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일가’ 베트남 커넥션 의혹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01.20 17:25:33
  • 호수 10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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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갔다오고 동생 들어갔다” 반씨 형제의 기막힌 타이밍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유독 ‘베트남’과 인연이 깊다. 지금까지 나온 의혹에는 늘 베트남이 등장해서다. 최근 반 전 총장의 둘째 동생 반기호씨가 사외이사로 있는 광림이 베트남 국영기업과 합작법인까지 세웠다. 일각에서는 반씨 일가와 베트남과 수상한 커넥션이 있는 게 아니냐는 막연한 추측까지 나올 정도다.

지난 12일,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귀국했다.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검증대에 올랐다. 그동안 반 전 총장 친인척들의 사건·사고가 연일 구설에 오르고 있다. 반 전 총장의 귀국 전후로 터진 의혹들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바로 베트남이다.

정치권과 재계 관계자는 “반 전 총장의 구설 대부분은 베트남과 연관이 있다”며 “향후 언론 검증에서 반 전 총장과 베트남은 복마전이 될 수도 있다”고 입 모아 말했다.

막연한 추측들
연결고리 의심

반 전 총장의 둘째 동생 반기호씨가 사외이사로 있는 코스닥 기업 광림이 최근 베트남 국영기업과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광림은 중량물 운반을 위한 크레인과 소방차·청소차·전기작업차 등 특장차를 생산하는 업체다. 기호씨는 지난해 3월부터 이 회사의 사외이사로 재직 중이다.

광림은 베트남의 피코서비스 앤 트레이딩 파이낸셜 인베스트먼트 스탁 컴퍼니(이하 피코)와 특장차 판매 및 동남아 시장 진출을 위한 합작법인 설립 계약을 지난해 11월 체결했다. 피코는 베트남의 국영기업인 비나코민(베트남 천연자원개발공사)이 직접 출자해 출범한 기업이다.
 


계약 체결 당시 찍은 사진에는 기호씨도 등장한다. 이에 대해 코스닥 기업의 한 사외이사는 “기업 사외이사는 이사회만 잘 나오면 된다”며 “사외이사가 기업 간의 계약 체결에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첫째동생·조카 사기, 박연차 금품 의혹
모두 베트남과 관련돼 “의혹에 늘 등장”

이와 관련해 광림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광림이 기호씨를 영입한 배경에 대해 “(기호씨의) 해외 네트워크가 좋다는 말을 듣고 사외이사로 모셨다”며 “베트남 기업과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고 영입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실제로 이날 계약식에 베트남 고위공직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응우옌 반 두 베트남 공안부 기술총국 부국장, 부엉 쥐 비엔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등이 등장한다.

베트남서 원단 공장을 운영하는 한 사업가는 “베트남은 공산당 국가라 외국기업에 상당히 엄격하다”며 “국영 기업과 합작법인 등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정부 고위공직자 등 상당한 인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기호씨가 광림의 베트남 계약에 주도적으로 관여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외에도 기호씨는 코스닥 기업 에스와이패널 부회장으로도 재직 중이다. 에스와이패널이 기호씨를 영입한 이유 역시 ‘베트남 등 해외 사업 공헌 활동을 위해서’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기호씨는 베트남과 한국을 오가며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상한 계약
과연 우연일까?

공교롭게 반 전 총장의 귀국 직전 터져 나온 ‘박연차 23만 달러 의혹’에도 베트남이 등장한다. 2005년 5월2일부터 5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응우옌 지 니엔 베트남 외교장관 일행 7명이 방한했다. 이 기간 중 반 전 총장(당시 외교부장관) 주최로 환영 만찬이 한남동 외교부 장관 공관서 열렸다.
 

이날 만찬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도 초청받았다. 주한 베트남 명예총영사 자격이었다. 박 회장은 2003년 7월, 3년 임기인 주한 베트남 명예총영사로 재위촉됐다. 박 회장은 1994년 7월 ‘태광비나’라는 베트남 현지법인을 설립한 뒤 1만2000여명의 현지인을 고용하고 연간 1억달러 이상 수출실적을 기록하는 등 베트남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가 명예총영사로 위촉된 이유다.

그런데 이날 만찬 행사가 열리기 직전 박 회장이 반 전 총장에게 거액을 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 회장은 반 전 총장에게 20만달러(한화 약 2억4000만원)가 담긴 쇼핑백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박 회장이 20만달러를 준 배경에 반 전 총장 직무와 관련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박 회장은 베트남서도 사업을 하고 있다. 따라서 ‘외교 업무’와 관련해 외교부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외교부 수장이었던 반 전 총장에게 “잘 봐달라”는 메시지로 금품을 건넸다는 분석이다. 이외에도 박 회장이 반 전 총장이 베트남과 긴밀한 ‘커넥션’이 있다는 걸 알고 20만달러를 줬을 것이라는 추측도 배제할 수는 없다.

2015년 정국을 뒤흔들었던 ‘성완종 리스트’ 사태 때도 반 전 총장의 동생과 조카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이 두 사람이 ‘작업’하려던 건물도 베트남에 있다. 반 전 총장의 첫째 동생인 기상씨와 조카 주현씨는 베트남 하노이 경남기업의 초고층 복합건물을 매각하면서 중동 국부펀드 고위 관리에게 50만달러(약 6억원)의 뇌물을 건네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13년 베트남 하노이에 초고층 빌딩 ‘랜드마크 72’를 세운 경남기업은 자금난으로 이 건물을 매각하기로 결정한다. 이 과정서 경남기업 고문인 기상씨가 자신의 장남 주현씨를 독점 매각 주관사로 기업에 추천했다.

유엔 사무총장 자격으로 전격 방문
이후 동생의 회사 국영기업과 합작

2015년 독점 매각 주간사로 선정된 주현씨는 2013년 8월, 아버지 기상씨에게 새로 부임하는 카타르 국왕에게 개인적인 네트워킹을 통해 랜드마크 72를 매각할 수 있다고 알렸다. 이후 주현씨는 카타르 투자청이 이 건물을 매입할 의사가 있다는 공문(인수의향서)을 경남기업에 보냈다.

그러나 공문은 허위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카타르 투자청은 랜드마크 72에 투자할 의사도 없으며, 주현씨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인수의향서는 허위문서라고 주장했다. 경남기업은 2015년 7월 주현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반 전 총장과 베트남이 직접 얽힌 듯한 뉘앙스가 담긴 방명록까지 있다. 반 전 총장은 2015년 5월22일 이틀 간의 일정으로 베트남을 방문했다. 일정 마지막 날 반 전 총장은 비공개로 베트남 수도 하노이 외곽에 있는 판(반·潘) 후이 타인씨 집을 찾아 사당에 향을 올렸다. 판 후이 타인씨는 반 전 총장과 같은 성씨다. 

이날 반 전 총장은 방명록에 이렇게 썼다. “潘(반)가의 일원으로, 지금은 유엔사무총장으로, 조상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노력하겠다”(As one of 潘 family, now serving as Secretary General UN, I commit myself that I will try to follow the teaching of ancestors.)


실제로 반씨의 근원은 중국과 베트남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서 반(潘)을 ‘판’이라고 발음하고, 베트남서도 중국과 비슷하게 발음한다. 당시 유엔 측에선 이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고 해명했다. 유엔 측은 “판씨 가문이 베트남서 유명한 학자 집안으로 존경받아 잠시 비는 시간에 들른 것일 뿐 반 총장의 조상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반 전 총장은 언어와 수사학에 익숙한 외교관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사당의 방명록에 ‘반씨의 일원으로서’(As one of 潘 family)라고 표현한 것은 뭔가 인연이 있음을 암시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게다다 ‘조상의 가르침’(the teaching of ancestors)을 따르겠다고 쓴 것은 같은 조상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유독 인연 깊어
조상 베트남인?

반 전 총장은 지난 19일 이명박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그 자리서 이 전 대통령은 반 전 총장에게 “유엔 사무총장으로 근무하며 몇 개국이나 다녔느냐”고 물었고, 반 전 총장은 “154개국을 다녔다”고 답했다. 반 전 총장은 10년 간 150여개국을 다녔지만 의혹은 단 한 개국에 집중된 것이다. 향후 베트남 관련 의혹이 대권을 노리는 반 전 총장의 발목을 잡을 방아쇠가 될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반기호 미얀마 사업도 특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동생인 반기호씨의 미얀마 사업에 유엔 대표단이 참석하는 등 특혜 소지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17일, 미얀마 현지 기사와 미얀마 정부 계정 페이스북을 토대로 이같이 밝혔다. 이 의원에 따르면 반 전 총장 동생 반기호씨는 KD파워 사장과 보성파워텍 부회장에 역임했다가 최근 사임했으며 현재는 에스와이패널 부회장을 맡고 있다.

반씨가 몸담은 회사들은 모두 미얀마서 사업을 진행 중이거나 추진 중이다. 이 의원이 미얀마 현지 기사와 미얀마 정부 계정 페이스북을 확인한 결과, 2015년 1월21일 반씨가 참석한 보성파워텍과 미얀마 정부간 사업회의에 유엔 대표단과 한국 산업자원통상부 관계자가 참석했다.

이 의원은 “유엔 전문매체인 이너시티프레스 매튜 리 기자가 이 회의에 유엔 대표단이 참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면서 “민간사업자가 추진하는 사업에 유엔 대표단이 관여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스럽다. 유엔 대표단이 왜 거기에 있었는지, 참석한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밝혀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 의원은 KD파워가 미얀마 태양광사업에 본격 진출하기로 한 2012년 4월은 반 전 총장이 미얀마를 공식 방문해 국제사회가 미얀마의 경제제재를 풀어달라고 호소했던 시기라고도 했다. 형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시점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KD파워가 2012년 유엔 글로벌컴팩트에 가입해 유엔 조달시장 정보를 제공받는 등의 혜택을 받다가 2015년 유엔 글로벌콤팩트 가입사 의무사항인 친환경 등 10대 원칙 이행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아 제명됐다는 과정에서 특혜 유무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유엔 글로벌컴팩트 가입은 반 전 총장에게 직접 신청서를 보내 승인을 받으면 된다. 국내 가입사는 73곳(대기업 40곳)에 불과하다. KD파워는 미얀마에서 태양열 사업과 석탄화력발전소, 망간채광 사업, 건설업 등을 하고 있다.

이 의원은 “자신의 형이 유엔 사무총장임에도 인권증진이나 환경보호에는 전혀 상관없는 망간채광사업과 석탄화력발전소를 추진하다가 결국 2015년 유엔 글로벌컴팩트에서 제명까지 당하는 망신을 겪었다. 반 전 총장은 KD파워의 UN글로벌컴팩트 가입과 관련해 특혜가 있었는지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반 전 총장 측은 “반씨가 유엔 직원 직함을 사용한 적이 전혀 없고 광산사업과도 관계가 없다”며 “허위사실 보도나 무차별적인 인용보도에 대해서는 민형사상 모든 법적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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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