확히 했던 점을 미뤄볼 때 본인의 입장을 180도 뒤바꾼 셈이다. 기존 ‘재검토’ 입장에서 ‘합의 유지’선까지 후퇴하자 정치권은 일제히 문 전 대표를 비판하고 나섰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치적 표를 계산하며 말을 바꿔서는 안 된다”며 “국민 편에 서는 정치인이라면 누구 앞에서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문 전 대표를 에둘러 비판했다.

이어 “사드는 2500만 인구가 사는 수도권 방위에 현실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라며 “더구나 우리가 경제적으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과의 심각한 관계 악화를 초래할 뿐”이라고 사드 배치 반대를 분명히 했다.

문, 연일 오락가락…말 바꾼 이유는?
이재명-박원순 본격적 문 헐뜯기 시작

이재명 성남시장도 문 전 대표 비판 행렬에 동참했다. 이 시장은 “사드 관련 문 대표님 입장이 당초 설치 반대에서 사실상 설치 수용으로 왜 바뀌었는지 설명이 필요하다”며 “한반도 운명에 지대한 영향이 있는 이런 심각한 문제에 대해 충분한 설명도 없이 오락가락하는 건 국민 특히 야권 지지자들을 혼란에 빠트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시장 역시 사드배치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한 상태다.

국민의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안철수 전 대표도 문 전 대표와 마찬가지로 ‘사드 불가피론’을 내세웠다. 안 전 대표는 “외교·안보의 판단 기준은 국익이 우선 돼야 한다. 일단 정부 간에 약속한 협약을 다음 정부에서 완전히 뒤집는 건 힘들다”고 밝혔다.

최근 국내에 복귀해 대선 행보를 보이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지난 23일 사드와 관련해 “현재 남한은 북한과 계속 마찰을 빚고 있는 상황이고 북한은 계속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고, 무기와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사드 배치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바른정당서 몸을 풀고 있는 유승민 의원도 사드에 대해서는 강경한 입장이다. 지난 5일에는 민주당 의원들이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사드 한반도 배치를 논의한 데 대해 “매국적 행위”라고 강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유 의원은 국회서 열린 창당 준비위 회의에서 “사드는 우리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필요하고, 대한민국의 주권에 해당하는 사안”이라며 “군사주권, 또 국민주권에 해당하는 사안은 어떤 나라나 어떤 경우에도 타협할 수 없고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또 모병제…
선심성 공약

군 복무기간 단축 문제도 안보의 중요 요소 중 하나다. 지난 17일 문 전 대표는 <대한민국이 묻는다> 출판 기자간담회서 군 복무기간과 관련해 “국방개혁방안에는 18개월까지 군 복무기간을 단축하는 것으로 계획돼있다. 앞으로 18개월로 정착되면 장기간에 걸쳐 단축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해마다 조금씩 (복무기간을) 줄여나가서 18개월에 맞추는 것인데 이명박정부서 22개월 선에서 단축이 멈췄다. 그러니 18개월까지 단축하는 것은 원래대로 그렇게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 병력에 대해서도 현재의 60만명 규모를 50만명으로 줄여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아울러 그의 저서에는 군 복무기간 18개월 단축을 넘어 1년 정도까지 가능하다고 본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진다.

야권 잠룡 이재명 성남시장은 문 전 대표보다 파격적인 군 단축을 언급했다. 이 시장은 지난 17일 <이재명, 대한민국 혁명하라>를 통해 선택적 모병제로 현재 21개월인 군 복무기간을 10개월까지 단축하겠다고 공약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병력을 13만명 줄여 50만명으로 하고, 10만명의 전문 전투병과 고가 고성능 장비 무기 담당 전문병사를 모병하자'는 주장이 담겨있다.

국민의당 안 전 대표는 문 전 대표의 군 복무기간 단축 공약을 정면 비판했다.

지난 18일 전주를 방문한 안 전 대표는 “문 전 대표의 군 복무기간 1년 단축은 한마디로 무책임하고 적절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이 같은 생각은 국방력에 대한 전박적인 생각 아래서 계획이 필요하다”며 “저출산·고령화로 군에 입대 가능한 젊은이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만큼 전체적으로, 또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단순하게 군 복무기간 단축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은 군 문제에 가장 강경한 대선주자다. 유 의원은 지난 20일 대선을 앞두고 사병의 군 복무기간 단축이 잇따라 공약으로 나오는 데 대해 “병역법에 복무기간을 단축 못하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날 유 의원은 창당준비위 회의에서 “제가 국방위원회에 8년 있으면서 복무기간 단축을 못하도록 병역법 개정안을 냈는데 국방부가 대통령 시행령으로 하겠다고 해서 통과시키지 않았다”며 “대선 때마다 3개월씩, 6개월씩 복무기간이 줄면 도저히 군대가 유지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제 대선 후보들, 특히 민주당 후보들은 자제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미국 대신
북한 선택?


북한의 5차 핵실험으로 한반도 안보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잠룡들의 근본적인 남북문제 해법은 무엇일까. 우선 문 전 대표는 지난 17일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고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어딘들 못 가겠느냐. 지옥이라도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되면 북한부터 가겠다”는 자신의 최근 발언과 관련해 “미국이냐 북한이냐 선택하라는 질문 자체는 참 슬픈 질문이자 근본적인 질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우리의 오랜 우방이자 친구이며, 북한은 우리의 협상대상”이라며 “핵문제를 해결하고 역대 남북회의를 이행·실천할 수 있는 관계로 회복할 수 있다면 당연히 북한부터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성남시장은 지난 27일 집권 후 김정은 북한노동당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했다. 그는 “북한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적대적인 국가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통일해야 할 상대”라며 “만나지 않고 무슨 이야기를 진척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지금처럼 모든 대화 채널이 끊기고, 적대 일변도의 정책으로 평화통일이 점점 멀어지는 상황에서는 신속하게 새로운 지도자들이 만나서 서로 윈윈 하면서 상호공존할 수 있는 정책들을 진행시켜야 한다”며 “실무적 협의 수준이 아니라 정치 최고책임자들 결단을 해야 할 상황이기 때문에 신속히 만나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즉, 선 대화를 통해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가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귀국한 반 전 총장은 북한의 ‘비핵화 없인 대화도 없다’는 현 정부의 대북기조를 옹호하고 나섰다. 정치권 일각에선 그의 북핵 해법이 이전보다 더 강경보수 쪽으로 기울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5월 방한 당시 관훈클럽 간담회서 반 전 총장은 “남북 간 대화 채널을 유지해온 것은 내가 유일하다. 대북압박을 해나가는 과정에서도 인도적 문제를 통해 물꼬를 터가며 대화하고 긴장을 완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군 복무 단축 대선 때마다 등장
집권후 미국 버리고 북한 먼저?

정가는 당시 발언을 두고 현 정부와 대북정책에 있어서 각을 세웠다는 평가를 내놨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난 자리에서는 “박 대통령이 북한 문제에 따른 일련의 대응과 대비를 잘하고 있다”고 말해 기존 입장에서 선회했다.

현재 반 전 총장은 북한 대응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12일 반 전 총장은 “북핵문제를 비롯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 국가와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해 여기에 따르는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즉, 자신만의 담론과 정책을 제시하기보다는 원론적인 이야기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반해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은 대북 강경론자로 꼽힌다. 그는 지난 2015년 3월 ‘5·24대북조치’ 해제를 두고 “북한이 도발을 인정하고 책임자 처벌과 사과, 재발방지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상황에서 일부에서 5·24조치의 전면 해제를 주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5·24대북조치는 지난 2010년 3월26일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해 이명박정부가 같은 해 5월24일 내놓은 대북제재수단으로 남북교역 중단, 대북 신규투자 금지, 대북지원 사업의 원칙적 보류 등 모든 지원을 차단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듯 강경 기조를 보여온 유 의원은 최근에는 민주당 문 전 대표의 안보관을 힐난했다. 지난 24일 유 의원은 문 전 대표를 겨냥해 “야당의 안보관과 대북관이 불안한 대선 후보에게 국가를 맡기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우려했다.

이어 “대통령이 되면 북한에 먼저 가겠다는 사람, 유엔 대북인권결의안 문제를 김정일에게 물어보는 사람, 사드 도입에 반대했다가 5차 핵실험 뒤에는 말을 바꾸고 말 바꾸기가 일상인 그런 사람에게 국가 안보를 맡기면 되겠느냐”고 말했다.

갈지자 행보
지지율 때문?

신율 명지대 교수는 최근 오락가락하는 문 전 대표의 안보관에 대해 “문 전 대표 입장에서는 중도 보수층을 잡아야 하다 보니 주요 현안에 대해 상대편 논리도 수용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문(문재인) 대 비문(비문재인) 구도의 상황에서 후발주자들은 핵심 지지층을 끌어모으기 위해 문 전 대표를 비토하는 발언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2012년 문-안 안보관 충돌 왜?

지난 18대 대선 과정에서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와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북한에 대한 인식 차이를 드러냈다. 특히 금강산 관광재개 문제를 둘러싸고 두 사람은 설전을 벌였다. 야권 후보 단일화 토론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 후보에게 “남북관계 개선 발전을 말하는데, 보면 이명박정부처럼 전제조건을 달고 있다”며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5·24조치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이에 안 후보는 “잘못 아는 것 같다. 우리도 어떤 조건을 걸지 않는다. 먼저 대화를 하고, 그 대화를 통해서 예를 들어 금강산 관광은 재발방지 대책이 꼭 있어야 한다”며 “내 입장은 먼저 대화하고, 이를 통해 사과, 재발방지, 경제교류, 인도적 지원까지 다 협의를 하자는 거다”라고 말했다.

“안철수가 박근혜보다 더 보수적”
금강산 재개 놓고 ‘평행선’

이어 “일단 재개하면서 재발방지나 관광객 신변안전을 보장받자는 데 동의하느냐”는 문 후보의 질문에 안 후보는 “그렇지 않다. 먼저 대화를 통해 최소한의 방지책을 약속받은 다음 재개할 수 있다”며 “현정은 회장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구두 약속한 것으로 관광객 신변 보장이 되었나”라고 비꼬았다.

두 사람의 충돌에 대해 김연철 교수는 '18대 대선의 통일·외교 분야 정책 비교와 평가'에서 안 후보 측이 안보를 중시하고, 보수적인 국방정책을 발표하면서 중요한 차이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역설적이게도 당시 박근혜 후보조차 선거 막바지에 받아들인 복무기간 18개월 단축안에 대해 안 후보 측만 반대했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국방안보 정책만 보면, 안철수 후보 측의 공약들은 박근혜 후보와 유사하거나 혹은 더 보수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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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