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재단-폭력조직 결탁설’ 소문과 진실

박근혜-박근령 자매 싸움, 조폭이 정리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논란의 중심인 ‘박근혜 대통령 5촌 간 살인사건’. 육영재단과 얽힌 사건이라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이 사건에 조폭들이 수시로 관여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얼마 전 공개된 육영재단 사건의 동영상에서도 그 정황을 찾을 수 있다. <일요시사>에서 그들의 수상한 관계에 대해 알아본다.

1990년 육영재단 소유권으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 및 박근령씨(전 육영재단 이사장)이 청와대에 탄원서를 보낼 만큼 ‘박 대통령 삼남매’는 한창 다툼이 심했다. 당시 육영재단에선 최태민 일가의 전횡이 심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를 빌미로 근령씨는 분쟁 끝에 당시 이사장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을 밀어내고 차기 이사장에 취임했다.

이사장 쟁탈전
조폭 대거 동원

육영재단은 부동산만 4조원 가치(2016년 시가 기준)를 지니고 있는 대형 재단으로 임대 수익사업으로 꽤 많은 돈을 벌고 있었으나 재단 운영이 비리투성이였던 탓에 수익금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 같은 현상은 박 대통령이 이사장 자리서 물러나고 근령씨가 취임한 후에도 고쳐지지 않았다. 특히 2007년부터는 그간 힘을 합쳤던 근령씨와 박지만 회장이 갈라섰다.

원인은 바로 박 대통령의 제부 신동욱 공화당 총재 때문. 신 총재는 14살 연상의 근령씨와 2007년 2월 약혼했다. 이때부터 박 회장은 매형 될 사람이 육영재단의 운영권을 독점할 것을 두려워하면서 근령-동욱 커플과 갈등을 빚기 시작한다. 갈등이 심화되자 양측에선 조직폭력배와 불법 용역회사 등을 동원한 폭력사태가 자주 발생하게 된다.
 


급기야 2007년 11월28일에는 양측에서 200여명이 동원된 대규모 폭력 사태가 터졌다. 이때 한센병 환자를 동원한 박 회장은 당시 이사장이던 작은누나와 가까운 사람을 모조리 내쫓고 육영재단을 장악한다. 근령씨 측에서도 육영재단을 재탈환하기 위해 조폭들을 동원했다. 이런 악순환은 한 달 가까이 지속됐고 서로 뺏고 빼앗기는 혈투 과정서 사제폭탄까지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조 달하는 재단 재산 두고 혈투
전국구 조직과 수상한 관계 포착

한 매체에선 육영재단 폭력사태의 정황이 담긴 동영상을 입수해서 보도하기도 했다. 이 동영상에는 5촌 조카 살인사건 피해자인 고 박용철씨도 등장한다. 근령씨 측의 사무실, 복도, 정문서 촬영된 영상에서 박용철씨는 “이XX 놔둬. 30분 있으면 한센인들 오니까 맞아 죽도록 놔둬!”라고 폭력배들에게 지시한다. 이 동영상은 한센인들이 계획적으로 폭력사태에 동원됐다는 움직일 수 없는 핵심 증거다.

박용철씨는 근령씨 측 용역회사 직원들에게 “생활원 애들은 빠져라. 나 영등포다. 빠져라. 경고했다. 빠져라 애기들. 다 빠져있어라”라며 위협하기도 한다.

육영재단을 강탈하기 위해 한센인과 조직폭력배가 폭력사태를 벌였을 당시에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버스가 동원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당시 폭력사태는 박 회장이 육영재단의 이사장이었던 근령씨를 끌어내리기 위해 조폭들을 동원하면서 벌어진 사건으로 알려졌지만 박 대통령이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 것. 폭력사태 당시 육영재단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 버스가 육영재단 문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을 봤다”고 털어놨다.

신동욱 떼어놓자
청부살인 의혹


당시 폭력사건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A씨는 “육영재단 폭력사태는 박지만 등의 개인적인 욕심이 빚은 사건이 아니라 철저하게 정치적 목적에서 계획된 폭력사건”이라고 증언했다. 수조원에 달하는 육영재단의 부지도 폭력사태의 원인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도 육영재단 주변서 나오고 있다.

동영상에도 등장하는 박용철씨는 육영재단 폭력사건 당시 박지만의 최측근으로서 폭력 사태를 주도한 바 있는 인물이다.

용철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 형 박무희씨의 손자이자 국제전기기업 대표인 박재석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즉 박근혜, 박근령, 박지만 삼남매에게는 5촌 조카가 된다. 그는 결혼 후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기 때문에 사망 당시 국적은 캐나다였다.
 

용철씨는 2007년 귀국, 당시 17대 대선의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박 대통령의 경호원 역할을 했다. 이때 박 회장과도 손을 잡고 육영재단 문제에도 관여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2007년 7월 용철씨는 박근혜 캠프서 중국 재경부장관을 만난다는 이유로 신 총재와 중국 칭다오에 함께 갔다. 그런데 칭다오에서의 첫날 밤, 신 총재가 자기 신변이 위험하다면서 건물서 뛰어내려 골절상을 입고 중국 공안에 신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이 일로 중국 삼합회와의 거래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당시 중국서 구사일생으로 귀국한 신 총재는 2년 반 뒤인 2010년 2월,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의 홈페이지에 “박지만이 박용철을 시켜 나를 살해하려 했다. 육영재단 강탈사건서 박지만은 허수아비 역할이었고 배후는 박근혜의 주변 사람들이다”라는 주장을 사진과 함께 게재했다.

이 게시글이 온라인을 통해 급속도로 알려지면서 문제가 되자 홈페이지 주인이던 박 대통령은 신 총재를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유포로 고소하기에 이른다.

육영재단의 폭력사건에 관여했던 관계자 B씨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신 총재가 표를 깎아 먹는다고 판단한 박 회장과 참모 진영서 “신동욱을 없애는 게 낫다”고 판단해 신 총재를 미얀마서 총기로 살해할 계획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한나라당 중량급 의원 다수가 폭력사태와 연루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7인 회의’
치밀한 계획

그는 육영재단 찬탈을 기획한 이른바 ‘7인 회의’ 명단을 처음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그가 밝힌 7인 회의에는 박 회장 비서실장인 정용희씨, 임두성 한빛재단 회장이 포함됐다.

또 용철씨 등 박 대통령 5촌 조카 2명과 L씨 등 폭력배 2명도 함께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육영재단 폭력사태 전날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술집서 모임을 갖고 근령씨를 축출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7인회 회의서 “고 육영수 여사가 어린이회관에 심어 놓은 나무를 신동욱씨가 벤 것을 문제 삼아 한센인들을 동원하기로 모의했다”고 주장했다.


임두성 한빛복지협회(전국 한센인들의 모임) 회장도 주목되는 인물이다. 임 회장은 육영재단 폭력사태에 한센인 100여명을 동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많은 폭력전과에도 불구하고 18대 총선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2번을 배정받아 국회에 입성하기도 했다.
 

이명박정부의 개국공신이었던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은 이 과정서 박 대통령의 영향력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

용철씨는 육영재단 폭력사태를 주도한 인물이지만 이후 재단 운영서 배제되면서 박 대통령과 박 회장에 대해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그는 “신동욱을 중국서 죽이라고 박 회장이 이야기한 내용을 녹음한 음성 파일을 법정서 공개하겠다”며 정윤회씨와 박 회장 측에 거액을 요구하던 중 피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주도한 5촌 조카 주검으로
신동욱도 중국서 살해 위협

박씨가 이들을 상대로 거래를 시도했다는 것은 육영재단을 둘러싼 각종 불법과 폭력사태의 정점에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있었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선 용철씨의 녹음 파일의 존재에 대해 증언하겠다는 제보자 C씨를 만난다. C씨는 용철씨가 수하로 중국 조선족 두 명을 데리고 있었다고 했다. 용철씨는 죽기 전 조선족 여자에게 노트북과 핸드폰을 보관하고 있으라며 맡겼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살해당했다는 것이다.


녹취 파일에는 청량리 조직폭력배 이 아무개씨의 이름도 나온다고 한다. 이에 용철씨의 죽음에 조직폭력배가 개입했을 것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용철씨의 시신에 남은 찔린 상처는 매우 특이하다. ‘ㄱ’자 모양, ‘V’자 모양의 찔린 상처가 여러 개다. 법의학과 교수는 찌른 곳을 연속으로 찔렀거나 찌른 후 손목을 비틀거나 방향을 바꾼 경우라고 말했다. 소위 칼잡이들의 수법인 것이다.

C씨의 주장 속에는 박 대통령의 이름도 나오며, 청량리 조폭도 언급된다.

당시 대통령 후보와 조폭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이 기묘한 사실은 그래서 더 섬뜩하다. 숨진 용철씨의 찔린 상처로 봤을 때 조폭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은 증거들이 많았다. 그런 점에서 C씨의 주장은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 용철씨와 가까웠던 조폭 황모씨는 대선을 얼마 남기지 않고 라면을 먹다 숨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용철씨의 주변에는 조폭들이 있었고 그의 최측근 중 하나가 제보자에게 그를 죽이라고 한다는 주장을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형을 죽이란다”라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용철씨를 죽이라고 지시한 자가 있다는 증언이다. 제보자에게 사건 전 발언을 했던 인물도 사라졌다고 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지난 9일, 신 총재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육영재단을 사이에 두고 ‘조폭설’의 진상이 밝혀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특검팀은 신 총재를 상대로 육영재단의 재산 형성 과정에 관해 확인하고 있다.

특검팀 대변인인 이규철 특검보는 최근 정례 브리핑서 “신동욱씨 관련해 여러 가지 얘기가 있는 것 같다”며 “신씨가 오늘 다른 부분을 진술할 수 있지만 현재 특검에서 확인하려는 부분은 육영재단 재산 형성 관련 의혹에 한정된다”라고 말했다.

특검팀은 최씨 일가의 전반적인 재산 형성 과정에 대한 추적을 이어가고 있다.

특검이 나섰다
들춰지는 사건

이 특검보는 “생각보다 상당히 양이 많다. 어느 정도 부분은 진행되고 있고 인력이 필요하면 보강해서 계속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금융감독원서 일부 자료를 받았다. 자료 확인 후 소기의 성과가 나오면 일률적으로 알려드리겠다. 현재는 (이렇다 저렇다) 말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했다.

특검팀은 지난달 말 최씨 관련자 약 40명에 대한 재산 내역 조회를 금감원에 요청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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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