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신당 프로젝트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6.12.26 09:57:04
  • 호수 10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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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모시고' 안철수 '손잡고'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새누리당이 창당 이래 최초로 분당의 기로에 섰다. 비박(비 박근혜)계 의원 34명은 최근 탈당결의문을 통해 친박(친 박근혜)계와 함께 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들은 오는 27일, 새누리당을 전격 탈당하기로 합의했다. 원내 제4당 출범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이다. 이 당의 정체성은 당연지사 ‘친박계 퇴진’이다. 사생결단의 격전이 지금 막 시작되려 하고 있다.

흔하디흔한 드라마처럼 집안싸움이 결국 결별로 끝나기 직전이다.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 34명은 친박계와 함께할 수 없다는 뜻을 통보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후 어느 정도 예상됐던 결과다. 그래서인지 친박계도 담담히 이별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광화문서 일어난 촛불혁명에 비박계는 자성의 목소리를 냈지만, 친박계는 눈과 귀를 닫아왔다. 성향이 다른 두 계파의 분열은 일면 합리적으로 보인다.

비박계 분당
결의문 발표

비박계 의원들은 지난 21일, 회동 직후 탈당결의문을 발표했다. 그들은 친박계를 가짜 보수라 정의했다. 진정한 보수를 위해 ‘혁신’과 ‘개혁’에 나서겠다는 뜻도 전했다. 비박계는 “대한민국 정치를 후퇴시킨 친박 패권주의를 극복하고, 진정한 보수 정권의 재창출을 위해새 출발을 하기로 다짐했다”며 “친박·친문(친 문재인) 패권정치를 청산하는 새로운 정치의 중심을 만듦으로써, 안정적으로 운영할 진짜 보수 정치의 대선 승리를 위한 역할을 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이들은 주호영·정병국 의원을 개혁보수신당(가칭) 창당준비위원장으로 선임하고 향후 일정 등을 논의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내년 설 연휴 전까지 창당발기인대회와 창당준비위원회 결성을 마무리한다는 입장이다.

이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중앙선관위)에 중앙당 등록까지 완료하면 원내 4당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원내교섭단체 요건은 현역 국회의원 20명으로 이변이 없는 한 원내 입성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큰 틀에서 기존 새누리당 당헌·당규를 벤치마킹하면서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인 국정농단과는 분명히 선을 그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두 계파는 봉합의 실낱같은 적기가 있었다. 원내대표·비대위원장 물밑협상이 그것이다. 정진석 전 원내대표가 지난 12일 물러나면서 공백이 된 원내사령탑 자리를 두고 친박계 정우택 후보와 비박계 나경원 후보가 경합을 펼쳤다. 결과는 정 후보의 7표차 신승으로 끝났다(총 119표 중 정 후보 62표, 나 후보 55표, 기권 2표).
 

선거 전 두 계파 사이에는 몇 차례 봉합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양측 계파의 좌장 격인 친박계 서청원 의원과 비박계 김무성 전 대표는 원내대표직을 두고 두 계파가 선거전을 치를 경우 돌이킬 수 없는 형국이 될 것이란 데 공감했다는 것이다. 이에 경선 대신 주호영 의원을 원내대표로, 이명수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각각 합의 추대하는 방안을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주자급
무더기 탈당

그러나 그 대가로 친박계가 공동 비대위원장 카드를 꺼내들면서 협상은 깨졌다. 최종적으로 친박계는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전권 비대위원장’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당시 새로운 원대사령탑인 정우택 원내대표는 “유 전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이 되면 당이 풍비박산 날 수 있다”는 말까지 했다.

한때 유 전 원내대표의 런닝메이트였던 원유철 의원도 “외부인사를 모셔 당내 갈등을 봉합시키고 나아가서는 쇄신도 해서 내년 대선서 새로운 희망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사실상 거부의사를 드러냈다.

결국 오랜 불신의 벽을 넘지 못하고 갈라서게 됐지만, 친박계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서청원 의원은 최근 국회서 기자들과 만나 “분당이야 한두 번 봤느냐. 나가면 나가고 남는 사람은 남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최경환 의원도 유 전 원내대표의 탈당에 대해 “그건 자신의 정치적 판단”이라며 선을 그었다.

신당의 핵심 멤버는 누가 뭐래도 과거 ‘K-Y라인’으로 불렸던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원내대표다. 김 전 대표는 탈당결의문 발표 하루 전, 유 전 원내대표를 만나 “창당 작업을 주도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김 전 대표 측이 유 전 원내대표에게 “배는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 전 대표가 만들 테니 그 배의 선장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유 전 원내대표가 이를 고사함으로 인해 주호영·정병국 의원이 창당준비위원장을 맡게 됐다. 비록 김 전 대표와 유 전 원내대표는 전면에 나서지 않는 모습이지만, 비박계 좌장과 차기 대선주자라는 점에서 신당 창당을 주도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국 두 사람은 새로운 배의 실질적인 선주와 선장인 셈이다.

비박계 30여명 집단 탈당 초읽기
덤덤한 친박계 “나갈 사람 나가”

앞서 김 전 대표는 지난 2012년 19대 총선 공천서 탈락하자 신당 창당을 추진한 적이 있다. 당시 김 전 대표는 김덕룡 전 의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 등과 함께 ‘YS신당’을 만들 계획을 세웠으나, 막판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백지화됐다. 그러나 그는 이번 창당을 주도, 4년 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비박계 신당이 ‘김무성 신당’이라 불리는 이유다.

김무성 신당은 단숨에 친박계 대항마로 떠올랐다. 일찍이 특정 당을 겨냥해 새로운 당이 만들어진 경우는 여럿 있었지만, 이처럼 특정 계파를 겨냥한 당은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다. 과거 친박계 인사들이 ‘친박연대’를 만들었지만, 김무성 신당과 친박연대는 결이 다르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친박연대는 친이(친 이명박)계 공천 학살이 자행되자 서청원, 홍사덕 등 친박계가 한나라당을 탈당하면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박근혜 전 대표는 당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친박연대가 지난 2011년 2월 한나라당과 합당할 수 있었던 이유도 전적으로 박 전 대표가 당에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비박계의 이번 탈당은 가산을 송두리째 들고 나온다는 점에서 다르다. 김 전 대표, 유 전 원내대표뿐만 아니라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 일찍이 새누리당을 박차고 나왔던 남경필 경기도지사까지,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들 모두 새누리당을 떠날 방침이다.

탈당도 함께
K-Y ‘투톱’

때문에 정치권은 향후 새누리당과 김무성 신당의 합당 가능성을 낮게 점치고 있다. 만약 두 계파가 다시 합친다고 하더라도 그 시점은 대선 후가 될 것이란 게 중론이다. 한쪽이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을 때만 재결합의 가능성이 생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대선 전 재결합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두 계파의 감정의 골은 박 대통령과의 심리적 거리 차이일 뿐 기본적인 이념과 성향은 차별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보수정권 재창출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위해 서로 손을 잡게 될 것이란 예상이다.

비박계 중진 정병국 의원은 탈당결의문을 발표한 날 친박계와의 재결합 가능성에 대해 “친박계와 합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과연 김무성 신당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중앙선관위는 2016년 4분기 전체 의석수 294석 중 129석을 차지한 새누리당에게 36억9160만원을 지급했다. 김무성 신당이 창당될 경우 빠르면 내년 1분기부터 경상보조금을 지급받게 된다.

만약 원내교섭단체 구성의 커트라인인 20명으로 시작한다면 14억6242만원, 35명이면 15억8893만원, 인원이 늘어 37명이면 16억499만원을 중앙선관위로부터 받게 된다. 재정적으론 새누리당 친박계가 앞서는 것이다.


그러나 정권재창출 가능성만 놓고 따지면 김무성 신당이 우세하다. 현재 보유한 대선주자군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까지 영입한다면 확실한 우위를 선점할 수 있다.

이미 반 총장은 박 대통령을 비난하며 결별을 통보한 상태다.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한 자리서 그는 “한국 국민은 국가의 리더십에 대한 신뢰가 배신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반 총장의 최종 행선지는 어디가 될지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내년 설 이후 창당, 보조금 16억
국민의당 연대해 캐스팅보트 쥘까

김무성 신당과 국민의당이 반 총장 영입에 가장 적극적 제스처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김무성 신당 입장서 본다면 반 총장 영입은 새누리당의 ‘후속 탈당’을 불러올 카드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이미 정치권에선 최대 20여명의 새누리당 의원들이 2차 탈당을 고민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새누리당이 ‘불임 정당’으로 전락한다면 강성 친박계 인사를 제외한 나머지 인사들은 자연스레 당을 떠날 것이란 전망이다.

최근 정진석 전 원내대표는 분당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반 총장과 함께할 수 있는 현역 의원들이 상당수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무성 신당과 국민의당의 연대 가능성도 점쳐진다. 친박계 공세를 위해 두 당이 힘을 합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이해관계는 서로 맞아떨어진다. 대부분 의원들의 지역구가 수도권과 경남 지역인 김무성 신당 입장에선 연대가 당의 토대를 닦아줄 자양분 역할을 할 수 있다. 국민의당 입장에서도 지지부진한 안철수 전 대표의 지지율을 연대카드로 뚫을 수 있다. 무엇보다 연대했을 때 기대되는 최소 60여명(국민의당 38석 + 김무성 신당 30여명)의 맨파워는 향후 캐스팅보트로서의 중요도를 높여줄 수 있는 요소다.

“반 영입은
탈당 도화선”

최근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김무성 신당과 국민의당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회색정치의 공간을 줄인다는 점에서 안 전 대표와 비박계의 연대는 한국 정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안철수-비박계 연대가 형성된다면 (국민의당은) 보수의 정체성을 선언하는 것이라고 보고, 아마 호남 아디오(결별) 선언이 되지 않겠나”라고 역효과가 날 수 있음을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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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속 기사> 친박계 모임 미스터리

새누리당 친박계 모임 ‘혁신과통합보수연합’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별다른 활동도 없이 결성 일주일 만에 해산했기 때문이다. 이름에서 나온 ‘혁신’과 ‘통합’에 대한 어떠한 성찰도 없었다. 해당 모임은 지난 13일 결성됐다. 친박계 의원 50여명이 참여했고, 정갑윤 의원, 이인제 전 최고위원, 김관용 경상북도지사가 공동대표를 맡았다. 그러나 이 모임은 원내대표 경선이 있었던 지난 16일 이후 4일 만에 전격 해체됐다.

모임이 해산되기 전 당 원내대표 경선이 치러졌기 때문일까. 일각에선 모임의 목적을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고 있다. 그중 하나가 계파 세를 과시, 친박계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함 아니었냐는 것이다.

모임서 나오는 발언들이 오히려 당내 분란을 키웠다는 점에서 의혹은 커지고 있다. 지난 20일 해산을 밝힌 그들은 “‘최순실 사태’의 책임에서 친박계는 물론 비박계도 자유롭지 않다”며 “그런 점에서 시류에 편승한 일부 의원이 책임을 회피하고 ‘쇄신’ ‘개혁적 투사’로 자처하는 것은 결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전했다. 마지막까지 비박계를 자극, 갈등만 확산시켰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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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채 상병 특검법)이 야당 주도로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7월19일 사건 발생 10여개월 만이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반발하며 퇴장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서 ‘이태원참사특별법’을 합의 처리된 뒤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제출하며 채 상병 특검법 상정을 요구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한 사건을 초동 조사하고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서 대통령실·국방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특검이 수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경찰 이첩 개입 의혹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를 수용해 의사일정 변경동의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졌고, 재석 168명 전원 찬성표로 가결됐다. 표결에는 야당만 참여했고, 국민의힘은 반발해 사실상 표결에 불참했다. 민주당은 원래 본회의 안건에 없었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기 위해 의사일정 변경을 우선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은 이번 본회의에 합의되지 않은 법안이 올라가는 것 자체를 반대해 왔다. 당초 김진표 의장도 여야가 합의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양당 원내대표를 의장석으로 불러서 마지막으로 중재를 시도했지만 5분 뒤 김 의장은 여러 가지로 고려한 끝에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양당의 마지막 협상도 결렬됐고, 국민의힘에서는 유일하게 자리에 남았던 김웅 의원만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방청 중이었던 해병대 예비역연대 법률 자문, 김규현 변호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년의 해병대 예비역들도 연신 눈물을 흘렸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야당이 강행 처리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로텐더홀서 규탄대회를 열고 “그간 우리 당은 이태원참사특별법에 합의 처리하는 조건으로 의사일정에 동의했다. (민주당과 김 의장이)채 상병 특검법을 애초에 처리하겠다고 했으면 저희는 오늘 본회의 의사일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모처럼 이태원법 합의 처리를 통해 협치 분위기가 조성되고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있는데 오늘 의사일정 변경까지 해서 채상병법을 처리하겠다는 것은 정치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채 상병 특검법 표결 시 본회의장을 퇴장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채 상병이 의사일정으로 상정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규탄대회 뒤 거부권 행사 건의와 관련한 질문에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국힘 퇴장 속 야당 전원 찬성 조각난 협치···대통령 또 거부?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 의사일정 변경안을 제출한 상태다. 이날 본회의는 이태원특별법 처리를 위해 여야 합의로 잡은 일정인 반면, 여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상황서 입법을 강행하기 위해 의사일정을 변경해 본회의 부의를 시도하겠다는 의도였다. 대통령실은 이날 야당의 강행 처리 예고를 예의주시하면서도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서 “민주당이 오늘 국회 본회의서 채 상병 특검법을 의사일정까지 바꿔가면서 일방 강행 처리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 표명은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실장은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며 “공수처와 경찰이 이미 본격 수사 중인 사건인데도 야당 측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특검을 강행하려고 하는 것은 진상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여권에선 채 상병 특검법 자체의 법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이미 수사 중인 사안에 특검을 도입하는 배경에 정쟁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바라봤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서 진행 중인 수사가 끝난 다음, 그 과정이나 결과를 토대로 특검 도입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야당이 특검을 당장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대통령실은 무엇보다 2021년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해병대수사단에 수사권이 없어졌기 때문에 야권이 주장하는 ‘수사외압’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해병대수사단이 기초 조사는 할 수 있겠지만, 관계자 수십명을 소환하고 연루자가 몇 명이고 하는 것은 법에 규정된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당시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의 ‘월권’ 가능성을 지적한 셈이다. “정치적 의도” 대통령실 발끈 또 과거 공수처 설치와 군사법원법 개정을 주도했던 민주당이 특검을 추진하는 모순을 거론하며, ‘참사의 정쟁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분위기다. 이날 정 실장은 “현재 공수처와 경찰서 철저한 수사를 진행 중이므로 수사 당국의 결과를 지켜보고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공수처와 경찰이 우선 수사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특검 도입 등의 절차가 논의되고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공수처는 민주당이 패스트트랙까지 동원해 설치한 기구다. 당연히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는 것이 상식이고 정도”라며 “지금까지 13차례 특검이 도입됐지만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진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야당이 단독으로 주도한 이유도 있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과정서 윤 대통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수사를 왜곡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관련 정황은 이미 상당 부분 나왔다. 국방부는 사단장 등 고위 지휘관들의 혐의를 축소하려 했고, 경찰에 넘긴 수사기록도 매끄럽지 않은 과정을 통해 회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관계자들이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조율한 흔적도 엿보였다. 국민의힘은 특검법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서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공수처 수사가 1년 가까이 진척을 보이지 않으면서 야권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과거 대통령실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조그마한 사고’라고 언급한 사건도 국민적 분노를 유발했다. 지난 3월22일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 매체와 인터뷰서 ‘조그마한 사고’로 표현하고 “전 지휘관이 법적인 문책을 받는 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실언한 바 있다. 더구나 공수처는 지난해 8월 고발장을 접수한 이후 인력 부족, 수사 의지 등을 핑계로 현재까지 ‘수사 진행 중’이라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해병대를 비롯한 국민 여론도 특검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눈물 흘린 해병들 왜? 해병대예비역연대는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채 상병 특검법 상정과 통과를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 모여 “채 상병 특검법 통과, 박정훈 대령 탄압 중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같은)이런 세력들이 우리나라의 집권여당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장은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이 나라의 안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인가. 국민의힘과 대통령은 민심을 외면하지 말고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하길 바란다”고 외쳤다. 해병대예비역연대에 법률자문을 하고 있는 해병대 출신 김규현 변호사는 “(국민의힘은)처음엔 ‘독소 조항이 있다’고, 지금은 ‘공수처와 경찰이 수사 중이니 그 수사가 끝난 다음에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과거 특검 때에는 (앞서)경찰·검찰이 수사를 안 했는가”라고 되물었다. 사실상 가장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할 방법은 법정 수사 기간을 최대 3개월로 정해놓고 있는 특검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병대 측은 이날 “3개월이 지나면 우리 군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안보에 전념할 수 있고, 정치권도 채 상병 문제를 일단락하고 지금 산적한 안보, 민생 정책을 논의할 수 있게 된다”며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수사를 기다리며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채 상병 문제로 정쟁을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국민의힘은 오후 2시에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전원 참석해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집회를 마친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 45명은 채 상병 특검법의 상정·통과 여부를 보기 위해 곧장 국회 본회의장으로 이동했다. 앞서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민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후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지난달 3일 본회의 자동 부의 요건을 충족했다. 여야는 지난 1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처리에는 합의했지만, 채 상병 특검법과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안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통한 것이다. 1년 가까이 진척 없는 수사 역풍 뻔한데···용산 선택은? 특검법 통과에 대해 대통령실은 야당을 향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수세에 몰린 대통령실이 야당을 지적할수록 부정 여론만 키우는 분위기다. 더구나 대통령실은 스스로가 수사 대상이 되는 사안서 ‘협치’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으나, 이로 인해 역풍을 맞게 되는 형국이다. 당장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용산의 뜻을 따를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어렵사리 여당 의원들을 단속하더라도 다음 달에 시작하는 22대 국회에서는 궁지에 내몰릴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신중한 모습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거부권을 행사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며 “김진표 국회의장은 합의 정신을 존중하는 분”이라고 일축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여야 합의 없이 거대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안들에 대해선 ‘과도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젊은 병사의 죽음’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인 데다 야권과 언론이 국가안보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 등 대통령실 연루 의혹을 잇달아 제기한 상황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당의 총선 참패 한 달여 만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다. 국회 재표결 시 여당 이탈표도 우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 회담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의 적극적인 수용을 요구한 데 대해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것도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공수처는 특검 출범 여부와 별개로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 외압 의혹’과 관련된 핵심 인물들을 불러 조사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방부가 채 상병 사건을 회수하고 재조사하는 과정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대통령실 등 ‘윗선’으로부터 외압이 있었는지 의혹을 풀어줄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환조사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수사는 진행 중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이대환)는 지난 2일 오전 9시25분쯤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날 공수처는 박 전 직무대리를 상대로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재조사한 후 혐의자를 축소해 경찰로 넘기는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 등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