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황당한’ 2016 X파일

[일요시사 취재2팀] 김경수 기자 = 다사다난했던 2016년. 그만큼 황당한 사건·사고도 많았다. 지난 1년간 본지 <금주의 X파일>에 실린 기사 중 진짜 황당했던 사건·사고를 월별로 추려봤다.

[1월] 집안 꼴이…조카에 마약판 이모부

서울 관악경찰서는 1월12일, 20대 조카에게 마약을 판 임모(55)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이모부 임씨는 2015년 4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길가에서 조카 하모(25·여)씨에게 돈을 받고 마약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하씨가 마약 전과가 있는 임씨에게 마약을 요구, 이에 임씨는 하씨에게 60만원을 받고 필로폰 0.25g을 넘겼다.

하씨는 친구 김모(25·여)씨와 함께 맥주에 필로폰을 타 마셨지만, 곧 어지러움 등을 호소하며 119에 신고했고, 출동한 119대원들이 이들의 마약 투약을 의심, 경찰에 신고하면서 덜미가 잡혔다.

[2월] 여성 12명과…성관계 동영상 올리고 자수

서울 강남경찰서는 2월10일 여성과의 성관계 동영상을 상습적으로 인터넷에 올린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A씨는 2월9일 오후 3시쯤 여성 2명과 성관계 당시 찍은 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며 자수했다.

경찰은 A씨의 자택을 수색한 결과 컴퓨터 저장장치서 여성 10여명과의 성관계 영상이 추가로 발견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보이는 약품을 발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 의뢰했다.

[3월] 왕따 화나서…마을 우물에 살충제 투약

전주지법 형사5단독은 주민이 자신을 비난하자 이에 보복성으로 마을 공동우물에 살충제를 넣은 A(53)씨에게 3월28일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A씨는 2015년 9월18일 오후 8시쯤 전북 임실군의 한 마을 우물에 다량의 살충제를 부어 넣은 혐의로 기소됐다.

주민들은 평소와 다르게 물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자 경찰에 신고,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A씨는 “어떤 주민이 마치 내가 봉지커피를 훔쳐간 것처럼 말해 홧김에 공동우물에 살충제를 부었다”고 진술했다.

[4월] 사장, 변호사, 법원 직원…‘1인 3역’ 사기꾼


서울 노원경찰서는 휴대전화 소개팅 어플리케이션으로 중국 동포 여성을 만나 자신을 ‘M&A 회사 사장’이라고 소개한 뒤 법원 직원과 변호사 등으로 1인3역을 하며 6400여만원을 받은 김모(42)씨를 4월13일 구속했다.

김씨는 자신을 서초동 법원 직원, 변호사 등으로 속인 뒤 지난 2014년 11월부터 2106년 1월까지 총 143회에 걸쳐 6400여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김씨는 회사 법인 카드를 잃어버렸다며 50만원을 빌려달라고 하는 등 2016년 1월까지 “거래처에 수수료가 필요하다. 회사의 돈이 국고로 들어가지 않기 위해 벌금을 내야 한다”는 말로 돈을 가로챘다.

김씨는 서울의 유명대학을 졸업한 M&A 회사 사장이라고 행세하면서 피해자들이 한국 물정에 어둡고 한국 사람의 목소리를 잘 구별하지 못하는 약점을 이용, 공중전화로 목소리를 변조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계좌로 돈을 송금받았다.

김씨는 법원 국제금융처리과 직원, M&A 회사 법무팀 변호사로 속이면서 1인3역으로 중국 동포 여성을 속였다.

[5월] 난간서 애정행각 중 키스하다 추락사

서울 용산경찰서에 따르면 이태원동 3층 주택 옥상서 키스를 하던 미국인 남성 A(31)씨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인 여성 L(26)씨가 5월8일 추락해 숨졌다.

경찰은 주변 목격자의 증언에 따라 이 둘이 옥상 난간 근처에서 키스를 하다가 L씨가 먼저 떨어졌고 A씨가 L씨를 잡으려고 하다가 같이 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주택은 A씨가 세들어 살던 집이었다. 이들은 사고 직후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머리를 크게 다쳐 숨졌다.

[6월] 귀가하던 중 날벼락…투신남에 부딪혀 사망

광주 북부경찰서 등에 따르면 퇴근해 귀가하던 A(40)씨가 아파트 20층서 떨어진 공무원 시험준비생 B(25)씨에 부딪혀 둘 다 숨졌다.

5월31일 오후 9시48분께 북구 오치동 한 아파트 20층서 투신한 대학교 4학년 B씨가 이 아파트 입구를 지나던 A씨를 덮쳤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에 의해 두 사람 모두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아파트 20층서 발견된 B씨의 가방에선 B씨가 쓴 것으로 보이는 A4용지 2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에는 ‘공무원 시험준비가 외롭다. 사회적 열등감을 느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전남 한 군청 공무원인 A씨는 마중나온 부인과 집으로 가던 중 이같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와 B씨의 가족 등을 상대로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7월] “엄마 교회 줘” 목사님의 소유욕

7월25일, 전북 전주 덕진경찰서는 교회에 불을 지르려 한 혐의(현주건조물방화미수 등)로 목사 A(44·여)씨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같은 달 21일, 자신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전주 시내의 한 교회 주차장서 경유를 뿌리고 불을 지르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결과 A씨는 자신의 어머니가 교회 운영권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을 지르려 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A씨가 어머니에게 “이제 나도 교회를 맡고 싶다”고 했으나 어머니가 이를 거절하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전했다.

[8월] 이발비가 52만원? 장애인에 바가지


8월9일, 충북 청주지법 충주지원 형사1단독(황병호 판사)은 충주의 한 미용실 주인 A(48·여)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다.

A씨는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게 과다한 요금을 상습적으로 청구하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5월, 좋은 약품과 특수 기술로 미용시술을 한 것처럼 속여 뇌병변 장애인에게 비용 52만원을 받는 등 2015년 4월부터 범행을 저질렀다.

대상은 장애인·탈북자·저소득층 등 8명으로 알려졌다. A씨는 총 11회에 걸쳐 239만원의 부당 요금을 청구한 혐의를 받고 있다.
 
[9월] 취중 닥터헬기 소동…술주정 대가가 25억?

9월18일, 충남 천안 동남경찰서에 따르면 A(42)씨 등 30∼40대 남성 3명이 8월11일, 천안 동남구 단국대병원 헬기장에 들어가 닥터헬기의 구동축을 휘어지게 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들은 3년 전 무선 조종 비행기 동호회서 만난 사이로, 이날 모임을 가진 뒤 술을 마시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에 따르면 정밀 검사 진행 과정서 고가의 부속품까지 파손된 점이 확인돼 이들은 법적 처벌뿐 아니라 수리비 25억원을 고스란히 떠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10월] 강남 유명 한의사 알고 보니 중졸

서울 강동경찰서는 오피스텔에 진료실을 차리고 수년간 불법 의료행위를 해 약 10억원을 챙긴 혐의로 지모(58)씨를 10월14일 구속했다.

경찰은 같은 혐의로 간호사 정모(40·여)씨도 불구속 입건했다.

지씨 등은 지난 2007년부터 강남구 역삼동의 한 오피스텔에 진료실을 차리고 70∼80대 노인을 대상으로 불법 한방 의료행위를 해 총 10억원가량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까지 경찰이 파악한 피해자만 약 2000명에 달한다.

지씨는 ‘생체파동 분석기’라는 기계를 구비하고 환자의 머리카락을 넣어 건강상태를 분석해 그에 맞는 한방약을 처방하는 식으로 불법 의료행위를 했다.

지씨가 사용한 기계나 한방약은 전혀 의학적 근거가 없는 것이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중졸 학력인 지씨는 환자들에게 “대체의학분야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과거 한의원 운영 경력이 있다”고 속여 왔다고 경찰은 전했다.

[11월] 독극물 풀어 민물고기 싹쓸이

경북 영양경찰서는 전국을 돌며 고압전류와 독극물로 잡은 민물고기를 시중에 유통한  A(42)씨 등 2명을 11월1일 구속했다.

A씨 등은 지난 3월부터 최근까지 경북 영양과 청도, 경남 하동 등지서 청산가리를 하천에 살포하고 고압전류를 흘려보내는 방법으로 138차례에 걸쳐 민물고기 1380㎏, 시가 1억6000만원 어치를 잡아 식당가에 팔아넘긴 혐의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차량에 고압 건전지와 대형그물, 소형보트 등을 싣고 다니며 심야시간에 범행을 저질렀다.

이들은 독극물로 포획한 민물고기를 그대로 시중에 유통시키고, 자라와 얼룩새코미꾸리 등 멸종위기 어종도 닥치는대로 포획했다.

경찰은 이들이 독극물을 사용해 불법 포획·유통시킨 민물고기의 양이 10톤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여죄를 조사하고 있다.   

[12월] 봉지값 50원 때문에…편의점 종업원 살해

경북 경산경찰서는 편의점 종업원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A(51)씨를 12월14일, 붙잡아 조사했다.

A씨는 이날 오전 3시30분쯤 경산시의 한 편의점서 종업원 B(35)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다.

경찰 조사결과 A씨는 음료수를 사려다 ‘비닐봉지 값을 달라’는 B씨와 시비가 붙자 집에 있던 흉기를 들고 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범행을 목격한 주민의 신고로 현장서 붙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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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